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이레가레가 페니스 선망으로 분석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기획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프로이트는 여아가 페니스를 선망하게 함으로써 여머니를 사랑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이로써 근친상간금기가 아니더라도 여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어머니와 의 분리)에 진입할 수 있다. 

둘째,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통해 여성의 성감대를 클리토리스(능동)에서 질(수동)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다. 이 또한 유아의 리비도적 공격성과 능동성이 여성으로 정체화되면서 수동성으로 변경되는 구실로 만들어진다.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페니스 선망을 ‘정상적 여성성’에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때 프로이트에게 ‘정상적 여성성’이란 수동성과 모성으로 규정되는 여성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리가레에 의하면 이 ‘정상성인 여성성’의 두가지 특징은 기실 남성에게 필요한, 남성을 위한 여성성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정상적인 여성은 남성의 공격성의 승화를 위한 출구로서 수동적인 여성성을 할당받고 남성의 계보를 유지시킬 아들을 재생산하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을 할당받는다. 심지어 여성이 능동적으로 아이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에게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인 생산자가 아니다. 이리가레에 따르면 프로이트에게 “여성은 다만 남성의 생산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리가레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프로이트의 성차 이론 내에서 여성이 스스로 정의하는 여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정신분석을 정신분석하다, p225 

 

뤼스 이리가레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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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적 자아

리뷰/저장고 2018. 9. 11. 23:13 by dung

명저 <새로운 여성 심리학>의 저자 진 베이커 밀러와 월즈리대학교 스톤센터의 연구팀은 인간관계와 우대감의 본질과 중요성, 특히 여성의 인간관계와 유대감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처음에는 ‘관계 속 자아 이론’으로 불렀던 이론은 성장과 발달의 초점이 분리가 아니라 ‘관계적 자아’에 있다고 봤다. 이 연구의 핵심은 타인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는 인식은 여성의 심리 발달을 좌우하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밀러 박사는 개인이 건강한 방향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자신감,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물론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지 못하도록 강고하게 사회화된다. 밀러에 의하면, 상호성은 건강한 유대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관계의 양 당사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성장 지향성 관계는 재미와 활력, 행동에 대한 자신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자존심, 그리고 유대감을 강화한다.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 진 칼본, -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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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대상화되면 우리의 자아상은 깊은 내상을 입는다. 여자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자긍심이 곤두박질치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이 물건이고 게다가 하자 있는 물건이라는 광고 메세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P25


기업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부모가 광고의 부정적 영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텔레비전만 끄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이들을 대기오염에서 보호하고 싶다면 숨을 쉬지 못하게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광고는 우리의 ‘환경’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우리는 광고 안에서 헤엄친다.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만 가둬 놓던지, 집 밖으로 나갈 때 안대로 눈을 가리게 하면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해도 광고가 보내는 메세지는 가까운 인간관계에, 우리 가정에, 마음에 머리속에 스며들어 있다. P66


광고는 또한 즉각적으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성한 상징과 언어를 동원한다. 닐 포스트먼은 이런 형태를 우리에게서 가장 숭고한 이미지를 강탈해가는 ‘문화적 강간’이라 부른다. P81


광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건을 파는 것이므로 인간관계를 표현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제를 모르는 이런 소비주의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원도 고갈시킨다. 우리를 필연적으로 나르시시즘과 유아론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와, 아이들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때 도구화와 착취 이외의 다른 방식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든다. - p93


광고는 오래 전 부터 우리에게 상품을 통해 더 좋은 인간관계를 밎을 수 있다며 ‘이것을 사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해 왰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단계를 넘어서 ‘이것을 사라. 그럼 이것이 너를 사랑해 줄 것이다’라며 우리에게 상품 자체와의 관계를 약속한다. 상품이 목적을 이루기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된 것이다. -p 97


상품과의 관계는 특히 어린이들에게서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제품이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호랑이 토니든 닌자 거북이든 리틀 포니든 말이다. -p 97


광고는 우리에게 더 많이 사라고, 상품을 통헤 정체성을 확립하고 충족감을 느끼라고, 상품 ‘선택’을 통해 우리의 개성을 표현하라고 끊임없이 충동질 한다. -p 97


더 중요한건, 상품은 우리를 배신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자동차 광고는 이렇게 단언한다. “당신이 그것을 사랑하더라도 상처 받을 일은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면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사랑은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불안함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비슷한 광고들이 쌓이고 쌓이면 인간관계에 독이 되는 냉소주의와 소외감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물건들에게는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만 인간들에게 대해서는 냉소를 보내는 것이다. -p101


이런 광고 메세지가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인간보다는 상품에 맹세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브랜드에 충상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배우며 자란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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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_ 용서는 망각을 의미한다.

실제_ 아마 당신은 부모의 학대적 통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오해_ 용서는 모든 문제가 있는 관계에 대한 해답이다.

