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출소 정치범이나 고문 피해자에 대한 정신치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독재정권이 그런 치료를 할 리 없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그런 제안을 들는 적이 없다. 항일독립운동 이래 지배자에게 저항해 투옥된 자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옥중투사이자 영웅이지, 치료가 필요한 만신창이의 피폐한 환자일 리가 없다는 관념이 굳어진 듯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렸고 주변에서 송구스러워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도 올릴 수 없다는 식이다. 영웅사관에서 벗어나 트라우마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으며, 더구나 혹독한 경험을 한 정치범들은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만 우리는 앞서 많은 분들이 온몸을 바쳐 추구했던 평화와 평등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서승, 창비, 동아시아 평화를 찾는 여행, 인권과 트라우마, p 201



서승 선생님의 책을 읽는건 이번이 두번째 책. 


국내에 번역된 책이 단 한권[각주:1]이었는데... 이제 2권으로 늘어난걸 기뻐해야... 겠지? -_-;;

음. 단 이 양반 책 읽고 싶은 책이 많던데. 서경식 선생의 책도 2권을 합권으로 내는 이 마당에 그런걸 기대하면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 ㅠxㅠ 일어 배워야하나. 크흐.. OTL 내 일맹고수인생 3*년의 결심이 흔들리는 중. 근데 언제 배워서 ... 언제 읽어... 쉬운 말도 아닌데. OTL 

책 제목에서 주는 느낌도 그렇고 저자 서문에서도 이번에는 좀 가볍게 가자(?)는 뉘양스의 편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말을 듣고 동아시아의 탈식민의 현장에 대한 레포트 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좀 가벼운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 얼마전에 재일조선인 4세인 신순옥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재일조선인(주로 남자)이 힘든 삶을 보낸건 사실이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삶은 더 비참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 을 참 많이 느꼈는데 이번에도 참 많이 반성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용한 저 부분. 두고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냥 뭐랄까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타자화하여 그분들이 걸어간 궤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관의 필요에 따라서 재정의하고 소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자신 조차 처음 이 형제들-서승, 서경식, 서준식 세분-에게 관심을 갖게된 이유도 그런 부분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서 참 죄송스럽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신화는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끊임없이 그 이미지가 재생산되고 다른 의미로 환원되어서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점점 멀어져서 이윽고 그 간극은 어떤 노력으로도 메우기 힘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전 그런것들이 어느정도 필요했었고, 견딜수 없는 그 고통속에서 걸어갔단 그분들은 반드시(?) 올곧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그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타자화를 통하여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리고 그런 시각으로만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하고 그런 시각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며 그런 태도는 서로에게 굉장히 유감스러우며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 자신이 타자화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해서 상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며 말을 한것이 아닌데도 알게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 괴로웠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근데 제가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  하아. 뭐라고 해야할지. 



처음 서승 선생님을 알게된건 근무하던 출판사 책장에 있던 서경식 선생님의 <서준식 옥중서한> 때문이었어요. 그때 함께 사무실을 쓰시던 출판사 사장님께서 절판된 그 책을 자랑하시며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 하시는 걸 보고... 당시 품절이라서 그 책은 구하지 못했지만, 모 출판사에서 나온 <서준식의 생각>을 읽고 참 좋았었고... 자연스럽게 동생분인 서경식 선생님에게도 그리고 형인 서승 선생님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장 아메리와 프리모 레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그 기억.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자신의 생각을 그 오랜 기간동안 관철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부분-이유이었지만, 그래도 이 세분을 알고 이분들의 책을 읽게된 행운을 누리게 된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 




