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남성의 문화에서 '더러운 것'은 섹스 자체가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몸이 된다. "몸을 더럽혔다" 혹은 "더러운 것들"이란 표현이 지칭하는 대상이 늘 여성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노스 바움(2015)은 "(여성과의) 섹스 그 자체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자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여성이)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지니고 있다"는 인간의 오랜 믿음, 즉 여성 혐오와 인간혐오의 오랜 전통 속에서 형성된 개념적 연계 고리를 지적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자주 이러한 집단이 표상하는 우리 자신에 과한 어떤 것을 우리 자신에게서 차단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P410, P411,


주관적 폭력: 직접적이고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폭력

객관적 폭력: 정상적인 상태에 내재한 폭력. 비가시적. 

객관적 폭력: 상징적 폭력: 선동적 언어를 포함해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 자체를 가르킴

객관적 폭력: 구조적 폭력: 우리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결과 -P416


바우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이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다른 사람의 운명이라는 더 광범위한 함의에 무관심한한 채 자기 일”만 기꺼이 수행하면서 살아가는 현상가무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경고이다. – p417


더 끌고 나가, “나쁜 사회적 장치:에 기인하는 “구조적 무사유”가 “악의 사회성”이라고 주장한다. 타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는 도덕적 무관심은 개인적 기질이나 성향의 문제, 혹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희생자와의 사회적 거리 혹은 사회적 근접성을 중요하게 거론한다. – p418


여성 혐오의 표현이 나오는 대전제가 "(여성이)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지니고 있다"라는 걸 좀 더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 했던 거 같습니다. 이 전제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여성에게만 명명되는 텍스트-낙인적 함의의, 남성에게는 명명되지 아니한-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미혼모', '꽃뱀' 정도가 적절한 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 SNS 상의 미러링 운동으로 인하여 '미혼모'의 대칭되는 표현은 '함흥 자지'. '꽃뱀'에 대칭되는 표현은 '좇뱀'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런-부정적- 함의의 텍스트가 없었고, 설사 있다고 하여도 부정의 느낌은 여성에게 지칭되는 텍스트만큼 부정적이고 강렬한 느낌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더러운 것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며 내부(자신)는 고결하고 깨끗하다는 결벽증적인 사고의 흐름은 유아적인 사고 양식에 가까운 이분법적인 미성숙한 사고를 반영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투사를 통하여 부정적인 것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그걸 조절하고자 함으로서 자기애적 방어를 완성하는 모양으로,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으로 대상을 분리하는 유아적인 사고가 성인인 경우에는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한편 상대방으로부터 자기 안의 부분을 부정하여 투사 당한 대상은 그 내용을 내사하여 소화함으로써 자기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변 환경적인 요인조차도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외부 귀인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만 귀인 하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없는 것인처럼 고려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기계적인 중립으로 표현. 자기 봉사적 귀인 편향이 존재하지 않음.)

그렇게 보면 투사한 대상과 투사된 대상의 사고의 흐름은 겉으로는 달라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흐름을 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역동(흐름)을 끊어내려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집단 내부에서 개개인의 노력으로 이룩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 구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인데도 지금까지 그렇지 못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희망적으로 그려봐야 할지 조차 감이 잡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현재 있는 위치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려면 행동보다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고 하여도 (개개인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성들은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태도를 취하며 남성들은 외부에서 찾는 태도를 취하는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성차에 따른 양육의 차이-주변인의 반응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에 의하면 성차는 유의미한 함의가 없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중론이라는데 그럼 이 모든 것이 전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것인지. 

이부분-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시스템과 시스템에 속해 있는 개인을 바라보는 시점이 개인의 입장이기 보다는 시스템의 방향(입장)에서 바라보는(신자유적인?) 시점의 비중이 더 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인 부분의 영향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클것이라고 의식적으로 인지하지만, 인지함이 없이 혹은 익숙하게(?) 대부분의 것들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습관적인것과 동시에 ‘모두’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습된(?) 불편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악의 평범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바우만의 텍스트) 

어찌하여 (이 나이가 되도록) 수용할 수 없는 것을 ‘투사’라는 방어를 통해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지. 러한 태도는 정서발달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유아기에서 머물러 있는 태도이기에 어떠한 요건이 거기서 고착되게 하는 것인지. 탈 동일화로 나아갈 수 없는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상위 통찰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이 또 일었습니다.


 


* 긍*자기 봉사적 귀인 편향: 부정적인 일은 환경 탓으로, 긍정적인 일은 자신에게 돌려서 자존감을 고양시킨다.

*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 p156, 제8장 근대와 여성 혐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지 코, 은행나무

* 범주 폭력: 사회적 약자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범주 폭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범주는 지배적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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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가시미 이치로, 고가 후리타케, 인플루엔셜



본격 우리(?) 장르 영업서로 추천할만한 책이었어요. 대담 형식이라서 진도가 나가는게 쉬운 만큼  흔드는 강도도 거센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이 청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거 같아요. 많이 흔드는 부분에서는 혼자 생각하는 부분들에서 그런것들이 많이 느껴졌어요. 버겁게 끌려가는데 애써 자기를 유지하려고 부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처음 만남 부터 장르 존잘님께서는 청년이 머글인걸 아시고 장르 영업을 머글 수준에 맞추어서 영업을 시작하시더니 점점 단계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려가며 계획적이고(?) 면밀하게 진도를 나가시는데 (1장에서의) 청년은 아마 자기가 거기까지 이 분이랑 달릴지 몰랐을거 같아요. 연속선 상에 있지만, 1장의 그와 5장의 그와는 분명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니까요. 

구성은 상담으로 치면 총 5회기 짜리 상담인 느낌인데요. 흔드는 강도는 뭐랄까 집단에서 여러명에게 같은 피드백을 받는 느낌의 강도와 유사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암튼 엄청 흔드세요. 마구마구 흔드신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거 같습니다. 진도 10이 넘는 강도로 줄기차게 흔드시고 그리고 청년쪽은 본인의 뿌리를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저항하는 모습이 참... 저항하는데도 추가로 흔드세요. 크으으으. 

그러다가 어떤 지점에서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려고 애쓰고 그러면서 또 어떤 부분은 지금의 자신의로서는 타협하는 것이 불가능 한 부분이니까 그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부당하다고 외치더군요. 그의 외침을 보면서 이 청년은 참 힘이 있는 청년이라고 느낌을 받았어요. 권위자에게 저렇게까지 말하는건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저세계에서 청년의 설정이 그런 설정이라고 하여도 말이에요. 본인에게 그렇게 움직일만한 자원과 힘이 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읽으면서 제일 웃었던-재미있어서- 부분은 1장 이었어요. 프영감이랑 융영감 말고 우리 영감도 유명하거든! 우리장르 3대 천왕인데 머글들에게는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서 그런데 내 존잘님 짱짱맨이라능! <- 이런 느낌으로 계속 이야기 하시는데 솔직히 귀여웠습니다. 철학자님.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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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북인더갭



사실 이정도 강도인줄은 모르고 잡았습니다만... 초반부터 최근에 봤던 영화 <킹스맨>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읽으면서 영국의 오늘날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느껴져서 그래서 읽는게 참 힘들었어요. 그 영화에서 그려지는 차브의 이미지를 아무런 생각없이 소비하던 저의 모습이 보여서 이런 지점도 마음이 편치 못했던거 같아요. 여러모로 이미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저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고, 국가에서 주도하는 계급적 이미지-노동계급을 비하하는-라던가 계급나누기-노동계급간의 갈등을 키우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폴라 토인비라는 사람이 많이 인용되는데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더니 <거세된 미래>의 그분 이더군요. 그때도 참 읽으면서 참담하다고 느껴졌는데 그때의 참담함은 양반이었............ ㅠㅠ 

+

대처만 똥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여러가지 의미로 깜놀했던 책이었습니다. 똥은 지천에. 신노동당은 노동당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번데기 이었습니다. 느그들이 어디가 노동당이여. (빠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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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은행나무



특히 모녀관계와 부녀관계에 대한 파트가 여로모로 저 자신에게 '재의미'를 부여하는 기회가 되었던 책 이었습니다. 몇년만의 여사님의 책인지 정확히 기억하는건 아니지만, 블로그에 있는 포스팅을 찾아보니까 대충 2008-2009년 언저리가 마지막이었던것 같아요. 2000년대 후반에 조한혜정과의 서신집인 <경계에서 말한다>를 읽고 이분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어서 <결혼제국>를 읽게되었습니다만, 여기서 꽤 강한 데미지 받고 한동안 다시 여사님의 책을 읽는 걸 포기했는데 친구 A양의 지속적인 영업과 최근의 여혐 이슈, 그리고 때마침 도서관에 이 책이 있어서 빌려서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읽게 된걸 만족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말로는 치즈코 여사안에는 두가지 영혼이 공존하고 있다고 도쿄대 첫 여성 사회학 교수인 그녀와 키보드 워리어(우리로 치면 진중권 즈음?)의 그녀가 공존한다는 걸요. <결혼제국>은 그 키보드 워리어의 그녀로서의 저작이고 이번에 잡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사회학자 + 키보드워리어가 혼재하지만 전자쪽이 더 강한 느낌의 책 이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이전에 읽은 책보다 덜 불편했던건 비난의 화살이 나 자신을 향하는 쪽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습니다. 이분법 구조로 나눈다고 하여도 시스템에 동조하고 사는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 자신 또한 내부인인건 매한가기라서 건드려 지는 부분이 없다고 말하기는 애매한거 같습니다만. 가장 저의 와 닿던 부분은 '생산재-아들' '소비재-딸[각주:1]'로 프레임을 짜서 보는 부분이었습니다. 모녀관계나 부녀관계 파트도 강하게 각인되긴 했지만요. 전자쪽은 파트를 하나로 할당해서 설명했던 부분은 아니었는데도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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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월쇼, 일다