실제_ 어떤 사람에게 용서는 어리석거나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오해_ 더 뻘리 용서할수록 좋다.

실제_ 때 이른 용서는 다시 상처를 줄 수 있다.


오해_ 상대에게 용서했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실제_ 용서는 말없이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듣고 있느냐 이다.


오해_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실제_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할 때 가장 해방감을 준다.


오해_ 용서는 상처를 없애주는 영구적 행위이다.

실제_ 용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용서를 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폭력이나 무시, 성추행, 이혼이나 학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행위를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 자신의 배우자, 혹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으로 존중하고 소중히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혼란, 그들의 미슈ㅜㄱ함과 절망, 그리고 그들의 휴머니티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 뮐러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양철북,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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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통제는 삶에 필수지만 역기능적 통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식을 바탕으로 추즉해볼 수는 있다. 이를 통해 부모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통제를 하는 50가지 이유이다. 현실 부모 혹은 내면 부모가 당신을 왜 통제하는지 설명하는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그런 다음 목록을 다시 살펴보며 다음 이유 가운데 왜 당신이 가끔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지 살펴보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과잉 통제를 한다.

- 인지적 이유
1.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2. 다른 사람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통제한다고 믿는다.
3.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통제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4. 의견 충돌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고 비판을 받는 것은 생명에 위협이 된다고 믿는다.
5. 자신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6.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7. 모든 상황은 항상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 세대적 이유
8.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자랐거나 부모에게서 완전히 혹은 건강하게 독립하지 못했다.
9. 버림받았거나 억압받는다고 느끼며 자라서 다른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자신을 버리거나 억압할 것이라고 여겼다.
10. 어린. 시절 무시당하거나 박탈당했다고 느껴서 성인이 된 뒤에도 무시를 당하거나 박탈당할까봐 두려워한다.
11. 어린 시절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 번도 느끼지 못해서 지금은 관심 받기를 고집한다.
12.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모델을 갖고 있다.

- 정서적 이유
13. 안전과 의존에 대한 잣니의 욕구를 두려워해 감정을 마주하는 대신 합리성만 추구하려 든다.
14. 슬픔, 분노, 후회로 가득 찬 거대한 저장고를 애써 회피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매개체로 여긴다.
15. 자신이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늘 냉담함을 유지한다.
16. 신체상이 낮고너 성에 대한 갈등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더 건강하거나 젊은 신체에 질투한다.
17. 정서적 대처 기술이 약하고 감정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능력이 없다.
18. 다른 사람들의 행운을 부려워한다.
19. 우울, 불안, 중독 증상, 빈약한 충동 조절 능력 등을 보인다.

- 힘, 만족감 관련 이유
20.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21.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22. 약하거나 무력한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을 대단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23. 통제에 중독되어 있다. 통제는 마약이나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발휘하게 한다.
24. 복수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표출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한다.
25. 그냥 단순히 비열하다.

- 무의식적, 존재적 이유
26. 자신에게 약점이나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27. 자신, 배우자, 상사, 부모에게 화가 나 있지만, 그들보다 위협적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28.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어떤 아버지는 정리정돈에 강박을 느낄 수 있다. 어렸을 적 멍청한 아이 취급을 받은 어떤 어머니는 아이에게 똑똑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다.
29. 자신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30. 다른 사람을 자신이 가진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지나치게 의심한다.
31. 힘 없고 수동적인 희생자가 된 듯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된다.
32. 자신의 약한 면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위에 아이 같은 작고 힘 없고 약한 존재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33. 별로 달갑지 않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겸허한 현실을 인정하기 두려워한다. 우리 모두 힘이 있지만, 위험한 사건들은 무작위로 일어날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의 통제 밖에 일들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34. 현상을 유지하고 인생의 복잡한 질문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강압적 규칙과 엄격한 신념이 필요하다.
35.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 혹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통제한다는 점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이의제기를 못 하게 한다.
36. 자신의 문제, 결함, 감정에서 신경을 분산시키려 애쓴다.
37. 다른 사람의 취미 생활이나 친밀한 인간관계에 분노한다.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사랑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자존감 관련 이유
38. 자신에게 자기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보다 더 나은 어떤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39.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원한다.
40. '내 아들은 의사이다'처럼 다른 사람의 성취가 자신에게 지위를 부여하기를 바란다.
41. 부모와 성인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
42. 아름다움, 유명세, 권력, 돈 등을 지나치게 중요시한다.

