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친우 최선생님의 권유로 야간비행에서 발행한 <서준식의 생각>을 구입했습니다. 
원래는 <서준식의 옥중서한>쪽을 먼저 구매하려고 했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음 '조금 미루지뭐...'라고  생각하고 한 2주정도 후에 직장 동료분들과 책을 사려고하니 "품절" <- 모든 인터넷 쇼핑몰이 품절이더군요.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ㅠ_ㅠ; 아놔...
책은 역시 미리미리 사재기입니다(!)<- 물욕극복은 저로서는 매우 무리무리 -_-;;;

용기를 내어서 출판사에 전화했습니다. '저기요. 반품들어온거라도 팔아주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출판사에도 책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OTL 그래서 '회사에 굴러다니는 책이라도...'라고 말했습니다만. 역시 없었습니다. 중고서점을 돌아다녀야 하는것인가! O<-< 
그래도 다행인건 빌려달라고 부탁드릴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서준식의 생각>을 보고 있는데 부인과 줄치며 봤다고 이야기하시며 옥중수기 꼭 보아야 한다고 귀뜸해주셨거든요. 책을 읽고나니 그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거 같아요. 

이번주 평일에 서씨 형제분중 큰형님의 책도 구입했습니다. ^^;; 서경식씨의 책과 같이 이분책도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책이더군요. 아무래도 번역된 책들은 곡해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표현의 문제이거나 반대로 저의 바보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책들은 이게 도통 뭔소리인지 모를때가 가끔 있습니다. 우리네글로 우리네표현으로 적어주신 서준식씨의 아름다운 생각들은 어려운 주제를 뭐라고 해야할까요? 바보인 저를 쉽게 끄덕거리도록 설명해주셨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 그대로 전하는것은 매우 고난이도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에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그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곡해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매번 좌절하고 맙니다.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태도가 문제인가로 매번 번뇌하지만 이쪽이 큰거 같기도하고 어떨때는 반대쪽이 큰거 같기도 합니다. 
폭력앞에 좌절하지 않고 비폭력으로 당당하게 응시하는 그. 마지막 부록의 딸네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울고말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를 보면서 울었을 때 이후 두번째 이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걸까? '그래도 조금 더 알고있어-우리 연배의 사람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과거형으로...;;-'라는 저의 매우 교만한 생각들이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바보는 스스로가 그래도 조금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었습니다. 얼마나 교만한지. 

상품의 '보편적'인 유동을, 따라서 가치의 '보편화'를 지향한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동시에 최대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임금의 중층적 차별구조를, 따라서 항상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소수그룹을 필요로 하는 전신분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밑바닥'을 겨우 면한 자들의 '맨 밑바닥'에 대한 추잡하게 비뚤어진 우월감은 언제나 이 구조의 '모세혈관 부위'에서 이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원양어선 사관들의 "거러지 같은"외국 놈에 대한 비뚤어진 우월감은 자본의 최대이윤 생산에 분명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방법원은 그 판결문에서 경쟁을 배제하는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에 익숙해진 피고인들이 조업을 독려하는 한국인 선원들의 폭력을 인간적 모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럼 인간적 모멸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생산을 올리기 위한 '독려'로써 쓰여질때 폭력은 인간 모멸이 아니게 된단 말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은 원래 지존파가 스스로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남을 향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헸다는 따위 저열한 표현으로 남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스카마호 선장과 사관들, 그리고 함부로 사형을 입에 올린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한 일은 있어도 조선족 산원들은 한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이 비뚤어진 무한경쟁의 체제에 길들어져 인간 모멸을 인간 모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는 누구인가 중에서 

