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정의

리뷰/텍스트 2007. 3. 4. 22:13 by dung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이유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21세기의 첫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데리다는 세계가 이미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에서, 그는 '예루살렘 전용'에 초점을 맞춘 '메시아적 종말론의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전용"을 위한 전쟁이 현재 벌어지는 세계대전이다. 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가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모습이다.'
2001년 10월 2일 브라이튼에서 개최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력한 어조로 전망했다. 그는 '9.11'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따라서 '주변 세계 질서의 재편'을 다짐했다. 연설은 매우 천진난만한 진술로 마감된다.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과 이슬람인, 기독교인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지금 우리는 공동의 가치와 유산을, 통합의 원천이자 힘의 근원으로 이해하여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순간이다.'(Blair 2001, 4.5)
데리다가 보기에 이 모든 신념은 모종의 괴물을 근거로 성립되었다. <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1992)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저서에서 데리다는 아브라함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스런 아들'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헸다'는 이야기는 어김없이 '괴물'같은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보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괴물이 되는 데에는 '여성의부재'가 한몫한다. 즉, '이렇게 헌신적인 책임의 체계'는 '여성의 배제 혹은 회생'을 전재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부자 간의 문제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이야기가 괴물 같은 까닭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 즉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책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된 아브라함은 책임을 경험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 이때 책임이란, '나를 타자, 즉 타자로서의 타자에게 결박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그 하나만으로도 '모든 타자는 절대 타자'라는 데리다의 논점에 부합한다.(모든 타자는 타자(타인)는 모두 (소)타자이다.) 데리다의 저작은 이런 맥락에서 '신'은 물론이고 기도 행위를 재고하라고 촉구한다. 만약 디페랑스가 '모든 신학과의 연계를 차단한다'면 7장에서 보앗듯이,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언제나 "예컨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신', 다리 말해서 '신, 예컨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예컨대,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도 행위에는 타자로서의 타자를 향한 호칭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충격을 받았을 때 나는 신을 찾는다.' <죽음의 선물>에서 그는 예루살렘을 가르켜 그 주변에서 '이삭의 희생이 매일 계속되는'장소, 즉 '무수한 전쟁 기계들이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전쟁을 벌이는'장소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의 생각을 잘 나타낸 관련 사례로, '흑인 차별정책'을 비롯한 인종주의라는 '정치적 관용어'와 그것에 의존하는 '신힉-정치적 담론'의 '괴물성'에 대한 설명을 언급할 수 있다.
이렇게 간략한 논의로써 분명해졌다. 데라다의 저작이 교전 중인 전쟁 문학, 혹은 전쟁 철학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곳에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해석'에는 '전쟁과 투쟁'의 흔적이 있다. 그는 새로운 상속 방식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유산은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의 과제'임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도덕'의 '핵심'에 있는, 즉 이 세 가지 일신교의 심장부에 있는 괴물 이야기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여 그것을 변형하는, 새로운 상속 방식에 관심이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는 이러한 관심사를 가리켜 '종교 없는 메시아주의', 또는 '정의 이념'에 대한 또 다른 사유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는 '더 이상 존재신학에서 말하는 신이나 인간과 혼동되지 않는 온전한 타자', 그 '타자의 도래'로서의 미래를 향해 개방된 사유를 포함한다. 이는 '해방하는 약속을 경험하는' 참여이다.
여기서 문제는 해체론이 '민주주의를 위한 또 다른 공간'과 즉 '도래할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우정의 정치학>등등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며, 언제나 도래하는 중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일관된 주장이다. <우정의 정치학>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민주주의에는 도래할 것이 남아 있다. 도래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본질이다. 그것은 무한히 완벽을 기할 수 있다는 것, 즉 언제나 불충분하므로 미래가 남아 있다는 뜻일 뿐 아니라, 약속의 시간에서 속한다는 것, 즉 미래의 매 순간 순간마다, 도래할 것이 언제나 남아 있게 될 것임을 말한다. 민주주의가 존재할 때조차도, 그것은 결코 실준하는 것도, 현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언제나 비현재적 개념을 화젯거리로 남긴다.


'약속의 시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와 해체론은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 데리다는 '민주주의 없는 해체론은 없으며, 해체론 없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보면 세부적으로 섬뜩한 면이 있는 1989년 맨해튼 카도조로스쿨에서 한 강연[법의 힘: '권위의 신비한 토대']에서, 데리다는 마치 천리안이라도 있는 양 자신이 강연하는 장소인 5번 가를 힘주어 강조하며, 그곳이 '불의의 지옥에서 불과 수 블록 떨어져'있을뿐이라고 말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2001년 9.11테러 공격에 놀란 미국 정부가 괴물스럽게 환기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무한한 정의'감각을 요청한다('무한한 정의'라는 말은 본래 테러 공격에 대응하여 출범한 미군의 명칭으로 체택되었으나, 이슬람교도에게는 물론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에게도 심하게 불쾌감을 주는 이 명칭은 곧 사라졌다.) 데리다는 '역사와 문화가 자신의 부범학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모든 경계선상의 기구들에 대한 재해석'을 정의개념으로 주장한다. 해체론은 '언제나 이러한 무한한 정의를 요구하여 정의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해체론은 '한정 없는 책임감, 그러므로 반드시 기억을 초과하는 것, 계산불가능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세계대전은 계속된다. 해체론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함으로 오늘날 만연한 괴물, 즉 결과적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모든 것과의 전쟁을 감행한다. 데리다는 선언한다. 해체론은 '정의에 미쳐 있다'고. '한정 없는'책임과 정의를 해석하려는 그의 관심사는 "국제법을 ...... 크게 변형'하려는 의지와 보조를 맞춘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그는, '최소한 민주주의의 이념과 그에 부수하는 인권의 이념으로 일관하려 한다면, 국제법은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사회적 장을 포괄하고자 그 영역을 확장하고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체론이나 민주주의처럼, 정의는 '도래할 것'의 감각을 수반한다. '정의는 아직 오고 있는것, 도래함'이다. 결정불가능자, 아포그리아, 계산불가능자와 마주치며, 정의는 '불가능의 경험'과 그리고 '교환관계 없는 선물'에 대한 사유와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라는 것이 해체론이나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기다림의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데리다가가 <법의 힘>에서 주장했듯이, '정의는 비록 현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다릴 것이 아니다. 정의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9장 괴물들에서 "정의" 


원하는 것이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소득이 없었던 책은아니었습니다. 
그사람들의 생각을 조금 이해하는 범주에 다가가고 있는 기분입니다. 탈식민주의의 여러가지 난해함으로 고민하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만난 <스피박 넘기>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 에드워드 사이드의 LP시리즈와는 확연히 편집방향이 달랐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실망입니다.-ㅛ- 쳇. 읽어보고 싶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서글픕니다.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아~놔.... 무식이 괴로워요.!! 그러나 공부할 근성이 없다는게 더~괴롭다는 ㄱ- 현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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