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세상은 결정론적인 세상이지만, 삶을 알아차림에 따라서 그 삶은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고로 생은 여전히 다시 태어나서 살아감의 연속이 반복이겠지만, 결코 그 생이 이전 생의 반복이 아니다. 

여주인공은 이전 생들과 다르게 현생에서는 과거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고 그로 인하여 주변인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래서 극중 메인 인물 3인이 모두 이전 생과 같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다른 선택을 했다.

여자주인공은 구원자가 자신을 구원해주는 서사가 아니라 스스로 이전 생에서 구원자 이었던 가족들을 찾아가서 스스로가 구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고, 가해자(살해자)는 자신의 방해 요소였던 구원자 가족을 살해하는것으로 이전 생과 다른 선택을. 그리고 구원자 가족의 구성원중에서 마지막까지 가해자(살해자)와 대치하던 남자는 여주에게 자신이 지난생을 모두 통틀어서 어떤 사람이었음을 발화함으로서의 자신의 소망을 전달한다. 

여자 주인공은 약자가 아니다. 이전에는 약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업을 지고있는 사람중에서 가장 강인한 존재는 여자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내려 놓을 수 도 있는 극한의 두려움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자체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비추어어졌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그녀가 감히 희망을 품었던 것은, 현생에서만 보여지는 유일한 동성 지인인 친구로부터 희망의 메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지능력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현실적인 친구의 조언. 그 한마디에 구원받았고, 용기내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삶의 통제력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 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을 통제할 수 있는가? 

통제 할 수 없는가?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건 알아차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삶을 통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과 두려움을 눈앞에 두고 고통받는다고 하여도 ‘스스로 선택함’이 존재한다는것을 놓아버리지 말아야한다.

반응형

3권을 다 읽고 생각난 단어는 '거짓 자기'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봤다.

위니컷은 부모가 아동의 감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과도한 순응을 요구할 때, 아동은 진정한 친밀함에 대해 단념하고 가까워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순응적인 거짓 자기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꾸며 낸 모습에 만족하는 대가로 애착을 얻는다.

화나고 외로운 진짜 자기는 내면으로, 무의식으로 물러난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은 적 없는 이런 진짜 자기의 측면은 사람들과 접촉에서 분리된 채 존재하고, 영원히 버림받는다. -<심리치료에서 대상관계와 자아기능>, N. Gregory Hamilton, p54

반응형

이레가레가 페니스 선망으로 분석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기획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프로이트는 여아가 페니스를 선망하게 함으로써 여머니를 사랑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이로써 근친상간금기가 아니더라도 여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어머니와 의 분리)에 진입할 수 있다. 

둘째,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통해 여성의 성감대를 클리토리스(능동)에서 질(수동)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 이 또한 유아의 리비도적 공격성과 능동성이 여성으로 정체화되면서 수동성으로 변경되는 구실로 만들어진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정상적 여성성’에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때 프로이트에게 ‘정상적 여성성’이란 수동성과 모성으로 규정되는 여성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리가레에 의하면 이 ‘정상성인 여성성’의 두가지 특징은 기실 남성에게 필요한, 남성을 위한 여성성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정상적인 여성은 남성의 공격성의 승화를 위한 출구로서 수동적인 여성성을 할당받고 남성의 계보를 유지시킬 아들을 재생산하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을 할당받는다. 심지어 여성이 능동적으로 아이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에게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인 생산자가 아니다. 이리가레에 따르면 프로이트에게 “여성은 다만 남성의 생산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리가레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프로이트의 성차 이론 내에서 여성이 스스로 정의하는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정신분석을 정신분석하다, p225 

 

뤼스 이리가레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반응형

관계적 자아

리뷰/저장고 2018. 9. 11. 23:13 by dung

명저 <새로운 여성 심리학>의 저자 진 베이커 밀러와 월즈리대학교 스톤센터의 연구팀은 인간관계와 우대감의 본질과 중요성, 특히 여성의 인간관계와 유대감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처음에는 ‘관계 속 자아 이론’으로 불렀던 이론은 성장과 발달의 초점이 분리가 아니라 ‘관계적 자아’에 있다고 봤다. 이 연구의 핵심은 타인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는 인식은 여성의 심리 발달을 좌우하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밀러 박사는 개인이 건강한 방향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자신감,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물론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지 못하도록 강고하게 사회화된다. 밀러에 의하면, 상호성은 건강한 유대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관계의 양 당사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성장 지향성 관계는 재미와 활력, 행동에 대한 자신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자존심, 그리고 유대감을 강화한다.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진 칼본, -p 106

반응형

인간이 대상화되면 우리의 자아상은 깊은 내상을 입는다. 여자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자긍심이 곤두박질치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이 물건이고 게다가 하자 있는 물건이라는 광고 메세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P25