데미지가 굉장히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서술이 비교적 안전하게 서술된 느낌-대응 메뉴얼이 있었던 점이 그러했던거 같아요. 지속적인 노력을 담은 부분도 그랬던거 같구요.-을 받았던거 같기도 하고 성폭력 관련 저작을 이전에도 몇권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충격적 이었던 책은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이었어요. 그리고 두번째는 아마도 삼인에서 출간되었던 성노동종사자 이었던 분들의 글쓰기 치유책 이었던거 같아요. 솔직히 안전하게 느껴졌던건 저 자신이 트라우마가 없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외상이 재상연 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추행을 당한 수준이 낮다면 낮은 정도 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을 읽을때는 저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데미지가 엄청났었거든요. 멘붕이 되는 수준 이었어요. 그때는. 전철에서 읽다가 울컥하고 한동안 그책을 읽지 못해서 좀 쉬어가면서 읽고 다시 읽어나가고 그랬어요. 

여하튼 각오를 다지고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뚜껑이 열리게 하는 통계 자료를 봐도 그다지 뚜껑이 열리는게 아니었던건 내가 사는 국가도 여성을 향함 범죄 수준이 그러하기에 그런점을 그걸 현실로 직시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서는 미국 사회에서는 그런 메세지-남성의 성욕구 표출의 정당화, 데이트 성폭력의 정당화-가 대학내 남성 서클이나 운동부 탈의실과 매체를 통해서 어떤식으로 계승되는지 말하는데 저 자신이 그런것들을 피부로 느꼈던 지점은 중고생 대상으로 하는 일본 순정 만화에서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남자는 성욕을 조절하는 것이 힘든것이 정상적이며 보통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강압적으로 키스하거나 성관계를 강요해서 삽입하는 것이 지극히 보통이라는 메세지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줄기차게 던지고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그건 여전히 현재형이라서요. 

혹시 그들-저자-은 실제로 청소년 시절에 그런 데이트를 반복적으로 해왔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상대방의 행동이 성추행 혹은 폭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남자라고 해서 늘 오케이인건 아닐텐데 말이에요. 매체속에서 그려지는 아가씨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허용하지 못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거 같아요. 뭐랄까 연애를 하면 섹스도 따라오는 의무인 느낌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저의 기억엔~)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공개적으로 학교에서 하는데도 자신과 그리고 상대방-나를 좋아한다는- 그리고 주변 학우들 모두 아무도 상대방의 그런 강압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꾸어어어...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이 내가 좋다며 그런 행동을 했는데도 말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자나요. 이런식으로 사회화 되어서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학습하고, 내현화 했으니까 현실이 아닌 상상의 공간에서도 이야기가 그런 흐름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사실 저 자신만해도 낯선 사람에 의한 성추행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피해자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아는 사람에 의한 기습 키스나 뽀뽀가 성추행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건 비교적 최근이었습니다.................. 하하하. ㅠㅠ  부끄럽다. 좀더 정확히 말하라면 뭐 걍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거 같아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그냥 그냥 술마시고 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성추행인데도 말이에요. 좋아서 행동했다는건 상대방의 핑계에 불과한건데도 그 논리를 저도 수긍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런 망상을 가지고 있고 그걸 매체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하는건 명백한 자유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매체를 읽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인지는 하고 그려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들어서 좀더 빈번하게 하게되었습니다. 시스템에서 제도적으로 올바른 성교육을 시켜주지 못한다면, 청소년을 대상인 매체에서라도 올바를 데이트 정보를 전달하는것이 바람직한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가 내 망상을 발현하는거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사회화 된 것들을 재상산 하고 있는거이기도 한데 그거에 대해서 자기 자신은 어떤식으로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상산을 표현의 자유 혹은 상상력에 의해서 나왔다고 봐야하는건지 아니면 사회화의 결과물이라고 봐야햐는건지도 고민의 주제중에 하나에요. 그런식으로 행동해야지만 좋아함을 표현하는것라는 공식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방식을 우리가 처음부터 그걸 선호했는지는 알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런 선호가 있었는지 그렇게 선호하도록 길러졌는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솔직히 저는 대부분 후자쪽에 가까운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1. 생산제로서의 아이에서 소비재로서의 아이로 변화한 점 등, '아들보다 딸을 키우기가 더 편한' 시대적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가 더 이상 육아 투자의 회수를 기대할 수 없는 '소비재'가 되어 '딸을 키우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늘었다면 이것은 육아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 반증하는 것이 될 테다. 반대로 아이가 생산재(미래에 회수할 것을 기대하여 현재 투자를 행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수단)인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주저 없는 남아선호가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황실에서 남아는 분명한 생산재이다. -p111, 제6장 황실과 여성혐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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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비혼화가 만난 사회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

야마우라 모토키, 코난북스




이전에도 비슷한 주제의 책들-<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를 읽었기에 이 책에서 크게 데미지를 받을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는 '빡쳐있었다'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누군가만이 부모의 노년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요. 저의 지금까지 삶을 관통하는 궤적의 주제인 '평등'이 건드리고 있었던 부분도 크게 작용한거 같아요. 

타인의 삶을 책임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특히나 그 상대방의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책임지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무거우니까요. 본질적으로 양육과 개호가 비슷하다고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차이의 간극이 큰 지점은 희망과 희망 없음의 차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개호가 왜 더 어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과 죽음... 그리고 개호자들이 느끼는 고립감.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 어떻게 하면 더 윤리적이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만족하고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만족하게 도ㅣ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과 존중하는 태도를 보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주변인으로부터 그런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화가 났던거 같아요. 저자가 조사한 대부분의 가정에서 특정 한사람만 부모의 노년을 위해서 자신을 갈아 넣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그런 형제를 위해서 (저자가 조사한 대상 한정으로) 대부분 금전, 정서적, 육체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허허허허;;

책의 1장은 어느 날 갑자기 부모의 보호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2장은 어느 한쪽-자신의 삶과 부모의 개호-도 포기할 수 없어서 애쓰는 사람들의 경험을. 3장은 치매 부모를 돌보는 어려움과 고통을. 4장은 개호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신자인 부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5장은 집에서 개호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부록으로 한국의 사정-통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일 먹먹 했던 파트는 치매 노인을 개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었고 가장 빡쳤던 파트는 4장 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자발적으로 비혼자가 되었는가 아니면 그것은 비자발적인지에 대한 논의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논의랑 비슷하게 다가오더군요. 혼자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부모를 책임져야 하고, 그리고 혼자이기 때문에 부모의 죽음 이후의 자신의 삶도 스스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부분... 후자쪽이야 당연한거겠지만, 전자는 뭐랄까 기혼이라는 것 자체가 면제부 구실을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다른 특이점은 기혼자중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개호해야 할때 자신이 부모를 개호하기 위해서 직장을 옮기고 그리고 자산의 부모의 노년을 혼자서 온전히 떠안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배우자가 그의 어려움에 공감하거나 현실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면밀히 말하면 내부모인건 분명하지만 함께 삶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배우자가 개호의 주체가 되는건 아니더라도 조력자는 되어주는게 가능할거 같은데 그런것들이 부재한 상황이 좀 의아했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받았던 느낌은 결국 자택 개호라는 건 시스템에서 책임지기에는 비용적 문제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희생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에서 해당 지역의 지자체가 누리는 서비스는 그 지자체가 부유했기 때문이고, 지자체마다 복지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해당 지자체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 소득차-거주지차-에 따라서 다르게 받는다는 상황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야마토마치~>-에서는 주로 복지에 대해서 촛점을 맞추고 있어서 개호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산발적으로 서술되었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크게 체감하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정말 정면으로 볼 수 있었기에 '자택개호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하는가>에서는 의사인 저자가 사회가 개개인에게 고령화로 인한 것들을 책임져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과거에는 노년에 이르는 여정이 짧고 그리고 투병의 기간이 지금처럼 그렇게 길지 못했기에 개인이 어느정도까지 책임지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것은 더이상 불가능 하다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자택개호를 하는 그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분들이 느끼는 죄책감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미지수지만. 곡기를 끊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근대 이전의 전통이라던가. 노화를 죽음의 원인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현대 의학계의 현실이라던가...  읽고나서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극심한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노인 빈곤율도 굉장히 높은데 우리는 어떠할지 생각하니 아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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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548일 남장체험>

노라 빈센트, 위즈덤하우스 




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책 표지를 처음 봤을때는 이 책이 소설책 인줄 알았어요. '남장체험'이라는 텍스트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고 책의 표지도 소설책 같다는 뉘양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거든요. 소설책에서나 볼법한 텍스트의 서체로 적힌 제목 위에는 작게 고딕체로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남장체험 소설이었다면 지나갔을거에요.

