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세상은 결정론적인 세상이지만, 삶을 알아차림에 따라서 그 삶은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고로 생은 여전히 다시 태어나서 살아감의 연속이 반복이겠지만, 결코 그 생이 이전 생의 반복이 아니다. 

여주인공은 이전 생들과 다르게 현생에서는 과거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고 그로 인하여 주변인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래서 극중 메인 인물 3인이 모두 이전 생과 같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다른 선택을 했다.

여자주인공은 구원자가 자신을 구원해주는 서사가 아니라 스스로 이전 생에서 구원자 이었던 가족들을 찾아가서 스스로가 구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고, 가해자(살해자)는 자신의 방해 요소였던 구원자 가족을 살해하는것으로 이전 생과 다른 선택을. 그리고 구원자 가족의 구성원중에서 마지막까지 가해자(살해자)와 대치하던 남자는 여주에게 자신이 지난생을 모두 통틀어서 어떤 사람이었음을 발화함으로서의 자신의 소망을 전달한다. 

여자 주인공은 약자가 아니다. 이전에는 약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업을 지고있는 사람중에서 가장 강인한 존재는 여자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내려 놓을 수 도 있는 극한의 두려움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자체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비추어어졌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그녀가 감히 희망을 품었던 것은, 현생에서만 보여지는 유일한 동성 지인인 친구로부터 희망의 메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지능력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현실적인 친구의 조언. 그 한마디에 구원받았고, 용기내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삶의 통제력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 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을 통제할 수 있는가? 

통제 할 수 없는가?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알아차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삶을 통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과 두려움을 눈앞에 두고 고통받는다고 하여도 ‘스스로 선택함’이 존재한다는것을 놓아버리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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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을 다 읽고 생각난 단어는 '거짓 자기'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봤다.

위니컷은 부모가 아동의 감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과도한 순응을 요구할 때, 아동은 진정한 친밀함에 대해 단념하고 가까워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순응적인 거짓 자기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꾸며 낸 모습에 만족하는 대가로 애착을 얻는다.

화나고 외로운 진짜 자기는 내면으로, 무의식으로 물러난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은 적 없는 이런 진짜 자기의 측면은 사람들과 접촉에서 분리된 채 존재하고, 영원히 버림받는다. -<심리치료에서 대상관계와 자아기능>, N. Gregory Hamilton,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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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가레가 페니스 선망으로 분석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기획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프로이트는 여아가 페니스를 선망하게 함으로써 여머니를 사랑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이로써 근친상간금기가 아니더라도 여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어머니와 의 분리)에 진입할 수 있다. 

둘째,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통해 여성의 성감대를 클리토리스(능동)에서 질(수동)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 이 또한 유아의 리비도적 공격성과 능동성이 여성으로 정체화되면서 수동성으로 변경되는 구실로 만들어진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정상적 여성성’에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때 프로이트에게 ‘정상적 여성성’이란 수동성과 모성으로 규정되는 여성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리가레에 의하면 이 ‘정상성인 여성성’의 두가지 특징은 기실 남성에게 필요한, 남성을 위한 여성성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정상적인 여성은 남성의 공격성의 승화를 위한 출구로서 수동적인 여성성을 할당받고 남성의 계보를 유지시킬 아들을 재생산하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을 할당받는다. 심지어 여성이 능동적으로 아이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에게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인 생산자가 아니다. 이리가레에 따르면 프로이트에게 “여성은 다만 남성의 생산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리가레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프로이트의 성차 이론 내에서 여성이 스스로 정의하는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정신분석을 정신분석하다, p225 

 

뤼스 이리가레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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