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토우메 케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20 <양의 노래>&<차가운 손> 2
  2. 2009.02.12 <모르모트의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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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토우메 케이
예전에 읽다가 그 어둠의 끝을 알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던 <양의 노래>를 다시 읽었습니다. 엔딩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카즈야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리고 치즈나를 잃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사회적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타인에게 더 거부당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야에가시나 키노시타 모두 그의 병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했고 함께 정면으로 마주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치즈나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도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제일 위인)어쩔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는 하아. 저 자신이 느끼기에는 카즈야에게 치즈나는 혈육으로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지만, 그녀의 애처러움에 비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위해서 기억을 어떻게 포장하느냐를 엔딩에서 여실하게 보여줬거든요. 그녀를 받아드리는 카즈야도 그랬었고....
걱정되는 것은 카즈야는 기억을 잃어버렸고, 그냥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가려던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걸 알았을때는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양부모는 그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야에가시와 키노시타는 그의 옆에서 그의 고통을 지켜보고 슬퍼하겠지요.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나감'과 '정신있음', '정상', '비정상'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카즈야의 아버지는 그 부분을 보지 못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하고 그녀(치즈나)를 위해서나 아버지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좀더 뭔가 노력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이어가는건, 정신과 육체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만 이어갈려고 노력하다가는 결국 다른 한쪽의 한계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함께 파멸하게 된다는 걸 의사인 그는 간과한건지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인건지 보이지 않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자살' 앞에서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을텐데 역시나 같은 의사 미나세 역시 그런것은 범위에 넣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바램을 토해낼뿐... 결핍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집착하고 구속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덥고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그들의 가문의 유전병이 타인에게 공포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여도 연구 대상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 이었습니다. 연구해서 나올 가치가 부를 창출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희귀병으로서 고통받도록 방치하는게 사회나 관계자(학자)들의 일방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약회사들이 장사가 된다면 그걸 그냥 두었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라는건 이런 의미에서 가슴아프다는 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피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배척받고, 대안도 없고, 이어가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모든걸 개인의 불행으로 치환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가장 짜증나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다른 시각의 분들이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생각'은 소수자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니까요. 그분들의 생각은 아니니까요. 뭐 저는 사회에서 저 자신이 소수자라고 느끼는 부분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불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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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손>, 우에다 신슈
'페스트'에 대해서 공포가 있는 소년 타카시는 어느날 두번 쥐에게 물립니다. 두번째 물린 쥐는 그냥 쥐가 아니라 이상한 쥐였습니다. 그 쥐에게 '나이트시프트'에 감염되고 맙니다. 설정에서 묘한 괴리가 느껴지지만, 아직 연재가 끝난것도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나올거 같아서 그냥 별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그날 타카시는 정체불명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그 병균에서 완전히 감염되지도 않고 그렇다고해서 진행이 멈춘 상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병원의 의사에게 '쥐에게 감염되어서 죽은 존재'인 나이트시프트들을 죽이도록 강요(협박)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에는 살인 아니 살쥐(;;)를 위해서 뛰어다니고 낮에는 학교에서 졸고 있는 소년이 되어버립니다.
타카시는 같은 반의 쿄코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나이트시프트가 나타났고, 그는 쿄코를 그들로부터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녀가 질문하는 모든것들에 대해서 부정해버립니다. 그녀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반가후의 그를 따라가다가 예의 그 의사선생에게 잡혀 타카시를 위한 이중보호장치가 되어버립니다. 그 후 그녀는 그의 살쥐 행위를 지켜보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지키기위한(?) 행보(행동)을 계속 지켜봅니다. 그 사이에 나이트시프트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게되고, 지금까지 출간된 4권에서는 그들은 평소에는 보통 사람의 인격으로 포장된 상태의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4권의 마지막에서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4권이 끝나버려요. 우어어어 궁금하다구요. *_*;;;;
'나이트시프트'는 쥐에게 감염되어서 죽은 존재. 육체는 움직이지만, 좀비처럼 인육을 먹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욕구만 있어보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타카시의 손을 잡은 쿄코가 타카시의손이 차갑다고 말한데서 제목이 온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읽다보니 죽어있는 존재로서의 상징이 더 큰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었지만, 아직 죽음에 도달하지 않아서 움직이는 존재. 그게 타카시인거죠.