책을 빌린 이유도 솔직히 개인적인 흥미가 동해서 그런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남성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고통이 여성과 매한가지로 억압받는 고통이라 한들 여성으로서의 삶의 안에서 경험한 것들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의 어떠한지 알아야겠다는 목적보다는 그들이 누리는 젠더계급을 기반한것들은 어떤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성취감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최근에 저의 이슈는 과거의 저 자신이 받았던 피드백들이 저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성차적인가 아닌가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려움과 불편함은... 복잡 다양했습니다. 아 뭐라고 말해야할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머리로는 이해하는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야하나요? 남성또한 가부장적 사회의 기반아래에서 요구받고 억압받는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전 그걸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뭐 암튼 그렇습니다. 오늘 도서관의 반납일이라서 서둘러서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이 책을 통하여 뭔가가 많이 남았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거 같아요. 


으음. 좀더 노골적으로 솔직하자면 후반 어느부분까지는 저자의 흐름에 공감하며 따라갔지만, 전 여전히 그녀처럼 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제가 느껴지기엔- 공감하기 힘들었던거 같아요. 마지막 파트의 남성 집단에서의 체험 부분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어요. 자신의 배우자너 반대쪽 성의 부모를 칼로 난자하고 싶다던가...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때는 특히나 더 힘들었습니다. 처음 그녀가 그랬던것 처럼 그들의 그말은 위협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그런 그들의 고백을 불편해 여기다가 갑자기 어느 시점에 시공간을 이동해서 다른곳에서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있었어요. 분명 여기에 같이 있었던 저자는 저 멀리 가버리더군요. 그것도 순식간에. 그들안에서 나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고 커보이기만 하는 모습은 실제의 자신을 크게 띄워서 평가를 받기 위함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거 같았어요. 

저자도 지적했지만, 이 집단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들의 어머나와는 멀어지기를 희망하며 아버지와는 화해하기를 희망한다는 설명에 저는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의 저자 테리 리얼이 떠올랐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그들 또한 희상자라는 것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많이 느꼈던거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 요구되고 강요된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누리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솔직히 그들의 고통이 와닿는건 아니었습니다. 근육질 남자이기에 받는 대상화에 대한 어떤 남성의 고통스러워하는 고백을 보았음에도 저는 여전히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민감한쪽이 아닌 남성은 타고난 그런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중에서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구요. 현실에 없는지 있는지 모르는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시스템 안에서 보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꺼라고 믿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으로 부터요. 네. 저는 화를 내고 싶은거 같아요.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그리고 여전히 성차를 적용하며 받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녀가 말했듯이 가부장제는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강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역할을 나눈 것이기도 하다는 말은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저 자신이 이 시스템에서 보호받고 누리는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런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제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갈망만 키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보다는 그런식으로 사회화 되고 사회화 시키는 우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것들에 대해서 한치의 의문이 없는 점이 더 화가나는거 같아요. 그게 왜 당연한건지... 그건 이상한건데 말이죠. 언제나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거에 대해서 제가 아이와 청소년 시절에 어른들에게 받은 피드백은 대부분 싸가지가 없다는 말 이었던거 같아요. 성차가 당연한 거라면 그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그 논리가 모순적일지라도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기대가 다르고-성차에 따라서 요구받고 기대받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에 따라서 강하게 비난받는 것이라는 걸 어릴때 알았다면, 그때 받았던 고통의 종류는 분명 달랐을거 같거든요. 제가 아둔한 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게 성차에 따라서 다르다는 인식이 매우 낮았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던지는 메세지는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평등하고 공평하게 양육하고 있다고요. 

다 성장한 저는 여전히 그 이유에 물려서 모든것들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그렇지 못했을때 크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편입니다. 공평하다는 건 환상이라는 걸 심리학 개론책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공평한 세상을 기대하고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기를 희망하기에 여전히 그 이슈에 민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모든것은 제가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었고 그건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주양육자로 부터 매일매일 지겨울 정도로 받는 피드백 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것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자기 혐오나 부정으로 흘러갈 뿐이죠. 분노를 허용받는 남성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사회회에 대해서 분노하고 폭발했겠지만-그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비난받는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안으로 안으로 곪아 갔던거 같습니다. 물론 분노를 표출하는 입장이 더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가부장제를 동의했다고 하는 그녀의 주장은 매우 불편하게 다가오더군요. 그건 온전하게 동의한게 아니었어요. 강요받고 강요받고 또 강요받아서 결국에 동의하게 된 구조에 가까운거죠. 그걸 어떻게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엄연한 폭력이었습니다. 가치관과 프레임을 소유하고 있는 어른들에 의한. 


개인적으로 받았던 느낌은 이정도로 하고, 책으로 넘어가보면 이 책은 총 8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남장을 해서 남성만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이 파트 1에. 그리고 나머지 파트들은 그녀의 남장의 생활을 그린 '남자의 우정', '남자의 성욕', '남자의 사랑', '남자의 삶', '남자의 일', '남성의 자아 찾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정 파트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들이 애용하는 당구클럽의 회원으로 성욕 파트에서는 스트립바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 사랑에서는 남성으로서 이성과의 데이트를 하는 여려움과 좌절과 그리고 여성들(?)의 극과 극을 향하는 남성에 대해서 기대하는 이미지에 대해서. 일 파트에서는 레드볼 영업사원으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마지막이 문제의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 체험. 마지막이 다시 여성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자의 사랑의 파트에서는 저의 동생이 연애를 하면서 어렵고 혼란스럽게 느끼던 지점에 대해서 저자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평등하기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자가 리드해주기를 원하는 여자들에 대한 서술이 그러했어요. 그녀의 설명은 솔직히 여자들을 일방적으로 탓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공기같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많은 부분을 영향받고 영향끼치고 있으니까요. 점차 바뀌어 가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존재하지만, 과거-더 근본주의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해봅니다-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리고 그것들은 여전히 문득 문득 주변에서 그리고 저 자신의 안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여자들의 남성에 대한 기대는 강요받는 기대와도 비슷합니다. 사회적 성공과 그리고 여성적인 삶을 동시에 기대하는... 그건 솔직히 지금의 시스템에서 공존하기 힘든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사회적 성공안에서 여성적인 삶을 반드시 영위해야 한다는 건 솔직히 그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이 위해서 가지고 있는 환상이 아니고 뭘까요? 그건 그들이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 한데 말이에요. 


마지막 파트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인지 소잔인지 자아 분열인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한동안 상당한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동에 입원하기도 하고 자가 격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낀건 마지막 파트의 자아체험에서 학대를 해달라고 다른 집단원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부터 받았었습니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받는 것들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하면 그런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자책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성으로서 돌아오고 나서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성으로 보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결국 삶이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계속 그 자아 체험에서 그들이 말했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구체적인 것들을 고백하는 부분이 계속 머리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체험은 멜라니 클라인의 <아동의 정신분석>을 읽고나서랑 상당히 비슷한거 같아요.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싶어한다는 걸 그들의 놀이의 상징화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는 클라인의 해석은 매우 위협적 이었습니다. 

분명히 저의 안에서도 그런것들이 존재하기에 불편하게 다가온건 알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누군가를 특정해서 어떤식으로 죽이고 싶어하는건 저의 망상속에서는 없었거든요. 자신을 위해하는 상상이 늘 차지했지. 저 자신이 주로 하는 생각은 특정 타인이라기 보다는 과거에는 저자신에게 그 방향이 향했고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인간이라는 존재-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차이는 무얼까 생각하고 있는거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늘 '차이'에 집중하는 타입이라서 방향성의 차이의 유의미함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거 같아요. 어떤식으로 흘러가야 거기에 도달하는지에 대한 의문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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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운명은 태어나서 18개월까지 엄마와 맺은 관계가 영원히 결정한다

<엄마라는 병>
오카다 다카시, 이숲



제목이 여러모로 인상적이라서 오랜만에 구매한 일본쪽 저자의 책이었습니다만, 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내내 했습니다. 주변에게 주로 선물하는 저자의 책이 지금까지는 토니 험프리스의 <부부의 사생활>이나 <가족의 심리학>이었는데 이 책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쉽고 자상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책이었어요. 최근에 애착관련으로 읽었던 책들에 나오는 주제들-정신화, 메타인지, 내적작동기제, 안전기지, 애착 문제,부모의 애착유형이 자식에게 유전(?)되는 메카니즘, 애착문제로 인하여 일어나는 중독 등-을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알기 쉬운 설명과 그리고 진단명에 대한 부분은 그 옆에 추가적으로 설명이 있는 친절함. 그리고 유명인이나 오카다 다카시 선생의 내담자들의 사례까지 책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어려워서 쉰다던가 큰 거부감이 있어서 멈추게 하는 책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쉽고 자상한데 가져갈건 대부분 가져가는 점이 제일 좋은 부분인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애착 문제로 자신의 삶의 전반에 받은 영향에서 좀더 멀어지는 방법까지도요. 

