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자극-저의 코어를 건드리는-이 되었던 부분은 어제(2월1일 월요일) 유정과 아버지의 엘리베이터에서의 대화 이었던거 같아요. 

사실 원작을 보던 시절에는 말그대로 타인의 삶을 구경하는 입장에서 지켜봤던 쪽 이었습니다. 그건 이야기 속의 타인의 고통이었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건드려지는 부분이 있었을텐데도 고통이 저에게 도달하여 생각이 샤워를 하면서 생각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게 만들었던 부분은 유정과 아버지의 유정이 가지고 있는 '통제욕구'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던졌던 말 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엔 그건 타인과 상황을 통제하여 우위를 점유함으로서 월등한 존재로 남아 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하도록 허용받지 못하는 환경이 있었기에 그걸 허다루기 위해서 상대방과 상황 모두를 통제하려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비춰졌습니다. 그건 분명 좌절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었어요. 불안과 고통을 낮추기 위하여 성장하지 못한 아이가 습득한  유일한 방법-방어-일 뿐인거죠. 

유정이라는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해 지기 위한 첫걸음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걸어둔 세뇌에 대해서 의구심을 느끼는 것이 시작일거 같아요.
그래야지만 좀더 불행한-외부적 입장(저라는)에서 바라보는 서술입니다-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거 같은 느낌. 그래서 유정에게 가장 필수적인 좌절은 아버지가 주장하는 통제 욕구 혹은 우월감의 추구에 대한 좌절이 아니라 아버지의 애정에 대한 좌절이 가장 우선이 아닐련지. 아무리 노력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애써도 죽는 날까지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사랑-피드백-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어야 지금 가지고 있는 옷-아버지의 가치관-을 벗고 좀더 자신답게 나아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거기에 투자되던 에너지가 다른데 투자 될 수 있을테니 좀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보다 더 자원-에너지-가 늘어아서 삶이 좀더 윤택해 질 가능성도 열리게 되겠지요.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랑은 상대방으로부터 상대방으로부터 받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걸 받아들이고 그 분투에서부터 좀더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해봅니다. 



저에게 유정에 대해서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던 부분은 그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 인거 같습니다.  
자기 아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본시 본인으로부터 기원한 것이고 그 이상하다는 지점의 기준을 형성하는 축의 구심점중 하나가 자신의 완벽주의라는걸 1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중의 하나가 아닐련지요.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하여도 아이는 아이인데 이 사람은 이 명실상부한 사실을 간과했어요.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우려되는 혹은 두려운 존재-괴물에 가까운-로 보는 것은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줬을까요? 부모가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건 영특하기에 더 잘 인지하고 있었을거 같고, 그렇기에 아버지가 요구하는 당위를 더 따라가려고 애써왔던거 같아 보였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어한 부분-최약점-이 개선이 아니라 아에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그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건 그냥 그거에 사로잡혀 있는거죠. 자기를 도는 이슈가 그거라는 것도 모르는거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코어를 건드리는것 같은 혹은 실제로 건드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의 특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것은 불가능 했겠죠. 반드시 사라져야 할 (자신의) 특질이 자신의 자식에게 보이는 것을 견디기는 어려웠을테고, 그런 생각을 강화하는 한쪽에는 박사님도 있었구요. 전문가적인 서포터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달리 뭐라고 해야할까요.
설사 그것이 '여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해도 저렇게 부정하는 형태라면, 자기 아이에게 보여지는 혹은 비추어지는-투사의 의미로- 면을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키우는 형태 이었을테고 그 괴물적인 형상은 보다 정확히는 자기 안에 있는 날것을 아이에게 투사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아니라면 달리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투사하고 그리고 그걸 조절하려는 모습은 저에게는 전형적인 '투사적 동일시'로 보여졌습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고 그런 가이드들로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자아-가짜 자아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와 그리고 진짜 자기의 모습간의 괴리는 살면서 점점 더 커져만 갈텐데 정말 어쩔러고 그러시는건지. 아니 무슨 애한테 자비와 사랑을 배푸는 구도자 같은 역활을 강요하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건가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봤습니다. 
자신이 박사님으로부터 들었던 피드백이 저 영역이 정상의 범주가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 영역에 대한 기준치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게 되었던거 같아 보이더군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계속 그 생각을 키워왔을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은 평생 애쓴다고 하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달할 수 없는 너무나 높은 도적적인 기준이고, 그렇기 때문에 좌절은 더 커지고 내적 갈등도 커질거 같아요.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내적 갈등에 대한 부분은 다루지는 않지만, 유정이의 그런 행동에 대한 제삼자의 평가가 1-10 척도에서 5정도라면 이걸 이 아저씨는 모두 10으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공포적이고 극도로 불안한 느낌으로요.

 


누군가가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 도 있는건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그런데 모두에게 자상해야 한다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건지 그 기원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가 정말 타당하다고 느끼는지 논박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아저씨 본인은 자기가 팔이 안으로 굽는 부모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가 보기에는 철저하게 팔이 밖으로만 굽고 또 굽는 타입으로 보일겁니다. 성인인 제가 보기에도 팔은 밖으로만 굽는걸로 보이더군요. 정확히는 자신과 자신의 아이에게는 굽을 일이 없는 팔 이라고 해야하나요? 

그장 빡치는 부분은 이상적 인간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적용하는데 있어서 '형평성'이라는 가이드 라인도 지켜야 하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건 여전히 현재형이구요.
아니 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건가요?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개개인의 차이로 인하여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건 부모쪽 생각이고, 당하는 쪽 아이 입장에서는 그건 '차별'이지 다른게 아니에요. 평등 혹은 차별. 자라는 동안 쭈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자랐겠지요. 당신이 당신의 자녀에게 주신 선물은 그거에요. 평등 혹은 공평에 대한 이슈.

같은 나이의 아이들 이었고 유정이도 엄마가 없었어요. 설마하니 돈이 많다고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래봅니다. 아버지가 자신보다 타인의 아이에게 보이는 자상함이 내내 부러웠을테고 그걸 가지고 싶었을 겁니다. 저 아이만 없다면 저건 나만 온전히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비교할 대상이 없었으면 어떠했을가하는 상상. 그런 상상들은 쭉 이어져왔겠지요. 

그래서 지금의 그 자매를 배제하려는 시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구요. 이 두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있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좋았던 기억은 없었으니까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그리고 다른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서 좌절하고 그들을 부러워 하게 만드는 역동이 이어지는데 어느 바보가 저 두사람을 자기 아버지 옆에 붙여두고 싶어하겠어요. 

사랑은 나눈다고 커지는게 아니거든요. 부모의 사랑은 독점하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 정상적 반응이죠. 아이라면요. 뭘 나눠요. 나누는 행위를 한다면, 그 나누는 행위를 하는것에 대하서 어떠한 형태의 보상이 있었기에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그걸 순수하게 나누는 즐거움-이타적 함의-로 그러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사랑 앞에서 경쟁자이지 협조자가 아니에요. 그런 분투들이 이어지면서 좌절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서 통찰하게 되고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됨으로서 좀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궤적은 계단식 성장이 아니라 평생 전자와 후자를 반복하는 패턴으로 이어지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버지 아래-자신의 자식을 괴물이라고 의심하는-라면 보통 평범하다는 기준의 아이도 정상적으로 자라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그런 이미지를 끊임없이 부여받는데 아이가 할 수 있는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걸 부정하거나 그절 긍정하거나 양쪽의 극단적인 방향 이외에는 불가능 할거 같은데... 뭐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아이의 민감성의 척도에 따라서 달라질테니까요. 
물론 성인인 유정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화, 합리화를 하는건 아닙니다. 어떤 영향으로 지금 어떤 선택을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하지만, 음성적으로 분출하는 양상을 긍정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니까요.
다만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있는 그대로- 그래서 늘 그런 사람을 찾아서 헤메이는 서사가 이 아이(청년)의 삶에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날거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설이와의 만남이 결국 실패로 끝난다면, 다음에는 그런 상대방을 만난다고 하여도 시험하고 또 시험할거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곱슬머리 아가씨와 잘 되어주는게 좋겠지만, 주양육자에게 기억하는 한도내에서 허용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가 타인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를 들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지라. 게다가 그래본 경험이 없었고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을 어디까지 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호할거 같아요. 아주 어린시절 1차욕구가 허용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허용 받은 경험이 얼마나 있었지를 상상하면 정말 아득해지는...


유정 파파에게 멜라니 클라인의 <아동의 정신분석>을 강제로 강독 시키고 싶어요. 아무 그냥 멘탈이 탈탈탈 털리고 정신좀 차리라구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동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창 날려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코어한 부분을 모르는데 거기다가 완벽주의 성향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개체를 증식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왜냐구요? 저도 완벽주의니까요. -_-
제발 때려치라구요. 낳음을 당한 아이는 님이 님의 주양육자와 형성한 좇같은 애착관계를 그대로 물려받는 것으로도 모잘라서 자신의 부정하는 부분을 투사하고 조절하려는 대상으로 쉽사리 소비되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자신의 부정하고 싶은 부분을 왜 아이에서 발견하고 그걸 조절하려고 하는거죠? 아니 시발. 스스로를 조절하는 것도 무리라서 포기하거나 놓아버렸는데 남을 조절 할 수 있다는건지. 그건 교만이에요. 우리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부질없는 노력을 때려치고 자기안의 것들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 보아요~~~.  이미 말아먹은 자신의 자녀의 삶을 이제와서~ 회복시키려는 노력도 다 헛수고니까 때러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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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주양육자가 아이의 정서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은건 있어서 아이의 정동조절에 관여하는 주양육자의 피드백에 관한 책을 좀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트위터 1차 정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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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영화로 등극한 <매드맥스> 블루레이랑


팬이 되어버린 하야카와 노지코님의 다른 단행본 <어둠속에 스트로브>

이분 첫 작품은 <밤하늘 한구석에>인데 이작품 하나로 반해버려서 구작들을 찾다보니..

