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548일 남장체험>

노라 빈센트, 위즈덤하우스 




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책 표지를 처음 봤을때는 이 책이 소설책 인줄 알았어요. '남장체험'이라는 텍스트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고 책의 표지도 소설책 같다는 뉘양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거든요. 소설책에서나 볼법한 텍스트의 서체로 적힌 제목 위에는 작게 고딕체로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남장체험 소설이었다면 지나갔을거에요.

책을 빌린 이유도 솔직히 개인적인 흥미가 동해서 그런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남성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고통이 여성과 매한가지로 억압받는 고통이라 한들 여성으로서의 삶의 안에서 경험한 것들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의 어떠한지 알아야겠다는 목적보다는 그들이 누리는 젠더계급을 기반한것들은 어떤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성취감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최근에 저의 이슈는 과거의 저 자신이 받았던 피드백들이 저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성차적인가 아닌가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려움과 불편함은... 복잡 다양했습니다. 아 뭐라고 말해야할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머리로는 이해하는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야하나요? 남성또한 가부장적 사회의 기반아래에서 요구받고 억압받는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전 그걸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뭐 암튼 그렇습니다. 오늘 도서관의 반납일이라서 서둘러서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이 책을 통하여 뭔가가 많이 남았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거 같아요. 


으음. 좀더 노골적으로 솔직하자면 후반 어느부분까지는 저자의 흐름에 공감하며 따라갔지만, 전 여전히 그녀처럼 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제가 느껴지기엔- 공감하기 힘들었던거 같아요. 마지막 파트의 남성 집단에서의 체험 부분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어요. 자신의 배우자너 반대쪽 성의 부모를 칼로 난자하고 싶다던가...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때는 특히나 더 힘들었습니다. 처음 그녀가 그랬던것 처럼 그들의 그말은 위협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그런 그들의 고백을 불편해 여기다가 갑자기 어느 시점에 시공간을 이동해서 다른곳에서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있었어요. 분명 여기에 같이 있었던 저자는 저 멀리 가버리더군요. 그것도 순식간에. 그들안에서 나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고 커보이기만 하는 모습은 실제의 자신을 크게 띄워서 평가를 받기 위함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거 같았어요. 

저자도 지적했지만, 이 집단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들의 어머나와는 멀어지기를 희망하며 아버지와는 화해하기를 희망한다는 설명에 저는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의 저자 테리 리얼이 떠올랐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그들 또한 희상자라는 것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많이 느꼈던거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 요구되고 강요된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누리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솔직히 그들의 고통이 와닿는건 아니었습니다. 근육질 남자이기에 받는 대상화에 대한 어떤 남성의 고통스러워하는 고백을 보았음에도 저는 여전히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민감한쪽이 아닌 남성은 타고난 그런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중에서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구요. 현실에 없는지 있는지 모르는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시스템 안에서 보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꺼라고 믿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으로 부터요. 네. 저는 화를 내고 싶은거 같아요.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그리고 여전히 성차를 적용하며 받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녀가 말했듯이 가부장제는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강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역할을 나눈 것이기도 하다는 말은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저 자신이 이 시스템에서 보호받고 누리는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런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제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갈망만 키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보다는 그런식으로 사회화 되고 사회화 시키는 우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것들에 대해서 한치의 의문이 없는 점이 더 화가나는거 같아요. 그게 왜 당연한건지... 그건 이상한건데 말이죠. 언제나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거에 대해서 제가 아이와 청소년 시절에 어른들에게 받은 피드백은 대부분 싸가지가 없다는 말 이었던거 같아요. 성차가 당연한 거라면 그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그 논리가 모순적일지라도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기대가 다르고-성차에 따라서 요구받고 기대받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에 따라서 강하게 비난받는 것이라는 걸 어릴때 알았다면, 그때 받았던 고통의 종류는 분명 달랐을거 같거든요. 제가 아둔한 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게 성차에 따라서 다르다는 인식이 매우 낮았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던지는 메세지는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평등하고 공평하게 양육하고 있다고요. 