다만 제목이 지나치게 한쪽성에게만 공격적인 모양이라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책도 불편함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뭐 주양육자가 엄마인건 통계적으로도 사실이지만, 그런 면에 있어서 어떤 지점을 건드린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양육에 대해서 접근하는 면모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분법적이라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포커스를 맞추는 이유는 알겠지만, 너무 한쪽성에게만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면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양육자인 엄마와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어도 다른 양육자인 아버지나 조부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면, 그 시기에 아이의 취약성은 굉장히 줄어드는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분법적인 저자의 다른 책중에서 <아빠라는 병>도 있던데 이 책은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졌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국내에 아직 번역된 책이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이 책과 그책은 커플링을 이루는 책같은데 번역된 책을 볼수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보는 시점이었어요. 미와자키 감독과 감독의 어머니 관계가 그 애니메이션을 나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사실 엄마가 아파서 떨어져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 타인의 고통이라서가 아니라 토토로의 귀여움에 빠져서 극중의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별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되었습니다. 엄마가 아픈건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지옥이거든요. 뭐 전 그랬어요.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병실에 올라가는것 같지만요. 아닌가?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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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에릭슨 상담의 핵심

<은유와 최면>

이윤주, 양정국, 학지사 



몇달전에 월덴님댁에서 북크로싱으로 빌렸어요. 고로 읽은지는 좀 지난... -_-;; 그래서 글을 적는 지금 현재는 별로 남아있는게 없네요. 밀턴 에릭슨이라는 분을 사실 잘 모르지만, 추천서라고 하셔서... 오랜만에 신청해봤습니다. 읽으면서 저의 상담 선생님과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던 시절에 나눴던 대화들이 많이 떠오르는 책 이었습니다. 사실 최면 파트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떨어져서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고 읽었던것 같고, 은유에 대한 부분은 어려모로 지금의 저에게도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의 선생님과의 대화가 가장 크게 떠올랐던 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은유'에 대한 파트이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암시하는 선의의 의도를 파악하고 긍정적인 영역으로 초점을 옯겨 갈 때, 내담자는 도움이 안 되는 감정에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된다는 느낌에거 벗어난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찾아내는 긍정적인 부분은 좌절감을 축소시키고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해 낸다."

부정적인 감정 아래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함께 찾아나가는 여정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과정이랑 비슷했던것 같아요.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혐오에서도 나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건 또다른 나를 혹은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상담자 입장에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부분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텍스트로 접하게 되어서 제일 좋았던것 같아요.

에릭슨 선생의 내담자 사례는 여러모로 기적(?)같은 느낌의 이야기도 많아서 읽으면서 내내 굉장히 놀라웠고, 그리고  저자 두분이 한국분이다보니까 우리나라 내담자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부분도 참 좋았고 여러가지로 많이 공부가 되었던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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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모성애에서 자녀 살해까지, 누구나 느끼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의 양가감정에 관한 모든 것

바바라 아몬드, 간장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 '모성'에 대하여 정면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성 환상'에 대한 시각은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말에 크게 무리가 없는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기반-내적작동기제, 자기대상, 대상표상이라던가...-으로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예전에 비하여 양육의 중요성이나 그 질에 대해서 많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자신이 모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에 시달리고 있고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엄마들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걸 많이 봤어요. 뭐 이건 주변인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린거지만, 이전에 비해서 정보를 찾고 그리고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인터넷'을 통하여 굉장히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은 너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들었어요. 

사실 책을 읽기전에는 서양은 우리보다 좀 더 양호할것 같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은 사라지더군요. 동양이나 서양이나 뭐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_ㅜ 정도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비중의 문제지 그 사고의 스펙트럼은 대충 비슷한게 아닐까 싶어요. 

임상 현장에서 만난 사례와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매체에서 그려지는 모성에 대한 환상이나 이미지에 대해서 밀도있게 이야기 하며, 출산 이후 뿐만 아니라 출산 이전 그리고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다루고 있어서 모성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범위-양가감정, 괴물출산, 자녀 살해, 침해적인 엄마들, 모성애, 위기개입-를 망라하는 책 이었습니다. 

읽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고 독자에게 비교적 친절한 책 이었어요. 임상 사례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성에 대한 부분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루함이 적었던것 같아요. 출산을 고려중이거나 양육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권해봅니다. 특히나 ' 양가감정'에 대한 부분-내면화 해법 대 외면화 해법-은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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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심리학>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레이철 시먼스, 양철북


어려운 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기간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기억이 많이 떠올라서 그걸 소화하면서 읽는라고 오래 걸렸던것 같아요. 이 책덕분에 학창시절의 관계에 대해서 내렸던 결론에 대해서 다시 꺼내서 보고 재정의를 내리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저의 경우에는 '관계에서의 배제'에 대한 부분이 그러했습니다. 

저자가 상담이나 임상쪽 종사자는 아니지만, 본인이 피해자 입장 그리고 가해자 입장 양쪽에 속했다는 것을 어느날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소녀들 사이에서의 은유적인 폭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연구를 해야한다고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학교 현장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피해 경험과 가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담담하게 기술해 나아가는 구조의 책으로 학생들이 그 관계에서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나 바라는 부분-부모나 선생님이나 주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한 어조로 기술합니다. 

학창시절에 힘든 경험이 많았던 분이나 딸을 키우는 부모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지만,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참고로 제가 괴로웠다고 말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안에서 제가 괴로워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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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결혼> 

여자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에스더 D. 로스블럼, 캐슬린 A. 브레호니 엮음, 이매진



믿고 보는 이매진의 책이라서 뭐 그다지 고민 없이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이전에 한번도 고민 해본적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게 이끌고 그리고 좀더 다른 입장의 편에서 바라보게 만들더군요.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는 '무성애'에 대해서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런 책은 아니었고 그거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분법적인-성애적인과 무성애적인- 구조 아래에서는 소외되는 소집단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상호적인 관계에서 그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에 반드시 '섹스'가 필수 조건이 될 필요가 없다는... 이 책에서는 '성교에 따른 입증'이라고 명명하더군요.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들을 정의하는 명칭에는 '섹스'를 하는 관계적 정의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커플들-무성애적인-은 커플은 어떻게 정의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책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레즈비언 커플이 무성애적인 관계이지만 그들의 커플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그런 관계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관계-헌신적인-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1부 우리 관계에 이름 붙이기'에서 다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성애적'이느냐 '무성애적'이냐 라는 논의를 하기전에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보스턴 결혼'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데, 이 말의 함의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키며 이들은 성적인 사이가 아니라고 여겨졌다고 하더군요. 그 시기에 그런 커플들이 주고 받은 기록들을 보면 성적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현재에는 그들이 성적인 관계이었을거라고 추측하지만- 그들은 보통의 커플-섹스를 하는 관계인-들 처럼 충분히 서로에게 헌신적이고 지지적었다고 기록에서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레즈비언'이라는 텍스트가 등장한 배경에는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위치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이성이 아니라 여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런것들은 시스템에 대한 위협이기에 이런 여성들-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에 대하여 부정적인 함의를 담아서 정의하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디에서 나왔는지 찾으려고 했는데, 오늘 리뷰를 쓰기전에 대충 살펴봤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ㅠ_ㅠ 이 책을 작년에 읽었던지라... 당시에 읽고나서 타이핑으로 메모한 부분은 '성교에 따른 입증' 부분만 있고;;; 쿨럭)


2부에서는 '오르가즘이 전부는 아냐'라는 파트로 무성애적인 커플들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자와 그리고 실제로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당사자의 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3부에서는 '우리 사이요? 할 애기 많죠!'라는 파트로 여기에서는 1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논의하는 파트로 전문가와 그리고 당사자들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4부에서는 보스톤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걸로 끝나구요. 이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1부와 4부 같아요. 4부는 어찌보면 1부보다 좀더 딱딱한 편인데 이 4부를 읽어야지 이 책의 편집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되거든요. 1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을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고 2부와 3부의 사례들을 보면서 정리되는 것들도 좋았습니다.  

1부에서는 '커플'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고, 성교를 통하여 자신이 커플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부와 3부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까 관계가 처음부터 무성애적으로 시작한 커플의 이야기는 없었고, 처음에는 성애적이었지만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둘중에 한쪽이 그러한 욕구가 상당히 줄어서 고통받는 배우자가 그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의를 내리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아닌 커플도 있었던거 같...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잘... 원하지만, 상대방에게 그런 욕구가 상당히 낮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체념하고 가져가는 느낌으로요. 관계는 유지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서로에게 헌신적인 부분에 의한 만족으로 그런 부분을 메꾸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드는 그런 커플들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인데 만약에 상대방도 어느정도 수준으로 성적인 욕구가 있고 그리고 그걸 서로에게 요구하고 기대하고 함께 하는 관계라면, 이 사람-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분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것 같았아요. 