기업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부모가 광고의 부정적 영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텔레비전만 끄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이들을 대기오염에서 보호하고 싶다면 숨을 쉬지 못하게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광고는 우리의 ‘환경’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우리는 광고 안에서 헤엄친다.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만 가둬 놓던지, 집 밖으로 나갈 때 안대로 눈을 가리게 하면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해도 광고가 보내는 메세지는 가까운 인간관계에, 우리 가정에, 마음에 머리속에 스며들어 있다. P66


광고는 또한 즉각적으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성한 상징과 언어를 동원한다. 닐 포스트먼은 이런 형태를 우리에게서 가장 숭고한 이미지를 강탈해가는 ‘문화적 강간’이라 부른다. P81


광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건을 파는 것이므로 인간관계를 표현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제를 모르는 이런 소비주의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원도 고갈시킨다. 우리를 필연적으로 나르시시즘과 유아론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와, 아이들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때 도구화와 착취 이외의 다른 방식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 p93


광고는 오래 전 부터 우리에게 상품을 통해 더 좋은 인간관계를 밎을 수 있다며 ‘이것을 사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해 왰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단계를 넘어서 ‘이것을 사라. 그럼 이것이 너를 사랑해 줄 것이다’라며 우리에게 상품 자체와의 관계를 약속한다. 상품이 목적을 이루기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된 것이다. -p 97


상품과의 관계는 특히 어린이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제품이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호랑이 토니든 닌자 거북이든 리틀 포니든 말이다. -p 97


광고는 우리에게 더 많이 사라고, 상품을 통헤 정체성을 확립하고 충족감을 느끼라고, 상품 ‘선택’을 통해 우리의 개성을 표현하라고 끊임없이 충동질 한다. -p 97


더 중요한건, 상품은 우리를 배신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자동차 광고는 이렇게 단언한다. “당신이 그것을 사랑하더라도 상처 받을 일은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면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사랑은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불안함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비슷한 광고들이 쌓이고 쌓이면 인간관계에 독이 되는 냉소주의와 소외감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물건들에게는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만 인간들에게 대해서는 냉소를 보내는 것이다. -p101


이런 광고 메세지가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인간보다는 상품에 맹세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브랜드에 충상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배우며 자란다. - p101



반응형

오해_ 용서는 망각을 의미한다.

실제_ 아마 당신은 부모의 학대적 통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오해_ 용서는 모든 문제가 있는 관계에 대한 해답이다.

실제_ 어떤 사람에게 용서는 어리석거나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오해_ 더 뻘리 용서할수록 좋다.

실제_ 때 이른 용서는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


오해_ 상대에게 용서했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실제_ 용서는 말없이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듣고 있느냐 이다.


오해_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실제_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할 때 가장 해방감을 준다.


오해_ 용서는 상처를 없애주는 영구적 행위이다.

실제_ 용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용서를 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폭력이나 무시, 성추행, 이혼이나 학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행위를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 자신의 배우자, 혹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으로 존중하고 소중히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혼란, 그들의 미슈ㅜㄱ함과 절망, 그리고 그들의 휴머니티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 뮐러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양철북,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p260

반응형

'리뷰 > 저장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적 자아  (1) 2018.09.11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 발최  (0) 2018.09.11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통제를 하는 50가지 이유  (0) 2017.08.17
육체자본 & 매력자본  (0) 2016.10.23
각성된 섹시즘  (0) 2016.10.23

기본적으로 통제는 삶에 필수지만 역기능적 통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식을 바탕으로 추즉해볼 수는 있다. 이를 통해 부모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통제를 하는 50가지 이유이다. 현실 부모 혹은 내면 부모가 당신을 왜 통제하는지 설명하는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그런 다음 목록을 다시 살펴보며 다음 이유 가운데 왜 당신이 가끔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지 살펴보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과잉 통제를 한다.

- 인지적 이유
1.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2. 다른 사람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통제한다고 믿는다.
3.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통제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4. 의견 충돌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고 비판을 받는 것은 생명에 위협이 된다고 믿는다.
5. 자신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6.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7. 모든 상황은 항상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 세대적 이유
8.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자랐거나 부모에게서 완전히 혹은 건강하게 독립하지 못했다.
9. 버림받았거나 억압받는다고 느끼며 자라서 다른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자신을 버리거나 억압할 것이라고 여겼다.
10. 어린. 시절 무시당하거나 박탈당했다고 느껴서 성인이 된 뒤에도 무시를 당하거나 박탈당할까봐 두려워한다.
11. 어린 시절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 번도 느끼지 못해서 지금은 관심 받기를 고집한다.
12.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모델을 갖고 있다.