- 대인 관계 관련 이유
43. 사람들에게 하인, 주인, 대상물 같이 한정된 범위의 역할만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을 대한다.
44. 한 사람이 돌봄과 거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안전한 거리를 둔다.
45. 부모 주위에 있을 때 자신이 물건 같다고 느껴서 다른 사람들을 대상물로 보는 경항이 있다.
46. 자신의 욕구나 두려움을 다른 사람의 욕구와 두려움과 구별하는데 서투르다.
47. 다른 사람의 신체를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여긴다. 한 남성은 아버지가 자신을 아버지의 갈비뼈에서 튕겨 나온 걷고 말하는 동물로 여겼다고 말했다.
48.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꿈을 좇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구해주려 한다.

- 환경적, 사회적 이유
49. 자신이 충족하지 못한 욕구에 압도된다. 경제, 사회, 일, 신체, 결혼 생활 위기와 마주하는 것에 압도된다.
50. 건강한 인간관계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지 않는다. 과잉 통제를 권장하는 사회, 문화 가치에 동의한다.

- <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양철북, 통제자가 느끼는 두려움,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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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자본 & 매력자본

리뷰/저장고 2016. 10. 23. 16:38 by dung

이런 변화는 여성에게 외모가 본성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이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이것은 부르디외의 '육체 자본'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 자본을 생산한다는 것은 사회 분야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몸을 개발한다는 것을 뜻한다." 몸은 계급의 상징물이 됐다. 걷거나 코를 풀거나, 먹고, 마시고, 말하고 등등 몸을 통한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개발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문화이다. 훌륭한 육체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상층계급의 표상이 된 것이다.

- 외모 콤플렉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115p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하고,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여성성 억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성성의 회복의로 남성 중심 사회의 가치 전복을 꿈꾸었고, 여성의 매력이 여성적 권력을 획득하는 자신이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요즘 20대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캐서린 하킴의 <매력 자본>이 그런 주장의 중심에 있다. 하킴은 부르디외가 말한 경제 자본(자본, 토지 등 재정적인 이득을 발생시키는 자원과 자신의 총합), 문화 자본(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과 문화적 지식과 문화적 가공물의 총합), 사회 자본(인맥, 사회적 관계 자산)에 매력 자본을 더했다. 하킴은 이성을 매료하는 외모와 태도가 매력 자본이라면서 매력 자본도 가치 자산을 창출하는 자율적 가치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연예인이나 여성의 성공 사례를 보면, 실제로 이성을 매로하는 외모와 태도가 경제 자본이나 사회 자본만큼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력 자본은 여성에 유리한 자산인데, 남성의 성적 욕망이 여성에 비해 크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서 여성이 매력 자본을 이용해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 자산만 인정하고 신체적 자산을 무시하는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가부장제에 동조하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 외모 콤플렉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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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된 섹시즘

리뷰/저장고 2016. 10. 23. 16:33 by dung

각성된 섹시즘이란 섹시함이 자기 계발의 요소이자 성공 전략의 방법이 됐음을 설명하는 수전 더글라스의 개념이다. 섹시즘을 성차별주의로 옮기지 않는 것은 섹시즘이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별주의를 전략적으로 스는 새로운 경향성을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각성된 섹시즘은 페미니즘 덕에 여성이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이 성취됐으니 이제 '재미로' 소녀들, 여성들의 성적 고정관념을 부활시켜도 좋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여성의 평등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계산된 여성 이미지(얼굴 표정, 몸, 유혹, 섹슈얼리티)를 통해 진정한 파워, 재미로서 파워를 얻는다는 방송들이 솓아져 나온다고 한다. 이제 다 가졌으니 시간과 에너지를 외양에, 남성 유혹에, 핫한 것에 쏟으리고, 다른 여성들과 경쟁하고 쇼핑하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 외모 콤플렉스,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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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여성의 삶은 실상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상대적인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적 위치에 따라 남녀의 상황이 다르게 들어나는데, 불평등이 눈에 띄게 들어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열등하고 불안정하며 가정 역할의 연장선에 있는 역할만 주어진다. ...(중략)...
형식적인 성평등 사회에서 성장한 젊고 똑똑한 여성들은 이미 남성의 능력을 추월하고 있으며 이들은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페미니스트 같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여성운동의 무게중심은 정치 운동에서 자기 계발로 이동한 듯 보인다. 자신의 미래는 앞서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가부장적 사회와 맞서는 싸움이 아니라 자존감을 얻기 위해 자신과 벌이는 싸움 앞에 놓였다고 본다. 직장에서 일정한 직위 이상 승진할 수 없도록 막는 유리천장은 능력이 있고 담대한 여성이라면 깨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유리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호기로운 생각과 달리 많은 여성이 여전히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사회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남성에 견주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불안정한 고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여성다운 여성이 환영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할 말이 있어도 억누르면서 '나대거나 설치는'여자로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여성들은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이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모순된 양상 속에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성평등 이면에 감춰진 불평등 때문이다. 성평등을 이미 정해진 일로 생각함으로써 여성들이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이 은폐된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16p