"섹스가 없는 관계는 과연 커플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시스템에서 인정해주는 관계에서는 성애적이던, 성애적이지 않던간에 커플이라는 것은 제도에서 보장해주니까 그런류의 고민은 쉽게 하는 고민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혼인관계인 사람도 그 스펙트럼의 연장선상에 있는 괴로움과 고민은 충분히 공유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혼인관계도 매한가지로 기본적이로 성애적이고 그리고 개체를 이어나가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이 대부분-아시아권의 경우에는 후자쪽이 강한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받는 압력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성애적이지 않는 경우 한쪽은 욕구가 낮고 한쪽은 욕구가 높을때는 이 책에서 이야기 했던 사례처럼  중요한 관계에서 충족될수 없는 자신의 욕구-개인적이던 사회적으로 기대하니까 학습된 부분이던-에 대한 좌절은 동일하게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이들은 성애적이지 않아도 제도권 안에서 인정해주는 커플이라는 점은 다르다면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그치만 그런 부분은 개인이 가치를 어디에 더 중요하게 두느냐에 따라서 좀더 달라질 것 같아요.  


마지막 파트에서 논의하고 정리한 부분처럼, 사회 시스템에서 매력적인 관계의 베이스를 '성애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리고 그런 프레임을 확산 확대하는 베이스 안에서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보다 더 크게 기대하고 욕망하게 만듬으로써 필연적인 좌절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다른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저평가 되는 것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커플 관계에서 헌신에 대한 만족과 기쁨에 대해서는 그다지 판타지적으로 그려지지 못한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헌신에 대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관계는 일반적으로 구성원 한사람이 가족들 모두에게 헌신하여 가족 시스템을 유지되도록 하는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헌신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것 또는 어머니가 모든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욕구는 가족 구성원의 욕구보다 아래에 두고 다른이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제시되거나 미디어에서 그려지지 않는것 같거든요.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만, 근본적인 틀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것 같아요. 헌신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 상호적인 베이스에서 나아가는 것인데 뭐랄까 제가 속한 사회에서 헌신이라는 것은 한쪽이 모든것을 탈탈 털어서 제공해주고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그렇게 묘사 되는 부분도 있구요. 헌신하는 것 안에서 얻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지나치고 그 헌신만 강조하는 그런 느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투자하고 그리고 상대가 기뻐하는 것으로 인하여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뭐랄까 판타지가 좀 적은거 같아요. 매체에서 그려내는 부분도 뭐랄까 그냥 사진 같은 느낌이구요.

몸에 투자하던 정서에 투자하던 상대방에게 투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베이스 일텐데 우리는 왜 '몸'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강조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지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와서 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증명하게도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데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지... 정리하다보니 뭐 그런 의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볼 예정이에요. 그때는 또 어떻게 읽힐지 기대가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부분은 고통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연대가 가능한데, 규정해서 그것들을 다르다고 나누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좀 폭력적인것 같다는 생각들도 좀 했던거 같고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그것도 궁금한데 검색해봐도 리뷰가 한분 정도만 걸려셔... O>-<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관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에 대해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자신의 욕구가 있는건 결국 매한가지니까 이런 좌절에 대한 연대는 가능하다고 봐요.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기준으로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어떤 집단의 고통이 더 큰지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지만, 고통에 대한 연대를 하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간격을 좁혀나가는데 있어서 충분히 좋은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좀 아쉬웠어요. 제도권 내에서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섞어서 집단을 꾸려서 그 집단안에서 나누고 차이를 알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정리해도 참 좋았을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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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3년에 읽은걸 2014년 7월에 리뷰를 적는지라... 아마 어느정도는 저의 기억에서 와전된 부분도 있을거에요.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최대한 기억해 내려고 적어내려갔습니다만;; 뭐 어떨지 모르죠. -0- 근데 뭐 읽고 바로 적어도 비슷했을거 같아요. 글에서 저자가 강조한 부분과는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느낄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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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장애로서의 중독>

필립 플로레스, NUM


알라딘에서 누군가의 추천 문구를 보고 구매하게 되었는데... 아 정말 내가 금년의 지름중에 탑에 오르는 선택이었다고 읽으면서 내내 좋아했습니다. 이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사실 '중독'쪽 보다는 '애착'쪽에 가까웠습니다만, 양쪽 모두를 균형있게 어우르는 책 이었습니다. 이 책을 구매하던 시기가 마침 <애착과 심리치료>를 읽고 굉장히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던 시기라   <애착과 심리치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역시 매우 어려우리라고 예상했는데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번역이 친절한건지 아니면 원래 저자가 친절한 건지 책이 어려운편이 아니라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다른책들에 비해서 비교적 쉬웠던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설명 그리고 사례와 여러가지 정보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학지사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번역가의 각주가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개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그리고 그 개념과 관련해서 추천하는 책까지. 덕분에 여러가지 책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들도 추천 받고-<애착이론과 심리치료>, <기억을 찾아서>,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 <애착과 발달>, <월프레드 비온의 입문>- 그 덕분에 다음엔 뭘 읽어야 하는지의 순서까지 정하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유형에 따라서 의존하기 쉬운 약물에 대한 설명에서 자기에 대한 이해-바륨에 대한 부분-를 키우기도 하고 그리고 지지적인 상담자를 만나서 좋아지는 사례를 읽을때는 많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뭐 반대의 경우도 있었지만요. ㅠ_ㅠ <애착과 심리치료>에서 처음 알게된 부분을 이 책에서도 접근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성인애착유형면접'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메리 메인이나 피터 포나기 선생의 이론에 대한 부분도 ...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코흣 선생의 이론이 계속 나와서 그런부분도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더해졌던거 같아요. 

금주와 절주의 선은 어디서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보고...  그 묘사가 참... 오이가 오이지가 되는 시점은 언제인가에 대한 부분.... ㅠㅠ 오이지라... 오이지는 오이로 돌아가는 건 무리자나요. 아무리 물에 담구고 담궈도 이미 빠져나간 것들은 돌아올 수 없으니까요. 

AA에 대해서는 사실 그 규칙만 알고 있었던지라 종교적 향기의 불편함으로 저런 모임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무지로 인하여 생긴 오해들을 많이 극복했습니다. 정말 필요하니까요. 네 그래요. 그건 정말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좋은 공부가 되고 그리고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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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과 심리치료> 

David J. Wallin, 학지사


상당히 어려운 책 이었습니다. OTL  저자가 '정신화', '성찰적 태도', '마음챙김',' 메타인지' 을 혼용해서 사용했던지라 처음 들어보는 개념인 '정신화'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까지 어려워서 읽으면서 매우 졸려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책 자체는 구성이 굉장히 친절한 편이라서 보울비 이후의 애착 이론에 대해서 이론가 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울비와 에인즈워드를 시작으로 메리 메인-정신적 표상과 메타인지 및 성인 애착 면접-, 피터 포나기의 이론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다음 파트인 2부에서는 애착 관계와 자기의 발달에 대해서 다룹니다. 그리고 3부에서는 애착 이론에서 임상의 실제에 대한 부분이 4부에서는 심리치료에서의 애착 유형, 5부에서는 임상적 초점을 선명히 하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충분한 설명과 예시를 통하여 아이가 자신의 주양육자의 관계를 통하여 형성한 애착관계가 그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자식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대물림 되는지 여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착 유형은 반드시 그대로 물려지는 것만은 아니고 불안적 애착을 이룬 성인이 성장하여 배우자와 안정된 애착을 이루게 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자식과는 자신의 부모와 달리 안정된 애착을 이룰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알려주더군요. 상담도 그러한 예중에 하나라고 설명하더군요. 

사실 이 부분을 읽을때는 뭐랄까 결혼에 대해서 좀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깔고 가는 연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부관계를 정의하는 부분에도 부과적인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배타적인 연구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했었거든요. 관계에 대한 함의를 먼저 정하고 연구 대상을 정해야 할것 같은데... 실제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구가 되었는지 모르니까 뭐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요. -_-;;;  읽으면서 <보스턴 결혼>에서 던졌던 질문인 성적이지 못한 동성 연인 관계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떠오르더라구요. 

애착관계라는 것이 상호성을 기반으로하는 헌신이 기본 베이스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헌신적인 관계는 반드시 부부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니다만, 뭐 좀 껄쩍찌근 했습니다. -_-;;;;  누군가가 연구해주시면 좋겠어요. 원래 형성된 애착 유형이 다른 대인관계에서도 기본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지만 연인 관계나 친구간의 헌신적인 관계에서의 경험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저는 가능하다고 믿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또다른 부분은 부모와 안정된 애착을 이룩한 아이는 '정신화=상위인지'가 가능해서 정서에 매몰되는 일이 드물고 큰 좌절을 찾아와도 자신의 부모와 불안적 애착을 이룬 아이들보다 삶을 좀더 잘 유지한다는 연구가...;;;  그외에 메리 메인의 성인애착유형 면접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정신화를 통해서 정서적 매몰에서 나오는 포나기 아저씨의 이론도 굉장히 흥미로워서 이 책을 읽은 이후에 포나기 아저씨의 책을 두권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정신분석의 이론들 -발달정신병리학적 관점>, <정신화 중심의 경계성 인격장애의 치료>로 두권다 NUM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에요. <정신분석의 이론들 -발달정신병리학적 관점>의 경우에는 최근에 읽기 시작했는데 이론들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입문책에 가까운거 같아요. 후자쪽 책은 좀더 현실에 적용하는 책인거 같구요. 제목만 봐도 그러니까... 뭐 자세한건 읽어봐야지 알겠지만요. 

