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근대 산업사회 이전의 아동은 어른과 구별되는 특별한 지위가 없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 자원 전체를 활용해야만 했으며, 아동 노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전에 어른과 특별한 구분 없이 경제활동 참여자로 여겨졌던 아동은 근대사회에 들어서 가족 내에서 엄마에 의해 집중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취약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엄마에게는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더 많은 노동이 부과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 생계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로 이루어진 이러한 가족 형태는 근대 중산층에게서나 발견되는 특이한 가족 형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이 가족 형태에서 '바람직한 모성상'이 출현했으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떨치며 여성을 구속하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샤론 헤이즈는 현대 미국의 지배적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 집약적이고,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엄마 노릇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엄마들은 자녀 양육과 발달의 1차 책임자가 되며, 엄마 자신의 필요보다 자녀의 필요가 더 중요하게 간주된다. 즉, 자녀를 위해 자신의 시간 전체를 투여하여 과학적 육아 정보를 습득하고 훈련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양육에 헌신하는 엄마가 바람직한 엄마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끈임없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아이의 발달 상황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어야 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재정적 부담 역시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 1장 산후조리원, '엄마'를 찍어내다,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 p26



수유가 초기 양육에서 대단히 중요한 돌봄 과제인 것은 사실이나, 모유수유를 정상적 엄마라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또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육아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생거난 것은 사실이나, 엄마라면 누구나 전문가의 지도하에 육아 지식과 정보를 학습하고 훈련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좋은 엄마 노릇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은 현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자녀를 위한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러한 엄마를 '정상적이고 좋은 엄마'로 묘사하여 여성을 억압한다. 

그러나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 집약적이고,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는"엄마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한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믿음이 얼마나 여성들을 짓누르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한다.

엄마는 철인도 아니고 슈퍼우먼도 아니다. 엄마는 감정이 있고, 한정된 시간과 돈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엄마 노릇을 그나마 실천할 수 있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전업주부 여성들뿐이다. 좋은 엄마노릇에 대한 이러한 믿음 일하는 엄마나 저소득층 엄마 같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이 '나쁜 엄마'에 대한 규정과 낙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좋은 엄마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의존을 지속시키는 동시에 가정에서 남성이 해야 할 여러 의무들을 면제해준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남성 생계 부양자, 여성 전업주부'라는 가족 형태가 줄어들고 점차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는 현대사회에는 엄마 노릇과 육아의 가족적, 사회적 책임에 대한 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좋은 엄마'에 대한 옛 이상만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과중한 짐을 부여할 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자녀 돌봄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엄마가 아닌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 1장 산후조리원, '엄마'를 찍어내다, 스스로 정하는 행복한 엄마 노릇, p36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엄마의 탄생>

오월의 봄, 김보성, 김향수,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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