여성의 자기 비하는 겸손이라는 아름다운 겉치레와 칭찬으로 가려지기 쉽다. '여자답다', '얌전하다', '참하다', '요즘 보기 드문 여자다'같은 말은 더욱 여자다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한 인간을 여성으로 만들어간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라는 보부아르의 명제가 이를 잘 말해준다. 콤플렉스는 바로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상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그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여성 콤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엄마딸 콤플렉스 등은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생긴 여성 콤플렉스다. 
무의식에 잠재한 여성 콤플렉스가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제약하는지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교육과 대중매체, 신화와 종교 등을 통해 체계적. 일상적으로 특정 여성상이 주입되고 세뇌되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를 깨달아도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힘겹고 고통스럽다. ...(중략)...
여성 콤플렉스는 개인적 문제나 타고난 기질과 심리적 원인보다는 사회 경제 문화 등 외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도, 여성 개인의 내면에 뿌리내리기 때문에 내적 장애료 여겨져 왔다. 여성 콤플렉스는 심리적 사회적 원인이 중층적으로 교묘하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탓에 그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더구나 성평등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진 오늘날의 여성 문제는 좀처럼 논의 대상이 되기 힘들고 다른 사회적 현안에 밀려 묻히기 쉽상이다. 따라서 여성 콤플렉스를 바로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는 반드시 두 가지 시선이 필요하다. 여성 내면에 드리운 장애를 파악하는 시선, 여성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의 내부를 총제적으로 통찰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19p


여성이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은 성취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는 아직 이르다. 혹독한 억압으로 점철됐던 여성의 삶이 이만큼이나마 짐을 덜었다는 것만으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으루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야한다. 그와중에 개인적인 노력과 책임으로 성공을 추구하라고 다그치는 신자유주의는 여성의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개인으로 파편화해 '여성'이라는 범주를 해체하고 있다. 또한 소비적 물질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실패한 삶은 가차 없이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사회적인 문제까지 개인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37p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로맨스 부재를 암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혼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노처녀'라는 점을 부각하고, 기혼 여성의 경우 사회적 직업적 성공과 업적보다는 가정 문제를 부각하거나 혼인 및 가족 관계를 먼저 언급해 그가 가진 지적 능력을 상쇄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 지적 콤플렉스,  158p


 딸이 자기와는 달리 멋지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성공 욕망을 투사한다. 이런 투사적 동일시 때문에 엄마와 딸은 엄마와 아들보다 심리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엄마가 딸에게 모순된 기대를 갖고 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딸은 그때그때 이랬다가저랬다 바뀌는 엄마의 기대와 상반된 가치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 딸은 주체적 삶을 살라는 요구를 받고 여자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그러다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결정된다는 현실 앞에서 분열한다. 사회와 부모가 요구하는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딸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분리되지 못하고 '나'자신이 아닌 엄마의 딸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의 투사적 동일시와 딸의 심리적 불안이 빚어내는 의존관계가 엄마 딸 콤플렉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엄마 딸 콤플렉스이 탄생,  215p


낸시 초도로우<모성의 재생산>에서 말했듯이 엄마와 딸은 역할 동일시인성적 동일시를 통해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하고 독특한 애착 관계를 일생 동안 유지하게 되므로, 딸은 엄마로부터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 
- 엄마 딸 콤플렉스이 탄생,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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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가 말한 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즉 '모성 신화' 때문에 느끼는 고립된 기분을 나는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실비아를 사무치게 사랑한다. 하지만 모성 신화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다. 모성 신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만의 야심도 호기심도 욕구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다.

- 도망칠 수는 있어도 숨을 수는 없다, p 88


가사 노동 때문에 비슷한 분노와 좌절감을 맛본 적이 있다면 팻 메이너디가 슨 <가사 노동의 정치학>을 읽어 보기 바란다. 펫 메이너디는 1970년에 내놓은 이 수필에서 "참여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라고 적었다. 책에는 메이너디 부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어 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였기에 가사 분담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처음에는 기분 좋게 가사 분담에 동의했지만 막상 해야 할 일들을 앞에 두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의무에서 빠져나가려 들었다. 팻 메이너디는 남편의 우스꽝스럽가까지 한 핑계들을 모아 정리해 두었다.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 것까지는 괜찮아. 그런데 난 아직 일에 서투르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당신이 먼저 보여 줘."
숨은 뜻: 앞으로 나는 일을 할 때마다 당신에게 방법을 물어볼 거고, 그럴 때마다 당신이 나에게 일하는 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어야 할 거야. 왜내하면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까. 또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앉자서 책이나 읽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당신이 직접 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당신을 약 올리며 괴롭힐 테니까."