- 정서적 이유
13. 안전과 의존에 대한 잣니의 욕구를 두려워해 감정을 마주하는 대신 합리성만 추구하려 든다.
14. 슬픔, 분노, 후회로 가득 찬 거대한 저장고를 애써 회피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매개체로 여긴다.
15. 자신이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늘 냉담함을 유지한다.
16. 신체상이 낮고너 성에 대한 갈등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더 건강하거나 젊은 신체에 질투한다.
17. 정서적 대처 기술이 약하고 감정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능력이 없다.
18. 다른 사람들의 행운을 부려워한다.
19. 우울, 불안, 중독 증상, 빈약한 충동 조절 능력 등을 보인다.

- 힘, 만족감 관련 이유
20.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21.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22. 약하거나 무력한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을 대단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23. 통제에 중독되어 있다. 통제는 마약이나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발휘하게 한다.
24. 복수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표출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한다.
25. 그냥 단순히 비열하다.

- 무의식적, 존재적 이유
26. 자신에게 약점이나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27. 자신, 배우자, 상사, 부모에게 화가 나 있지만, 그들보다 위협적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28.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어떤 아버지는 정리정돈에 강박을 느낄 수 있다. 어렸을 적 멍청한 아이 취급을 받은 어떤 어머니는 아이에게 똑똑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다.
29. 자신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30. 다른 사람을 자신이 가진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지나치게 의심한다.
31. 힘 없고 수동적인 희생자가 된 듯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된다.
32. 자신의 약한 면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위에 아이 같은 작고 힘 없고 약한 존재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33. 별로 달갑지 않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겸허한 현실을 인정하기 두려워한다. 우리 모두 힘이 있지만, 위험한 사건들은 무작위로 일어날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의 통제 밖에 일들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34. 현상을 유지하고 인생의 복잡한 질문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강압적 규칙과 엄격한 신념이 필요하다.
35.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 혹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통제한다는 점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이의제기를 못 하게 한다.
36. 자신의 문제, 결함, 감정에서 신경을 분산시키려 애쓴다.
37. 다른 사람의 취미 생활이나 친밀한 인간관계에 분노한다.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사랑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자존감 관련 이유
38. 자신에게 자기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보다 더 나은 어떤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39.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원한다.
40. '내 아들은 의사이다'처럼 다른 사람의 성취가 자신에게 지위를 부여하기를 바란다.
41. 부모와 성인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
42. 아름다움, 유명세, 권력, 돈 등을 지나치게 중요시한다.

- 대인 관계 관련 이유
43. 사람들에게 하인, 주인, 대상물 같이 한정된 범위의 역할만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을 대한다.
44. 한 사람이 돌봄과 거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안전한 거리를 둔다.
45. 부모 주위에 있을 때 자신이 물건 같다고 느껴서 다른 사람들을 대상물로 보는 경항이 있다.
46. 자신의 욕구나 두려움을 다른 사람의 욕구와 두려움과 구별하는데 서투르다.
47. 다른 사람의 신체를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여긴다. 한 남성은 아버지가 자신을 아버지의 갈비뼈에서 튕겨 나온 걷고 말하는 동물로 여겼다고 말했다.
48.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꿈을 좇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구해주려 한다.

- 환경적, 사회적 이유
49. 자신이 충족하지 못한 욕구에 압도된다. 경제, 사회, 일, 신체, 결혼 생활 위기와 마주하는 것에 압도된다.
50. 건강한 인간관계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지 않는다. 과잉 통제를 권장하는 사회, 문화 가치에 동의한다.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양철북, 통제자가 느끼는 두려움, p205

반응형

남성의 문화에서 '더러운 것'은 섹스 자체가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몸이 된다. "몸을 더럽혔다" 혹은 "더러운 것들"이란 표현이 지칭하는 대상이 늘 여성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노스 바움(2015)은 "(여성과의) 섹스 그 자체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자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여성이)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지니고 있다"는 인간의 오랜 믿음, 즉 여성 혐오와 인간혐오의 오랜 전통 속에서 형성된 개념적 연계 고리를 지적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자주 이러한 집단이 표상하는 우리 자신에 과한 어떤 것을 우리 자신에게서 차단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P410, P411,


주관적 폭력: 직접적이고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폭력

객관적 폭력: 정상적인 상태에 내재한 폭력. 비가시적. 

