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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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2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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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신의 무지와 지금까지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잡은 책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보다가 그만 울었습니다. 핼쑥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감추어진 옷속에 있는 그의 몸은 얼마나 앙상한지 짐작이 되는 이유는, 지금 투병중이신 아버님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보여지는 모습을 짐작컨데 얼마나 힘들게 움직여왔는지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을터인데, 그는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사이트를 관리하고 책을 읽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더라도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문제로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들은 인간(우리들)에 대한 혐오. 그 안에는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렵습니다. 생명권을 가장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눈앞에 이익이나 무관심을 피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내가 중요한 것처럼 남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가 만났던 대부분의 관계자 분들은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냥 우리 주위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 2세들이 대물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외면하는 원폭 1세들. 심지어 계속(운동을) 한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사람까지. 자기 자식도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자식들 때문에 결국에는 회피하는 1세 부모님들. 본인이 선택해서 얻은 고통이 아닌데도 주위에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거이 없었습니다. 고통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그것때문에 삶은 더더욱 고통으로 얼룩지고 있는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간의 문제 때문에 2세의 유전적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아에 방치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약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되는 일이 참 많은거 같습니다. 책들을 보면 사죄를 하는 독일 그리고 사죄 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비교하는 책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렇지만,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죄한 국가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자신이 알기로는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들의 사죄는 있는 사람들(국가)에 대한 사죄지 없는 사람들(국가)에 대한 사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략전쟁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혹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더 비약하면 도움이 되었다는 논리로 약자의 고통은 더욱 비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신랑과 결혼한다고 했을때 신랑의 건강의 문제로 반대했던 저의 가족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쩔수 없는 문제인지 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만 나의 가족들에게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 뭐 저는 거기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동생이 아픔이 있는 분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저에게 소개한다면 그의 결심을 존중하고자 노력할겁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개인적이라고 치부하고 그럼 단체에서 배척하거나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들은 정말 지향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몸또는 마음이)아프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다른 사람들이 박탈 할 수 있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넝마가 된 특별법이 언젠가는 수정되기를 바라고... 과오에 대해서 일본정부나  이 정부(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우리'에 언어까지 뿌리내린 느낌입니다.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정말 이상하네요.)그리고 미국정부도 그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주기를 희망하며 그들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특히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희망합니다. 아는 것이 없는 주제에 편협적인 시각으로 보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것이며 알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신랑이 우리들의 아이들이 자랄 때는 좀더 웃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이해하고 울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는 세상이 되었스면 좋겠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갔을때 들었다는 그런 말들을 듣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었스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은 이야기가 저의 결심과 소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전화를 해볼려구요. 저의 직업적 기술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해서 정말 좋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네이버를 검색하다가 무려 '제노사이드'라는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씁쓸한 이마음. 좀비 제노사이드더군요. 그냥 좀비의 은유적 의미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게임은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여러가지 것들이 우리들을 더 아무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하도록 하는 근원인거 같아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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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에 대한 침묵 내지 은폐는 한국 사회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이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한국의 히로시마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차이였다. 복잡한 가닥들이 얽혀 있는 역사적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행운이나 불행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가장 손쉬운 해결 방식이다. 물론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해결이 아니라 그저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상처는 안에서 곪아 터지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단 문제를 공론화하여 진상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 점에서 히로시마는 합천보다 우월했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 현황이 명백해지고 나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런 다음 정당하고 적절한 해결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의 이러한 알파와 오메가를 회피하려 할 때 온갖 잔꾀와 가식, 손익계산 또는 냉담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히로시마식 평화가 합천식 체념보다 별로 나을 바 없었다. 형률 씨는 오히려 한국에서 진행되는 과거사 관련 입법이 일본에서는 이루어진 일이 없는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6장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특별법 입법을 외치다, p173

"생명권에 앞서는 인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운동이 다른 무엇보다 생명권을 수호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사회적 차별의 철폐와 평화의 앞날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그는 "핵 시대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바탕이 된 인건회복운동"을 주장했던 것이다. 형률 씨의 운동은 마지막 순간까지 애초의 문제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 8장 목숨과 맞바꾼 환우의 인권, 원폭피해자 운동은 인권회복 운동이다, p224