"우리는 일의 성과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라.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당신의 기준에 맞추어 일을 해야 해? 그건 불공평해."
숨은 뜻: 먼지와 쓰레기가 쌓여 괴로울 지경이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야. "집이 돼지우리 같네."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그러고 나서 나는 당신의 반응을 기다릴 거야.

"집안일은 당연히 우리 둘이 공평하게 해야지, 그런데 내가 무조건 당신 스케줄에 맞출 수는 없잖아?"
숨은 뜻: 수동적 저항. 집안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할거야. 설거지는 일주일에 한 번, 빨래는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 바닥 청소는 1년에 한 번이면 되지 않을까? 이게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 그러다 보면 나는 아에 손을 놓고 있어도 되겠지. 

- 페미니스트가 빨래하는 법, p 292


저널리스트 아리엘 레비는 <완고한 여성 우월주아자 벽창호들>이라는 책에서 외설적 문화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여성스러운 여자들"보다 거칠고 현명하고 멋진, 이른바 "여성우월주의자들"은 남자들과 어울려 스트립 클럽에 가고 <플레이 보이>를 읽고 여자들을 대상화시키는 모든 통상적 의식에 참여한다. 그러나 남자들과 달리 이 '여성 우월주의자들'은 감정사의 역할과 피감정사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여성 우월주의자들은 자신이 외설적인 비디오나 빅토리아 시크릿 카탈로그에 나오는 여성스러운 여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남자들에게 어필하면서 그런 여자들에게 감탄하는 남자들을 인정해 주어 자신이 속 좁은 여자가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또한 위트와 공격성 아래에 다른 여자들 못징낳은 섹시한 에너지와 속옷을 숨기고 있음을 은영중에 들어내야 한다. 이 모든 까다로운 과업을 완수할 때에만 외설에 대한 열정을 추구할 수 있다"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 성의 정치학, p 318


길리건은 여자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 즉 '자기 희생'이라는 악의적이고 집요한 믿음이 여자들을 '이기심의 망령'에 시달리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이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욕구를 완전히 매몰시키게 만든다는 것이다.

- 다른 목소리로, p 377


버틀러와 그녀의 일족들에게 '존재'란 없는 것이었다. 안정적 자아란 없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발적 행동에 따라 표현에 참여할 때 항상 구조화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발적 행동을 통해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H교수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문밖을 걷고 있는 모든 순간 성별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젠더 트러블, p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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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과 그의 어머니 헬렌 블록 루이스는 엄마와 딸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화에 대한 글을 썼다. 그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엄마조차도 남편과 아들을 딸보다 더 위로 생각하면서 여자보다 남자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 딸의 자존심이 깊이 상처를 받는다." 딸은 엄마의 남자 선호를 "거부와 배반"으로 경험한다. "딸이 엄마에 대해 품고 있던 존경심이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딸도 엄마의 열등한 지위를 공유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자그임까지 위험에 처한다."

- <여자의 적은 여자다>, 정신분석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볼까, p 232




'충분히 훌륭한'엄마들은 또한 외모와 관련해서만 아니라 전반적인 것들을 가지고 딸들을 비판하고 품위를 떨어트린다. 심리치료사 캐런 파이트와 니콜라 트럼보에 따르면, "여자들은 비판적이고 얕잡아보고 사기를 떨어트리는 엄마의 행동을 줄기차게 경험한다. 우리가 하는 짓 중에서 훌륭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를 보는 눈길조차도 좋게 받아들여진 적이 한번도 없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파이트와 트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엄마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혼동을 걲는다. 어떤 때는 힘과 자율성이 인정 받다가도, 어떤 때는 그런 것들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또 어떤 때는 지능과 성공에 상을 내리다가도 또 어떤 때는 똑같은 행동에 눈살을 찌푸린다. 여자들은 엄마들로부터 무작위로 강화를 받는다고 느낀다. 그 강화가 너무나 예측불허인 까닦에 여자들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박탈당하고, 영원히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면서 살게된다. 그 첫 번째 의존의 대상이 바로 우리 엄마들이다. 어떤 행위가 인정을 받고 어떤 행위기 안정을 받지 못할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없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충분히 훌륭한'엄마, 그릭 '충분히 훌륭한'딸에 대한 엄마의 학대,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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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적 성차별