저의 그곳에는 진실이 없었습니다. 그냥 보고싶었던 진실만 존재했었을 뿐이죠. 누구의 시선을 통해서 느끼게 된 진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뭐 다들 시작은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에서 시작하니까요. 전 아직 어리고(?) 시간은 많으니까요.;;; -무한긍정생각중-
적어도 원인제공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야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사랑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푸하하하 -_- 속들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한번쯤은 하셨을텐데. 행동으로가기까지는 수많은 작용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결국 공동의 책임. 그리고 방관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것들을 방관하며 즐거이 살고 있습니다. 뭘 해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그러니까요. 누군가 저에게 <옥중수고>를 선물해주세요. ㅠ_ㅠ;;; 으흑
그리고 금요일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있습니다. 얼마나 갈런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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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부터 머언 곳으로 이사간 덕분에 많은 책들을 보고있습니다. 감사해야할 부분인거 같습니다. 그다지 생각없이 잡은 사티쉬 쿠마르의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를 읽고 여러가지 생각들의 방향을 찾은거 같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라는 답변에 그는 근원의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티쉬 쿠마르씨의 생각을 느낄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티쉬와 그의 어머니의 대화에 놀라고 9살때 자이나교 승려의 길을 선택한 그의 결정이 놀라고... 놀라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이나교의 엄격한 규율도... 그리고 자이나교의 승려임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이 지구를 위해 무일푼에 맨발로 떠난 그의 여정들. 그가 만난 많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각들에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물욕은 여전하며 대안을 생각하지만, 대안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들. 그리고 비폭력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들을 느끼며 저도 그이 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하지만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좌절. 그리고 다시 걸어가기... 또 좌절이 이어짐의 계속입니다. 

.
..(중략)...
"소유권이 개념은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농업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소유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그리 해를 끼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도구를 가지고 일했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땅을 경작하고, 작은 배와 작은 그물로 고기를 낚았습니다. 그렇게 충격이 약했기 때문에 개인소유권이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훨씬 더 발전된 기술과 대량 생산, 국제적인 산업과 빠른 통신체계로 개인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지구 자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무역의 세계화는 공공의 것을 민영화시키고 있고, 지금은 소유에 대한 개념이 지적 재산권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미 소수의 개인과 회사가 땅과 동물, 숲과 광산, 물과 같은 세계자원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유권은 세계화 속에서 훨씬 더 적은 숫자의 손에 들어가는 쪽으로 집중될 것이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합니까? 그들의 생계에 필요한 자원이 부자들에게 맞춰지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엘리트 계층은 교육을 받고 권력을 통한 통제수단을 쥐고 있으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소유권 자체의 개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의 한 부분이며, 무너가를 소유한 지배자나 재산관리인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 자신이 지구의 수탁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탁자란 무슨 뜻입니까?"
"수탁자의 지위에 대한 개념은 마하트마 간디가 처음 만든 것 입니다. 그는 우리 인간들이 모든 생명체와 다음 세대의 이익에 대한 신성한 믿음을 가지고 지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본을 고갈시키지 말고 오로지 그 이익이 쓰여질 수 있도록 원래의 자본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보관하고 있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보관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돈을 쓰는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질 수 있는 지출만이 허용됩니다. 수탁자들은 신탁에서 오는 수입을 일반대중을 위해 사용해야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천연자원을 자본보다는 수입으로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우리가 자원을 소유하고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지구가 우리의 진정한 자본이기 대문에 고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인 우리는 지구를 감소시키기보다는 강화시키고 보충하는 방법과 수단을 찾아야합니다.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열매들만이 오로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간디의 발자취를 따라중에서 

언제나 생각하던 '그 근원'인가? 일지도? 그럴까? 정말?.... 아아.....뭐 대략 이런 느낌입니다.  '음 그건 그거야.'라고 명쾌하게 답변할수 있는 자신을 꿈꾸며 여러가지들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만 언제가 되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은 단언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것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거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 몇가지를 빼고는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이런 참담한 현실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것일까'에 대해서 한발자국 걸어간 느낌입니다. 말도안되는 이상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을 언제나 꿈꾸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매번 저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행동들 언어들에 둘러쌓인체 살고 있지만요. 네 알고있습니다. 모두가 조화로운건 불가능 하다는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의 충돌을 피한다던가 대안이 어딘가에는 있다던가 절충안은 정말 있었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어...라던가 그런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매우 가까운 대인관계는 아니지만, 견디기 힘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에게는 매우 스트레스 입니다. 마음은 무겁고, 그것을 받아드리자니 자신을 견딜 수 없고, 도망가는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것.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자신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일부는 그 상대방에게도 이유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전혀 사소하지 않지만 가끔 사소한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역시 그사람들은 저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에 '사소한'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맙니다. 견디지 못한다는 의미는 거리를 두고 싶은데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문제들과 마주쳤을때 역시 도망친다(?)가 저의 대부분의 응답이었던거 같습니다. 좀더 진지하게 응했다면 다른 결론이 서로에게 보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들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저의 한계는 한계입니다. 그런건 그런거거든요. 그러니까 선을 넘어와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가지는 과도한 관심도... 과도한 질문도... 이쪽에서는 매우 견디기 힘듭니다. <-역시 앞으로 나가가고 있다(?)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감사하고 아끼고 그리고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야 한다는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은 감사합니다만,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가 저의 답변인거 같습니다. 