객관적 폭력: 상징적 폭력: 선동적 언어를 포함해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 자체를 가르킴

객관적 폭력: 구조적 폭력: 우리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결과 -P416


바우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이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다른 사람의 운명이라는 더 광범위한 함의에 무관심한한 채 자기 일”만 기꺼이 수행하면서 살아가는 현상가무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경고이다. – p417


더 끌고 나가, “나쁜 사회적 장치:에 기인하는 “구조적 무사유”가 “악의 사회성”이라고 주장한다. 타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는 도덕적 무관심은 개인적 기질이나 성향의 문제, 혹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희생자와의 사회적 거리 혹은 사회적 근접성을 중요하게 거론한다. – p418


여성 혐오의 표현이 나오는 대전제가 "(여성이) 자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지니고 있다"라는 걸 좀 더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 했던 거 같습니다. 이 전제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여성에게만 명명되는 텍스트-낙인적 함의의, 남성에게는 명명되지 아니한-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미혼모', '꽃뱀' 정도가 적절한 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 SNS 상의 미러링 운동으로 인하여 '미혼모'의 대칭되는 표현은 '함흥 자지'. '꽃뱀'에 대칭되는 표현은 '좇뱀'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런-부정적- 함의의 텍스트가 없었고, 설사 있다고 하여도 부정의 느낌은 여성에게 지칭되는 텍스트만큼 부정적이고 강렬한 느낌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더러운 것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며 내부(자신)는 고결하고 깨끗하다는 결벽증적인 사고의 흐름은 유아적인 사고 양식에 가까운 이분법적인 미성숙한 사고를 반영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투사를 통하여 부정적인 것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그걸 조절하고자 함으로서 자기애적 방어를 완성하는 모양으로,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으로 대상을 분리하는 유아적인 사고가 성인인 경우에는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한편 상대방으로부터 자기 안의 부분을 부정하여 투사 당한 대상은 그 내용을 내사하여 소화함으로써 자기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변 환경적인 요인조차도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외부 귀인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만 귀인 하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없는 것인처럼 고려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기계적인 중립으로 표현. 자기 봉사적 귀인 편향이 존재하지 않음.)

그렇게 보면 투사한 대상과 투사된 대상의 사고의 흐름은 겉으로는 달라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흐름을 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역동(흐름)을 끊어내려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집단 내부에서 개개인의 노력으로 이룩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 구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인데도 지금까지 그렇지 못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희망적으로 그려봐야 할지 조차 감이 잡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현재 있는 위치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려면 행동보다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고 하여도 (개개인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성들은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태도를 취하며 남성들은 외부에서 찾는 태도를 취하는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성차에 따른 양육의 차이-주변인의 반응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에 의하면 성차는 유의미한 함의가 없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중론이라는데 그럼 이 모든 것이 전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것인지. 

이부분-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시스템과 시스템에 속해 있는 개인을 바라보는 시점이 개인의 입장이기 보다는 시스템의 방향(입장)에서 바라보는(신자유적인?) 시점의 비중이 더 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인 부분의 영향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클것이라고 의식적으로 인지하지만, 인지함이 없이 혹은 익숙하게(?) 대부분의 것들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습관적인것과 동시에 ‘모두’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습된(?) 불편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악의 평범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바우만의 텍스트) 

어찌하여 (이 나이가 되도록) 수용할 수 없는 것을 ‘투사’라는 방어를 통해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지. 러한 태도는 정서발달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유아기에서 머물러 있는 태도이기에 어떠한 요건이 거기서 고착되게 하는 것인지. 탈 동일화로 나아갈 수 없는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상위 통찰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이 또 일었습니다.


 


* 긍*자기 봉사적 귀인 편향: 부정적인 일은 환경 탓으로, 긍정적인 일은 자신에게 돌려서 자존감을 고양시킨다.

*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 p156, 제8장 근대와 여성 혐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지 코, 은행나무

* 범주 폭력: 사회적 약자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범주 폭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범주는 지배적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응형

육체자본 & 매력자본

리뷰/저장고 2016. 10. 23. 16:38 by dung

이런 변화는 여성에게 외모가 본성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이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이것은 부르디외의 '육체 자본'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 자본을 생산한다는 것은 사회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몸을 개발한다는 것을 뜻한다." 몸은 계급의 상징물이 됐다. 걷거나 코를 풀거나, 먹고, 마시고, 말하고 등등 몸을 통한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개발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문화이다. 훌륭한 육체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상층계급의 표상이 된 것이다.

