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히틀러 제국은 당분간은 여전히 역사의 '업무상 과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역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세계사에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던 극적인 세월과 비교할 때 그다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별로 다를 바 없는 제국 시대였던 것이다. SS의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의 사진이 방 안에 걸려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유대인 선별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실업자 문제의 획기적 성공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히틀러, 히믈러, 하이드리히, 칼틴브루너 등 나치 거물들의 이름은 나폴레옹, 푸세,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와도 비슷해진다. 만일 같은 조건이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일어났을 것이라고들 할 것이며, 실제로 그것이 독일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독일 이외에서는 없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다. ...... '만행의 세계'라는 정리로 결론을 맺는다. 그 가운데서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구제받을 길 없는 자식들, 완고한 무리,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역사에 덤벼드는 반동가들이라는 것인가."
- <죄와 벌의 피안> 장 아메리

윤리 인간은 시간을 붙박아 놓고 싶어한다. ...(중략)... 시간이 모럴을 배반하는 바로 그때 그는 인간으로서 희생자와 대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장 아메리

- 기억과 증언 p46, p55,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 <단절의 세계 증언의 시대>, 삼인,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사무실에 있던 서경식씨와 타카하시 테츠야씨의 대담집을 오늘에서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동생이 엠피스리를 선물해주어서 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페이지가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페이지 페이지마다  고통스러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그리고 경쾌한 음악의 비조화가 페이지를 넘어가게 해준다는게;;;; 하아.
 
조금 다른 이유지만 돌배개에 출간된  푸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아마도)>를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매우 망설였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이건 이런거니까요. 그리고 저는 서경식씨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습니다.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망각이라는건 정말 무섭웠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절이 오늘의 이모습을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자리에서 저의 생각도 이자리에서 저의 움직임도 이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으니.
아무리 이해하려고 혹자는 나누려 노력해도 노력은 닿지를 아니하고 결국 타인의 고통은 텍스트 그대로 그만의 고통이 되어버리는 참담함. 얼마나 이해하는것의 문제를 떠나서... 사실 지금 무얼 적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이 구분지어진 그런 분류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되기가 참으로 여럽습니다. 그려. 인간답지못한 저는 오늘도 인간다워지기위해서 노력중이지만 앞으로 나아감은 그다지 없는거 같습니다.
정말 무서운건요. 저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공범자 혹은 방관자가 되어버릴 거 같다는 겁니다.
이미 공범자이자 방관자 이긴 하지만요. 저 고통의 함성은 저에게는 잘 들리지 않나봅니다. 사소한 노력인데 미동조차 없는걸 보면요. 언젠가는 함께 나아가는 날이 있겠지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마음의 결론은 비참. 참으로 비관스럽습니다. 달라질려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언제까지 계속 될련지. 설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날이 오지는 않도록 노력하는것이 현재의 저의 최선(기만일지도 모르지만...)이라고 적어봅니다.

...라고 몇일전에 적었습니다. 어제 출근길에 다른사람에의하여 저의 신체가 고통이 가해져서 약간의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후에 바로 저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거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압력을 받으면 움직이는것이 저라는 인간이었습니다. 이런 반성 논조의 텍스트도 그들을 그것들을 기만하는것이 아닌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은 그들의 이야기이었지만, 결코 우리들-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으로 제한하는 범위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대분류이기도한-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친일'이라는 모호한 정의는 여전히 건재한것이 **-우리리라는 단어를 사용할때의 거부감을 설명한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역시 기묘하게 불쾌합니다-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련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타국에의 파병. 그들만의 정의 의해서 정의로은 혹자는 의로운 인권을 위한...(끝이 없습니다. 하하하;) 평화 파병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지금의 저. 침묵하는 다수속의 저 자신이었습니다. 극복해야 할것들은 너무나 많고 그것들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마련해서 순차적으로 모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건 역시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바꾸거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모두가 중요한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작음 움직임에라도 동참해야겠다고 다시금 결심했습니다.
어제 회사의 지인 ㅅ씨와 이야기했지만 활동가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인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적극적 동참은 못하더라도 작은 동조 정도야 저의 범주에서 가능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일단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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