<엔도군 관찰일기는> 이미 품절. ㅠㅠ 크흐흡

그림도 이야기 전개도 연출도 다 취향이었어요. 


북극곰 사진이 보고 싶어서 구매한 <봄날의 동물원>

윤리적인 부분의 이유로 살지 말지 늘 망설였는데  사진 자체는 좋더군요.

다만 그 공간이 동물원이라는 점이........


<어제 뭐먹었어>10권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탈모가 주제라니!! 탈모가!! ㅠㅠ (우는중)


<여름이야기>

지난번에 <봄이야기>를 구매해서 이어서 구매했어요.

이분은 찻잔 세트로 반했던 쪽이라 단행본의 존재는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보배로울수가 없습니다. 보배보배 보배보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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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입니다만> 

기다리던 신간과 이가 빠졌던 구간을 구했습니다. 만세!!!

제목 바뀌어야겠네요.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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뫄뫄님의 영업으로 알게된 존잘님.

<도쿄일인생활>-가을,겨울 편 텀블벅 후원으로 받았어요. >_<;;

구간도 구해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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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ing Lines>

일러스트 책 이었는데 취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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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콤플렉스 벗어나기>

오카다 다카시 선생의 신간. 

<엄마라는 병>과 일본에서는 커플링 책이라고 해서 구매해봤습니다. 


<태양의 집>12

슬슬 엔딩으로 달리고 있네요. 즐거웠는데...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주인공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던거 같아요. 


<어떻게 좀 안될까요?>10

뭐 사실 작가님이 딱히 누구랑 누구를 이어줄 기대는 없지만

이전에 당해본적 있어서 말이죠. 신뢰력 0이심. 천연소재...에서 이미 당할만큼 당했...

세월이 흐른 지금은 모두 커플로 가는 이야기 자체를 꺼려하지만, 

그래도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궁금하거든요. ...근질근질


<Kuma-Kuma Chan, the Little Bear>

완전 취향이었습니다. >_<;;

으흐흑 최고다!!


그리고 콘노우 아키님이 캐릭터를 디자인만 한줄 알았던 그 애니의

단행본을 발견해서 1권을 같이 주문했어요.

<モフィの泣いたり笑ったり思ったり>1

결과는 대성공!!! 꺄아아아!!!


그리고 하야카와 노지코님의 <밤하늘 한구석에>

최고에요. 흑흑. ㅠㅠ





*


오늘온 아이들!!


<미니언즈>는 스리디로 사봤어요. 티비를 산 기념으로!! 에헤헤~


콘노우 아키님의 <리락쿠마> 신간. 

표지가 수채라서 구매했는데 정말 선방했습니다.

보배로워요. ㅠㅠ 심장이..심장이...

심장에 무리가 가는 단행본입네다.




표지에서부터 포카포카한 기운이 오고있어요!!



나의 심장을 파괴하려고 온것이더냐!! 너란 곰두리는!! 

귀여워어어어엉~~~




<モフィの泣いたり笑ったり思ったり>2권!!

너도 매한가지다!!!



까야아아아아!!!!!

ㅠㅠ


리락쿠마도 이런식으로 나와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을 좀했어요. 

너무 귀여워서... 얼렁 캐쉬가 생기면 나머지 단행본들도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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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가시미 이치로, 고가 후리타케, 인플루엔셜



본격 우리(?) 장르 영업서로 추천할만한 책이었어요. 대담 형식이라서 진도가 나가는게 쉬운 만큼  흔드는 강도도 거센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이 청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거 같아요. 많이 흔드는 부분에서는 혼자 생각하는 부분들에서 그런것들이 많이 느껴졌어요. 버겁게 끌려가는데 애써 자기를 유지하려고 부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처음 만남 부터 장르 존잘님께서는 청년이 머글인걸 아시고 장르 영업을 머글 수준에 맞추어서 영업을 시작하시더니 점점 단계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려가며 계획적이고(?) 면밀하게 진도를 나가시는데 (1장에서의) 청년은 아마 자기가 거기까지 이 분이랑 달릴지 몰랐을거 같아요. 연속선 상에 있지만, 1장의 그와 5장의 그와는 분명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니까요. 

구성은 상담으로 치면 총 5회기 짜리 상담인 느낌인데요. 흔드는 강도는 뭐랄까 집단에서 여러명에게 같은 피드백을 받는 느낌의 강도와 유사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암튼 엄청 흔드세요. 마구마구 흔드신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거 같습니다. 진도 10이 넘는 강도로 줄기차게 흔드시고 그리고 청년쪽은 본인의 뿌리를 남기기 위해서 열심히 저항하는 모습이 참... 저항하는데도 추가로 흔드세요. 크으으으. 

그러다가 어떤 지점에서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려고 애쓰고 그러면서 또 어떤 부분은 지금의 자신의로서는 타협하는 것이 불가능 한 부분이니까 그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부당하다고 외치더군요. 그의 외침을 보면서 이 청년은 참 힘이 있는 청년이라고 느낌을 받았어요. 권위자에게 저렇게까지 말하는건 아시아권 문화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저세계에서 청년의 설정이 그런 설정이라고 하여도 말이에요. 본인에게 그렇게 움직일만한 자원과 힘이 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읽으면서 제일 웃었던-재미있어서- 부분은 1장 이었어요. 프영감이랑 융영감 말고 우리 영감도 유명하거든! 우리장르 3대 천왕인데 머글들에게는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서 그런데 내 존잘님 짱짱맨이라능! <- 이런 느낌으로 계속 이야기 하시는데 솔직히 귀여웠습니다. 철학자님.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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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북인더갭



사실 이정도 강도인줄은 모르고 잡았습니다만... 초반부터 최근에 봤던 영화 <킹스맨>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읽으면서 영국의 오늘날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느껴져서 그래서 읽는게 참 힘들었어요. 그 영화에서 그려지는 차브의 이미지를 아무런 생각없이 소비하던 저의 모습이 보여서 이런 지점도 마음이 편치 못했던거 같아요. 여러모로 이미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저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고, 국가에서 주도하는 계급적 이미지-노동계급을 비하하는-라던가 계급나누기-노동계급간의 갈등을 키우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폴라 토인비라는 사람이 많이 인용되는데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더니 <거세된 미래>의 그분 이더군요. 그때도 참 읽으면서 참담하다고 느껴졌는데 그때의 참담함은 양반이었............ ㅠㅠ 

+

대처만 똥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여러가지 의미로 깜놀했던 책이었습니다. 똥은 지천에. 신노동당은 노동당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번데기 이었습니다. 느그들이 어디가 노동당이여. (빠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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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월 도서 구매

리뷰/책이야기 2015. 10. 19. 16:52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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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2권

1권에 이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드라마화 되었으면 좋겠어요. >_<;;


<한다군>1권

네가티브 한다군.... 그러나 그는 사실 인기쟁이!!

학교내에서 공개적인 아이돌(?)로 위치하고 있으나

그런 상대방의 피드백을 모두 네가티브하게 받아들이는 한다!!

ㅠㅠ

제일 부러운점은 저렇게 네가티브한데 모두에게 사랑받는 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캐릭터야 말로 진정한 겝모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다들 그의 네가티브한 행동을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개개인이 어떠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기저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개그로 승화해서 보여주는 만화의 극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참고로 외전 격인 <한다군>보다는 본편을 더 좋아합니다.ㅎㅎㅎ 

그러니까 바라카몬은 애니 2기를!!!


<바라카몬>11권

바가지 머리 총각의 에피소드가 풀렸습니다. ㅎㅎ



<버섯강아지>3권

아아 여전히 포카포카한 전개라서 좋았습니다.

애니라도 나와주면 좋을텐데... 아 정말 포카포카한데 보는 사람이 없어요. ㅠㅠ

엉엉엉엉엉엉 귀엽다고!! 우리의 버섯 강아지는!!

인형도 팔아달라!! 봉제인형으로!!!!!!!  재질은 버섯 느낌보다는  이왕이면 털느낌으로!!


<학원 베이비시터즈>8권

여전히 귀여웠지만

전개가 이전에 비해서 재미지다는 생각은 좀 덜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이 반복되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전개가 느려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거와 별개로 우리 꼬꼬마들은 여전히 귀여워서 >_<;;;;



<빵공장이 들썩들썩>

고양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_-;;

귀여워요. 다른 시리즈도 사야겠습니다. 잇힝!


<어떻게 좀 안될까요?>9권

우리 아가씨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말해주네요.

자기야... 자기는 희망이 없어.. ㅠㅠ

그래도 다행인건 연재되는 동안은 이들이 연애를 할리가 없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희망고문은 계속되는거공. 