- 외모 콤플렉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115p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하고,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여성성 억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성성의 회복의로 남성 중심 사회의 가치 전복을 꿈꾸었고, 여성의 매력이 여성적 권력을 획득하는 자신이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요즘 20대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캐서린 하킴의 <매력 자본>이 그런 주장의 중심에 있다. 하킴은 부르디외가 말한 경제 자본(자본, 토지 등 재정적인 이득을 발생시키는 자원과 자신의 총합), 문화 자본(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과 문화적 지식과 문화적 가공물의 총합), 사회 자본(인맥, 사회적 관계 자산)에 매력 자본을 더했다. 하킴은 이성을 매료하는 외모와 태도가 매력 자본이라면서 매력 자본도 가치 자산을 창출하는 자율적 가치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연예인이나 여성의 성공 사례를 보면, 실제로 이성을 매로하는 외모와 태도가 경제 자본이나 사회 자본만큼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력 자본은 여성에 유리한 자산인데, 남성의 성적 욕망이 여성에 비해 크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서 여성이 매력 자본을 이용해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 자산만 인정하고 신체적 자산을 무시하는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가부장제에 동조하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 외모 콤플렉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117p


반응형

각성된 섹시즘

리뷰/저장고 2016. 10. 23. 16:33 by dung

각성된 섹시즘이란 섹시함이 자기 계발의 요소이자 성공 전략의 방법이 됐음을 설명하는 수전 더글라스의 개념이다. 섹시즘을 성차별주의로 옮기지 않는 것은 섹시즘이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별주의를 전략적으로 스는 새로운 경향성을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각성된 섹시즘은 페미니즘 덕에 여성이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이 성취됐으니 이제 '재미로' 소녀들, 여성들의 성적 고정관념을 부활시켜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여성의 평등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계산된 여성 이미지(얼굴 표정, 몸, 유혹, 섹슈얼리티)를 통해 진정한 파워, 재미로서 파워를 얻는다는 방송들이 솓아져 나온다고 한다. 이제 다 가졌으니 시간과 에너지를 외양에, 남성 유혹에, 핫한 것에 쏟으리고, 다른 여성들과 경쟁하고 쇼핑하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 외모 콤플렉스, 116p


반응형


현대 여성의 삶은 실상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상대적인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위치에 따라 남녀의 상황이 다르게 들어나는데, 불평등이 눈에 띄게 들어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열등하고 불안정하며 가정 역할의 연장선에 있는 역할만 주어진다. ...(중략)...
형식적인 성평등 사회에서 성장한 젊고 똑똑한 여성들은 이미 남성의 능력을 추월하고 있으며 이들은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페미니스트 같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여성운동의 무게중심은 정치 운동에서 자기 계발로 이동한 듯 보인다. 자신의 미래는 앞서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가부장적 사회와 맞서는 싸움이 아니라 자존감을 얻기 위해 자신과 벌이는 싸움 앞에 놓였다고 본다. 직장에서 일정한 직위 이상 승진할 수 없도록 막는 유리천장은 능력이 있고 담대한 여성이라면 깨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유리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호기로운 생각과 달리 많은 여성이 여전히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사회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남성에 견주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불안정한 고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여성다운 여성이 환영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할 말이 있어도 억누르면서 '나대거나 설치는'여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여성들은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이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모순된 양상 속에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성평등 이면에 감춰진 불평등 때문이다. 성평등을 이미 정해진 일로 생각함으로써 여성들이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이 은폐된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16p


여성의 자기 비하는 겸손이라는 아름다운 겉치레와 칭찬으로 가려지기 쉽다. '여자답다', '얌전하다', '참하다', '요즘 보기 드문 여자다'같은 말은 더욱 여자다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한 인간을 여성으로 만들어간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라는 보부아르의 명제가 이를 잘 말해준다. 콤플렉스는 바로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상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그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여성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엄마딸 콤플렉스 등은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생긴 여성 콤플렉스다. 
무의식에 잠재한 여성 콤플렉스가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제약하는지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교육과 대중매체, 신화와 종교 등을 통해 체계적. 일상적으로 특정 여성상이 주입되고 세뇌되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를 깨달아도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힘겹고 고통스럽다. ...(중략)...
여성 콤플렉스는 개인적 문제나 타고난 기질과 심리적 원인보다는 사회 경제 문화 등 외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도, 여성 개인의 내면에 뿌리내리기 때문에 내적 장애료 여겨져 왔다. 여성 콤플렉스는 심리적 사회적 원인이 중층적으로 교묘하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탓에 그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더구나 성평등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진 오늘날의 여성 문제는 좀처럼 논의 대상이 되기 힘들고 다른 사회적 현안에 밀려 묻히기 쉽상이다. 따라서 여성 콤플렉스를 바로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는 반드시 두 가지 시선이 필요하다. 여성 내면에 드리운 장애를 파악하는 시선, 여성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의 내부를 총제적으로 통찰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19p


