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한겨례출판
D양 집에서 모시고 온 책. 얼마전에 읽은 빅터 아저씨의 책도 D양의 신랑의 책이었으나 소인이 양도받음. 감사요. ^_^* 덕분에 박노자 선생님의 책은 최근에 나온 신간 이외에 전부 가지고 있게 되었다능. 한권은 친구 M씨의 집에서 아직도 있지만; 콜록.
박노자 선생이 노르웨이에 가서 살면서 느낀 것들이 메인인 책들. 9.11 인근의 시점까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음. 가장 놀라웠던 것들은 뭐 다른 것들도 놀라움 투성이었지만, 9.11에 대한 주류(?)의 시각. 너무 놀라워서 몇번이고 다시 읽어봤으나 사실이라고 하니...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뭐 애시당초 비교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로.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음.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잘 강탈해가서 드시고 여전히 잘 드시고 그걸로 잘들 사시는 구나 하는 느낌.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배경에 '강탈' 혹은 '착취'나 '무시'가 있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나의 결론.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부러웠습네다. 이럴때 해야하는 말은 "쳇."

*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이철우, 북로드
던져버렸습네다. 별로 취향도 아니고...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 이긴 하지만, 주로 통계를 근거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관계로 본인의 주요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더군요. 얻어온 책이라서 그냥 보내드릴 예정. 







반응형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2005. 10. 30

어젯밤에 계속 몇 시간 동안 박유하 교수(세종대)의 <화해를 위하여>라는 신작을 읽었다. 그런데 우경화돼가는 일본과 우리가 꼭 박유하 씨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화해' 할 필요가 과연 있는지, 가해 세력의 직계 후계자들이 집권한 구 식민모국과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지 나로서는 솔직히 큰 의문이다. 일본의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는 저자의 참신한 자세애서 영감을 얻을수는 있었지만, 그 의견 중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박 교수의 책을 읽다가 한 가지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기를 인용한 부분이었다. 한 할머니가 말했다는 "왜놈보다도, 나를 모집책에게 팔아넘긴 내 아버지가 더 입다"라고 한 대목이었다. 숙고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너무나 쉽게 '민족'의 테두리에 집어넣곤 한다. 즉, 그건 저들 '악한 민족'을 괴롭힌 '사건'으로 규정되곤 한다. 문제는, 여성이 남성 본위의 사회에서 피해를 입는 사건치고 그렇게 단순한 것은 없다는 데에 있다. 일단 여성은 고질적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입장에 묶여 있기에 어떤 커다란 피해를 당하게 되면 꼭 한쪽으로부터만 당하지 않는다. 수많은 가부장적 사회를 보면 강간을 당한 아내에게 남편이 "당신의 행실이 가해 남성을 자극해서 이 재앙을 자초했다"고 오히려 질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여성들은 남성 우월주의적 사회에서 이중, 삼중의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피해의 복합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식민지 구조에서 기인한 억압, 강제성, 민족 차별 등이 근본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정작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인신매매한 조선인 남성이나, 자신을 정신대에 보내놓고도 제 딸만큼은 빼돌린 '있는 집'의 조선 여선생이 더 미울 수 있다. '가부장제' '계급' '사회에 만연한 폭력' 그리고 '식민지적 민족 차별과 강제'가 중첩한 상황에서 '민족'적 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피해자에게 2차 폭력이 되지는 않을까? 심지어 1990년대 후반 일본의 '국민기금'을 받은 일분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난한 국내 시민단체나 언론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국민기금'이 아무리 "의도가 불순하고 국가적 사죄와 배상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성폭력을 당한 경험 때문에 일생이 망가진 사람에게 우리가 '민족'이라는 이름의 도덕적 린치를 가할 권리라곤 없지 않은가?
사실, 1990년대 초반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고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 남성사회 자체가 피해 여성들에 대해서 얼마나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예증이기도 하다. '민족적 입장'에서는 '우리 조선인'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 일본에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당위성이 성립됐지만 동시에 자신의 가족 중에서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을 '수치'로 보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경위가 어떻든 간에 여성이 중산계층 '현모양처'의 전형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중산계층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수치'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위안부 과녈ㄴ 문제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늘 "그들은 성매매 여성이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갔을 뿐이다"라는 부분을 강조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사 '성매매 여성'을 지금까지도 얼마나 멸시하고 차별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안부들이 '정당한 피해자'가 되자면 '몸을 파는 여자'와의 차이가 거듭 확인돼야 한다. 일제에 의한 강제, 일제에 의한 일차적인 피해는 당연히 인정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차, 삼차, 사차로 피해를 입힌 것은 여성이 이등시민 이상이 될 수 없는 이 사회다. 쉽게 '민족적 의분'에만 빠지곤 했던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반성했을까?
- <만감일기>, p 280, 박노자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노자 선생님의 책들중에서 어느정도는 선생의 얼굴이 표지에 있는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문학 서적에서 책 표지에 저자 얼굴로 디자인을 하는 책은 흔치 않은 관계로... 박노자 선생님의 신간이 나올때면 이번에는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편인데 최근의 신간(신간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던 가장 최근작인 관계로)인 <만감일기>의 디자인은 좋아하는 디자이너중의 한분인 오필민씨가 디자인 한 책이었습니다. 책이 나왔을때 보고 알았죠. 오필민씨 디자인이라구요. 이분의 책은 이분만의 특이함이 있거든요. 한국의 북디자이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분이에요. 박노자 선생의 책들중에 오필민씨가 디자인 한 책들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1.2권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만감일기>가 인물과 사상사가 아닌 한겨례출판에서 나온 줄 알고 있었다가 인물과 사상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건 박노자 선생님의 강연회에 갈때마다 느낀건데요. 강연회 사진이 항상 청춘시절의(좀더 오래전의...) 사진입니다. *_* 우어어... <만감일기>의 각부마다 선생님의 사진으로 디자인을 한 도비라를 볼때마다 그 사진들이 생각나서 즐거웠습니다. 가끔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사진이 표지에 자주 쓰이는 이유는 선생님의 정체성 문제도 있지만, 얼굴의 미모도 매우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ㅛ=;;; 부끄럽지만, 저는 얼굴 팬이기도 하거든요.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뭐 어려운 것들도 있었고 매우 공감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래는 매우 크게 공감한 부분인 '군 폭력 관련 보도를 보고'입니다.