초반에 재미있다가 중간에 굉장히 어려웠다가 마지막에는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던-정서적으로- 책이었습니다. 그런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저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무엇보다 제가 찾았던 관심 분야가 이쪽이라는 확신을 갖을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믿고보는 번역자인 김진숙 교수님. 이분은 대상관계 이론 책으로 우연히 알았다가... 이후에 이분이 번역한 책을 몇권 접했는데 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믿고 읽는 번역자중 한분이 되었거든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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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에서 대상관계와 자아기능>

N. Gregory Hamilton, 학지사 

<대상관계의 이론과 실제 -자기와 타자>의 그분의 신간이라서 망설임 없이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자가 김진숙 교수님이라는 점도 포인트로 작용했구요. 완전 신나는 책이었어요. ^0^ 읽으면서 진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사례를 가지고 대상관계적 시점, 자기심리적 시점 모두 어떤 함의가 있는지도 보여주면서 비교해줘서... 그런 부분이 매우 매력적으로 작용했던것 같아요. 사례가 나오고 그리고 이론별의 정의 도표가 나오고 그리고 친절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페이지도 적고 그래서 즐겁게 읽었습니다만, 기본적인 개념은 알고 있어야지 진도가 나가는게 가능한것 같아요. 이전에 읽었던 자기심리학, 대상관계 책들에서 어렴풋하게 인지하는 개념 이해를 가지고 읽는데도 크게 무리가 없었으니까 뭐 개념적인 부분만 조금 알고 있어도 읽는데는 큰 무리는 없을거 같아요. 번역도 잘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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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년만의 텍스트 기반인 책들 리뷰인데... 읽은지 다 조금 지나서 뭐랄까 적다보니까 별로 생각나는게 없... ㅠ_ㅠ

역시 리뷰는 생생할때 적어야 제일인거 같아요. 새삼 반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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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Snoop>

샘 고슬링, 한국경제신문


나도 영드 셜록 홈즈에서 홈즈처럼~ 일상적인 단서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적 특징을 파악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지인의 책장에 있는 책을 빌려다가 묵히고 묵혔다가~ 이제야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해서 곧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능. (-_-) 그런거라능~.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을 기르고 관심이 있어야지만 언젠가는 조금은 가능해진다는 이야깅~. 그런거라능~. 이 책에서 별로 좋아하는 성격 유형이 아닌 MBTI의 유형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그런 사람의 궁국은 아마 S가 굉장히 발달한 사람이나 가능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동거인이 그런 사람이라서 보면서 느끼는 것이 참 많거든요. 처음 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거나 말투를 흉내낸다던가 아니면 같은 상황에서 있었는데 굉장히 광범위하고 디테일하게 상황을 기억하더라구요. ㅠ_ㅠ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파트 2의 '오션즈 파이브: 5가지 성격 유형'으로 이 파트의 출처는 <존슨의 성격유형>이라는 책이라서 차라리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을것 같아서 검색해봤으나 국내에는 아직 번역된적이 없는 책 이었습니다. OTL 으아아앙. 사실 5대 성격유형은 간략하게 알고 지나간 정도라서 이 책을 보면서 이쪽(5대 성격유형-중간성향도 고려하는)과 저쪽(MBTI-양극단으로 분류를 나누는)의 입장적 차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면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은 책 이었습니다. 


" 이것이 마이어스 브릭스 시스템 같은 유형별 분류방식의 성격 유형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이런 유형들이 서로 뒤섞여 공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소수만이 양극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유형에 대해서 말할 때 실제로는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 사람들을 굳이 유형별로 분류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속선상의 양극에 있는 사람들을 외향적/내향적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은 분명 유용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격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방식으로 구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략)...
5대 성격 유형 분류방식에서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유형이 굉장히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각 항목들은 보다 구체적인 수많은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특성들 안에서조차 더 세밀한 면면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이다."- 2. 오션즈 파이브: 5가지 성격 유형, p 81~82


본론으로 들어간 파트는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좀더 깊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던 책 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과정을 여러 사람의 방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과정은 하나 하나 단서들을 포착하고 조합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들이 신기했습니다. 다만 사진과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좀 컸던것 같아요. 아무래도 텍스트로만 설명한 방을 또 텍스트로 조합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니까요. 그리고 보여지는 것들을 조합하는 기준의은 전반적으로 그쪽 문화의 가치관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사무실, 방, 화장실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사람의 특징을 살피는 과정은 저 자신의 주변인의 이해의 폭을 더 많이 넓힌것 같습니다. 특히 지저분한 방, 정리정돈이라는 것이 아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 대한 부분이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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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명상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와 접근

<심리치료와 불교>
안도 오사무, 불광출판사

마음챙김을 기반으로 하는 인지치료쪽에 관심이 있다보니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책이 디자인면에서 굉장히 매끈하게 빠진 책이라서 더 관심이가서 도서관 반납일인 오늘 새벽까지 읽게 만들었는데, 책의 전체 파트가 모두 건질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자 후기에 있는 '제2의 패전'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한 불편함이... 뭐랄까 피해의식일지도 모르지만요. 일본사람들이 2차대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시각인지 면밀하게 느껴지는 단어로 느껴지더라구요. 최근의 국회의원이나 정부관계자의 막말 사건들도 떠오르고, 이들이 말하는 '건전한 내셔널리즘'의 연장선의 일환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 후기가 가장 크게 그런편 이었지만, 책의 후반 맨 마지막 파트도 비슷한 이유로 즐겁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은 서구에서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 학문으로서 각광받는 이유, 그들이 명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서구 이론과 접근해서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소개와 그리고 현대 일본인의 정신과 관련해서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것들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 대한 비중도 꽤 큰편이었습니다. '선'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이 책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접한것 같아요. 에리히 프롬이 선에 대해서 서구에 처음 소개했다는 사실도 이 책을 보고 알게되었습니다.
뭐랄까 이부분의 묘사가 펙트를 기반으로 기술한거겠지만, 자민족 중심 역사사관으로 좀 기울어져서 기술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습니다만, 뭐랄까 (저의 좁은 생각에는) 전반적으로 위빠사나 명상이 더 각광받는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쪽보다는 포인트가 최초로~ 일본의 선이 소개되어서~ 이런 논의의 촉발이 시작되었다는 뉘양스가 강한편이고 또 강조하는 면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_-;;;;;;; 


두번째 파트에서는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불교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간단하게 지나가는 편이고~ 그리고 단어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한자 어휘가 많아서 읽는 내내 고생했습니다. 가볍게 지나가는 수준이라서 이 파트에 나오는 단어를 모두 이해하고 소화할 필요는 없는거 같고 어떤 것들이 있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어도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파트 3에서는 서양 심리학과 불교의 연관점에 대해서 기술된 부분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발달심리학'쪽이 굉장히 읽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전 이 파트는 마거렛 말러와 함께 연구한 분들의 책을 보고 공부했던지라 간단히 설명되어 있어서 큰 흐름안에서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파트 4는 현대 심리치료로서의 명상으로 명상에 대해서 현대 심리치료가 접근했었던, 접근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프로이드의 연구, 융의 연구에 대한 부분으로 시작해서 더 확장된 부분까지 간단히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트 5에서 본격적으로 명상치료의 실천에 대한 부분, 파트 6이 가장 중요한 핵심개념인 알아차림에 대한 설명, 파트 7이 현대사회의 심리치료의 방향에 대한 부분인데요. 현대사회긴한데 면밀히 말하면 일본사회 내에서의 심리치료의 방향에 대한 부분과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사람이 참조하기엔... 좀. -.,- 많이 미묘했던것 같아요. 

마음챙김과 명상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가볍게 읽기를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에요. 그치만 이 이론이 태동하게 된 분위기나 관련 이론에 대해서 개괄하는 책이라 깊이있는 공부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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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 자연스런 삶, 평온한 죽음을 위한 노인요양원 의사의 따뜻한 조언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이시토비 고조, 마고북스


제목을 보고 좀 내용이 많이 무거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읽었던 책 이었어요. 이전에 고령화 시대를 일본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에 대한 리포트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와 죽음의 5단계를 이야기한 엘리자베스 퀴슬러 로스 선생님의 <죽음과 죽어감>을 읽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한 부분, 위루술에 대한 부분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좋은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구요. <야마토마치~>를 읽을때는 고령화 시대에 맞추어서 노쇠하여서 사자가 불편한 노인을 모시는 것이 그 가족 구성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게 되었고 그 대안에 대해서도 좀 느끼는 것이 많았는데요.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에서는 삶의 영역에서 비유한다면 그보다 더 후기에 대한 이야기 이었어요. 저자분의 노인 요양원 상근 의사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리고 고민들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의료보험의 한계에 대해서 느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위루술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더 적게 드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어느 지역의 섬에서는 행하는 노쇠로 인하여 임종이 눈앞인 분을 대하는 자연스러운-전 자연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먹지 못하니까 음식을 권하는 일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요.- 태도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책 이었습니다.