여성이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은 성취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는 아직 이르다. 혹독한 억압으로 점철됐던 여성의 삶이 이만큼이나마 짐을 덜었다는 것만으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으루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야한다. 그와중에 개인적인 노력과 책임으로 성공을 추구하라고 다그치는 신자유주의는 여성의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개인으로 파편화해 '여성'이라는 범주를 해체하고 있다. 또한 소비적 물질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실패한 삶은 가차 없이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사회적인 문제까지 개인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37p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로맨스 부재를 암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혼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노처녀'라는 점을 부각하고, 기혼 여성의 경우 사회적 직업적 성공과 업적보다는 가정 문제를 부각하거나 혼인 및 가족 관계를 먼저 언급해 그가 가진 지적 능력을 상쇄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 지적 콤플렉스,  158p


 딸이 자기와는 달리 멋지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성공 욕망을 투사한다. 이런 투사적 동일시 때문에 엄마와 딸은 엄마와 아들보다 심리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엄마가 딸에게 모순된 기대를 갖고 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딸은 그때그때 이랬다가저랬다 바뀌는 엄마의 기대와 상반된 가치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 딸은 주체적 삶을 살라는 요구를 받고 여자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그러다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결정된다는 현실 앞에서 분열한다. 사회와 부모가 요구하는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딸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분리되지 못하고 '나'자신이 아닌 엄마의 딸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의 투사적 동일시와 딸의 심리적 불안이 빚어내는 의존관계가 엄마 딸 콤플렉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엄마 딸 콤플렉스이 탄생,  215p


낸시 초도로우<모성의 재생산>에서 말했듯이 엄마와 딸은 역할 동일시인성적 동일시를 통해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하고 독특한 애착 관계를 일생 동안 유지하게 되므로, 딸은 엄마로부터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 
- 엄마 딸 콤플렉스이 탄생,  216p



반응형

여류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가 말한 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즉 '모성 신화' 때문에 느끼는 고립된 기분을 나는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실비아를 사무치게 사랑한다. 하지만 모성 신화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다. 모성 신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만의 야심도 호기심도 욕구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다.

- 도망칠 수는 있어도 숨을 수는 없다, p 88


가사 노동 때문에 비슷한 분노와 좌절감을 맛본 적이 있다면 팻 메이너디가 슨 <가사 노동의 정치학>을 읽어 보기 바란다. 펫 메이너디는 1970년에 내놓은 이 수필에서 "참여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라고 적었다. 책에는 메이너디 부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어 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였기에 가사 분담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처음에는 기분 좋게 가사 분담에 동의했지만 막상 해야 할 일들을 앞에 두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의무에서 빠져나가려 들었다. 팻 메이너디는 남편의 우스꽝스럽가까지 한 핑계들을 모아 정리해 두었다.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 것까지는 괜찮아. 그런데 난 아직 일에 서투르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당신이 먼저 보여 줘."
숨은 뜻: 앞으로 나는 일을 할 때마다 당신에게 방법을 물어볼 거고, 그럴 때마다 당신이 나에게 일하는 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어야 할 거야. 왜내하면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까. 또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앉자서 책이나 읽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당신이 직접 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당신을 약 올리며 괴롭힐 테니까."

"우리는 일의 성과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라.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당신의 기준에 맞추어 일을 해야 해? 그건 불공평해."
숨은 뜻: 먼지와 쓰레기가 쌓여 괴로울 지경이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야. "집이 돼지우리 같네."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그러고 나서 나는 당신의 반응을 기다릴 거야.

"집안일은 당연히 우리 둘이 공평하게 해야지, 그런데 내가 무조건 당신 스케줄에 맞출 수는 없잖아?"
숨은 뜻: 수동적 저항. 집안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할거야. 설거지는 일주일에 한 번, 빨래는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 바닥 청소는 1년에 한 번이면 되지 않을까? 이게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 그러다 보면 나는 아에 손을 놓고 있어도 되겠지. 

- 페미니스트가 빨래하는 법, p 292


저널리스트 아리엘 레비는 <완고한 여성 우월주아자 벽창호들>이라는 책에서 외설적 문화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여성스러운 여자들"보다 거칠고 현명하고 멋진, 이른바 "여성우월주의자들"은 남자들과 어울려 스트립 클럽에 가고 <플레이 보이>를 읽고 여자들을 대상화시키는 모든 통상적 의식에 참여한다. 그러나 남자들과 달리 이 '여성 우월주의자들'은 감정사의 역할과 피감정사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여성 우월주의자들은 자신이 외설적인 비디오나 빅토리아 시크릿 카탈로그에 나오는 여성스러운 여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남자들에게 어필하면서 그런 여자들에게 감탄하는 남자들을 인정해 주어 자신이 속 좁은 여자가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또한 위트와 공격성 아래에 다른 여자들 못징낳은 섹시한 에너지와 속옷을 숨기고 있음을 은영중에 들어내야 한다. 이 모든 까다로운 과업을 완수할 때에만 외설에 대한 열정을 추구할 수 있다"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 성의 정치학, p 318


길리건은 여자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 즉 '자기 희생'이라는 악의적이고 집요한 믿음이 여자들을 '이기심의 망령'에 시달리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이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욕구를 완전히 매몰시키게 만든다는 것이다.