  1. <서승의 옥중 19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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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시공사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었습니다. 좀 울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현재가 만들어진 과거의 한 단편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른 세사람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서는 '단편들이 모인 책?'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본 내용으로 가면서 그 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끝까지 읽고나서 다시 앞부분의 세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눈물이 나오더군요. 여러가지 의미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던 말은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환자라는 대상으로만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병원 밖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데 병원에 오면 그 '과거'는 사라진다는 그런 부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은 여러 책에서도 많이 봤었는데요. 호세이 선생님의 잔잔한 묘사에 그부분이 더 크게 왔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희망하죠. 그게 어떤 상황이던 자기가 어떤 존재(사회에서 규정하는(가 되었던 그건 부분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나의 이력이 더 생겼을 따름. 그냥 좀 아픈 사람일 뿐이고, 좀 많이 아팠을 따름이고... 그런것들을 인정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편협한 시각은 극복하기가 참 어려워요. 편견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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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서경식, 창작과 비평사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두번째로 접하는 서경식 선생님의 미술에 관한 에세이 책이었습니다. 창작비평사의 책들을 읽다보면 외래어 표기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2002년이면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데... 서경식 선생님의 작품중에서 '프리모 레비'를 기리는 책도 <쁘리모 레비~~>로 시작하거든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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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돌배개
'고통'을 담으려고 치열하게 살았던 예술가와 그 작품들 그리고 그 고통을 보면서 서경식 선생님이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더 가깝게 알게되었습니다. 사실 <청춘의 사신>은 좀 뭐랄까 작가에 대한 설명 때문인지 좀 지루하다는 느낌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서양미술~>쪽보다 약하다는 느낌이었는데요. <고뇌의 원근법>을 보면서 그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역시 번역의 문제일련지... 책을 덮고나서도 오토 딕스의 작품들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고야의 판화 시리즈들을 처음 봤을때의 감각이랑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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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학살의 관계

리뷰/저장고 2009. 10. 27. 18:07 by dung
...어느시점까지는 '인간인데 왜 학살하는가', '인간이 같은 인간을 학살하다니'와 같은 의문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학살을 자행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정의 안에 '학살하는 동물'이라는 항목이 필연적으로 들어간다. 즉 '인간에게 학살만큼 친숙한 사건은 없다'는 생각이 훨씬 강해졌다.

-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학살과 예술, 학살과 영상, p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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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부흥하는 일본 내셔널리즘에 대한 진보적인 지식인 18인의 비판
코모리 요우이치, 코우노 켄스케, 서경식, 이연숙, 나리타 류우이치, 요시에 아키오, 이효덕, 오오고시 아이코, 강상중, 카와모토 타카시, 이와사키 미노루, 요시비 순야, 타카하시 테츠야, 요네야마 리사, 우카이 사토시, 후루타 모토오, 하세가와 히로코, 시토 마나부
삼인, 신국판,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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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려운 책 이었습니다. 뒤로 갈 수록. -_=;; 일본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관계로... 주로 논의되는 예의 그 작품에 대해서 읽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거 같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다. 

본인의 관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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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인권운동가 서준식 글모음
서준식, 야간비행, 신국판,  p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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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의 형님인 서준식 선생님의 책. 서준식 선생님에 대해서는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궁금해져서 찾아보다가 읽게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부록. 기회가 되면 서승 선생님과 서준식 선생님의 옥중수기도 크로싱 하고 싶습니다. 근데 서준식 선생님의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한 관계로 크로싱을 하게된다면 서승 선생님의 책을 먼저 할꺼 같습니다. 사실 이책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책이라서 크로싱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로 매우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분들도 보시고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어서 크로싱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소생의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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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신청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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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국가, 국민,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서경식, 철수와 영희, 신국판 변형,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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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로 소개하라면 '서경식씨의 책'.  
책 중반에 펠릭스 누스비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그외 다른분들 이야기도 꽤 있어서 <디아스포라 기행>이 종종 생각이 나곤 했음. 책은 서경식 선생님이 한국에서 강의를 한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담아서 매우 잘 읽히는 책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시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많이 달라서 '좀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숙제를 던져준 책이었다. 