<달콤 달콤 & 짜릿 짜릿>3권

아직 독서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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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은행나무



특히 모녀관계와 부녀관계에 대한 파트가 여로모로 저 자신에게 '재의미'를 부여하는 기회가 되었던 책 이었습니다. 몇년만의 여사님의 책인지 정확히 기억하는건 아니지만, 블로그에 있는 포스팅을 찾아보니까 대충 2008-2009년 언저리가 마지막이었던것 같아요. 2000년대 후반에 조한혜정과의 서신집인 <경계에서 말한다>를 읽고 이분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어서 <결혼제국>를 읽게되었습니다만, 여기서 꽤 강한 데미지 받고 한동안 다시 여사님의 책을 읽는 걸 포기했는데 친구 A양의 지속적인 영업과 최근의 여혐 이슈, 그리고 때마침 도서관에 이 책이 있어서 빌려서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읽게 된걸 만족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말로는 치즈코 여사안에는 두가지 영혼이 공존하고 있다고 도쿄대 첫 여성 사회학 교수인 그녀와 키보드 워리어(우리로 치면 진중권 즈음?)의 그녀가 공존한다는 걸요. <결혼제국>은 그 키보드 워리어의 그녀로서의 저작이고 이번에 잡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사회학자 + 키보드워리어가 혼재하지만 전자쪽이 더 강한 느낌의 책 이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이전에 읽은 책보다 덜 불편했던건 비난의 화살이 나 자신을 향하는 쪽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습니다. 이분법 구조로 나눈다고 하여도 시스템에 동조하고 사는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 자신 또한 내부인인건 매한가기라서 건드려 지는 부분이 없다고 말하기는 애매한거 같습니다만. 가장 저의 와 닿던 부분은 '생산재-아들' '소비재-딸[각주:1]'로 프레임을 짜서 보는 부분이었습니다. 모녀관계나 부녀관계 파트도 강하게 각인되긴 했지만요. 전자쪽은 파트를 하나로 할당해서 설명했던 부분은 아니었는데도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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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Acquaintance Rape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로빈 월쇼, 일다



데미지가 굉장히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서술이 비교적 안전하게 서술된 느낌-대응 메뉴얼이 있었던 점이 그러했던거 같아요. 지속적인 노력을 담은 부분도 그랬던거 같구요.-을 받았던거 같기도 하고 성폭력 관련 저작을 이전에도 몇권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충격적 이었던 책은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이었어요. 그리고 두번째는 아마도 삼인에서 출간되었던 성노동종사자 이었던 분들의 글쓰기 치유책 이었던거 같아요. 솔직히 안전하게 느껴졌던건 저 자신이 트라우마가 없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외상이 재상연 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추행을 당한 수준이 낮다면 낮은 정도 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을 읽을때는 저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데미지가 엄청났었거든요. 멘붕이 되는 수준 이었어요. 그때는. 전철에서 읽다가 울컥하고 한동안 그책을 읽지 못해서 좀 쉬어가면서 읽고 다시 읽어나가고 그랬어요. 

여하튼 각오를 다지고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뚜껑이 열리게 하는 통계 자료를 봐도 그다지 뚜껑이 열리는게 아니었던건 내가 사는 국가도 여성을 향함 범죄 수준이 그러하기에 그런점을 그걸 현실로 직시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에서는 미국 사회에서는 그런 메세지-남성의 성욕구 표출의 정당화, 데이트 성폭력의 정당화-가 대학내 남성 서클이나 운동부 탈의실과 매체를 통해서 어떤식으로 계승되는지 말하는데 저 자신이 그런것들을 피부로 느꼈던 지점은 중고생 대상으로 하는 일본 순정 만화에서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남자는 성욕을 조절하는 것이 힘든것이 정상적이며 보통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강압적으로 키스하거나 성관계를 강요해서 삽입하는 것이 지극히 보통이라는 메세지를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줄기차게 던지고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그건 여전히 현재형이라서요. 

혹시 그들-저자-은 실제로 청소년 시절에 그런 데이트를 반복적으로 해왔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상대방의 행동이 성추행 혹은 폭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남자라고 해서 늘 오케이인건 아닐텐데 말이에요. 매체속에서 그려지는 아가씨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허용하지 못한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거 같아요. 뭐랄까 연애를 하면 섹스도 따라오는 의무인 느낌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저의 기억엔~)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공개적으로 학교에서 하는데도 자신과 그리고 상대방-나를 좋아한다는- 그리고 주변 학우들 모두 아무도 상대방의 그런 강압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꾸어어어...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이 내가 좋다며 그런 행동을 했는데도 말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자나요. 이런식으로 사회화 되어서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학습하고, 내현화 했으니까 현실이 아닌 상상의 공간에서도 이야기가 그런 흐름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사실 저 자신만해도 낯선 사람에 의한 성추행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피해자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는)아는 사람에 의한 기습 키스나 뽀뽀가 성추행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건 비교적 최근이었습니다.................. 하하하. ㅠㅠ  부끄럽다. 좀더 정확히 말하라면 뭐 걍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거 같아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그냥 그냥 술마시고 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성추행인데도 말이에요. 좋아서 행동했다는건 상대방의 핑계에 불과한건데도 그 논리를 저도 수긍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런 망상을 가지고 있고 그걸 매체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하는건 명백한 자유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매체를 읽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인지는 하고 그려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들어서 좀더 빈번하게 하게되었습니다. 시스템에서 제도적으로 올바른 성교육을 시켜주지 못한다면, 청소년을 대상인 매체에서라도 올바를 데이트 정보를 전달하는것이 바람직한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가 내 망상을 발현하는거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사회화 된 것들을 재상산 하고 있는거이기도 한데 그거에 대해서 자기 자신은 어떤식으로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상산을 표현의 자유 혹은 상상력에 의해서 나왔다고 봐야하는건지 아니면 사회화의 결과물이라고 봐야햐는건지도 고민의 주제중에 하나에요. 그런식으로 행동해야지만 좋아함을 표현하는것라는 공식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방식을 우리가 처음부터 그걸 선호했는지는 알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런 선호가 있었는지 그렇게 선호하도록 길러졌는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솔직히 저는 대부분 후자쪽에 가까운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1. 생산제로서의 아이에서 소비재로서의 아이로 변화한 점 등, '아들보다 딸을 키우기가 더 편한' 시대적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가 더 이상 육아 투자의 회수를 기대할 수 없는 '소비재'가 되어 '딸을 키우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늘었다면 이것은 육아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 반증하는 것이 될 테다. 반대로 아이가 생산재(미래에 회수할 것을 기대하여 현재 투자를 행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수단)인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주저 없는 남아선호가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황실에서 남아는 분명한 생산재이다. -p111, 제6장 황실과 여성혐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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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548일 남장체험>

노라 빈센트, 위즈덤하우스 




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책 표지를 처음 봤을때는 이 책이 소설책 인줄 알았어요. '남장체험'이라는 텍스트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고 책의 표지도 소설책 같다는 뉘양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거든요. 소설책에서나 볼법한 텍스트의 서체로 적힌 제목 위에는 작게 고딕체로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남장체험 소설이었다면 지나갔을거에요.

책을 빌린 이유도 솔직히 개인적인 흥미가 동해서 그런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남성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고통이 여성과 매한가지로 억압받는 고통이라 한들 여성으로서의 삶의 안에서 경험한 것들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의 어떠한지 알아야겠다는 목적보다는 그들이 누리는 젠더계급을 기반한것들은 어떤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성취감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최근에 저의 이슈는 과거의 저 자신이 받았던 피드백들이 저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성차적인가 아닌가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어려움과 불편함은... 복잡 다양했습니다. 아 뭐라고 말해야할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머리로는 이해하는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야하나요? 남성또한 가부장적 사회의 기반아래에서 요구받고 억압받는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전 그걸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쪽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뭐 암튼 그렇습니다. 오늘 도서관의 반납일이라서 서둘러서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이 책을 통하여 뭔가가 많이 남았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거 같아요. 


으음. 좀더 노골적으로 솔직하자면 후반 어느부분까지는 저자의 흐름에 공감하며 따라갔지만, 전 여전히 그녀처럼 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제가 느껴지기엔- 공감하기 힘들었던거 같아요. 마지막 파트의 남성 집단에서의 체험 부분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어요. 자신의 배우자너 반대쪽 성의 부모를 칼로 난자하고 싶다던가...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때는 특히나 더 힘들었습니다. 처음 그녀가 그랬던것 처럼 그들의 그말은 위협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그런 그들의 고백을 불편해 여기다가 갑자기 어느 시점에 시공간을 이동해서 다른곳에서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있었어요. 분명 여기에 같이 있었던 저자는 저 멀리 가버리더군요. 그것도 순식간에. 그들안에서 나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고 커보이기만 하는 모습은 실제의 자신을 크게 띄워서 평가를 받기 위함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거 같았어요. 

저자도 지적했지만, 이 집단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들의 어머나와는 멀어지기를 희망하며 아버지와는 화해하기를 희망한다는 설명에 저는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의 저자 테리 리얼이 떠올랐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그들 또한 희상자라는 것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많이 느꼈던거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 요구되고 강요된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누리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솔직히 그들의 고통이 와닿는건 아니었습니다. 근육질 남자이기에 받는 대상화에 대한 어떤 남성의 고통스러워하는 고백을 보았음에도 저는 여전히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민감한쪽이 아닌 남성은 타고난 그런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중에서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구요. 현실에 없는지 있는지 모르는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시스템 안에서 보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꺼라고 믿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으로 부터요. 네. 저는 화를 내고 싶은거 같아요.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그리고 여전히 성차를 적용하며 받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녀가 말했듯이 가부장제는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강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역할을 나눈 것이기도 하다는 말은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저 자신이 이 시스템에서 보호받고 누리는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런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제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갈망만 키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보다는 그런식으로 사회화 되고 사회화 시키는 우리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것들에 대해서 한치의 의문이 없는 점이 더 화가나는거 같아요. 그게 왜 당연한건지... 그건 이상한건데 말이죠. 언제나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거에 대해서 제가 아이와 청소년 시절에 어른들에게 받은 피드백은 대부분 싸가지가 없다는 말 이었던거 같아요. 성차가 당연한 거라면 그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그 논리가 모순적일지라도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기대가 다르고-성차에 따라서 요구받고 기대받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에 따라서 강하게 비난받는 것이라는 걸 어릴때 알았다면, 그때 받았던 고통의 종류는 분명 달랐을거 같거든요. 제가 아둔한 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게 성차에 따라서 다르다는 인식이 매우 낮았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던지는 메세지는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평등하고 공평하게 양육하고 있다고요. 