부록으로 '사전의료의향서 양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 보면서도 다시 한번 정리가 이루어지더군요. 2-2 파트의 치료법 및 검사 선택에서 그러했습니다. 분류는 '체온, 배변/배뇨, 욕창', '수분, 산소공급', '진통제 투여', '항생제 투여',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적용', '혈액 투석', '수혈', '항암제 투여', '고단위 항생제 투여'로 나누어져 있고 '원합니다', '원하지 않습니다', '대리인에게 위임합니다',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나누어져 있습니다. 

파트 1은 적용 시기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파트 2-1은 사전 의료 의향 선택에 대한 이야기구요. 1과 2-1까지는 책을 읽으면서 정리했었는데요. 2-2에 이르니까 좀 많이 막혔습니다. 그게 그럴게 저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선택해야하니까 혼란스럽다고 해야하나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1의 기준에서 보면 2-2도 원하지 않습니다로 선택해야 할 것 같지만... 막상 항목을 고르려고 하다보니 네.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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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콰이어트>, 수전 케인, 알에이치코리아


전부터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인분께서 빌려주셔서 읽게되었습니다. 굉장히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금년에 비슷한 방향으로 조명한 책[각주:1]을 읽었던 지라 좀 겹치는 부분이 많을거라고 예상했는데요. 그런 방향은 아니었습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의 경우에는 저자가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이었고, 대학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민감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 민감하다는 것은 단점으로만 환원되는 특징이 아니며 좋은 점도 매우 많다는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던 책 이었어요. 

후자인 <콰이어트>의 경우에는 '내향성'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서술한 책으로 저자가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자 개인이 연구한 부분에 대한 부분 보다는 내향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며 좀더 실제 생활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의 특징을 조명하면서 많이 다루고 있었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저자 개인이 자신의 '내향적' 성향을 '외향적' 성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해왔던 노력들과 내향성 사람들과 외향성 사람들의 차이와 내향성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저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성향을 좀더 외향적으로 되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의 일환으로 '외향성을 기르기 위한 워크샵'에 참가해서 경험한 내용을 정말 내향적인 사람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적어줬는데 그 온도의 차이라고 해야하나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 외향성의 포텐(?)이 터지는 강사 토니에 대한 묘사는 참... 뭐라고 해아할지. ㅜ_ㅜ 

가장 빠른 속도로 읽었던 부분은 본인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그런 성향 안에서 외향성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좀더 능력을 발휘하게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외향성 사람들의 성지(?)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저자가 방문해서 느낀 점에 대한 묘사이었어요. 극단적인 예시로 여기 학생들은 화장실도 거의 팀으로 간다는 예가... ㅎㅎㅎㅎ 외향성을 기르기 위한 워크샵 강사로 유명한 토니의 강좌에 참여해서 느끼는 이질감과 더불어서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인터뷰한 파트는 저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주셨습니다. ^^;;; 

참고로 저의 웃음은 상대방의 성향에 대해서 조소하는 건 절대로 아니구요. 그냥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에너지의 온도차으로 인한 촌극이 벌어지는 부분이 많구나 하는 부분과 그 차이가 너무나 큰 간극이라서 웃었던것 같아요. 누구에는 마냥 좋게 보이는 모습이 다른 방향인 사람이게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저자가 정말 디테일하게 묘사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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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타이완, 오키나와를 가다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서승, 창비


읽으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어떤 시선으로만 소비-바라보고-하고 있었는지 알게되었거든요. 고통의 당사자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분들도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고 고문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그 고통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유감스럽게도 다른 방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거든요. 

제가 이분-서경식, 서승, 서준식- 형제들에게 최초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그런 '영웅사관'을 소비하는 형태가 먼저 이었으니까요.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타이완의 역사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백색테러에 대한 부분. 그리고 사상범(?)을 대하는 그 나라의 태도도 굉장히 신기하다 못해 황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사상 전환은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냥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장시간 가둬둔다는 느낌이었어요. 타이완의 역사에 대해서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정보를 조금씩 알게되면서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랬어요. 

본성인이 외성인을 구분하기 위해서 일어로 말을 걸었다는 부분에서도 참 많이 먹먹했었고, 아직도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항의 하는 가족들이 많다는 이야기나...  우리와 현대사의 비극적인 부분이 많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 네. 뭐... 이번 대선도 그렇고 진정한 의미에서 탈식민은 가능한걸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하게 되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1.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일레인 N. 아론, 웅진지식하우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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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국에서 출소 정치범이나 고문 피해자에 대한 정신치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독재정권이 그런 치료를 할 리 없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그런 제안을 들는 적이 없다. 항일독립운동 이래 지배자에게 저항해 투옥된 자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옥중투사이자 영웅이지, 치료가 필요한 만신창이의 피폐한 환자일 리가 없다는 관념이 굳어진 듯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렸고 주변에서 송구스러워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도 올릴 수 없다는 식이다. 영웅사관에서 벗어나 트라우마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으며, 더구나 혹독한 경험을 한 정치범들은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만 우리는 앞서 많은 분들이 온몸을 바쳐 추구했던 평화와 평등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서승, 창비, 동아시아 평화를 찾는 여행, 인권과 트라우마, p 201



서승 선생님의 책을 읽는건 이번이 두번째 책. 


국내에 번역된 책이 단 한권[각주:1]이었는데... 이제 2권으로 늘어난걸 기뻐해야... 겠지? -_-;;

음. 단 이 양반 책 읽고 싶은 책이 많던데. 서경식 선생의 책도 2권을 합권으로 내는 이 마당에 그런걸 기대하면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 ㅠxㅠ 일어 배워야하나. 크흐.. OTL 내 일맹고수인생 3*년의 결심이 흔들리는 중. 근데 언제 배워서 ... 언제 읽어... 쉬운 말도 아닌데. OTL 

책 제목에서 주는 느낌도 그렇고 저자 서문에서도 이번에는 좀 가볍게 가자(?)는 뉘양스의 편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말을 듣고 동아시아의 탈식민의 현장에 대한 레포트 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좀 가벼운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 얼마전에 재일조선인 4세인 신순옥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재일조선인(주로 남자)이 힘든 삶을 보낸건 사실이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삶은 더 비참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 을 참 많이 느꼈는데 이번에도 참 많이 반성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용한 저 부분. 두고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냥 뭐랄까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타자화하여 그분들이 걸어간 궤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관의 필요에 따라서 재정의하고 소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자신 조차 처음 이 형제들-서승, 서경식, 서준식 세분-에게 관심을 갖게된 이유도 그런 부분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서 참 죄송스럽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신화는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끊임없이 그 이미지가 재생산되고 다른 의미로 환원되어서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점점 멀어져서 이윽고 그 간극은 어떤 노력으로도 메우기 힘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전 그런것들이 어느정도 필요했었고, 견딜수 없는 그 고통속에서 걸어갔단 그분들은 반드시(?) 올곧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그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타자화를 통하여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리고 그런 시각으로만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하고 그런 시각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며 그런 태도는 서로에게 굉장히 유감스러우며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 자신이 타자화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해서 상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며 말을 한것이 아닌데도 알게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 괴로웠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근데 제가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  하아. 뭐라고 해야할지. 



처음 서승 선생님을 알게된건 근무하던 출판사 책장에 있던 서경식 선생님의 <서준식 옥중서한> 때문이었어요. 그때 함께 사무실을 쓰시던 출판사 사장님께서 절판된 그 책을 자랑하시며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 하시는 걸 보고... 당시 품절이라서 그 책은 구하지 못했지만, 모 출판사에서 나온 <서준식의 생각>을 읽고 참 좋았었고... 자연스럽게 동생분인 서경식 선생님에게도 그리고 형인 서승 선생님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장 아메리와 프리모 레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그 기억.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자신의 생각을 그 오랜 기간동안 관철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부분-이유이었지만, 그래도 이 세분을 알고 이분들의 책을 읽게된 행운을 누리게 된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 




  1. <서승의 옥중 19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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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하게 먹기 위한 안내서

<마음챙김 먹기>, 잰 초즌 베이, 허원미디어


명확해서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에도 요긴한 책이었습니다. 부록으로 시디도 있습니다. 명상 시디에요. 책의 구성은 파트별로 구체적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실천-시디를 가지고 명상을 하거나 책에서 지시하는 방향으로 따라하는 것-해보기에 좋은것 같아요. 

저는 마음이 공허해서 먹고자 하는구나 정도는 최근에는 비교적 구분하게 되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배고픔이 총 7가지 종류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어요. 눈의 배고픔, 코의 배고픔, 입의 배고픔, 위장의 배고픔, 세포의 배고픔, 마음의 배고픔, 가슴이 느끼는 배고픔 이렇게 있었습니다. 종류마다 어떤식으로 배가 고프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설명과 예시가 있어서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었던 음식 문화에 관한 여러가지도 많이 배웠습니다. 음식에 대한 기억도 저의 식습관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끼치고 그리고 식탁에서 부모가 음식물에 대해서 어떤 피드백을 주었는지도 그리고 식사시간이 괴로웠는지 즐거웠는지, 어린시절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어떤식으로 음식을 제공했는지 여부도 식습관 형성과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관여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먹는것에 관한  최근에는 그래도 식사할때 책을 보면서 먹는건 가급적 삼가하려고 노력편 이었는데요. 그외도 뭔가 많더라구요. ^^;; 으 반성 반성~. 식습관으로 곤란을 겪는 분이라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 이었습니다. 쉬운 책이라서 금방 읽는데다가 책을 다 읽은 마지막 페이지에는 자상하게 요약된 내용도 있어서 복습하기에 좋았습니다. 친절한 책이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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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관계로 읽는 질병의 심리학 

<우리는 왜 아플까>, 대리언 리더, 데이비드 코필드, 동녘사이언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질병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다각도로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어느날 아프기 시작한 그날이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던가. 뭐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아서 놀랐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호소할때 신체증상 말고도 최근의 그 사람에게 벌어졌던 일을 인터뷰 했더라면 좀더 병을 빨리 고칠 수 있었던 예시들도 참 많았었어요. 

