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신과 병명이 한때 입에 무수히 오르내리다가 사라지고 그 병의 발병률 또한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가 하강한다. 어떻게 보면 유행과도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50년 전이라면 어땠을까? 현재 우울증을 앓는다는 많은 사람들 중 적어도 수만 명에게는 같은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임상적 우울증이라는 판단을 받은 사람들이 수적으로 더 많다고 해서 과거보다 우울증이 더 흔하다는 뜻은 아니며 현 사회에서 우울증의 정의가 달라졌을 뿐이다. 50년 전 우울증이라는 용어는 건강을 손상시킬 정도로 심각해서 장기 입원이 요구되는 경우에만 쓰였다.
- 로이 리처드 그린커, <낯설지 않은 아이들>, 서문, p24
병에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만큼 가혹한 형별도 없다. 그 의미에서는 당연히 도덕적인 의미가 포함된다. 인과 관계가 모호하거나 어떤 치료법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큰 병은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 수잔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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