작화는 저런 거친 느낌의 펜선이 좋아서 보게되었는지 어쩐일인지 비슷한 시기에 좀 비슷한 느낌의 설정에 펜선이 인상적인 두 작가(토우메 케이의 작품)의 작품을 보게되어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투우메 케이 선생님의 펜선이 좀더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라서 뭔가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배경도 같은 느낌의 터치이고요. <차가운 손>쪽은 같은 거친 느낌이지만, 한번에 그은 펜선(G펜이 아닌가 싶습니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노나 강조의 컷에서는 펜선이 더 강하게 나타나서 거친 느낌이 드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그런 설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를 느껴서 뭐 음...하고 봤습니다. <양의 노래>쪽은 뭐 이용할 수 도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바라보고 지켜보고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걱정하는 어른들이 존재하지만, <차가운 손>에서는 감염된 타카시를 이용 아니 착취하고 있는 어른들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타카시)는 카즈나 처럼 서로 좋아하는 여인이 있고, 그 여인이 그의 고통을 공감해주려고 노력하지만, 타카시의 세상에서는 부모는 먼 타국에 있는 존재이며 그의 고통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의 병을 알고 있는 의사는 그를 소모적인 존재로 의식하고 관찰하고 즐거워하는 느낌까지 받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카시와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존재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상황으로 보자면 <차가운 손>의 타카시가 더 나락에서 허우적 거리는 느낌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 어두움쪽은 <양의 노래>의 카즈야쪽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저에게는 타카시보다는 카즈야쪽이 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토우메 선생님은 읽은 작품들이 주제는 항상 일관된 방향으로 있는거 같아요. <나츠메 우인장>의 선생님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방향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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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르모트의 시간>, 토우메 케이
오랜만에 읽은 이 분의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양의 노래>를 중간까지 읽다가 어두워서 포기했었거든요.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양의 노래도 보고 싶었는데 찾아 보지도 않았구요. 한국에 이 분의 책이 소개된건 <무한의 주인>이 한참 인기 몰이중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대학에서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 사이로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번역본이 나오기 시작했었습니다. 초기 단편집에서 읽었던 설정과 비슷한 설정으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학교에서 생활하는 네명의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각자가 몸이 조금씩 불편한 아이었습니다. 그러던중 한 아이가 전학을 오게됩니다. 네명의 아이중 한 아이가 그녀를 예전에 봤던걸 기억해냅니다. 그는 전학온 그녀에게 접근하였는데 그녀에게 뜻밖의 충격적인 여러가지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이게 진실이라면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모 제약회사의 생체실험 대상들이 있는 학교이며, 그들은 모두 기억을 조정당하고 있다는 것 등등 이었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그녀의 탈출을 돕게되었고, 그녀는 탈출했지만, 다시 잡혀서 기억을 봉인당하고 다시 학교로 들어옵니다. 그녀가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했는데도 별 반응이 없는 학교 아이들을 보고 그들은 그 학교의 아이들의 괴리를 느끼고 어디서부터 진실인지 모여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모르모트의 시간>의 결론은 그 학교는 결국 사라지게 되고 그곳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안전하지 않은(?) 밖의 생활을 하게됩니다. 생체실험에 대한 인식과 생체실험을 당하는 대상에 대해서 뭐 지금의 이 나라와 별반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생체실험(이런 단어를 사용하면 화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건 분명히 생체실험이에요)을 하는 학생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돈으로 생체실험을 할 사람들을 사는 행위. 책에서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은 아이들의 호적을 그 부모로부터 사서 생체실험을 하는 행위와 뭐가 다른건지... 뭐 그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는 해체되었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도 약했고 그들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받은 느낌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현실의 일부였습니다. <양의 노래>때도 느꼈지만, 언제나 보고 싶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느끼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도 좋아요. 그림이 좋은건지, 이 분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좋아하는 선생님입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20대에서 30대가 되었으니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가치'라는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판단하는거라고 생각해요.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중에서 사회를 구성을 조정하는 사람들 이겠지요. '실험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것들도 결국 그들이고, 그리고 어느정도의 보통 사람(혹은 일반인)이 암묵적으로 묵인하에 그런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판단을 내리던간에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내리는 것이죠. 동물에 대한 생체실험도, 인간에 대한 생체실험도... 그 동물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도 우리 인간, 그리고 생체실험에 필요한 인간을 돈으로 사는 것도 우리 인간.
그래서 어떤 동물의 경우에는 인간의 친구기 때문에 먹는 것은 금지되었고, 인간으로 하지 못할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인간. 애초에 우리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해오고 있고 그게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어디서부터 어긋나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어긋남을 계속 어긋나게 이어지기 위해서 저도 열심히 협조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문득 세토나의 단편이 생각났어요. 시대는 모르겠지만, 소도 인간과 같은 형상을 띄게 되었고 다만 그 차이가 있다면 목에 종이 있느냐 없느냐 이었어요. 말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도 있었고, 감정도 있었고... 인간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그들의 목에는 종이 달려있을뿐. 한 소년이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그와 같은 연배의 소를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부탁해서 그 소와 소년은 친구로 지내게 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소들이 도살당해서 그들의 밥상에 올라가도 그 소는 그 소년의 도움으로 살아있습니다.
어느날 그 마을(그 나라)에서 엄청난 전염병이 돌게되었고, 그 병은 소의 몸에 있는 장기를 먹어야 고칠 수 있게 됩니다. 소년은 친구 소를 먹기를 거부하고 친구 소를 살리기 위해서 먼곳으로 보내자고 가족들에게 부탁합니다. 소년의 가족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 소를 보냅니다. 소년은 그 병으로 죽어가는데도요. 마지막은 소년은 소의 내장 요리를 먹고 살아납니다. 그치만 그 내장에서 어릴적에 소가 적었던 일기장의 자물쇄의 열쇄를 발견합니다.
눈 앞에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 소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 거기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모두의 머리속에서 남아 있을 따름이죠. 그는 그냥 그렇게 그런것들을 반복하면서 사는 어른이 되었을지, 아니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 아니면 그걸 묻어두고 살다가 어느 시점에 폭발하여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존재가 되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견딜 수 없이 슬픈 이야기라는 것.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존재라는 것.
그 이야기를 전개의 클라이막스를 읽으면서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냥 그의 가족들이 그 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부정의 깊이는 이런건가봅니다. 그냥 그렇게 그대로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오늘 저녁의 반찬은 돼지고기. 돈을 주고 사서 먹습니다. 그래도 닭고기(고기라고 명명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존재라고 인식하면 죄책감이 더 커져요. '고기'라고 명명해야지 그 죄책감이 덜해지거든요.) 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적습니다. 모든 부위를 먹으면서 이 존재가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 상상하는건 매우 힘듭니다. 그래도 고기를 먹는 거죠. 고기. 고기.... 고기를 먹으면서 생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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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메 케이 다른 저작들_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환영 박람회>, <루노>, <양의 노래>, <우리들의 변박자>, <제로>, <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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