아무리 치료를 해도 치료되지 못했던 병이 알고보니 가족사와 관련해서 자신을 처벌하고자 하는 전환 증상이었던 사례도 있었고, 그리고 그 경우에는 심리치료와 병행하면서 병이 호전되고 있었어요. 

사례가 많은 편이라서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지루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거의 없었고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Type-A 성격 유형과 type-C 성격 유형에 대한 연구도 있어서 그 부분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것 같아요. 암을 유발하는 성격 타입이라고 구분되는 Type-A에 대한 부분은 학부 과정에서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지나가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도 반가웠던것 같아요. ^^;; (공부한거 나오면 디게 신나하거든요. ㅎㅎㅎ)

마지막 파트에서 종합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할때 의사 선생님이 매번 바뀌는 문제에 대한 지적은 굉장히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저자 두분이 하고 싶었던건 결국은 현대의 의료시스템의 기계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사가 오던 치료가 되는 것이 동일하다는 가정을 가지고, 지금 대형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것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몸과 마음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몸만을 치료해서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을 치료해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해야한다는데 저도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뭔가 읽을때는 리뷰를 적으면 할 말이 많을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아 역시 읽고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에 남아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_-;;; 기회가 되면 또 천천히 읽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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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치유와 새 삶을 위한 몸 중심 심리요법

<몸으로 떠나는 여행>, 크리스틴 콜드웰, 한울


아 정말 추천합니다. 전 이책 여러번 읽어볼 예정입니다. 중독에 관한 책인데요. 그냥 흔히 떠오르는 중독-알콜이나 도박-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것 그리고 감정, 기억에 대한것 등등 몸과 연계해서 정신적인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었어요. 접근 방식이나 설명하는 방식도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이었습니다. 덕분에 읽으면서 공부가 되는 구절이 많아서 타이핑을 꽤 많이 쳤던것 같아요. 근래에 이런 책은 별로 없었거든요. 






이 포스팅에 적은 세개의 책 모두가 지금 자신이 어떤지 느끼고 챙기는 것과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와 자신을 수용하는 것,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으니 몸을 살피는 것이 마음을 살피는 것도 된다고 방향을 제시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어요. 뭐 조금씩 차이는 있긴 했지만, 겹치는 부분은 지금 이순간을 느끼는 것에 대한 부분인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뭘 느끼고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지 느낄수 있어야지 변화가 시작되니까요. 

<우리는 왜 아플까>에서도 원인을 찾을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을 연구하고 위로하니까 병이 치유된 이야기도 그렇고, <마음챙김 먹기>의 경우에는 아에 본격으로 그쪽이었고, <몸으로 떠나는 여행>도 <마음챙김 먹기>보다는 좀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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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건강, 평화를 부르는 하와이인들의 지혜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조 바이텔, 이하레아카라 휴 렌, 눈과 마음

사실 이 책은 교수님이 추천하는 책이라서 읽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제가 자주 놀러가는 월덴님의 리뷰를 보고 역시나 하고 관두었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하고는 아주 극과 극에 위치한 책이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이론은 알버트 앨리스의 REBT, 그리고 심리도식치료. 그리고 대상관계이론. 대충 그런쪽입니다. 그래서 수업을 들을때도 종교의 향기가 느껴지는 수업은 듣기가 힘들었던 편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의 수업이 많이 힘들었었고 그래서 이분이 추천해주신 책을 읽으면 이런 불편함이 좀 줄어드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그 리뷰를 보니 그럴 마음이 싹 가시더라구요. ㅎㅎㅎ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저 개인에게 감성 코칭 선생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에게 추천해 주신 책 이었으니까요. 책 자체에 기대치가 없었지만, 중요한건 '지금의 저'에게 추천해주는 책이니까 괴로워도 졸려도 꼭 끝까지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독서를 완료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책인데... 많이 졸려하면서 읽었습니다. 황당한 부분이 많아서 그 부분에서는 정말 웃기도 했구요. 

최근에 '감성코칭'이라는 걸 배우고 있는데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성 능력[각주:1]을 어린시절에 그들의 부모님으로 부터 배우지 못하였고-물론 그들의 부모님도 그들의 부모님으로 부터 배우지 못하였으니 자식에게 없는 것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만들어서 물려줄리가 만무한-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쪽 방향으로는 능력치가 낮기 때문에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데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배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요근래의 저의 숙제는 지금 여기서 저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표현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또 느끼고 괴로워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평생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고 좌절하는 날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좋아졌는걸요. 몇달이 지나서 느끼던 감정을 한달 즈음 지나서 느끼게 되고... 그러다가 몇일이 지나서 느끼게 되고...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을 그날 밤에 자기전에 느끼게 되고... 최근에는 있었던 일이 지나고 바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좀더 노력하면(?) 좀더 가깝게 느낄 수도 있을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음 뭔가 책과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요. 

책에서 전하는 요지는 지금 현재를 느끼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과거의 어느 순간의 감정이 다시 느껴지는 것에 대한 언급도 있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안에서 이유를 찾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접근하고 설명하는 방향이 정말 황당할 정도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전과 달리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라면 어떤 사람에게 회의적인 측면이 보이면 그사람의 다른 부분까지 자동적으로 확장해서 보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 자신을 멈추려고 노력하고 그런 자신에 대해서 괴로워 하며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는 편 이었습니다. 

이 책의 영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는 이하레이카라 휴 렌의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까지 같은 색으로 칠하며 읽는 방햑으로 독서가 나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읽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습니다. 

요정이 보이고 처음 들어간 호텔에서 그 방이 저자에게 자기 이름을 말해주고 그 방과 대화한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빵~ 하고 터졌습니다만, 정말 방이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저로서는 알지 못하는 사실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까지 매도할 이유는 없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전 그사람이 아니니까 그 방이랑 대화를 하는지 아닌지는 저로서는 죽을때까지 모르고 살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이전에는 경험하면 인정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그냥 제가 불편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거는 좀 이상스러운(?) 취미(?)가 있는지라 정말 방이 자기 이름을 말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물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전달되는 것은 느껴져서 그 부분이 좀 재미있고 웃기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물에 말을 걸고 이름을 붙이면 애착이 생겨서 특히나 인형의 경우에는 어느순간 부터는 이 아이가 살아있는것 처럼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진짜 내가 뭔가 말을 해서 표정에서 피드백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종종 있거든요. 뭐 이 자체도 제가 그렇게 보려고 하고 그게 이제 자동적으로 되니까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어찌되었던 전 그 사물에 애착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그리고 불편한거나 아니면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는지 물어보니까 이전과는 달리 그 대상을 좀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


환자의 카르테를 읽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정화 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담아서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세요'라고 말을 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던 환자가 좋아졌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도 힘들고 그리고 '그럴수도 있을것 같다'라는 방식으로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도 힘들지만,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답을 구한다는 것 자체는 따뜻하구나 하는 하는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을때 너의 안에서만 존재하는 오직 너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 보다 우리라는 혹은 나의 문제라고 바라보는 것은 어떤 이상적인 사랑이나 애정 혹은 치유에 대한 환상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가 감당하지 못하니까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아이가 감당하지 못하는 여려움을 호소했을때 그걸 엄마가 받아서 소화해서 아이가 소화 할 만한 수준으로 돌려주는 그런 방식-담아내는 것과 담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로로 돌아가서 과거에 휩쓸리는 게 아닌 현재를 위한 삶을 살자는 말 자체에는 옮고 그름으로 판단 해야할 어떤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것이 좋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냥 어떤책을 읽던지간에 내게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소화하기 힘든 부분은 그대로 두는것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말며 그리고 부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으로 인해서 나머지 부분까지 착색하여 흰색이거나 검정색으로만 있는 세계가 아니면 좀더 살아서 숨쉬는 것이 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흑백만 있는 세상은 힘들어요. 나 자신도 흑 혹은 백으로 칠해야 하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이 부분인것 같아요. 

흑백논리로 자동적으로 나아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을 보는 일은 꽤 신기했습니다. 이건 책에서처럼 정화의 힘일지도 모르고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힘일지도 모르고... 뭐 해석하는 건 각자의 마음속에서 내리면 되는거니까요. 전 저 자신이 그만큼 좋아졌다고 믿고 싶습니다. 




+

적고보니 책의 리뷰보다는 다른 이야기가 대부분이네요. -_-;; ㅎㅎㅎ




 


  1. 정서인식능력, 정서표현능력, 정서조절능력, 정서활용능력,감정이입능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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