소인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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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은 읽고 바로...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_=;; 기억이 잘... O>-< 우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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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북폴리오
사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내가 샀을 시절의 표지는 저 옆의 표지가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책.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주위에게 추천하는 도서가 되었다능. 발간할때 영화랑 같이 이벤트도 했다던데 조용히 사라졌던 책이라고 모님이 이야기 해주셨음. 아무래도 책의 제목의 문제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_-a
책은 '나르시즘 인격장애'를 다루고 있는 책으로 이 범주안에는 폭식증, 거식증 이런 유형의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성격의 분류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나는 사실 이 말(나르시즘 인격장애)을 처음 들어봤다. 최근 교양 수업을 하면서 이상심리학에서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본 기억이 있어서 그건가 했더니 좀 다른 범주였다. 깊이 들어가면 저변에 깔린 바탕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뭐 다른걸 넘어가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담자들의 자기의 치료의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적은 부분'이라고 해야겠다. 개개인의 문제에 대해서 치료를 하면서 자신이 바라보고 개선하고 노력했던 것들을 축약해서 적은 부분인데 이것이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 외에는... 책을 읽은지가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_=;;;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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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 철수와 영희
좋아하는 서경식 선생님의 책. 매우 끄덕이면서 읽었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이었다. 선생님은 이 나라에서 종교적인 문제를 매우 간과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악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나에게는) 거이 없었다. 
오히려 매체에서 그 나라에 대해서 신성시 혹은 이미지화(우월한 국가)에 대한 글들 또는 주장들만 봤었는데, 내가 반대되는 글들을 보지 못했다는 건가? 주류 매체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고 있으며 반대쪽은 악당으로 몰아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간에 '악당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가 이 나라의 사람들 다수에게 있다면, 그건 그 국가가 지금 하는 행동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이 나라에서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그네 나라의 상징인 건물이 불탈때 언론에서 말하는 내용과 반대의 입장의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간 저렇게 될 줄 알았지만, 저정도 일줄이야. 그들의 한이 크긴 컸구나. 그렇다고 해서 저걸 용인하거나 용납할 수는 없지만, 저런식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뭐 그런 생각들을 했던거 같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던걸로 기억하지만(아마도) 그래도 그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주류라면, 반대의 의견에 힘쓰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냥 따라가는 사람들에 대한 면죄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몰랐다', '무지했다', '살기가 힘들어서...', '어쩔수 없었다' 등등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염치 없는 인간이 아닐까 싶다. 고말을 그대로 당신들에게 돌려준다면... 당신들은 뭐라고 말할까? 당신들은 '유감이다'라는 말을 듣고싶은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으로서 누리고 있다면 '그 국민으로서 책임'도 인지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런것을 가르쳐 주는 주는 공간이나 매체는 본 기억이 없는것 같다. 물론 그 책임의 다른 범주의 교육은 열심히 받았지만 말이다. ~_~
만약 이 나라에서 파병한 군인들 때문에 피해를 본 국가의 사람이 와서 '너네 나라는  #@$@#@#@??!!!'라고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 달리 생각나는 말도 없다. 상대방이 죄송하다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그거야 말로 진정 안도(혹은 감사)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
<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 권혁범, 김기중, 박노자, 김은실, 권인숙, 유명기, 김근, 김진호, 전진삼, 문부식, 삼인
사고 보니 당대비평 특별호 이었다. 여는 글인 임지현 선생님의 글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줬다. 읽다가 몰랐던 부분도 많았고... 특히나 권혁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오잉? 하고 말이다. 그외에 뭔가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 -_=;;; 하아.
더하자면 권혁범 선생님의 책을 사볼 예정이다. 이전부터 사보고 싶었지만 글을 보고 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사보고 싶다는 건 임지현 선생님쪽이 더 강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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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제국은 당분간은 여전히 역사의 '업무상 과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역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세계사에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던 극적인 세월과 비교할 때 그다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별로 다를 바 없는 제국 시대였던 것이다. SS의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의 사진이 방 안에 걸려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유대인 선별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실업자 문제의 획기적 성공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히틀러, 히믈러, 하이드리히, 칼틴브루너 등 나치 거물들의 이름은 나폴레옹, 푸세,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와도 비슷해진다. 만일 같은 조건이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일어났을 것이라고들 할 것이며, 실제로 그것이 독일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독일 이외에서는 없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다. ...... '만행의 세계'라는 정리로 결론을 맺는다. 그 가운데서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구제받을 길 없는 자식들, 완고한 무리,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역사에 덤벼드는 반동가들이라는 것인가."
- <죄와 벌의 피안> 장 아메리

윤리 인간은 시간을 붙박아 놓고 싶어한다. ...(중략)... 시간이 모럴을 배반하는 바로 그때 그는 인간으로서 희생자와 대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장 아메리

- 기억과 증언 p46, p55,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 <단절의 세계 증언의 시대>, 삼인,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사무실에 있던 서경식씨와 타카하시 테츠야씨의 대담집을 오늘에서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동생이 엠피스리를 선물해주어서 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페이지가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페이지 페이지마다  고통스러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그리고 경쾌한 음악의 비조화가 페이지를 넘어가게 해준다는게;;;; 하아.
 