다 성장한 저는 여전히 그 이유에 물려서 모든것들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그렇지 못했을때 크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편입니다. 공평하다는 건 환상이라는 걸 심리학 개론책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공평한 세상을 기대하고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기를 희망하기에 여전히 그 이슈에 민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모든것은 제가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었고 그건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주양육자로 부터 매일매일 지겨울 정도로 받는 피드백 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것은 별로 많지 않았어요. 자기 혐오나 부정으로 흘러갈 뿐이죠. 분노를 허용받는 남성의 입장이었다면, 그런 사회회에 대해서 분노하고 폭발했겠지만-그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비난받는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안으로 안으로 곪아 갔던거 같습니다. 물론 분노를 표출하는 입장이 더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가부장제를 동의했다고 하는 그녀의 주장은 매우 불편하게 다가오더군요. 그건 온전하게 동의한게 아니었어요. 강요받고 강요받고 또 강요받아서 결국에 동의하게 된 구조에 가까운거죠. 그걸 어떻게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엄연한 폭력이었습니다. 가치관과 프레임을 소유하고 있는 어른들에 의한. 


개인적으로 받았던 느낌은 이정도로 하고, 책으로 넘어가보면 이 책은 총 8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남장을 해서 남성만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이 파트 1에. 그리고 나머지 파트들은 그녀의 남장의 생활을 그린 '남자의 우정', '남자의 성욕', '남자의 사랑', '남자의 삶', '남자의 일', '남성의 자아 찾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정 파트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들이 애용하는 당구클럽의 회원으로 성욕 파트에서는 스트립바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 사랑에서는 남성으로서 이성과의 데이트를 하는 여려움과 좌절과 그리고 여성들(?)의 극과 극을 향하는 남성에 대해서 기대하는 이미지에 대해서. 일 파트에서는 레드볼 영업사원으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마지막이 문제의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 체험. 마지막이 다시 여성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자의 사랑의 파트에서는 저의 동생이 연애를 하면서 어렵고 혼란스럽게 느끼던 지점에 대해서 저자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평등하기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자가 리드해주기를 원하는 여자들에 대한 서술이 그러했어요. 그녀의 설명은 솔직히 여자들을 일방적으로 탓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공기같은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많은 부분을 영향받고 영향끼치고 있으니까요. 점차 바뀌어 가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존재하지만, 과거-더 근본주의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해봅니다-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리고 그것들은 여전히 문득 문득 주변에서 그리고 저 자신의 안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여자들의 남성에 대한 기대는 강요받는 기대와도 비슷합니다. 사회적 성공과 그리고 여성적인 삶을 동시에 기대하는... 그건 솔직히 지금의 시스템에서 공존하기 힘든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사회적 성공안에서 여성적인 삶을 반드시 영위해야 한다는 건 솔직히 그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이 위해서 가지고 있는 환상이 아니고 뭘까요? 그건 그들이 혹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 한데 말이에요. 


마지막 파트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인지 소잔인지 자아 분열인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한동안 상당한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동에 입원하기도 하고 자가 격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낀건 마지막 파트의 자아체험에서 학대를 해달라고 다른 집단원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부터 받았었습니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받는 것들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하면 그런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자책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성으로서 돌아오고 나서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성으로 보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결국 삶이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계속 그 자아 체험에서 그들이 말했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구체적인 것들을 고백하는 부분이 계속 머리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체험은 멜라니 클라인의 <아동의 정신분석>을 읽고나서랑 상당히 비슷한거 같아요.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싶어한다는 걸 그들의 놀이의 상징화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는 클라인의 해석은 매우 위협적 이었습니다. 

분명히 저의 안에서도 그런것들이 존재하기에 불편하게 다가온건 알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누군가를 특정해서 어떤식으로 죽이고 싶어하는건 저의 망상속에서는 없었거든요. 자신을 위해하는 상상이 늘 차지했지. 저 자신이 주로 하는 생각은 특정 타인이라기 보다는 과거에는 저자신에게 그 방향이 향했고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포함한 전체-인간이라는 존재-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차이는 무얼까 생각하고 있는거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늘 '차이'에 집중하는 타입이라서 방향성의 차이의 유의미함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거 같아요. 어떤식으로 흘러가야 거기에 도달하는지에 대한 의문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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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1,2 

-버리기 마녀의 탄생, 버리기 마녀의 심플 라이프 

유루리 마이. 북앳북스



사실 크게 기대 없이 읽은 책 이었는데요. 생각보다 저는 공감할 거리가 많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정기적으로 버릴것은 찾는걸 선호하는 편이라서 저는 그녀가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주변이랑 나누고 싶은데 주변인 중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은 저희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두분 정도 있는거 같아요. ㅠㅠ 

정리하고 버리는게 습관이 됨으로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부분을 저자는 여러방향으로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아가면서 알려주고 있었는데요. 저자가 점차 변화해가는 흐름이 여러모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자란 환경과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이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인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조용한 전환>에서 접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책에서 이런 모습으로 만날줄은 몰랐거든요. 


저자의 집은 할머니-어머니-저자 본인 3세대가 거주하는 집으로 저자는 증조모의 유품-기모노라던가-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짐들에 몹시 스트레스 받고 있었습니다. 혼자라도 정리하며 쾌적한 주거 공간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저자는 조모의 정리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하고자 노력을 하며 그 집에서 짐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저자의 방에는 증조모와 증조부의 물건들이 대량으로 있었는데 그래서 그녀가 그 안에서 발견한 타협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리하고 정리해도 할머니와 어머니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에 명확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블랙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서 점차 정리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게 되어서 그녀의 방은 다시 원래대로의 모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녀는 몸도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힘들어하던 그녀에게 남자친구의 프로포즈, 퇴직, 그리고 동일본 대진이 연달아서 일어 났고... 마침내 물건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도 전환점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살게될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도 어머니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정리 정돈은 본인에게 맡겨달라고 말하는 저자! 그리하여 그들의 집은 그녀의 손으로 새롭게 재탄생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들어오기 전에 어머니는 증조모, 증조부의 짐과 기타등등을 보관서비스로 장기 보관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어머니가 그 물건들을 버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권이 지금의 그녀가 있기 까지의 이야기라면, 2권은 지금의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고 그리고 가족들의 동의를 얻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 2권 모두 권말에 칼라 부록 형식으로 그녀의 집의 사진과 어떻게 정리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볼 수 있었지만 좀더 구체적인 쪽을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2권쪽이 그쪽에 좀더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방향을 틀게 되었던거 같아요. 지진으로 무너진 그녀의 집에서 귀중품들을 찾을 수 없었던 경험, 짐이 너무 많아서 지진이 일어나는 동안 위협을 느꼈던 경험, 막상 귀중품과 식료품을 찾았는데 찾은 식료품이 대부분 유통기한이 만료된 제품이었던 경험이라던가... 

이전에 3세대가 같이 살면서 증조부 세대의 짐까지 보관하면서 더불어 거주했던 곤충들과 마주한 경험도 힘든 경험이라면 힘든 경험이겠지만, 지진 이후에 한동안 공공시설에서 거주한 경험은 집의 의미와 물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에 대해서 그녀안에서 동일본 대지진 정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소중하다면, 보관을 하는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물건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그녀는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물건을 지고 살자는 노선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관리 할 수 있을 수준의 짐을 유지한다는 것은 동시에 끊임없이 집에 있는 물건들이 유의미 한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녀는 꾸준히 지금 집에 있는 물건들을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버릴만한 것이라고 생각되면 일정기간 눈앞에서 치웠다가 그것을 찾는 일이 없다면 망설임 없이 치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비움의 미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관리할 물건이 줄어듬에 따라서 청소의 간편함, 정리의 용이함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추는 수납의 즐거움도 발견하게 되구요. 그러면서 지금의 모습의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완성되더군요. 

이 변화는 그녀 자신 한정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 할머니, 어머니 모두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쾌적한 집이라는 것은 어떤것인가 그리고 물건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어느정도 소유하고 있어야지 편리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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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이사간 친구 집에서 그녀와 책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좋아하던 책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했던 작가님은 토노씨 이었어요. 
저와 그녀 모두에게 애정하는 작가님이자 동시에 큰선물-이라고 쓰고 빅엿이라고 말해봅니다- 날려주신 <치키타 구구>엔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전에도 그 엔딩이 똥-이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뭐 그렇습니다. 주관적으로 받은 느낌이 그러합니다. 이건 저와 저의 친구 안에서의 이미지인거죠. 이걸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고 그냥 나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라는데는 합의를 했던적이 있었는데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눈적이 없었거든요.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은 그 이유로 흘러가게 되었어요. 

저의 안에서 그 엔딩을 보고 최초로 받았던 느낌은 철저하게 이성애(근본주의)적 시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명확히 말해서 뼈속까지 근본주의적인건 (아마도) 아니지만 최초에 받았던 느낌은 그러했습니다. 어짜피 개개인이 받는 느낌은 자기안의 현상학적 장의 안에서 받는거니까 저의 안에서는 그게 펙트로 느껴지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다가오는 거구요. 
어찌하여 그렇게 느껴졌는가 생각해보니까 저의 안에서 이 양반은 젠더에 대해서 이분법적인 포지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있었고!!!!!!!!!!!!!!!!!- 이 작품이 그런 이분법적인 구조를 깨는 서사로 나아갈거라고 확신에 차!!!! 있었거든요!!!! 저의 기대와 망상안에서는 "우리 작가님은 그럴리가 없지!!!!"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라에 대해서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부분이 전 그렇다고 느꼈었어요. 라의 형태는 하나의 형상으로 정형화 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자유롭게 변화했으니까요. 어떨때는 곰, 어떨때는 청년, 어떨때는 알수 없는 존재로... 라의 형태가 어떤 형태이던 치키타와 동반자 역활을 하는 엔딩이라면 좋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것 같아요. 거기에다가 전 곰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곰의 형태로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으하하하하!!!! 몸에 꽃이 그려진 곰이라니 얼마나 귀여워요. 저의 로망을 실현해주는 긍극의 엔딩이었어요. 그건요. 말도하고 하늘도 날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거!!) 부들부들 하다는거!!!!