- 다른 목소리로, p 377


버틀러와 그녀의 일족들에게 '존재'란 없는 것이었다. 안정적 자아란 없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발적 행동에 따라 표현에 참여할 때 항상 구조화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발적 행동을 통해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H교수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문밖을 걷고 있는 모든 순간 성별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젠더 트러블, p 400




반응형




...............


그러하다. 

나는 11화의 십사황자의 콧수염+턱수염 이후로 14황자에게 덕통 당함. 

대머리(변발)에 수염까지 더해지니.................................... ㅠㅠ 


사실 이전까지는 14황자의 8황자에 대한 순애보(?)를 응원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하하하... 약희가 넘나 부러워서 울고 있음. 나도 수염 만지고 싶다해!! 보배로운 11화. 이때 두사람 정말 좋았는데 ㅠㅠ 수염 만지는 씬 이제 더는 없겠지. 그렇겠지. 

오늘 병원에서 했던 망상은 약희와 수염을 허락한 사이(악수처럼ㅋㅋ)가 되어서 좋아하는 14황자. 그리고 그에게 또 부탁을 하는 약희! 이번엔 변발 머리(이마+머리)를 만지게 해달라는 것!!!

거절했으나 또 그 뿌~하는 귀여운 표정으로 바라보니 그는 그녀에게 머리를 허락하고... ㅎㅎ 약희는 그의 반짝이는 이마(머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천으로 더 윤이 나게 닦아보기도 하고.......................(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망상이긴 하지만ㅋㅋ) 뭐암튼 상대가 그렇게 나와서 황자님 넘나 당황하시면서도 좋아하는 거 보고 싶음.

약희한테 13황자랑도 이런식의 접촉을 하냐고 물어봤는데 이런건 황자님한테만 그래요라는 말 듣고 완전 설래서 좋아하시는 황자님 보고싶구.ㅋㅋㅋ 막..ㅋㅋㅋㅋ

그리고 그 대장정의 마무리는 헤드락으로.............. 황왕자님 충격받아서 집에가서 우실려나. 괴로워하다가 그래도 나름 포옹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하실거 가튼...ㅠㅠ 



아니면 약희가 사실 동인녀라서 14황자와 8황자의 러브라인을 밀러서 둘의 밀회를 주선한거고, 그래서 결혼도 거절한거라서 약희가 본인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찾아가서 야속해하는 말을 하는데 그에게 약희가 건네는 건 책 한권. 

뭔가 넘나 궁금하지만, 그녀가 집에가서 혼자 있을때만 보라고 해서 펼처봤는데............. 이거슨...!!(동공지진!!

알고보니 13황자와는 사이좋은 동인 친구. 문장력과 그림 실력 모두 좋은 13황자는 약희의 책에 축전, 삽화를 주던 사이라던가. 하하하!!  뭐 암튼 약희가 자신과 8황자를 그런 대상으로 보았다는것에 모멸감을 느끼지만, 또 글은 잘써서 약희 재능에 감탄하는 맹구같은 모습을 보고싶다능. 

이 설정이면 13황자의 커플 연성은 4황자와 본인이 되실거 같구...하하하하!!


그리하여 21화까지 봤는데 14황자가 점점 좋아져서(11화 이후에) 14황자가 나온 파트를 다시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반응형

정신분석학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과 그의 어머니 헬렌 블록 루이스는 엄마와 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화에 대한 글을 썼다. 그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엄마조차도 남편과 아들을 딸보다 더 위로 생각하면서 여자보다 남자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 딸의 자존심이 깊이 상처를 받는다." 딸은 엄마의 남자 선호를 "거부와 배반"으로 경험한다. "딸이 엄마에 대해 품고 있던 존경심이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딸도 엄마의 열등한 지위를 공유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자그임까지 위험에 처한다."