......우리에겐 똑같은 '때리는' 행위라도 위로부터면 '사랑의 매'고 아래로부터라면 '패륜' '부모.교사 폭력'이 된다. 같은 내용과 방식의 발언도, 화자와 청자의 지위에 따라 '훈계'가 될 수도 았고 '감히' 하지 말아야 할 '말대꾸'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어떤 문화적 혁명을 통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르고 복종해야 한다'는 부자유친식의 폭력적이고 중세적인 이데올로기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는다면 군 폭력의 심층적인 문화적 배경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은희 님'이라고 부르고 교수가 학생을 '한별 님'이라고 부르는 등 동등한 호칭을 구사하고 수업시간에 서로 '요'자를 붙어 대화한다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손들기가 조금 어려워지지 않을까. '선생님'과 같은 호칭엔 좋은 의미도 많이 담겨져 있지만 그 지긋지긋한 가부장적인 요소들은 평등사회를 머나먼 꿈으로 만드는 것 같다.
- 나를 넘어, 2005.11.5 군 폭력 관련 보도를 보고, p94-95


살아오면서 저의 큰 불만의 큰 축의 하나가 저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일에 대한 압박감이었어요. 더 솔직하게 말하라면 나이라는 이유로 '너는 무엇을 해야한다'라고 강요받는것들에 화가났어요. 뭐 즐거운 마음으로 강요받는 가사노동에 임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랬어요. 그래서 집안일을 하면서도 그 불평은 항상 동생에게 토했고... 그래서 남동생씨는 오랜만에 집에와서 엄마가 저에게 동생에게 먼가 차려주기를 요구할때 화를 냅니다. ㄱ- 후후후. 자기가 차려먹는다고요. <- 매우 잘키웠어요. 학교에서도 남자선배들이 여자선배나 후배들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 본인이 화를 내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결론은 얼마나 인식하고 바라보는가의 차이인거 같아요. 원래부터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완벽하게 타고나는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습으로서 그 성향이(남성성, 여성성이라고 명명되어진) 완성되어(?) 지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이야기 하고 싶었던건 이게 아닌데... '권위'라는것이 무서운거라는 걸 매우 통감한적이 있었어요. 어릴때 아버지한테 혼날때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혼나고... 그렇다고 변명을 하면 그게 말대꾸가 되어버려서 난감했던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라고 결심했었거든요. 인터넷 클럽일을 하면서 '권위적이지 않는 시삽이 되자! 모든것을 독점하지말자!'라고 항상 마음속으로 되뇌였는데요. 항상 그렇게 되기는 힘들었어요. 분위기를 잡아야할때는 저 또한 배운 방법 그대로 재현하는 존재였거든요. 다른걸 하고싶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몰라서 충격받았었어요.
그리고 더 문제인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거든요. 저는 그게 착각이길 바랬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는 정말 기가 막혔어요. 뼈속까지 배여있는 생활속에 남성성(혹은 가부장적)에 대한 우리들의 길들여짐을 알고 충격받았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제가 조금더 생각해서 노력했다면, 달라졌을수도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후회는 그만하고 앞으로 노력해야죠.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반응형
우호-ㅂ-*
매우 기대됩니다.
내일이야 말로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ㄱ- 라는 결의로 갈 예정입니다. 일단은 혹시나해서 전화해서 예약(?) 비스무레하게 했습니다. 그래봐야 이름을 알려주는 것 이지만; 그래도 워낙에 인기있는 분이신 관계로;; 관계자분도 7시에 시작하지만 6시반정도에 오시는게 좋다고 했는데요. 전 아마 6시부터 가서 대기 할 예정입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연대서 강의할때 팬픽도 그렸었는데;;; 하핫; -.,-;;; 그 그림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끄응

