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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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1~2

히가시무라 아키코, 애니북스



지인 O님이 취향이 아니라고 저에게 주셨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입장인 저에게는 좀 뭐랄까 자극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공감이 가고 그리고 선생님의 폭력에 대한 묘사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와닿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선생님의 대하여 다르게 수용하는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간격이 벌어지는지 좀 생각해봤는데, 이쪽은 본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고 그리고 본인이 선택해서 나아간 길이라서 더 그랬던거 같기도 한데 선생님에 대한 묘사는 폭력에 대한 희화화가 크게 느껴지지는 건 아니었어요. 분명히 그 선생님에 대한 행동에 대한 관찰이 있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실에 계속 나가게 된건 자신의 선택이었던건 분명하니까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구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야 하는 부분은 저의 경우에는 선생님에 대한 죄책감에 가까운 회한이었던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만나러 가봐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그리는 시점에는 은사님이 고인이라서 그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부분은 뒷권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요. 

다만 계속 후회속에서 있는데 입시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리고 그 후에 졸업하고서도 선생님께 몇년동안 배웠던 것들에 대한 부분은 그 후회속에서는 아에 사라지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건 작가 본인의 후회가 어느정도인지 몰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루구요. 

다만 그 선생님이 본인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 좋아하실지 아닐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것이지만,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는 걸 좋아하실거 같다는 건 저자의 시선으로 걸러진 작품을 보면서도 보였습니다. 아마 만화를 그린다고 이야기 하셨어도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셨을거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것도 이해는 충분히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네. 그렇죠. 만화를 한다고 말하면 ... 뭔지 알아요. 저도. 


선생님이 원해서 선택한 영역까지 모두 본인의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가져와서 등에 지고 있는거 같아서 읽는 내내 그건 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서 수업을 늘린거죠. 당신에게 충분히 넘치도록 배려한것도 그건 분명히 선생님의 선택이었어요. 어떤 걸 받기 위함이 아니라요. 이렇게 해서 당신과 그림을 그리면서 함께 나아갈수 있다면 참 좋은거고... 아니라면 그 좌절도 본인이 가져가야 할 영역일 따름이죠.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한 영역에 대한 부분은 당신 스스로의 온전한 책임으로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가는 그 길에 만날 수 없다고 하여도 그걸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할수 없는거니까요. 만남에 감사하고 그 만남을 충분히 누렸다면 그 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순간과 삶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났고 본인의 삶의 8년이라는 시간동안 선생님과 꾸준하게 함께 걸어갔다는 것. 그건 굉장한 축복이고 그 시간을 그 선생님은 정말 반가워하고 즐겁게 보내셨을거 같았어요. 

지금에 와서 보이는 것은 지금이니까 보이는 것 이니까 그 후회를 계속 해봐야 지금의 나의 삶에 어떤식으로 영향을 주고 그 생각이 자원이 된다면 그 생각은 이어나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대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고인이라면 그 고마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어 주는것이 좀더 생산적이고 그리고 고인이신 그분도 좋아하실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은 반추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받았던 제일 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하지 못했어요. 반추에 가까운게 아닐까 하다가 읽어 나가면서 중간에 선생님이 이미 고인이시기 때문에 작품안에서 전체적으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이 책 자체가 이제 고인이신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방향이니까 그런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매체를 통해서그 마음을 담아내서 이 책을 읽는 어딘가에 있는 누구에게도 그런 은사님이나 소중한 존재인데 소원해진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큰 힘이 되어줄거 같기도 해요. 그치만 소원해졌다는 것에는 어딘가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매체의 간극을 넘고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자극을 받아도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한 선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 온전하게 선택한 것이지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밀려서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요. 버티는지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결국 자신만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극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히가시무라씨 자전적인 만화에 대해서 기대치가 낮았던 이유는 작가분의 전작중 하나인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의 뒤의 본인의 경험을 읽고 작품 본편의 에피소드들이 재인지 재경험 되는 일이 었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기대-어느정도 폭력에 대해서 희화화 하는 부분 혹은 미화-는 처음부터 내려두고 읽었습니다. 정확히는 어느정도 각오를 했다고 해야하나요? 네 각오하고 읽었던것 같아요.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떨 때는 다정했다가 어떨 때는 이해할수 없는 수준으로 사고가 비약하며 동시에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 권말 후기에 작가는 아버지 캐릭터를 본인의 아버지를 롤 모델로 했다고 고백했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신과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반영되었다는 것도 이야기 했던거 같아요. 

