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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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수놓이는 소리>4, 토리코 긴, 학산
완결권이에요. 우리의 현실과 아주 부합한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계를 넘어가서 만들어진 세계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는 초월적인 이상이나 꿈은 없었어요. 엔딩조차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종의 개체로서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게되어 구원 받은 - 구원이라는 단어가 애매할지도 모르지만, 환경에 의해서 보통(보통이라고 정의되기도 애매하지만)의 혹자는 이상적인 인간이라면 알고 있어야 할 인간의 따스함을 알게 된 부분- 존재는 체리이더군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건 역시 만들어진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어요. 현실세상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전 그런걸 두고 '기적'이라고 한다고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아요. 
그는 인간으로서 고독한 삶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삶의 고독했던 그에게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는 오직 아저씨 뿐 이었지만, 아저씨의 마음에는 체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다른 존재들이 있었어요. 그런 아저씨를 보는 걸 그는 괴로워하더군요. 마음속에는 하나의 존재만 있어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것은 오직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로 보여졌습니다.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분노와 자신이 그런 버림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분노하고 그리고 그 분노를 그들의 대표적 존재에게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체리는 보는 눈이 있는것 같습니다. 아저씨나-, 족장님이나- 모두 그런 그의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으니까요. 살아있는 존재로서 고독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을 그는 그것을 지나치게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며 정면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괴로움도... 그의 분노도... 포장이나 확대도 없이 그저 그것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인간으로서 고독했던 그에게 빛은 내려왔습니다. 아저씨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싶다고 말했고, 구스타가 그에게 왔고 그리고 그녀가 그를 향해서 날아왔습니다. 자신의 고독과 그 두려움을 알아주는 그녀가 그에게 왔습니다. 구스타와 함께... 그리고 구스타는 아저씨에게 그가 결코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다시 그들을 향해서 갑니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 있어주기 위해서요. 

종으로서 멸망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는 그 위기에서도 헬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그 상황을 포지티브한 상황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일족의 재앙을 생각하며 두려워 하며 이런 비통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그의 소중한 친구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일족의 마지막 예언자인 리버는 그들에게 그들이 종으로서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절멸의 위기는 그들을 살짝 빗겨간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혼은 소중한 존재인 폭스를 가슴에 묻게됩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끝에서 그 위기에서 살아남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족의 마지막 예언자가 자신을 희생해서 교환한 그 노력은 어딘가에 있는 소수민들의 힘이 되어주는 것은 실패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사실 저는 '냉정하게'라고 적고싶습니다) 보여주더군요. 
리버는 예언자의 마지막 힘을 쓰면서 인간이 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했던 취사선택안에서 그들의 버리고 가야 했던 것들을 보고...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슬퍼하는 부분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드가 리버가 이해한 그런 것들을 모두 이해했고 그가 그들을 위해서 대안을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인간-이 살아가는 그 공간에서 소수자의 위치를 지켜주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고 지금도 여전히 반복 재현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그가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수정해서 앞으로 나아갈지는 인간으로서 그들-그와 그외의 인간들-의 전망에 따라 다르겠지요. 이것이 참혹하다고 제가 생각하는 현실입니다.

한편으로 종으로서 고독하지 않았다고 예언한 리버의 예언은 그들의 종은 공룡에서 새라는 존재로 이어저 내려오고 있고... 어딘가에는 다른 새종족을 찾아서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도 그리고 어딘가에서 부락을 이루고 다시 그들의 깃털을 기르고 살아가는 그들을 예견하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버는 로드와 등가교환법칙에 의해서 소수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대안 혹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장치 아니면 예비책을 마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일족들이 그 오지에서 살아남아서 개체성을 이어간다면 그들은 이전에 그들이 생각했던 그런 온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고유성을 어느정도는 놓아두겠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구전되는 방식이던지 아니면 그들의 신화로 남아있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자는 그들의 생활 습관에 일부로 남아 있는 방식이겠지요. 
그런식으로도 다른 개체의 문명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들은 종으로서의 몰락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몹시 슬퍼졌습니다. 개체로서의 고유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들은 그들로서 이전의 방식으로는 그대로 살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다시 인간의 존재 - 스스로가 완벽한 혹자는 중심인 문명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 에 의해서 그들은 세상에 재발견 되는 날이 필연적으로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는 철저하게 박물관화가 이루어지며 유린당하고 그리고 그들-인간-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소비되겠지요. 오늘날의 많은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그러듯이...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가 의미가 있다면 있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원형을 유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은 분명 평생 담고 살아갈것 같습니다.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번뇌하고... 그리고 새로운 답을 찾아서 떠나는 형국으로 말이에요. 세상에 나오는 길을 선택하고 그리고 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아가는 길은 정녕 없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좀더 형평성을 유지한다면 그런 영역의 대안들을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가에 속해있지 않아도 인간으로서의 개체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고 그들 스스로의 경향성을 지원받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고유성에 대해서 서로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면요. 양극단을 오고가는 이 세계의 주축이 되는 이 세계관은 어떻게 해야지 극복이 가능할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전 좀 네가티브한 면이 있어서 '살아있다'라는 것 만으로 충족되는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살아있다'라는 그 텍스트는 여러방향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숨을 쉬는 것 뿐만 아니라 나라는 고유한 개체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공간에서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받고 그리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양극단을 오가는 논리로 비난받고 결박당하는 일이 없어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온전하게 인간으로서 개체로서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더라도...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한겁니다. 지금의 이 논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공존 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다는 환상... 그 환상은 지금의 저를 서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에요. 
사실 마지막에 잭이 우는 장면에서... 그가 모두에게 그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만들어진 이야기로만 받아들여 지고 그리고 그들의 살아가기 위한 경향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나름의 필터링으로 걸러내서 듣는 현실이 그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그에게는 가슴속에 살아있는 사실이고 그의 소중한 마음인데 그것이 그냥 그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여 진다는 사실이요. 인간은 얼마나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면을 볼려고 애쓰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부던히도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이 불합리하고 고통스러운 세계를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위에서 말하는 그 이상이라면, 그들에게는 잭이 말해주는 이야기 - 잭에게는 사실 - 가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두에서 잭이 했던 걱정은 그냥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관점적인 걱정일 뿐. 그런 일은 현실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잭의 최악의 상황이 온게 아니라서 다행일지... 아닐지. 나탈리가 그가 말한 진실을 진실이 아닌 그녀를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 인간에게는 멋진 방어기제가 있어서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에 충분한 것 같아요. 그들(조인)은 이것을 알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잔혹한 공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한 충족조건이죠. 어떤이는 '낭만'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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