제가 라가 곰이 아니라 인간 여자로 살아가는 엔딩에 분노 했던건, 그 엔딩에서 받는 느낌은 '진정하게 유의미한 관계'는 남여 관계만 해당되며 출산을 해야지만 그 의미가 완성되는 근본적인-주관적에 가까운- 시각에 가까운 메세지가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와 닿았던건 저 개인적인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치키타 구구>의 이야기 안에서 그 둘의 관계는 두'연애'의 노선을 차근차근 이어가며 나아간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에 가까운 관계이었어요. 분명히 말이죠. 평생의 생의 동반자라는 것이 반드시 저러한 형태로 나아가야지만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가장 크게 왔던거 같아요. 그러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분명희 의미는 있는것이고 그 의미는 유의미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가 그린 세계와 큰 간극이 있는 이분법의 구조안에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 그들을 억지로 밀어 넣은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토노님이 엔딩을 통해서 연애-결혼이 제일 중요한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는 가치이며, 개체를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는 직간접적 메세지를 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거죠. 근데 이분의 작품들을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적 압력안에서 세계관을 구성한 판타지 이었던걸 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저의 안에서 그런식으로 재해석되어서 대안을 제시해줄 거라고 믿었던 그 부분은 어느날 지인분과의 대화에서 그 양반이 <칼바니아~>를 봐도 성차적인 부분이 과연 형평한 시각이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해준 덕분에 저의 안에서 그려졌던 망상력에 가까운 작가님에 대한 이미지는 와장창창...;;;; 이 되었습니다. -_-;;; 
그쵸. 에큐가 그렇게 화를 내고 애를 쓴 이유가 .............. 에큐는 여자이기 때문에 .................  사실 정말 대안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면 <이갈리아의 딸들>같은 세계관이 차라리..... ㅠㅠ


아무튼 저는 친구의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면서 토노의 원서들을 치우겠다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그때까지 저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알아차게 되었어요.  
그녀가 말하길 연애-결혼-번식이 제일이라고 하여도!!! 연애 라인 조차 없어서 이런 엔딩 자체가 뜬금 없지만, 제일 견딜 수 없는 부분은 라가 치키타의 가족을 모두 먹어버렸는데!!!!!!! 그런 라와 결혼해서 종을 이어나가는걸 이해가 가능하겠냐!!!!!!!!!!!!!!!!!!!라는 그녀의 외침이었습니다. 자기도 <칼바니아~>의 예고된(아마도?) 번식 엔딩은 용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라가 치키타 가족을 전부 맛있게 먹어버렸다는 사실을요............  라의 안에서 살이되고 피가 된 그의 조상들은 라를 빌어서 다시 치키타의 가족으로 태어나는 건가요? 으아아아아아.................   OTL
라가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반성하며 나아가는 부분이 좋아서 전 라가 그들 모두를 먹어버렸다는걸 기억에서 지웠더라구요. -_-;;;;;;;;;;;;;;;;;;;;;;;;;;;;;  

가해자의 사죄를 받아주는것의 범위는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생각해도 나의 고통은 고통일지더라도 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의 반성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것으로 어떠한 연대가 어느정도는 이루어 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 경험의 특이성을 생각해도 자기 부모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을 먹어버린 상대와 결혼해서 자손을 낳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느껴지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거부감 혹은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라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 안에서 치키타를 발견한다고 하여도 그가 행했던 선택과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지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하여도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한다고 하여도 그의 주변의 모든 구성원을 죽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그 빈자리에 함께 한다고, 결혼을 해서 2세를 출산해서 살아가는 것과 살아가면서 그의 외로움과 고통에 공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거 같아요. 


+
저는 덕분에 <치키타 구구>의 엔딩은 '호머포비아엔딩' 혹은 '출산장려엔딩'에서 '구조적인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타지 엔딩'에서 달월님이 말해주신 '웅녀 혹은 환웅 엔딩'으로 그리고 현재는 '조상님의 뼈와 살을 연성해서 출산하는 등가 교환 엔딩'으로 바뀌었습니다.  ㅠㅠ 이게 뭐야.................. 엉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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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신큐 치에, AKcomic



고민하다가 다른분 리뷰를 보고 구매를 결정했는데요.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ㅁ^/ 제목은 <와카코와 술>이지만 정확히는 <와카코와 술과 안주>에 가까웠거든요. 음식 만화라고 봐도 무방한거 같아요. 술과 안주에 대한 비중도 딱 좋았고, 1회 분량이 보통 6페이지 정도 분량이라서 여러가지 안주를 먹는 와카코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중의 하나 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이야기쪽 보다는 요리쪽 분량이 더 많아서 좋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와카코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에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좋았어요. 그야말로 황금 비율로 나눠졌다고 평해도 될것 같아요. 헤헷~ 

전체 에피소드는 17가지 안주와 술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특별 에피소드도 2개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1권에서 등장하는 메뉴는 연어 소금구이, 얔키토리, 계란말이, 야키교자, 호바미소구이, 고등어초절임구이, 연두부, 아귀간폰즈, 마늘호일구이, 임연수어, 아게다시토아토, 차완무시, 다이가쿠이모, 말고기회,오징어토란조림, 카키아게, 생유바, 포테이토샐러드, 소라쓰보야키, 소라마메, 카라아게, 햄돈가스 모듬회, 카니미소, 야키소바, 생춘권 ... 헉헉. 많네요. 특별 비밀 메뉴는 집에서 술, 축하주. 전체 157p가 참으로 알찬 구성이었습니다. ㅠㅠ 보다가 먹어보고 싶은 메뉴도 생겨서 요리를 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도 좀... (그래봐야 책을 덮으면 사라질 동기일 확률이 높지만요. OTL)  2015년 1분기에 드라마가 방영 예정인데 그쪽은 어떨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일거 같기도 한데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거니까요. BS제펜 채널에서 방영 예정인데 오늘이 1월 첫주를 지나서 달리고 있으니까 이미 1화나 2화는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에피소드 하나가 끝나고 남는 페이지에 간간히 작가 취재담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그중에 만두가게 관련해서 <주문배달의 왕자님> 작가에 대한 코멘트도 나와서 이런 부분들은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거 같아요. 요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입니다. 강력하게!! 참고로 만드는 과정이 나오는 만화가 아닌데도 그에 대한 묘사가 좋아서 충분히 먹는 장면이 상상이 가능한 편이에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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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달콤 & 짜릿 짜릿>

아마가쿠레 기도, 삼양출판사 



역시 매한가지로 고민했던 신간이었는데... 다른분 리뷰를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이쪽도 완전 취향이라서~ 오늘의 신간 도전은 '대성공!!!'이라능. ㅠ_ㅠ 기쁘다! 얼마만의 대성공인가!!

이 만화는 부녀 가정에서 아버지가 요리를 해서 어린 딸과 함께 먹는 이야기로 알았는데요. 배우자를 사별해서 어린딸 츠무기를 혼자 키우는 교사 코헤이씨와 그의 딸네미의 이야기 인줄 알았는데요. 여기서 예상외의 인물이 한명 등장합니다. 코헤이씨가 부담임으로 있는 반의 코토리가 세번째 주인공 이었어요. 첫만남은 꽃놀이에서 가볍게!!!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2인분을 혼자서 다먹은 그녀는 이 굶주린 부녀에게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자랑하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의 명함을 내밀고 사라집니다. 어느날 코헤이씨는 늦게 귀가하게 되었는데, 현관문을 연 그가 발견한 광경은 아버지가 사오는 도시락 밥에 질려서 티비 음식 광고(정확히는 밥솥광고...)에 얼굴을 부비적 거리는 딸네미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광경을 본 그는 큰 결심을 하고 코토리 어머니가 계시는 가게에 전화를 걸어서 식사를 부탁드리고 무작정 가게를 찾아갔으나 그녀의 어머니 대신 그녀를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또 반전이라면 코토리가 요리를 잘 하는 소녀인 줄 알았으나 ... 예상외의 반전이... 그녀는 어릴적 칼에 대한 트라우마로 칼질을 전혀 하지 못하는 소녀라능....  고로 요리는 쭈욱 코토리양이 아니라 코헤이씨가 하게됩니다. 그녀의 업무는 요리순서와 맛보기와 그리고 먹기!!! ^^;;;  (저도 맛보는건 잘하는데..... -_-후후후) 

아무튼 처음 찾아간 가게에서 여주인이 없어서 당황하는데 코토리는 그 부녀에게 밥을 해주겠다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밥이 지어지고 세사람은 사이좋게 밥을 먹습니다. 혼자서 먹는 밥보다 아빠와 마주보며 밥을 먹는게 좋다고 말하는 츠무기. 그리고 그녀의 웃는 얼굴에 코헤이씨는 큰 용기를 내서 앞으로는 아빠가 요리를 해서 밥을 먹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그리고 모자가정이라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은 코토리는 이 부녀에게 가끔 같이 밥을 먹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서 코헤이씨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셋이서 요리를 하는게 재미있다고 그의 딸 츠무기가 말했기에 그냥 넘기기지 못하고 망설임을 거듭하게 됩니다. 

고민은 하지만 이야기 구조상 당연하게(?) 셋이서 처음 요리를 만들게 되고 세사람은 행복한 식사를 하게됩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어머니 가게에서 해먹기로 약속을 하게 됩니다. 매번 우여곡절을 거쳐서 요리가 만들어지고 세사람은 행복하게 먹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이인데요. 이 작품의 백미는 딸네미 츠무기의 미소가 아닐까 싶어요. 작화가 참 이뻐서 츠무기가 너무 귀엽게 그려지거든요. >_<;;;;;;;;;;;;  러블리해요!!! 너무너무~!!!