제가 그때 받았던 느낌은 아버지와의 기억을 지나치게 이상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과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화의 연장선으로 미화(?)하는 형식과 동시에 그 폭력적인 장면 자체를 희화화 해서 타인으로부터 웃음을 유도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유없는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을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가져오는 것도 굉장히 불편하고 용납하기 힘들었기에 불쾌함이 굉장히 크게 올라왔던걸로 기억합니다. 

부모가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워서 늘 예상범위에 벗어나는 위인이라서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을 이해하기 함든 경험은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이고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할때 이해받기 힘든 범주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걸 언어화 할때 쉽게 표현할 수 있게 전환되는 것이 개그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다고 하여도 그것에 대해서 견지하는 태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희화하 한다고 하여도 그 안에서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이 한 아이에게 (개인차가 있겠지만) 얼마나 고통의 경험이었는지에 대한 부분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히가시무라 작가에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매체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풀어라는 것은 아니지만, 뭐 간결하게라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했다면 제가 이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읽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지나체게 저의 기준으로 감정 이입을 해서 이사람이 그런 부분도 함께 가져가는데 그것을 그냥 떠나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뭐 암튼 몇년전의 저는 이 사람을 그렇게 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파리 공주>의 개그센스는 참 좋아했구요. 건드려 지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개그센스는 그만큼 매력적 이었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졌던 지점도 그런 괴로움을 희화하해서 소화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뭐 근데 모르는거죠. 매체로 표현하는 것 자체도 경험을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방식으로 재구조화 되는 것이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펙트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는 사실... 경험이 왜곡된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구요.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화실에서 티슈케이스를 그리시던 할아버님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전시회에서 그 할아버님의 그림에 선생님이 주신 피드백이 참 좋았습니다. :)  그나저나 저자분은 복받은 인생이네요. 저런 선생님을 만나기도 힘들죠. 저런 후회를 남길만한 인연이었다는 것이.... 전 부럽네요. 그럴만한 은사님이 있다는 것이. 회한의 마음이랑은 별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부러운거에요. 슬럼프에 달려와서 그사람이 격려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격려를 해준다는게... 정말 감사하죠. 나라는 개인에게 그 가능성(?)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본인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준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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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무라가의 아들> 1~3(완)

메이지 카나코, 현대지능개발사 



<언덕위의 마법사>를 읽고 반해서 고민 고민하다가.. 도서정가제 전날에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질러버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 기대한 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했습니다. <언덕~>이 너무 대단한 작품이라서 그런거 같아요. 뭐 나쁜건 아니었습니다. 성장만화인 점을 감안하면 대체적으로 좋은편 이었던거 같아요. 

큐우쪽은 개인적으로 사실 사랑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각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리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가 엄마인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큐우의 대인관계의 제한적인 부분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시각이 생기면서 각성하는데 이 친구의 관계가 오로지 그 친구를 향해 있던걸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사실 그런걸로 치면 큐우의 각인 상대(?)도 매한가지 일텐데 어째서일까 저는 큐우쪽이 더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흐름은 고등학생에서 입시를 준비하면서 좌절하고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것들이나 대학에 진학해서 점차 관계나 주변이 변화하는 시기를 천천히 잘 그려져서 그런면은 굉장히 공감이 가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큐우의 감정선 변화도 비교적 그랬던것 같아요. 

읽으면서 많이 괴로웠던 부분은 형에 대한 에피소드 이었어요. 어릴적에 당했던 그 경험-성폭행-이 그 사람의 삶을 전반을 어떤식으로 지배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뭐 그려지기는 지금은 어느정도 현실에서 잘 적응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전 애인이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본인이 역으로 제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 아니 사실은 명확하게 여전히 진행중이라는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그리고 그걸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보내줬을지, 타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경험을하고 살아왔을지... 마음이 참... 고향에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소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때 참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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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이 안다>1~3(완), <꽃의 고향에서>

타카라이 리히토, 현대지능개발사


<세븐데이즈>를 보고 궁금한 마음에 1권을 보고 궁금해 하다가 2권과 3권을 사러가서 외전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외전까지 한꺼번에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소감을 말해보라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_- 저 웃고 있습니다. 

재미있다고 리뷰에 적어주셨던 분들!! 저 님들에게 낚여서 충실하게 읽고 그리고 이렇게 분노의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ㅠ_ㅠ  에이 젠장!!

외전까지 읽은걸 진심 후회했습니다. 아마 <꽃만이 안다> 전권만 읽었으면, 이렇게 까지 빡치는 마음은 없었을것 같아요. 외전까지 읽게 되어서 덕분에 이 작가분의 취향을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취향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렇지만 꽤나 취향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패턴이 반복되는 걸 보고 뭐라고 설명해야 해야할까요? 뭐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라고 하면요. 마음이 정말 짜게 식었습니다. 