전쟁에 대한 한국 원폭 2세 환우의 관점은 히로시마식의 전후좌우가 다 빠져 있는 "허구적인 평화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 정부를 포함한 일본인들 대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이 일본인의 국민적인 피해 경험이며 인류사에 의미를 남긴 보편적인 경험이라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전 세계에 반핵과 평화를 호소하는 국가적 사명을 가진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미국의 원폭 투하를 자초한 책임은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동시에 식민지 지배와 전쟁 동원 등에 대한 일본의 가해 책임도 은근슬쩍 감춰버린다. 이러한 일본식 '피폭 민주주의'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먼저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도 정신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피폭 민주주의'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먼저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도 정신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피폭자 원호법'과는 달리 한국의 특별법은 '간접 원폭피해자;인 원폭 2세 환우를 벚조문에 명문화하고, 그 존재의 뿌리를 밝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어떠한 핵무기의 위협에 대해서는 안전한 사회 방어망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형률 씨는 누누이 강조했다.
특별법에는 진상 조사와 더불어 기념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형률 씨는 '한국의 히로시마'라고도 불리는 합천에 '한국 원폭피해자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박물관'이 설립될 때 그의 운동도 일단락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존엄성이 다시는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반인륜적 범죄와 그것이 낳은 참상을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국내외 반전평화운동세력들과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다녀와서 느낀 점이 많았다. 기념사업이 추구할 것은 자료의 정리나 학술적 연구도, 물론 "허구적인 평화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은 더더욱 아니다. 개개의 생명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에 공감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역사의식과 도덕적, 정치적 의식을 키워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대의에 부추어볼 때, 합천은 인권과 평화의 울림이 시작되는 진원지로 거듭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곳에 군사독재자의 망령이 깃든 '일해공원'을 세웠단 말인가. 참으로 웃지 못할 소극이 아닌가. 이와 같은 퇴행을 막아내는 것이야 말로 특별법 제정의 시대적 당위성이다.
- 고인의 삶을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김형률이 그린 특별법의 밑그림, p261-262




한국원폭2세환우회
http://cafe.daum.net/KABV2PO

한국원폭2세피해자 김형률 추모사업회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내 tel_ 02-735-5811-2

메모_ 관련서적들
기억을 둘러싼 투쟁, 김민철, 아세아문화사
히로시마의 불꽃, 김원일, 문학과 지성사,
기억과 망각: 독일과 일본 두 개의 전후, 다나카 히로시 외, 삼인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 기억, 부루마, 이안, 한겨례출판
고통의 역사: 원폭의 기억과 증언, 정근식, 선인
한국의 히로시마, 이치바 준코, 역사비평사
전쟁을 기억한다: 히로시마 홀로코스트와 현재, 후지와라 기이치, 일조각

제노사이드조약 [Genocide Treaty]
일시  1948년 12월 목적  집단살해범죄의 방지 및 처벌
집단살해범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제노사이드란 특정의 민족이나 집단의 절멸을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생활조건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하며, 집단살해 또는 단체적 살해로 번역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스 독일과 일본에 의한 전쟁범죄인 ‘인도에 관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대한 비판으로서 국제연합이 1948년 12월 제3차 총회에서 채택, 51년 발효시킨 조약이다.
이 조약은 국민·인종·민족·종교 등의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국제범죄로 규정하였다. 또한 이 조약에 의하면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①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일, ②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일, ③ 육체적 파괴를 가져올 생활조건을 과하는 일, ④ 출생을 방해하는 조치를 취하는 일, ⑤ 어린이를 다른 집단으로 강제이송하는 일 등의 집단살해를 행한 자는 전시·평시를 불문하고, 또 통치자·공무원·사인(私人)의 구별없이 처벌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공동모의에 참가한 자·교사자·공범자도 함께 처벌된다. 심리(審理)·처벌은 각국이 자국의 법원을 통하여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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