조금 다른 이유지만 돌배개에 출간된  푸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아마도)>를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매우 망설였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이건 이런거니까요. 그리고 저는 서경식씨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습니다.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망각이라는건 정말 무섭웠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절이 오늘의 이모습을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자리에서 저의 생각도 이자리에서 저의 움직임도 이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으니.
아무리 이해하려고 혹자는 나누려 노력해도 노력은 닿지를 아니하고 결국 타인의 고통은 텍스트 그대로 그만의 고통이 되어버리는 참담함. 얼마나 이해하는것의 문제를 떠나서... 사실 지금 무얼 적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이 구분지어진 그런 분류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되기가 참으로 여럽습니다. 그려. 인간답지못한 저는 오늘도 인간다워지기위해서 노력중이지만 앞으로 나아감은 그다지 없는거 같습니다.
정말 무서운건요. 저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공범자 혹은 방관자가 되어버릴 거 같다는 겁니다.
이미 공범자이자 방관자 이긴 하지만요. 저 고통의 함성은 저에게는 잘 들리지 않나봅니다. 사소한 노력인데 미동조차 없는걸 보면요. 언젠가는 함께 나아가는 날이 있겠지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마음의 결론은 비참. 참으로 비관스럽습니다. 달라질려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언제까지 계속 될련지. 설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날이 오지는 않도록 노력하는것이 현재의 저의 최선(기만일지도 모르지만...)이라고 적어봅니다.

...라고 몇일전에 적었습니다. 어제 출근길에 다른사람에의하여 저의 신체가 고통이 가해져서 약간의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후에 바로 저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거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압력을 받으면 움직이는것이 저라는 인간이었습니다. 이런 반성 논조의 텍스트도 그들을 그것들을 기만하는것이 아닌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은 그들의 이야기이었지만, 결코 우리들-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으로 제한하는 범위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대분류이기도한-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친일'이라는 모호한 정의는 여전히 건재한것이 **-우리리라는 단어를 사용할때의 거부감을 설명한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역시 기묘하게 불쾌합니다-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련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타국에의 파병. 그들만의 정의 의해서 정의로은 혹자는 의로운 인권을 위한...(끝이 없습니다. 하하하;) 평화 파병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지금의 저. 침묵하는 다수속의 저 자신이었습니다. 극복해야 할것들은 너무나 많고 그것들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마련해서 순차적으로 모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건 역시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바꾸거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모두가 중요한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작음 움직임에라도 동참해야겠다고 다시금 결심했습니다.
어제 회사의 지인 ㅅ씨와 이야기했지만 활동가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인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적극적 동참은 못하더라도 작은 동조 정도야 저의 범주에서 가능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일단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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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책중에 하나인 서경식의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여행코너의 맨 윗단에서 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전부 읽었습니다. 매우-뭐라고 단어를 골라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매우'는 아니지만 달리 생각하는 단어도 없습니다- 가슴에 오는 문체로 그자리에서 슬픈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 절망한 사람들,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인 저항의 수단을 택하고, 그에 대한 가차 없는 진압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다면, 아무리 곤란해 보여도 그 길의 앞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 자폭 같은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자폭 행위조차도 날로 일상화해 대단한 뉴스거리도 못 되고,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파괴와 살육이 식사와 배설처럼 일상화된 세계. 극한적으로 보이는 저항조차 금세 진부하게 만들어버리는 세계. 세계 그 차체가 자폭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1부 죽음을 생각하는 날중에서


많은 것들이 생각나게한 책이었습니다. 다른 저작 <소년의 눈물>에서는 어린시절 그의 상상중에 하나는 자신의 진짜 부모님은 '보통의 일본사람'이어서 언젠가 나를 이곳에서... 이곳에서... 이곳...  저도 그런 류의 상상을 했었지만, 저런 종류의 상상은 아니었습니다.
몇일전 늦은시간에 하는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우리나에서 엄연히 살아있는데 '호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룬 방송을 아버지와 함께 봤었습니다. 믿지 못할 그들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더군요. "왜?" 라고 아버지와 서로 물어봤지만 역시 납득 할 만한 답변을 서로에게 해주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아니던가. 본말이 전도된 저 모습을 보고 뭐라해야할지. 그저 개탄하며 방관자의 의무를 다하던 저와 아버지. 저역시 가장 중요한것보다 다른것을 강요하여왔기에... 결국 지키려고 하던것은 무었이었는지 망각하고 만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아니면 수많은 규율속에서 우리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인가. 목적은 같지만 걸어가는 길이 다르다는건 저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반성하는 걸까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갰습니다.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요? 그리했다고 믿고싶습니다. 비록 자기 위안일지라도.

그저 조금 울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어떤 책이라고 물어봐서 조금 울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구나." 있자나요. 그 사람은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에게 그런말을 듣는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역시나 저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거 같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불편합니다. 매우. 불편해하는 저 자신에게도 화가나지만요. 아아 화가납니다. 극복하는건 매우 어렵습니다. 평생 노력해도 가능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역시 우울한건 우울한겁니다.

힘을내세요. 힘을 내주세요. 저도 힘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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