참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해요. 권말에서 코토리가 자기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거든요. 근데 뭐 이 부분이-참고로 전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연애감정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에요. 수직적인 관계인데가가 학교라는 특수성과 그리고 상대방이 성인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거슬리거든요. 바람직한(?) 어른이자 스승이라면 본인도 같은 마음이라면 상대방이 족업할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학교에서 연애하는건 애들 입장에서는 뭔가 로망으로 그려지는데 그건 그냥 착취에 가깝게 느껴져서 말이죠.;;- 그냥 아버지 부재로 인하여 선생님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연심으로 착각하는 거 같아서 뭐 그다지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닌거 같아요. 요리 만화이지 연애 만화는 아니니까... (뭐?!!!) 2권 뚜껑을 열어야지 알겠지만요. ^^;; 어리니까 충분히 그 감정을 착각할만도 하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부재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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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1~2

히가시무라 아키코, 애니북스



지인 O님이 취향이 아니라고 저에게 주셨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입장인 저에게는 좀 뭐랄까 자극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공감이 가고 그리고 선생님의 폭력에 대한 묘사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와닿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선생님의 대하여 다르게 수용하는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간격이 벌어지는지 좀 생각해봤는데, 이쪽은 본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고 그리고 본인이 선택해서 나아간 길이라서 더 그랬던거 같기도 한데 선생님에 대한 묘사는 폭력에 대한 희화화가 크게 느껴지지는 건 아니었어요. 분명히 그 선생님에 대한 행동에 대한 관찰이 있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실에 계속 나가게 된건 자신의 선택이었던건 분명하니까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구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야 하는 부분은 저의 경우에는 선생님에 대한 죄책감에 가까운 회한이었던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만나러 가봐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그리는 시점에는 은사님이 고인이라서 그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부분은 뒷권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요. 

다만 계속 후회속에서 있는데 입시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리고 그 후에 졸업하고서도 선생님께 몇년동안 배웠던 것들에 대한 부분은 그 후회속에서는 아에 사라지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건 작가 본인의 후회가 어느정도인지 몰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루구요. 

다만 그 선생님이 본인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 좋아하실지 아닐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것이지만,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는 걸 좋아하실거 같다는 건 저자의 시선으로 걸러진 작품을 보면서도 보였습니다. 아마 만화를 그린다고 이야기 하셨어도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셨을거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것도 이해는 충분히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네. 그렇죠. 만화를 한다고 말하면 ... 뭔지 알아요. 저도. 


선생님이 원해서 선택한 영역까지 모두 본인의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가져와서 등에 지고 있는거 같아서 읽는 내내 그건 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서 수업을 늘린거죠. 당신에게 충분히 넘치도록 배려한것도 그건 분명히 선생님의 선택이었어요. 어떤 걸 받기 위함이 아니라요. 이렇게 해서 당신과 그림을 그리면서 함께 나아갈수 있다면 참 좋은거고... 아니라면 그 좌절도 본인이 가져가야 할 영역일 따름이죠.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한 영역에 대한 부분은 당신 스스로의 온전한 책임으로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가는 그 길에 만날 수 없다고 하여도 그걸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할수 없는거니까요. 만남에 감사하고 그 만남을 충분히 누렸다면 그 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순간과 삶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났고 본인의 삶의 8년이라는 시간동안 선생님과 꾸준하게 함께 걸어갔다는 것. 그건 굉장한 축복이고 그 시간을 그 선생님은 정말 반가워하고 즐겁게 보내셨을거 같았어요. 

지금에 와서 보이는 것은 지금이니까 보이는 것 이니까 그 후회를 계속 해봐야 지금의 나의 삶에 어떤식으로 영향을 주고 그 생각이 자원이 된다면 그 생각은 이어나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대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고인이라면 그 고마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어 주는것이 좀더 생산적이고 그리고 고인이신 그분도 좋아하실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은 반추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받았던 제일 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하지 못했어요. 반추에 가까운게 아닐까 하다가 읽어 나가면서 중간에 선생님이 이미 고인이시기 때문에 작품안에서 전체적으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이 책 자체가 이제 고인이신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방향이니까 그런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매체를 통해서그 마음을 담아내서 이 책을 읽는 어딘가에 있는 누구에게도 그런 은사님이나 소중한 존재인데 소원해진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큰 힘이 되어줄거 같기도 해요. 그치만 소원해졌다는 것에는 어딘가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매체의 간극을 넘고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자극을 받아도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한 선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 온전하게 선택한 것이지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밀려서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요. 버티는지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결국 자신만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극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히가시무라씨 자전적인 만화에 대해서 기대치가 낮았던 이유는 작가분의 전작중 하나인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의 뒤의 본인의 경험을 읽고 작품 본편의 에피소드들이 재인지 재경험 되는 일이 었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기대-어느정도 폭력에 대해서 희화화 하는 부분 혹은 미화-는 처음부터 내려두고 읽었습니다. 정확히는 어느정도 각오를 했다고 해야하나요? 네 각오하고 읽었던것 같아요.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떨 때는 다정했다가 어떨 때는 이해할수 없는 수준으로 사고가 비약하며 동시에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 권말 후기에 작가는 아버지 캐릭터를 본인의 아버지를 롤 모델로 했다고 고백했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신과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반영되었다는 것도 이야기 했던거 같아요. 

제가 그때 받았던 느낌은 아버지와의 기억을 지나치게 이상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과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화의 연장선으로 미화(?)하는 형식과 동시에 그 폭력적인 장면 자체를 희화화 해서 타인으로부터 웃음을 유도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유없는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을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가져오는 것도 굉장히 불편하고 용납하기 힘들었기에 불쾌함이 굉장히 크게 올라왔던걸로 기억합니다. 

부모가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워서 늘 예상범위에 벗어나는 위인이라서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을 이해하기 함든 경험은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이고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할때 이해받기 힘든 범주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걸 언어화 할때 쉽게 표현할 수 있게 전환되는 것이 개그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다고 하여도 그것에 대해서 견지하는 태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희화하 한다고 하여도 그 안에서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이 한 아이에게 (개인차가 있겠지만) 얼마나 고통의 경험이었는지에 대한 부분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히가시무라 작가에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매체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풀어라는 것은 아니지만, 뭐 간결하게라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했다면 제가 이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읽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지나체게 저의 기준으로 감정 이입을 해서 이사람이 그런 부분도 함께 가져가는데 그것을 그냥 떠나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뭐 암튼 몇년전의 저는 이 사람을 그렇게 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파리 공주>의 개그센스는 참 좋아했구요. 건드려 지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개그센스는 그만큼 매력적 이었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졌던 지점도 그런 괴로움을 희화하해서 소화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뭐 근데 모르는거죠. 매체로 표현하는 것 자체도 경험을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방식으로 재구조화 되는 것이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펙트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는 사실... 경험이 왜곡된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구요.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화실에서 티슈케이스를 그리시던 할아버님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전시회에서 그 할아버님의 그림에 선생님이 주신 피드백이 참 좋았습니다. :)  그나저나 저자분은 복받은 인생이네요. 저런 선생님을 만나기도 힘들죠. 저런 후회를 남길만한 인연이었다는 것이.... 전 부럽네요. 그럴만한 은사님이 있다는 것이. 회한의 마음이랑은 별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부러운거에요. 슬럼프에 달려와서 그사람이 격려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격려를 해준다는게... 정말 감사하죠. 나라는 개인에게 그 가능성(?)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본인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준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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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무라가의 아들> 1~3(완)

메이지 카나코, 현대지능개발사 



<언덕위의 마법사>를 읽고 반해서 고민 고민하다가.. 도서정가제 전날에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질러버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 기대한 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했습니다. <언덕~>이 너무 대단한 작품이라서 그런거 같아요. 뭐 나쁜건 아니었습니다. 성장만화인 점을 감안하면 대체적으로 좋은편 이었던거 같아요. 

큐우쪽은 개인적으로 사실 사랑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각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리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가 엄마인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큐우의 대인관계의 제한적인 부분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시각이 생기면서 각성하는데 이 친구의 관계가 오로지 그 친구를 향해 있던걸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사실 그런걸로 치면 큐우의 각인 상대(?)도 매한가지 일텐데 어째서일까 저는 큐우쪽이 더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흐름은 고등학생에서 입시를 준비하면서 좌절하고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것들이나 대학에 진학해서 점차 관계나 주변이 변화하는 시기를 천천히 잘 그려져서 그런면은 굉장히 공감이 가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큐우의 감정선 변화도 비교적 그랬던것 같아요. 

읽으면서 많이 괴로웠던 부분은 형에 대한 에피소드 이었어요. 어릴적에 당했던 그 경험-성폭행-이 그 사람의 삶을 전반을 어떤식으로 지배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뭐 그려지기는 지금은 어느정도 현실에서 잘 적응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전 애인이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본인이 역으로 제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 아니 사실은 명확하게 여전히 진행중이라는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그리고 그걸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보내줬을지, 타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경험을하고 살아왔을지... 마음이 참... 고향에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소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때 참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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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르시에>1~2(완)

호즈미, 애니북스 



책 날개를 보니 저자소개에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14> 여성만화 분위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적혀있더군요. 사실 전작인 <결혼식 전날>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관계로 첫 중편인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있는 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흐와 테오 형제의 이미지와 형제애의 원형이 잘 그려지지 못한다면 실망도 클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책 날개에서 2014년에 1위를 했다고 하니까 그 기대감이 급 올라간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전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재미도 약하고 그리고 반전이라고 하는 그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저는 '에라라라?' 이런 느낌이었던것 같아요. 뭐 사실 정말 큰 반전이긴 반전이지만요. 고흐의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라니...!!! 