리뷰/저장고 2016. 3. 29. 17:42 by dung

1996년에 위스콘신 주 로런스 대학의 심리학자 피터 글릭과 뉴저지 주 프린스턴 대학의 수전 T. 피스크는 여자에 대한 적대감이,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전통적인 남여 불평등을 지지하는 여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곤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들은 이것을 '양가적 성차별'이라고 부른다. 이 항목에 높은 점수를 받은 백인 대학생 2,000명은 특정한 여자(가정주부,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동경하고, 낭만화하고, 이상화하는 한편으로 다른 여자들(커리어우먼, 페미니스트, 성적으로 애를 태우게 만드는 여자, 매력 없는 여자)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보고서의 저자들에 따르면 그런 양가적 성차별이 불평등한 전통적 성창별이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어지며, 지배적인 집단 구성원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진통제의 역할을 맞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착취하고 있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에게 해야하 할 일을 알려주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우리가 없으면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야.")그것만이 아니다. "양가적 성차별은 지위가 낮은 집단으로부터 협력을 끌어내는 수단으로도 더 효과적이며 더 유쾌하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대가로 다양한 특권과 애정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흥미로운 것은 글릭과 피스크가 남자들의 경우 가정주부나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접근 가능한 여자들에게 긍정적인 애착을 보이는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스로 여자의 전통적 역할을 인정할 수도 있는 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른 여자들의 경쟁자로 보면서 다른 전통적 여자들에게 긍정적인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여자 성차별주의자들은 여자들에게 양가적이라기보다는 적대적"이다. 이런 발견은 결코 놀라운것이 아니다. 아마 가정에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여자들로부터 더 따뜻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기억하도록 하자. 여자들이 남자들에게가 아니라 주로 다른 여자들에게 공격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피터 글릭과 그의 동료들은 후속 연구에서는 성차별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와 여자를 별도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이 여자들을 매우 에로틱한 시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여자들이 매력적이거나, 섹시하거나,"매춘부, 암캐, 동성애자"로 비쳐지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성차별주의자이냐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통적인 여자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성차별주의자인 남자는 그들에 대해 예절 바르고, 종교적이며, 보살핌을 베풀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인내심 있고, 순진하다고 묘사헸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 역시 전통적인 여자를 그런 식으로 보는 한편으로 '대디 걸'이라거나, 차분하다거나, 수동적이라거나, 머리가 비었다거나, 천치라거나 단순하다고 보기도 했다.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은 오히려 비전통적인 여자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런 여자들이 똑똑한 체 하는 인간이라거나 남자 같다거나 공격적이라거나 페미나치라고 불렀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도 비전통적인 여자를 간혹 이런식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편으로 그런 여자에 대해서 독립적이라거나, 자신감에 넘친다거나, 말괄량이라거나 그 누구의 허튼소리도 받아주지 않는 여자라는 식으로 보았다. 여자들도 가정주부들을 커리어 우먼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남자들이 커리어 우먼을 지적이고, 열심히 일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자 성차별주의자들은 또한 커리어 우먼을 '공격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냉정한 사람'으로 보면서, 자신들이 커리어 우먼을 두려워하고, 시기하고, 겁을 먹기도 하고 경쟁심을 느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남자들은 커리어 우먼을 '자신감 넘치고 정직한'사람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겁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칭찬하는 쪽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들은 주부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다.

- <여자의 적은 여자다>, 필리스 체슬러, 여자들에 의한 성차별,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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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푸어> - 메모메모

리뷰/저장고 2015. 12. 21. 15:05 by dung


알로스태틱 과부하는 우리의 뇌를 수축시킬 뿐 아니라 몸을 병들게 한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행동의학연구소 소장인 로널드 글레이져를 비롯한 학자들은 스트레스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악화시키고 염증과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과 당뇨, 관절염과 골다공증, 비만과 치매,치주 질환, 노쇠와 생활 기능 감소 등의 질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스트레스는 우울과 불안과 관련이 있다. 특히 여자들은 스트레스에 2배로 취약하다. 남자들의 뇌가 여자들의 뇌에 비해서 기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52퍼센트나 더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자들은 스트레스와 자가면역 결핍성 질환(만성피로 증후군, 엡스타인바이러스 등), 스트레스와 상처 치유 지연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글레이저와 동료 학자들은 스트레스가 암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염증이 있으면 종양이 생존하고 확대하고 번식하기가 더 쉬어지기 때문이다.

뉴욕 록펠러대학에서 신경내분비학 실험실을 운영하는 브루스 매키언은 스트레스 때문에 뇌구조가 실제로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 중 하나다. 매키언은 쥐들을 3주동안 3~4시간씩 묶어놓았다. 그리고 나서 쥐들의 뇌를 관찰했더니 전전두엽과 해마의 뉴런들이 쭈글쭈글하게 수축된 상태였다. 반면 불안과 공포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인 편도체는 커져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감금당한 쥐들은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인지적 활동이 위축되었으며 기억이 조금 손상되기도 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감금을 중단했더니 그런 증상들이 싹 사라졌다는 겁니다."