다 성장한 저는 여전히 그 이유에 물려서 모든것들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그렇지 못했을때 크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편입니다. 공평하다는 건 환상이라는 걸 심리학 개론책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공평한 세상을 기대하고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기를 희망하기에 여전히 그 이슈에 민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모든것은 제가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었고 그건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주양육자로 부터 매일매일 지겨울 정도로 받는 피드백 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것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자기 혐오나 부정으로 흘러갈 뿐이죠. 분노를 허용받는 남성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사회회에 대해서 분노하고 폭발했겠지만-그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비난받는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안으로 안으로 곪아 갔던거 같습니다. 물론 분노를 표출하는 입장이 더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가부장제를 동의했다고 하는 그녀의 주장은 매우 불편하게 다가오더군요. 그건 온전하게 동의한게 아니었어요. 강요받고 강요받고 또 강요받아서 결국에 동의하게 된 구조에 가까운거죠. 그걸 어떻게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엄연한 폭력이었습니다. 가치관과 프레임을 소유하고 있는 어른들에 의한. 


개인적으로 받았던 느낌은 이정도로 하고, 책으로 넘어가보면 이 책은 총 8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남장을 해서 남성만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이 파트 1에. 그리고 나머지 파트들은 그녀의 남장의 생활을 그린 '남자의 우정', '남자의 성욕', '남자의 사랑', '남자의 삶', '남자의 일', '남성의 자아 찾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정 파트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들이 애용하는 당구클럽의 회원으로 성욕 파트에서는 스트립바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 사랑에서는 남성으로서 이성과의 데이트를 하는 여려움과 좌절과 그리고 여성들(?)의 극과 극을 향하는 남성에 대해서 기대하는 이미지에 대해서. 일 파트에서는 레드볼 영업사원으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마지막이 문제의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 체험. 마지막이 다시 여성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자의 사랑의 파트에서는 저의 동생이 연애를 하면서 어렵고 혼란스럽게 느끼던 지점에 대해서 저자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평등하기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자가 리드해주기를 원하는 여자들에 대한 서술이 그러했어요. 그녀의 설명은 솔직히 여자들을 일방적으로 탓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공기같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많은 부분을 영향받고 영향끼치고 있으니까요. 점차 바뀌어 가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존재하지만, 과거-더 근본주의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해봅니다-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리고 그것들은 여전히 문득 문득 주변에서 그리고 저 자신의 안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여자들의 남성에 대한 기대는 강요받는 기대와도 비슷합니다. 사회적 성공과 그리고 여성적인 삶을 동시에 기대하는... 그건 솔직히 지금의 시스템에서 공존하기 힘든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사회적 성공안에서 여성적인 삶을 반드시 영위해야 한다는 건 솔직히 그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이 위해서 가지고 있는 환상이 아니고 뭘까요? 그건 그들이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 한데 말이에요. 


마지막 파트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인지 소잔인지 자아 분열인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한동안 상당한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동에 입원하기도 하고 자가 격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낀건 마지막 파트의 자아체험에서 학대를 해달라고 다른 집단원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부터 받았었습니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받는 것들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하면 그런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자책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성으로서 돌아오고 나서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성으로 보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결국 삶이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계속 그 자아 체험에서 그들이 말했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구체적인 것들을 고백하는 부분이 계속 머리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체험은 멜라니 클라인의 <아동의 정신분석>을 읽고나서랑 상당히 비슷한거 같아요.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싶어한다는 걸 그들의 놀이의 상징화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는 클라인의 해석은 매우 위협적 이었습니다. 

분명히 저의 안에서도 그런것들이 존재하기에 불편하게 다가온건 알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누군가를 특정해서 어떤식으로 죽이고 싶어하는건 저의 망상속에서는 없었거든요. 자신을 위해하는 상상이 늘 차지했지. 저 자신이 주로 하는 생각은 특정 타인이라기 보다는 과거에는 저자신에게 그 방향이 향했고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인간이라는 존재-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차이는 무얼까 생각하고 있는거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늘 '차이'에 집중하는 타입이라서 방향성의 차이의 유의미함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거 같아요. 어떤식으로 흘러가야 거기에 도달하는지에 대한 의문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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