형제관계라는 것이 원래 경쟁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보면 인생의 동반자적인 느낌의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이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셔 이야기를 꾸려나갈걸 기대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가장 포인트는 광기가 없는 고흐는 매력이 .... 작품내에서 테오가 말했던것 처럼요. -_-;;;;;;   그리고 일단 고흐씨가 너무 아방한 바보같아서 말이죠. 테오씨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반면에 고흐씨는 너무 무매력. 뭐 설정상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아방하게 웃는 고흐를 보고 싶었던건 아니었던것 같아요. 저라는 독자는. 그냥 동네 바보형이라니요. 그림은 잘그리지만, 아 뭐랄까 이상하다구요! 그런건!!  차라리 회피성 성격장애 타입이라고 그려지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것 같아요. 성자도 아니고!!!  전 성자 고흐를 보고 싶었던게 아니라구요! 캬악!! 

아무튼 호즈미씨 저의 형제관계의 원형에 강펀치를 날리고!!  저의 고흐 선생의 이미지에도 강펀치를 날려주셨네요. 2연타라니!!! 결론은 고흐와 테오 형제의 서간집을 읽은 분은 좀 많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둘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잘 모른다면 재미있을거 같기도 하구요. 내가 생각한 이미지가 없는편이 오히려 더 작품 감상에는 이득인거 같아요. 



*

<PIL>

야마자키 마리, 대원



저에게 야마자키 마리 선생의 작품은 생활 만화는 좋아하지만, 그녀가 창조한 세계의 이야기는 생활 만화쪽 보다 재미가 많이 약하다고 느껴지는 편이라 일부로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만화는 구미가 당겨서 보게되었습니다. 사실 생활 만화를 제외하고 읽어본 작품은 제일 유명한 목용탕 만화가 전부이지만요.-_-;; 뭔가 미묘하게 불편하다고 해야하나 재미면이 약하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거기서 깊이 생각해보는건 관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PIL>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삶의 궤적을 아니까 이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가 더 감상 포인트가 되더군요. 뭐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나 그 시대 상황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공감하기도 어려웠... 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따라가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던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타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본의 그 시기를 보내던 누군가의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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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소다수>

고마츠 신야, 한스미디어



표지가 너무 이뻐서 발매전부터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만......... 재미면에서는 많이 약했어요. 동화책에 가까운 느낌이라서 그런 전개를 좋아하신다면 좋아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그런 면이 약한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도시 분위기가 나는 반짝 푸른 마을의 하루 하루를 구경하는 재미는 좋더군요. 뭔가 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한컷 한컷마다 바다가 나오고 색감이 참 이뻐서 읽다보면 휴양지에 온 기분이 드는 책 이었습니다. <아리아>가 연상되는 부분도 있는데 이야기의 구성이나 캐릭터가 비슷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거 같아요. 후반부에는 2009년에 연재되었던 <들뜬 마음 언덕에서>라는 1페이지에서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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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운명은 태어나서 18개월까지 엄마와 맺은 관계가 영원히 결정한다

<엄마라는 병>
오카다 다카시, 이숲



제목이 여러모로 인상적이라서 오랜만에 구매한 일본쪽 저자의 책이었습니다만, 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내내 했습니다. 주변에게 주로 선물하는 저자의 책이 지금까지는 토니 험프리스의 <부부의 사생활>이나 <가족의 심리학>이었는데 이 책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쉽고 자상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책이었어요. 최근에 애착관련으로 읽었던 책들에 나오는 주제들-정신화, 메타인지, 내적작동기제, 안전기지, 애착 문제,부모의 애착유형이 자식에게 유전(?)되는 메카니즘, 애착문제로 인하여 일어나는 중독 등-을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알기 쉬운 설명과 그리고 진단명에 대한 부분은 그 옆에 추가적으로 설명이 있는 친절함. 그리고 유명인이나 오카다 다카시 선생의 내담자들의 사례까지 책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어려워서 쉰다던가 큰 거부감이 있어서 멈추게 하는 책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쉽고 자상한데 가져갈건 대부분 가져가는 점이 제일 좋은 부분인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애착 문제로 자신의 삶의 전반에 받은 영향에서 좀더 멀어지는 방법까지도요. 

다만 제목이 지나치게 한쪽성에게만 공격적인 모양이라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책도 불편함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뭐 주양육자가 엄마인건 통계적으로도 사실이지만, 그런 면에 있어서 어떤 지점을 건드린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양육에 대해서 접근하는 면모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분법적이라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포커스를 맞추는 이유는 알겠지만, 너무 한쪽성에게만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면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양육자인 엄마와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어도 다른 양육자인 아버지나 조부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면, 그 시기에 아이의 취약성은 굉장히 줄어드는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분법적인 저자의 다른 책중에서 <아빠라는 병>도 있던데 이 책은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졌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국내에 아직 번역된 책이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이 책과 그책은 커플링을 이루는 책같은데 번역된 책을 볼수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보는 시점이었어요. 미와자키 감독과 감독의 어머니 관계가 그 애니메이션을 나오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사실 엄마가 아파서 떨어져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 타인의 고통이라서가 아니라 토토로의 귀여움에 빠져서 극중의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별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되었습니다. 엄마가 아픈건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지옥이거든요. 뭐 전 그랬어요.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병실에 올라가는것 같지만요. 아닌가?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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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에릭슨 상담의 핵심

<은유와 최면>

이윤주, 양정국, 학지사 



몇달전에 월덴님댁에서 북크로싱으로 빌렸어요. 고로 읽은지는 좀 지난... -_-;; 그래서 글을 적는 지금 현재는 별로 남아있는게 없네요. 밀턴 에릭슨이라는 분을 사실 잘 모르지만, 추천서라고 하셔서... 오랜만에 신청해봤습니다. 읽으면서 저의 상담 선생님과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던 시절에 나눴던 대화들이 많이 떠오르는 책 이었습니다. 사실 최면 파트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떨어져서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고 읽었던것 같고, 은유에 대한 부분은 어려모로 지금의 저에게도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의 선생님과의 대화가 가장 크게 떠올랐던 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은유'에 대한 파트이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암시하는 선의의 의도를 파악하고 긍정적인 영역으로 초점을 옯겨 갈 때, 내담자는 도움이 안 되는 감정에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된다는 느낌에거 벗어난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찾아내는 긍정적인 부분은 좌절감을 축소시키고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해 낸다."

부정적인 감정 아래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함께 찾아나가는 여정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과정이랑 비슷했던것 같아요.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혐오에서도 나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건 또다른 나를 혹은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상담자 입장에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부분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텍스트로 접하게 되어서 제일 좋았던것 같아요.

에릭슨 선생의 내담자 사례는 여러모로 기적(?)같은 느낌의 이야기도 많아서 읽으면서 내내 굉장히 놀라웠고, 그리고  저자 두분이 한국분이다보니까 우리나라 내담자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부분도 참 좋았고 여러가지로 많이 공부가 되었던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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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온 이분의 단행본!!

동화책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그래도 구매!




^ㅁ^* 

안뇽! 칼리!

꼬꼬마때 칼리가 구조되던 상황을 담은 책.

사실 그냥 칼리의 일상인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살짝 당황하긴 했음. ㅠ_ㅠ

북극곰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직면하게 하는 책.




우리 오빠 그랙픽 노블

근데 오빠가 못생겨서.... ㅠㅠ

못생겼어. 진짜.

미남인데. 미남인뎅.... 흑흑흑

이건 시리즈로 여러 인물이 나오는거 같음.

이번달에도 철학자 모모씨의 신간이 나왔음.




<엄마라는 병>은 큰 기대 없이 산 신간인데 

상당히 진국임. 주변에 사주고 싶은 책이라서 

앞으로는 전도용으로 이책을 사용할것 같음. -_-;; 


오른쪽은 포나기 선생의 책

정신분석의 이론들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책인데

상당히 방대해서 천천히 읽는 중




신간들.

1권 사고 취향이 아닌 책이 좀.... 

<PIL>이 심히 그러했고;;

이 양반은 그냥 자기 생활만화가 제일 재미있는것 같음. 쿨럭

<비하인드 스토리>도 좀... <꽃과 토끼>도 뭐.

탈을 쓰는 설정을 빼고는 그냥....

읽으면서 그림을 할할할 하는데 세계관을 욕을 한바가지 한 <내 친구 이야기>

아 일본 만화에서 만나는 여성비하 쫌!!!

이제는 진짜 짜증이 나는걸 넘어서... 편견이 생길라고 하는 수준임.

내가 이걸 말하니까 친구 ㅇ양이 말하길 그게 펙트라고;;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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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이야기>

글 카와하라 카즈네, 그림 야마카와 아이지, 삼양



<양팔 오뚝이>를 읽고 그림과 이야기 모두에 반했어요. 실로 오랜만 이었습니다. 작화, 이야기, 연출 모두에 반한 작가는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흑백 원고에서는 느껴지는 섬세하고 매력적인 필력이 칼라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  2014년에 만난 최고의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그림체와 잔잔하게 그려지지만 결코 잔잔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도 취향을 직격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야마카와 아이지 선생이 그리고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작업한 <내 친구 이야기>는 이런 이유-스토리가 야마카와 선생이 아닌점-로 살까 말까 좀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비교적(응?)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던것 같아요. 생각할 꺼리가 많아졌다는 기준으로 치면, 좀 미묘해요. 독자인 저는 그 엔딩에 상당히 불만이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에 나루가미가 개입하는 구조가요. 정확히는 그 관계에서 전달하는 '가치적'문제가 그러했어요. 그냥 남여관계의 연애가 아니라 그 구조의 아래에서는 다른것들을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거든요. 가볍게가 아니라 무겁게요. 