매치언은 쥐의 나이가 뇌의 회복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린 주들의 뇌는 3주 안에 완전히 회복됐다. 중간 연령대 주들은 일부만 회복됐다. 그리고 늙은 주들은 아예 회복하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사람에게 대입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자가 치유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그리고 사람의 경우에는 외부의 개입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의사의 명령으로 일주일에 5일, 하루 1시간 산책을 하면 해마가 더 커지고 정신의 유연성이 ㅈ으가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잡기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더쿼스트
-  쫓기는 삶, 조금씩 변해가는 뇌, p94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관해 '어떻게 느끼는가;는 전반적인 건강 상태(우울, 불안, 흡연, 과식과 같은 증세를 나타낼 확률)로 예측하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유용한 척도가 된다. 학자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 자체보다도 스트레스에 관한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신과 생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가 곧 우리의 현실이다.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잡기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더쿼스트

-  쫓기는 삶, 조금씩 변해가는 뇌, p97







슈워츠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본래 오르락내리락 하는 존재로서 에너지를 쓰는 상태와 에너지를 충전하는 상태가 교대로 찾아온다. 심장에는 박동이 있다. 폐는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뇌도 파도처럼 움직인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을 잔다.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데도 리듬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일할 때도 리듬을 타야 한다. 고도로 집중하는 시간이 있으면 휴식과 충전의 시간도 필요한다. 구시대의 '이상적 노동자'문화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에 오랜 시간을 투입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피로하고, 따분하고, 집중이 흐트러지고, 힘이 빠진다는 신호를 무시한다. 그러나 최고 성과를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는 휴식과 재충전, 회복, 조용한 시간의 가치를 잊고 있습니다." 슈워츠가 말했다.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잡기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더쿼스트

삶의 균형을 잡다, p424








놀이

-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여자들에게는 여가 또는 놀이의 문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당신은 바닥 쓸기, 치즈 만들기, 버터 휘젓기, 퀼트, 뜨개질에서 재미를 느끼는가?). 여자들이 스스로에게 놀 시간을 허용하려면 상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놀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라. '노는 쥐들'같은 단체에 가입하거나 당신만의 단체를 만들어라. 벨라댄스에 도전하라. 산책을 하라. 친구들과 협력하거나 모임에 나가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일탈을 추구하라!

-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자유시간을 즐길 예정이라면, 어떤 경험을 하고 싶고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가능하다면 메모를 해둬라. 당신이 어떤 느낌의 시간을 원하는지를 의식하고 그것을 당신의 목표로 만들면 정말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 놀이는 유용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라. 원래 인간에게는 놀이가 필요하다. 당신 자신에게 놀이를 허용하라. 일을 할 때도 노는 것처럼 하고, 집에서도 놀이를 하라.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가져라. 뭔가를 궁금해 하고 열렬히 감탄하는 시간을 가져라. 청소년기의 딸에게도 언제나 놀이를 잊지 말라고 말해줘라.

촛불을 켜보라. 덴마크 사람들처럼 당신의 생활에도 '휘게'를 만들어보라.

- 분홍색 플라스틱 돼지와 함께 사워를 하라.

- 집안의 먼지가 다 어벗어지고 냉장고가 꽉 찰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냥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자. 케첩으로 만든 스프게티와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 날마다 고요한 시간을 가지가. 심호흡을 다섯 번만 해도 좋다. 하루 30분 이내의 마음챙김이 당신의 뇌를 커지게 한다.

-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당신에게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라. 그리고 몰입을 경험하라.

- 당신의 힘을 믿어라. 완숙을 경험하라. 역할모델과 멘토를 찾아라. 긍정적인 말과 격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라. 그리고 마음을 다스려라. '성장 마인드셋'을 키워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라. 변화의 가능성을 믿어라.

-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대를 찾아라. 시간을 투자해서 지금 당신의 현실을 분석하고 당신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리하라. 현실과 목표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라. 그러면 당신의 두뇌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창의적인 해결책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 기발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당신이 악착같이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닌 뜻밖의 순간에 갑자기 떠오른다. 노트를 가지고 다니거나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을 활용해서 그런 아이디어를 기록하라.

- 두뇌에 휴식을 허용하라. 머리속을 비우고 당신의 몸, 당신의 호흡,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특히 여자들은 어떤 것을 계속 돼시기거나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생각들을 인지하되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의식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서 두뇌의 배선을 바꿔보자. 도움을 청하고. 일을 위임하라. 할 일을 목록으로 만들어 머릿속의 쓰레기들을 비운다. 그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을 자유'를 당신 자신에게 허락하라. 5분 동안 머리속의 쓸데없는 걱정들을 '걱정일기'로 옮겨라. 당신의 오염된 시간을 정화하라.

- 시간 시야를 좁혀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어떨까?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에 관한 당신의 생각이 들라질까? 시간을 쓰는 방법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번 해보라.

- 바쁨을 추방하라.