이번 강의 내용은
2008년 7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박노자_ 대한민국 주식회사
지난번처럼;; 메모를 해서 정리를 해볼 요량이지만; 뭐 정리는 너무 못하는지라... 그나저나 오랜만의 홍대나들이라서 살 책들도 이것저것 많습니다. -ㅂ-*




아래는 작은책 홈페이지의 소개 전문
http://www.sbook.co.kr/view.html?serial=84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노자 선생님 강연이 7월 24일 작은책 사무실에서 열립니다.
'대한민국 주식회사'라는 제목으로 박노자 선생님이 한국을 보는 눈을 독자님들에게 보여드립니다.

박노자(朴露子, 러시아어: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1973년 ~ )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 중 한명 이다.

한국어로 쓴 여러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토종 한국 사람보다 날카롭게 한국 사회 각분야의 모순점을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한겨레 21에 컬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가지고있음.
《당신들의 대한민국》 - 가지고 있음. 민진기 디자인인가에서 디자인한 재판 디자인임
《당신들의 대한민국2》 - 가지고 있음. 민진기 디자인인가에서 디자인한 재판 디자인임.
《나를 배반한 역사》 - 가지고 있음.
《우승열패의 신화》 - 아직 읽지 못했음. 미보유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아직 읽지 못했음. 미보유
《하얀 가면의 제국》 - 가지고 있음. 묘묘군에게 대여중
《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과 공저 - 아직 읽지 못했음. 미보유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허동현과 공저 - 아직 읽지 못했음. 미보유
《박노자의 만감일기》 - 아직 읽지 못했음. 미보유

그래도 당대비평 특별호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춘천에 오니 책을 돌려 볼 친구가 없어요. 이 부분이 가장 아쉽네요. -.,- 킁. 택배로 돌려볼까 고민중...

반응형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천민 자본주의가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가진 자들만 더욱 살찌게 하는 '주식회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노동자, 농민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어가는 걸까요. 월간 <작은책>이 연재 기획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눈을 뜨게 하는 대중 강좌를 엽니다. 교수직을 마다하고 변산으로 내려가 농사꾼이 된 윤구병 선생님을 비롯하여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논객들 열두 분을 모셔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실천하는 강사 분들과 작은책 독자들을 이어 주는 뜻 깊은 강좌가 될 것입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 5층 (02-323-5391)
www.sbook.co.kr
합정역 2번출구로 나와서 우리은행 사거리를 끼고 돌아가서 서교가든을 지나서 태복빌딩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저녁 7시 김진숙_ 자본 천국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
2008년 4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배경내_ 자본주의와 청소년 인권
2008년 5월 22일 목요일 저녁 7시 김상봉_ 학벌사회를 무너뜨리자
2008년 6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 김규항_ '진보'란 도대체 무엇인가
2008년 7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박노자_ 대한민국 주식회사
2008년 8월 21일 목요일 저녁 7시 김송이_ 재일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2008년 9월 25일 목요일 저녁 7시 손석춘_ 혁명은 다가오는가
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저녁 7시 우석훈_ 신자유주의가 어디까지 갈까  