모에와 에이코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참 좋았고, 그리고 그걸 풀어 나가는 방식도 상당히 좋았던것 같은데... 먼가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내내 턱턱~하고 걸렸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고... 트위터에서 1차로 풀고 나서도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뭐랄까 최근 인기작인 이 양반이 스토리를 작업한 다른 작품 <내 이야기!!>도 뭔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걸 느끼고 전권을 치웠을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그토록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임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설사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제공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인지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는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두사람은 자신들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는 완벽한 관계에 가까웠어요. 아니 완벽한 관계에요.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부족하게 느끼는 점이 없었으니까요. 그 관계로 충만되고 행복하고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그렇지만, 모에는 자신은 에이코와 결혼을 할 수도 그리고 에이코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출산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어요. 에이코에게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지 물어  봤을때 에이코의 대답은 "그치만 난 충분한걸! 충분히 해복해! 이만큼 친한 친구를 사귀는 건 남친 만들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모에의 대답은 "충분히 행복하다니 왠지 좋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독백은 " 에이코, 난 네가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었으면 좋겠고 널 기쁘게 해주고 싶어. 슬픈 표정 짓게 하거나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남친 만큼은 줄 수 없어. 남친과 함께 있는 해복이나 결혼, 출산 같은 그런 행복은 아무리 해도 난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모에.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그녀 에이코의 결혼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볼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고난과 기쁨을 늘 함께 할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양성의 결합안에서 관계에 대한 축복으로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해야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해야 겠지만, 결혼과 출산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나고 매우 다양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제가 좀 이상한건가 하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왜 자신과의 관계에서 충족되는 것들보다 그것들을 더 고귀하고 가치있게 느끼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습니다. 적어도 에이코는 지금 이순간 거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행복해 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모에는 무엇을 보고 자라서 저렇게 느끼고 있는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에이코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 관계에서 에이코와 달리 모에는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 같은 남자를 -정확히는 에이코와의 관계에서가 답에 가까운거 같지만- 만나서 그녀와 닮은 얼굴의 아이를 출산하고 함께 키우고 싶은 욕구가 그녀에게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외모에 호감이 있어서 고백한다고 해서 사귀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누가 규정한 것일까요? 내 소중한 시간을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투자하여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의미있는 일일까요?

연애를 하지 않는 인간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요? 

연애를 해야만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일까요?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관계는 남여관계 한정으로 아름답게 미화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보통 남성간의 특별한 우정 관계에서도 저런식으로 생각하며 괴로워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거 같아요. 내가 남자라서 너에게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고 슬퍼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자신이 여성인데 성별을 잘못 타고나서 괴로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저는 접해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매체에서도. ... 으으음.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담당한 다른 이야기 <내 이야기!!>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연애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을 자신의 친구도 느끼길 희망하고 그리고 그에게 연애의 즐거움을 불러 일으켜 주려고 애쓰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기준치도 다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만족치도 개개인의 가치에 따라서 달라질 텐데 그런것들은 고려함은 전혀 없이 맹목적으로 '사랑'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상대방을 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지지 못했어요. 그 안에서 어떤 폭력적으로 강요한다고 느껴졌던것 같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이 작품을 접게된 이유는 커플의 관계에서 그 관계의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제삼의 존재인 이성이 출연하여서 자신의 애인이 자신보다 다른 존재를 소중히 여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자극하는 구조로 나아가서 그랬던것 같아요. 이런 골조의 전개를 굉장히 꺼려하는 편이거든요. 제삼의 존재는 사실 핑계이고 원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그정도 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전작인 <고교데뷔>의 경우에는 단행본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런 구조의 전개가 남자쪽으로 1건, 여자쪽으로 1건이 있었었어요. <내 이야기!!>에서는 4권인가 부터 그런 전개가 시작되는 느낌이 퍽퍽퍽!! 와서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던것 같아요. 제가 견디기 힘든 부분은 이런 부분인가 봅니다. 삼자관계의 갈등. 자신들의 문제를 제삼자를 끼워서 해결할려고 하는... (???) 근데 이 작가 양반이 이런것들을 전개하는 방식이 아주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점이 더 건드려 지는 것 같아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이코의 매력을 알아주는 것이 반드시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모에가 알고 있고 그걸 에이코도 알고 있는데 뭐가 그토록 부족한 것일까 하는 그런...  

에이코가 사랑스러운 존재인건 누구보다 모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걸요. 그리고 그걸 감사하고 있었어요.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서로간에 바라봐주는 관계를 살면서 얼마나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 두사람은 '운명'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관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관계라고 느껴졌거든요. 그건 정말 축복이자나요. 살면서 그런 사람을 얼마나 만날 수 있겠어요. 남여 관계에서 주는 만족이 자신이 그녀에게 주고 있는 행복감 정도로 밀도가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에요. 

모에의 시각안에서는 아주 오래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여성 바하적 시각이 느껴졌어요. 여성간의 우정 관계에 대한 비하 말이에요. 모에 스스로가 보고 자란 것들을 기반으로 가지게 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만화가 그려지는 세계의-일본의 그리고 우리의- 베이스적 가치관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인거 같아요. 

결혼과, 출산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가치, 그리고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관계-자신에게 가장 소중한-에서 자신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녀의 독백은 깊은 좌절감이 느껴졌거든요. 자신이 주고 싶은데 줄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 

그것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것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는 차원의 영역같아요. 그걸 평가 할 수 있는 개개인 본인 한정이겠죠.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데...


가장 의아하게 느껴진 부분은 이야기 전개상으로도 모에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그녀는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고백해오면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지금와 관계를 똑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이면 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계속해서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중요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상대방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에이코와 모에는 둘이서 만나는것 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한데, 모에는 '거절'이라는 선택치는 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모에는 이성관계에서 선택권한을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신에게는 결정 권한이 없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마음을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게다가 상대방은 그녀가 자신들이 생각한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많았어요. 누가 비난받아야 할지는 명백한데도 ... 이런 지점들이 읽으면서 저의 신경을 건드리고 또 건드리고 또 건드리더군요. 끊임없이. 

'상대가 자신을 수용하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관계는 단절되는 구조'는 뭔가 이상해요. 나를 좋아하는 건 상대방이고 나는 아니자나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권한을 왜 상대방에게 넘기는걸까요? 내가 소중하다면 결정권은 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에이코와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남성 우월적 사회안에서 강요받는 폭력적인 부분이 노골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는데도 그 불편한 지점들을 굉장히 익숙하게 읽어 나가는 것은 그만큼 매체로 그리고 경험으로 많이 접해와서 그런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일본에서는 진중권 선생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가볍게 읽기 좋다는 여사님의 책을 저도 읽고 싶어지는 날인거 같아요. 우에노 선생은 조한혜정 선생과의 서간집을 통해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결혼제국>을 읽고 굉장히 불편했었어요. 근데 이야기하다보니, 그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이 비난받는 것 같아서 열심히 리뷰로 해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취약합니다만, 그래도 알려고 노력하는 편이니까(아닌가?)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는 지점까지 넘어가지 말고 '아쉬움'으로 끝난다면, 저도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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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모성애에서 자녀 살해까지, 누구나 느끼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의 양가감정에 관한 모든 것

바바라 아몬드, 간장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 '모성'에 대하여 정면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성 환상'에 대한 시각은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말에 크게 무리가 없는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기반-내적작동기제, 자기대상, 대상표상이라던가...-으로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예전에 비하여 양육의 중요성이나 그 질에 대해서 많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자신이 모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에 시달리고 있고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엄마들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걸 많이 봤어요. 뭐 이건 주변인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린거지만, 이전에 비해서 정보를 찾고 그리고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인터넷'을 통하여 굉장히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은 너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들었어요. 

사실 책을 읽기전에는 서양은 우리보다 좀 더 양호할것 같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은 사라지더군요. 동양이나 서양이나 뭐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_ㅜ 정도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비중의 문제지 그 사고의 스펙트럼은 대충 비슷한게 아닐까 싶어요. 

임상 현장에서 만난 사례와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매체에서 그려지는 모성에 대한 환상이나 이미지에 대해서 밀도있게 이야기 하며, 출산 이후 뿐만 아니라 출산 이전 그리고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다루고 있어서 모성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범위-양가감정, 괴물출산, 자녀 살해, 침해적인 엄마들, 모성애, 위기개입-를 망라하는 책 이었습니다. 

읽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고 독자에게 비교적 친절한 책 이었어요. 임상 사례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성에 대한 부분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루함이 적었던것 같아요. 출산을 고려중이거나 양육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권해봅니다. 특히나 ' 양가감정'에 대한 부분-내면화 해법 대 외면화 해법-은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

<소녀들의 심리학>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레이철 시먼스, 양철북


어려운 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기간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기억이 많이 떠올라서 그걸 소화하면서 읽는라고 오래 걸렸던것 같아요. 이 책덕분에 학창시절의 관계에 대해서 내렸던 결론에 대해서 다시 꺼내서 보고 재정의를 내리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저의 경우에는 '관계에서의 배제'에 대한 부분이 그러했습니다. 

저자가 상담이나 임상쪽 종사자는 아니지만, 본인이 피해자 입장 그리고 가해자 입장 양쪽에 속했다는 것을 어느날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소녀들 사이에서의 은유적인 폭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연구를 해야한다고 강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학교 현장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피해 경험과 가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담담하게 기술해 나아가는 구조의 책으로 학생들이 그 관계에서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나 바라는 부분-부모나 선생님이나 주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담담한 어조로 기술합니다. 

학창시절에 힘든 경험이 많았던 분이나 딸을 키우는 부모님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지만,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참고로 제가 괴로웠다고 말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안에서 제가 괴로워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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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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