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

<보스톤 결혼> 

여자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

에스더 D. 로스블럼, 캐슬린 A. 브레호니 엮음, 이매진



믿고 보는 이매진의 책이라서 뭐 그다지 고민 없이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이전에 한번도 고민 해본적 없는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게 이끌고 그리고 좀더 다른 입장의 편에서 바라보게 만들더군요.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는 '무성애'에 대해서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런 책은 아니었고 그거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분법적인-성애적인과 무성애적인- 구조 아래에서는 소외되는 소집단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상호적인 관계에서 그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에 반드시 '섹스'가 필수 조건이 될 필요가 없다는... 이 책에서는 '성교에 따른 입증'이라고 명명하더군요.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들을 정의하는 명칭에는 '섹스'를 하는 관계적 정의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커플들-무성애적인-은 커플은 어떻게 정의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책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레즈비언 커플이 무성애적인 관계이지만 그들의 커플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그런 관계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관계-헌신적인-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1부 우리 관계에 이름 붙이기'에서 다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성애적'이느냐 '무성애적'이냐 라는 논의를 하기전에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보스턴 결혼'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데, 이 말의 함의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키며 이들은 성적인 사이가 아니라고 여겨졌다고 하더군요. 그 시기에 그런 커플들이 주고 받은 기록들을 보면 성적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현재에는 그들이 성적인 관계이었을거라고 추측하지만- 그들은 보통의 커플-섹스를 하는 관계인-들 처럼 충분히 서로에게 헌신적이고 지지적었다고 기록에서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레즈비언'이라는 텍스트가 등장한 배경에는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위치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이성이 아니라 여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런것들은 시스템에 대한 위협이기에 이런 여성들-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에 대하여 부정적인 함의를 담아서 정의하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디에서 나왔는지 찾으려고 했는데, 오늘 리뷰를 쓰기전에 대충 살펴봤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ㅠ_ㅠ 이 책을 작년에 읽었던지라... 당시에 읽고나서 타이핑으로 메모한 부분은 '성교에 따른 입증' 부분만 있고;;; 쿨럭)


2부에서는 '오르가즘이 전부는 아냐'라는 파트로 무성애적인 커플들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자와 그리고 실제로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당사자의 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3부에서는 '우리 사이요? 할 애기 많죠!'라는 파트로 여기에서는 1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 논의하는 파트로 전문가와 그리고 당사자들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4부에서는 보스톤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걸로 끝나구요. 이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1부와 4부 같아요. 4부는 어찌보면 1부보다 좀더 딱딱한 편인데 이 4부를 읽어야지 이 책의 편집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되거든요. 1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을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고 2부와 3부의 사례들을 보면서 정리되는 것들도 좋았습니다.  

1부에서는 '커플'에 대한 정의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고, 성교를 통하여 자신이 커플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부와 3부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까 관계가 처음부터 무성애적으로 시작한 커플의 이야기는 없었고, 처음에는 성애적이었지만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둘중에 한쪽이 그러한 욕구가 상당히 줄어서 고통받는 배우자가 그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의를 내리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아닌 커플도 있었던거 같...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잘... 원하지만, 상대방에게 그런 욕구가 상당히 낮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체념하고 가져가는 느낌으로요. 관계는 유지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서로에게 헌신적인 부분에 의한 만족으로 그런 부분을 메꾸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드는 그런 커플들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인데 만약에 상대방도 어느정도 수준으로 성적인 욕구가 있고 그리고 그걸 서로에게 요구하고 기대하고 함께 하는 관계라면, 이 사람-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분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것 같았아요. 

"섹스가 없는 관계는 과연 커플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시스템에서 인정해주는 관계에서는 성애적이던, 성애적이지 않던간에 커플이라는 것은 제도에서 보장해주니까 그런류의 고민은 쉽게 하는 고민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혼인관계인 사람도 그 스펙트럼의 연장선상에 있는 괴로움과 고민은 충분히 공유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혼인관계도 매한가지로 기본적이로 성애적이고 그리고 개체를 이어나가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이 대부분-아시아권의 경우에는 후자쪽이 강한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받는 압력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성애적이지 않는 경우 한쪽은 욕구가 낮고 한쪽은 욕구가 높을때는 이 책에서 이야기 했던 사례처럼  중요한 관계에서 충족될수 없는 자신의 욕구-개인적이던 사회적으로 기대하니까 학습된 부분이던-에 대한 좌절은 동일하게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이들은 성애적이지 않아도 제도권 안에서 인정해주는 커플이라는 점은 다르다면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그치만 그런 부분은 개인이 가치를 어디에 더 중요하게 두느냐에 따라서 좀더 달라질 것 같아요.  


마지막 파트에서 논의하고 정리한 부분처럼, 사회 시스템에서 매력적인 관계의 베이스를 '성애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리고 그런 프레임을 확산 확대하는 베이스 안에서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보다 더 크게 기대하고 욕망하게 만듬으로써 필연적인 좌절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다른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저평가 되는 것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커플 관계에서 헌신에 대한 만족과 기쁨에 대해서는 그다지 판타지적으로 그려지지 못한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헌신에 대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관계는 일반적으로 구성원 한사람이 가족들 모두에게 헌신하여 가족 시스템을 유지되도록 하는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헌신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것 또는 어머니가 모든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욕구는 가족 구성원의 욕구보다 아래에 두고 다른이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제시되거나 미디어에서 그려지지 않는것 같거든요.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만, 근본적인 틀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것 같아요. 헌신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 상호적인 베이스에서 나아가는 것인데 뭐랄까 제가 속한 사회에서 헌신이라는 것은 한쪽이 모든것을 탈탈 털어서 제공해주고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그렇게 묘사 되는 부분도 있구요. 헌신하는 것 안에서 얻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지나치고 그 헌신만 강조하는 그런 느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투자하고 그리고 상대가 기뻐하는 것으로 인하여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뭐랄까 판타지가 좀 적은거 같아요. 매체에서 그려내는 부분도 뭐랄까 그냥 사진 같은 느낌이구요.

몸에 투자하던 정서에 투자하던 상대방에게 투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베이스 일텐데 우리는 왜 '몸'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강조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지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와서 일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증명하게도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데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지... 정리하다보니 뭐 그런 의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볼 예정이에요. 그때는 또 어떻게 읽힐지 기대가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던 부분은 고통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연대가 가능한데, 규정해서 그것들을 다르다고 나누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좀 폭력적인것 같다는 생각들도 좀 했던거 같고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그것도 궁금한데 검색해봐도 리뷰가 한분 정도만 걸려셔... O>-<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관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에 대해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자신의 욕구가 있는건 결국 매한가지니까 이런 좌절에 대한 연대는 가능하다고 봐요.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기준으로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어떤 집단의 고통이 더 큰지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지만, 고통에 대한 연대를 하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간격을 좁혀나가는데 있어서 충분히 좋은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좀 아쉬웠어요. 제도권 내에서 비슷한 주제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섞어서 집단을 꾸려서 그 집단안에서 나누고 차이를 알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정리해도 참 좋았을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 책은 2013년에 읽은걸 2014년 7월에 리뷰를 적는지라... 아마 어느정도는 저의 기억에서 와전된 부분도 있을거에요.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최대한 기억해 내려고 적어내려갔습니다만;; 뭐 어떨지 모르죠. -0- 근데 뭐 읽고 바로 적어도 비슷했을거 같아요. 글에서 저자가 강조한 부분과는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느낄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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