-_-;;; 2007년 11월, 12월, 2008년 1월, 2월, 3월 강의가 지나가고....야 알았습니다.
매달 날라오던 작은책을 이제야 펼쳐봤습니다. OTL 바보.
김규항 선생, 박노자 선생, 우석훈 선생강의는 꼭 듣고싶습니다. 야근이여 제발 비켜가다오!!

반응형
작년 겨울에 지면으로 처음 뵌 박노자 선생님 강연에 두번째로 친우님과 함께 갔습니다.

저는 사회주의자도 아나키스트도 아닙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으며, 무관심에 가깝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저 가끔 분노를 하며 울분을 호소할뿐 그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경험한 것들 중에서 생활에 있어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만 하고 사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전히 많은것들을 알고 있지도 않으며, 움직이는 것들의 태반에 대해서 이해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들으며 그래서 책을 봅니다. 저의 바보를 극복하고,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요.

11월 21일
여전히 강연회 포스터의 사진은 초절정 청년(추측입니다.)시절의 사진이더군요.
노린건가? 라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주체측에 물어보기도 초난감한 질문이니까요.;;; 정말 물어보고 싶지만 저는 살아남고 싶기때문에 언제나 처럼 참았습니다. =_-;
언제나처럼 명쾌하며, 절묘한 타이밍에 슬프지만 웃고마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웃는 얼굴로 그런 현실과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모습도 여전히 가슴에 남았습니다.
강의메모는 하단(참고로 저는 정리 못합니다. ㄱ-)

저는 전쟁에 대해서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것은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친우가 권한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라는 책을 보고 울었습니다. 지하철에서요. 사실 전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고통의 기억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저의 경험을 대입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친우가 아끼던 개의 죽음은 사랑하는 남동생이 죽는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때 언제나 반공포스터 때문에 고민해왔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전쟁이나면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한강다리를 건너야하니 책가방에 일주일정도 튜브를 넣고 다닌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통렬하게 반응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머리에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된것들을 단어로 정리한다면,
종교의 문제. 종교의 핑계. 국익의 문제. 개인의 문제. 살인의 문제. 퇴보의 문제. 희생의 문제. 잔혹함의 문제. 사상의 문제. 자주독립의 문제. 주권수호의 문제. 우리의, 혹은 국가의, 혹자는 민족의 문제. 평화의 문제. 해결의 문제. 비타협의 문제. 완고함의 문제. 이상의 문제.... 그리고 테러(?)의 문제.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하고 얻는 그것은 정말 달콤할 것일까?
나 혹은 우리를 위해서 하는 살인이 스스로에게도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가까운 1차적 관계에만 해도 "어느 시점에서 돌이켰으면 좋겠어."라고 생각 하기도 또는 타인에게 이야기 하기도 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조금은 양보한다면 고통받으며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줄어든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피눈물이 아니게 된다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것이 우리가 아니라 인간에게 바람직한것인가. 나라는 인간. 우리라는 인간들.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들이라는 인간. 그라는 인간. 그들이라는 인간들... 살면서 작은 양보조차 아까워 하는 저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입니다. 이상은 이상인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요즈음은 다른 생각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에게 조금 아주 조금 관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이유가, 그분들에게도 이유가 있으니까요.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근원주의자"라는 말은 저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전의 저의 생각이나 텍스트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박노자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 "가끔씩 극복되기도 합니다." 
가끔씩 극복되어서 다행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저도 사소한 것에서 양보를 시작하는 극복된 저를 만나보고싶습니다.

 
반응형
1 
BLOG main image
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by dung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07)
우리집 곰두리들 (149)
만날만날 (52)
토동토동 (370)
리뷰 (514)
나의 시간 (145)
알아차림과 수용 (0)
S - 심리치료 (145)
S - 일러스트와 디자인 (24)
w - 모에모에 설정 (0)
W - 나의 끄적끄적 (0)

달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05-03 03:34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