일단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리고 손주도 봤다는 사실이... ㅎㅎㅎㅎㅎㅎ  저의 기준으로는 용납하기 힘들더군요. 상대방쪽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결혼해서 이쪽도 자녀를 출산하고 손주도 봤을것 같네요. 그렇다면 또 다른 외전이 나온다면 이번에는 교수님의 손주가...? -ㅁ- 허허허허허!!!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아니하며 마이 페이스로 사는 타입의 아이를 보는건 꽤나 즐겁습니다만, 연애 라인으로 가면서  그런걸 신경쓰게 되는 구조는 충분히 인간다웠어요. 자기에게 중요한 상대방에게는 그런것들을 살피게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니까요. 

이 친구는 그런 성격이니까 상대방의 외모에 한눈에 반해서 그대로 올인인건 가능하다고 하고~ 반대쪽인 그 친구는 그두번 마주치고 상대방의 자상함을 느끼고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면서도... 그런것들을 느껴서 점점 짝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총각 그냥 결핍인거자나요!! 자신에게 잘해주는 상대방에게 반한다는 건!! 말그대로 애정 결핍....................................... ...................... 차라리 외모에 반했다고 해주세요;;;;


본인의 서술에 의거하면, 성실한 어머니와 자상한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 무엇이기에 라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 아이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건 '유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가 동시에 사라졌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인 할아버지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할아버지가 대려온 사람에게 원래 원했던 것도 그러한 관계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균형을 무너지게 만든건 카와바타씨. 십대인 애한테 손을 대다니!! 이 미친... XXXXXXX !!! 

당연히 정체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건 지극히 정상적이죠.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는 것을 원하면서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지지를 받는 걸 원하는게 사람이라는 존재니까요. 특히 남자들은 이 부분이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애정을 갈구하는 포옹과 육체적인 포옹의 구분을요. 그것을 반드시 성적으로 욕망해야지만 가능한다고 생각하도록 이 사회의 시스템이 가르치니까요. 아 욕나와... -_-^^ 


아니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주가 생겼을때 그렇게 기뻐하면서 메세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관계는 미사키의 어린시절에만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끝까지 봐도 그런건 전혀 언급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어찌하여 자기 자식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지 알아야지~ 이 가족의 패턴을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뭐 어찌되었던 간에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저자의 취향이기 때문일까요? 할아버지나 미사키나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자아의 견고성을 가지고 봤을때(특히나 미사키의 경우) 그런 부분이 취약한 타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결혼해서 그 삶의 궤적이 어떠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몸에 담고 다른 사람과 삶을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한 시작에 대한 부분만 있었을 따름이에요. 

그 시절에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그럴 수-억제적인- 있었다지만, 미사키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은 정말 만나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위는 하자나요. 아닌가? ㅠㅠ 온실속에서 자란 미사키. 온실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의 상실에 대한 외상은 어쩌면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이 크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의지한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세번째로 의지한 사람이 '이중 구속 메세지'를 주는... (아오...;;)    참고로 의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중 구속을 주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이 정신분열증 발병률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사키가 상처가 많고, 두려움이 크고 억제적인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상대방을 만나는 건 큰 축복일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다시 외전의 이야기가 오버렙 되면서 저는 몹시 불편해 집니다. 그들 각자의 사정은 알겠어요. 인간으로서 그게 얼마나 필요했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근데요. 결혼 하셨자나요. -_- 

개체를 이어나가는 걸 선택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는거고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배우자에 대한 예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체를 이어나가는 건 그런 책임이 없이는 불가능 하니까요. 당신과 당신의 부인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그 안에서 멀 느끼고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당신의 배우자는 껍데기만 잡고 살았다고 느꼈을지 아니면 행복했다고 느꼈을지...는 당사자만 아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사키의 부모님이 미사키를 어떤식으로 양육했는지도 모르지요. 미사키가 서술하는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는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를 더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당신의 대인관계 역동이 당신의 손주대에서도 반복되었다고 전 느끼는 것 같아요. 본인이 억제한 역동은 대를 이어서 내려오니까요. 알고 있나요?  그래서 외전을 보고 명백하게 불쾌해졌던것 같습니다. 

전 미사키가 아리카와를 좋아하게 된것도 그리고 그 개자식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냥 그 아이가 그런 성향이 있어서 이기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불쾌한거죠. 제가보기에 당신의 그것이 아이에게 투사된 부분이 크다고 느껴지거든요. 저의 기준에는요. 물론 그런것들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가지 사정들도 있었지만요. 

뭐 미사키랑 아라카와가 행복하다니 저로서는 매우 다행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쪽의 부모님에게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그리고 아라카와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강은 이미 건너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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