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칸너는 자폐증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부모나 사회가 고의적으로 이들을 고립시켰다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고립된 성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부모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면해준다. 칸너와 함께 아스퍼거 또한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반대 증거를 제시하긴 했지만, 환자의 부계나 모계에서 희미하지만 자폐증의 기미를 관찰하기도 했고 유전적인 요소 외에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어쩌면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정신분석학자들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미래의 모든 인간 관계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대개 부모와의,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거나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성이 결여된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학자였던 동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무릅쓰고 칸너는 이러한 인과 관계에 반기를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폐증의 원인이 심리학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반기기는 했지만-냉정한 부모가 냉정한 아이를 만든다-다른 한편으로는 자폐증은 본질적으로 선천적이라고 믿었다. 그는 냉정한 부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육아 방식 때문에 아이가 자폐증을 보이게 된다기보다는 유전에 의해 거런 아이가 태어났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았다. 아스퍼거는 부모와 자폐증을 가진 아이의 관계는 온전히 생물학적이며, 유전자와 환경이 복잡하게 연루되긴 했지만 육아 방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믿었다. 많은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형제자매가 있고 일란성 쌍생아도 한 명은 자폐, 한명은 정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스퍼거는 10년 동안 200명의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환자의 부모와 다른 친척들에게 대해서 알게되었으며, 그 친척들에게서 비정상의 징후들을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칸너는 매우 운명 지향적인 '냉장고 엄마'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용어는 브루노 베텔하임을 비롯한 당시의 수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생각한 자폐쯩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이용되었다. 이것은 레오 칸너가 처음으로 자폐증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인정하는 문장에도 등장한다. 아마도 칸너는 이 문장을 쓴 걸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그는 자기가 진찰한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 11명의 부모가 아이들을 "깔끔하게 냉장고에 넣어놓고 녹지 않게 했다"라고 썼다. 아스퍼거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의 엄마가 아무리 아이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자폐증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유전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루노 베텔하임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자폐증은 곧 나쁜 부모와 동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아스퍼거가 옳았다. 오늘날 정신과 교수들은 당연하다는 듯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다른 모든 정신 장애 중에서도 가장 유전자에 지배받는 경향이 큰 병이라고 가르친다. 이 둘과 똑같지는 않아도 자폐증 또한 거의 비등하게 유전적인 요인이 짙은 병이다. 학자들은 일란성 쌍생아의 자폐장애(칸너가 서술한 전형적인 자폐증) 일치율- DNA가 동일할 때 둘 다 장애가 있을 수 있는 확률- 이 적어도 60퍼센트인데, 이는 관상동맥 경화증이나 우울증이나 자궁암의 일치율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한다. 세차례의 쌍생아 연구에서 일란성 쌍생아의 '자폐 장애'일치율은 70퍼센트가 나왔으나 이란성 쌍생아에서 0퍼센트였다. 또한 자폐증을 더 넒은 범위로 보고 쌍둥이 중 한 명은 아스퍼거 중후군을 앓고 다른 한 명은 전반적 발달 장애를 앓는 아이들까지 모두 포함시키면 일란성 쌍생아는 82퍼센트가 넘고 이란성은 10퍼센트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 집안이 감춰야 할 수치, p 123-125
자폐증 아이를 키우고 있는 로이 리처드 그린커 교슈의 자폐증에 대한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 <낯설지 않은 아이들>을 잡은건, 호기심 반 공부 반 이었습니만, 읽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자폐증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는데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정보는 '엄마의 애정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책에서도 자주 거론되었던 '냉장고 엄마', '스피커 아빠'와는 상관없이 유전적인 영향때문에 자폐증이 걸린 아이로 태어 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자폐증이라고 진단을 내리기 보다는 대부분 '반응성 애착 장애(RAD)'라고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되었고... 어릴때 진단을 받고 자폐증에 맞는 교육을 받으면 많이 좋아진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자폐증은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요.
우석훈씨의 모 책에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대부분의 인식이 부모가 좋지 못한 환경에서 키워서 그렇게 되었다는 시선때문에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비슷 아니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러나라의 자폐증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거이 엄마)들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을 보며... 저 또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밖에서 사화적이지않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만약 정말 못견디는 경우가 있다면, 아이가 아픈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로이 리처드 그린커씨는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에 대해서 많이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은유로서의 질병>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타인의 고통>을 읽고나서 <해석에 반대한다>를 읽고 그 분의 책을 읽는걸 포기했었거든요.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말며,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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