- <여자의 적은 여자다>, 정신분석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볼까, p 232




'충분히 훌륭한'엄마들은 또한 외모와 관련해서만 아니라 전반적인 것들을 가지고 딸들을 비판하고 품위를 떨어트린다. 심리치료사 캐런 파이트와 니콜라 트럼보에 따르면, "여자들은 비판적이고 얕잡아보고 사기를 떨어트리는 엄마의 행동을 줄기차게 경험한다. 우리가 하는 짓 중에서 훌륭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를 보는 눈길조차도 좋게 받아들여진 적이 한번도 없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파이트와 트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엄마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혼동을 걲는다. 어떤 때는 힘과 자율성이 인정 받다가도, 어떤 때는 그런 것들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또 어떤 때는 지능과 성공에 상을 내리다가도 또 어떤 때는 똑같은 행동에 눈살을 찌푸린다. 여자들은 엄마들로부터 무작위로 강화를 받는다고 느낀다. 그 강화가 너무나 예측불허인 까닦에 여자들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박탈당하고, 영원히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면서 살게된다. 그 첫 번째 의존의 대상이 바로 우리 엄마들이다. 어떤 행위가 인정을 받고 어떤 행위기 안정을 받지 못할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없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충분히 훌륭한'엄마, 그릭 '충분히 훌륭한'딸에 대한 엄마의 학대, p270


반응형

양가적 성차별

리뷰/저장고 2016. 3. 29. 17:42 by dung

1996년에 위스콘신 주 로런스 대학의 심리학자 피터 글릭과 뉴저지 주 프린스턴 대학의 수전 T. 피스크는 여자에 대한 적대감이,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전통적인 남여 불평등을 지지하는 여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곤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들은 이것을 '양가적 성차별'이라고 부른다. 이 항목에 높은 점수를 받은 백인 대학생 2,000명은 특정한 여자(가정주부,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동경하고, 낭만화하고, 이상화하는 한편으로 다른 여자들(커리어우먼, 페미니스트, 성적으로 애를 태우게 만드는 여자, 매력 없는 여자)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보고서의 저자들에 따르면 그런 양가적 성차별이 불평등한 전통적 성창별이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어지며, 지배적인 집단 구성원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진통제의 역할을 맞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착취하고 있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에게 해야하 할 일을 알려주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우리가 없으면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야.")그것만이 아니다. "양가적 성차별은 지위가 낮은 집단으로부터 협력을 끌어내는 수단으로도 더 효과적이며 더 유쾌하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대가로 다양한 특권과 애정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흥미로운 것은 글릭과 피스크가 남자들의 경우 가정주부나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접근 가능한 여자들에게 긍정적인 애착을 보이는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스로 여자의 전통적 역할을 인정할 수도 있는 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른 여자들의 경쟁자로 보면서 다른 전통적 여자들에게 긍정적인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여자 성차별주의자들은 여자들에게 양가적이라기보다는 적대적"이다. 이런 발견은 결코 놀라운것이 아니다. 아마 가정에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여자들로부터 더 따뜻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기억하도록 하자. 여자들이 남자들에게가 아니라 주로 다른 여자들에게 공격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피터 글릭과 그의 동료들은 후속 연구에서는 성차별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와 여자를 별도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이 여자들을 매우 에로틱한 시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여자들이 매력적이거나, 섹시하거나,"매춘부, 암캐, 동성애자"로 비쳐지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성차별주의자이냐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통적인 여자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성차별주의자인 남자는 그들에 대해 예절 바르고, 종교적이며, 보살핌을 베풀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인내심 있고, 순진하다고 묘사헸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 역시 전통적인 여자를 그런 식으로 보는 한편으로 '대디 걸'이라거나, 차분하다거나, 수동적이라거나, 머리가 비었다거나, 천치라거나 단순하다고 보기도 했다.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은 오히려 비전통적인 여자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런 여자들이 똑똑한 체 하는 인간이라거나 남자 같다거나 공격적이라거나 페미나치라고 불렀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도 비전통적인 여자를 간혹 이런식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편으로 그런 여자에 대해서 독립적이라거나, 자신감에 넘친다거나, 말괄량이라거나 그 누구의 허튼소리도 받아주지 않는 여자라는 식으로 보았다. 여자들도 가정주부들을 커리어 우먼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남자들이 커리어 우먼을 지적이고, 열심히 일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은 또한 커리어 우먼을 '공격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냉정한 사람'으로 보면서, 자신들이 커리어 우먼을 두려워하고, 시기하고, 겁을 먹기도 하고 경쟁심을 느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은 커리어 우먼을 '자신감 넘치고 정직한'사람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겁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칭찬하는 쪽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들은 주부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다.

- <여자의 적은 여자다>, 필리스 체슬러, 여자들에 의한 성차별, p142

반응형
1 2 3 4 ··· 35 
BLOG main image
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by dung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07)
우리집 곰두리들 (149)
만날만날 (52)
토동토동 (370)
리뷰 (514)
나의 시간 (145)
알아차림과 수용 (0)
S - 심리치료 (145)
S - 일러스트와 디자인 (24)
w - 모에모에 설정 (0)
W - 나의 끄적끄적 (0)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04-20 18:33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