- 진짜 '당신의 삶'을 살아라.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잡기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더쿼스트

- 부록, 놀이,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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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계층상승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지니계수는 1979년에 0.26이었는데 2011년에는 0.39까지 올랐다. 상위계층 사람들이 타인들의 삶을 점점 더 무시하게 맏느는 것은 이처럼 점증하는 사회적 불평등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보았듯이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 역시 전례없이 상승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 사회에 내재한 사회적 불의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다면 당연히 정부의 행동이 요청될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이 그들의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반대의 결론을 끌어낸다. "우리는 노동계급을 비인간적인 언어로 매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이는 상당히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라고 조헌 하리는 경고한다 "남아프리나 베네수엘라, 또는 극소수의 부유층 엘리트가 존재하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나 가난한 사람들을 비정상적이며 인간 이하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차브>, 어언 존스, 북인더갭

1장 새넌 매튜스의 이상한 경우,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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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근대 산업사회 이전의 아동은 어른과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가 없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 자원 전체를 활용해야만 했으며, 아동 노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전에 어른과 특별한 구분 없이 경제활동 참여자로 여겨졌던 아동은 근대사회에 들어서 가족 내에서 엄마에 의해 집중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취약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엄마에게는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더 많은 노동이 부과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 생계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로 이루어진 이러한 가족 형태는 근대 중산층에게서나 발견되는 특이한 가족 형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이 가족 형태에서 '바람직한 모성상'이 출현했으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떨치며 여성을 구속하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샤론 헤이즈는 현대 미국의 지배적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 집약적이고,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엄마 노릇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엄마들은 자녀 양육과 발달의 1차 책임자가 되며, 엄마 자신의 필요보다 자녀의 필요가 더 중요하게 간주된다. 즉, 자녀를 위해 자신의 시간 전체를 투여하여 과학적 육아 정보를 습득하고 훈련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양육에 헌신하는 엄마가 바람직한 엄마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끈임없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아이의 발달 상황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어야 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재정적 부담 역시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 1장 산후조리원, '엄마'를 찍어내다,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 p26



수유가 초기 양육에서 대단히 중요한 돌봄 과제인 것은 사실이나, 모유수유를 정상적 엄마라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또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육아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생거난 것은 사실이나, 엄마라면 누구나 전문가의 지도하에 육아 지식과 정보를 학습하고 훈련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좋은 엄마 노릇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은 현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자녀를 위한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러한 엄마를 '정상적이고 좋은 엄마'로 묘사하여 여성을 억압한다. 

그러나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 집약적이고,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는"엄마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한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믿음이 얼마나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한다.

엄마는 철인도 아니고 슈퍼우먼도 아니다. 엄마는 감정이 있고, 한정된 시간과 돈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엄마 노릇을 그나마 실천할 수 있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전업주부 여성들뿐이다. 좋은 엄마노릇에 대한 이러한 믿음 일하는 엄마나 저소득층 엄마 같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이 '나쁜 엄마'에 대한 규정과 낙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좋은 엄마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의존을 지속시키는 동시에 가정에서 남성이 해야 할 여러 의무들을 면제해준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남성 생계 부양자, 여성 전업주부'라는 가족 형태가 줄어들고 점차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는 현대사회에는 엄마 노릇과 육아의 가족적, 사회적 책임에 대한 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좋은 엄마'에 대한 옛 이상만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과중한 짐을 부여할 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자녀 돌봄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엄마가 아닌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 1장 산후조리원, '엄마'를 찍어내다, 스스로 정하는 행복한 엄마 노릇, p36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엄마의 탄생>

오월의 봄, 김보성, 김향수,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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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일은 전혀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그동안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는 자신들이 망상적이고, 헷갈려하고,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사악하고, 음모론적이고, 선천적으로 부정직하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가끔은 그 모든 표현을 동시에. 

악질들 사이의 카산드라, p154



강간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강간문화는 여성 혐오 언어의 사용,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도를 통해서 지속되며, 그럼으로써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를 낳는다. 강간문화는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염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 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여자들은 다 겪는다, 21세기의 단어들, p191



'성적 권리의식'이라는 표현은 2012년에 보스턴 대학 하키팀의 성폭행과 관련해서 널이 쓰였는데, 그보다 더 앞서 쓰인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이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아시아의 강간 실태에 관한 조서 결과를 보도한 BBC뉴스에서였다. 조사에 따르면, 많은 경우 강간의 동기는 남자가 여자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녀와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권리가 여자의 권리에 앞선다는 생각, 혹은 여자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여자가 남자에게 섹스를 빚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나 퍼져 있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요즘도 여자들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어떤 말이, 옷차림이, 우리의 모습 자체가, 우리가 여상이라는 사실 자체가 남자에게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응당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적,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다른 여자들이 자신에게 했거나 하지 않은 일을 갚아주기 위해서 엉뚱한 여자를 강간하거나 처벌해도 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은 다 겪는다, 21세기의 단어들, p193



-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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