저를 위해서 만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살아있으며, 살아있는것에 대해서 다시금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땀이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있지요. 오늘 먹은 죽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적은 시간을 산건 아니지만, 죽이 맛있는줄 알게된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죽은 저에게 있어서 '그런사람과 같은 존재'이었거든요. 저 자신이 달라지니 죽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마음의 문제인걸까요? ...라기보다는 그런면을 견디기 힘든게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감인겁니다. 매우 유감. 제발 신호를 알아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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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볼테다!!'라고 노래를 부르던 아민 말루프씨의 <사람잡는 정체성>을 받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표지가 정말 당황스럽더군요. -_-;; 이분 이런 느낌의 강렬한 존재감(!?)의 글을 쓰시는 분이 아닌데... 극단적인 느낌을 주는 표지는 먼가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을 받으면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의 전쟁>을 기억하면서 펼친 <사람 잡는 정체성>은 역시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분하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사람을 잡는(죽이는)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레바논 출생으로 초기기독교 종파...(-_-;; 기억이 잘.. 게다가 이런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중의 하나인 *** 부락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종교분쟁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 나를 떠나서 프랑스에 안착하여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기자이었습니다.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 그리고 같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강요받는 혹자는 강요하는 정체성의 문제점에 대해서 매우 차분한 어조로-아마 이 느낌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함께 보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은 경험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것을 본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인가라고 조금 생각해봤습니다. 제목처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는 책의 모든곳에서 비명과 절규가 들리고 있었습니다만, <사람잡는...>는 그 또한 많은 고통을 받았음에도-물론 고통의 경험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규의 차이인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두사람의 고통을 저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보기에는 눌러담고 또 눌러담아서 축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자서문
1장_ 나의 정체성, 나의 소속들
2장_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3장_ 지구촌 부족들의 시대
4장_ 표범을 길들이다
맺는말
옮기고 나서

사람의 정체성은 단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다는 그의 이야기에 부끄러워 하며 또 반성했습니다. 지당한 진실이지만, 언제나 가볍게 넘어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 말아버립니다. 제한된 경험에 의한 편견은 무섭습니다. 저를 무서운 시선에 가두고 그리고 타인을 제한된 장소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지한(;;) 저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초기기독교 소수단체들이 많았었다는 이야기에 부끄럽게도 놀랐습니다. 물론 과거에 그들은 여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것에 대해서는 알고있었습니다. 최근 보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번역자주에서도 단호히 지적하는 각주에 다시 한번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교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가장 무서운건 무관심과 무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꽤 오래전에 적다가 다시 적으려고하니 흐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서 어렵네요.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까 다시 적어봅니다.)
많은 분들의 글들에서 종종 인용되었던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서문에서 부터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1961년판 서문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의 서문은 찌프려진 눈을 원래대로 돌릴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대상 독자가 다르다고해도... 더욱더 충격이었던건 그가 이 서문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런건가? <- 라고 생각하기에는 저에게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부끄러운 서문을 뒤로한채로 저자신이 그라면 그리고 만약 아직도 살아있다면 결단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책들을 회수해서 화형을 하고 싶은 기분일거 같습니다. 뭐 그때의 그런 생각이 그럴수도 있다...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과거는 무덤으로 가져가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제목이 그대로 표지에서도 다가오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시작부터 충격이었지만, 본문 역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느 페이지이었는지는 자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서구의 원조에 대한 언급부분은 어려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네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강탈해갔으며, 이제와서 원조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선행(?)에 대해서 감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더 많은것들을 받야아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이다. 라는 이야기었습니다. 번역자로부터 걸러지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받아드리는 저로부터 또 걸러져서 결국 저에게는 이렇게 도착했습니다.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괴성이 느껴저서 보면서 괴로웠던 본문들을 지나 파트 5의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 부분에서는 말을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언가 이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는데... 지나고나니 저편으로 지나가 버렸네요. 그렇지만, 파트 5에서 함께 놀던 프랑스 어린이를 죽인 알제리 어린이의 인터뷰 내용은 눈을감아도 생각나버립니다.

상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극복하는것은 어떤것인지 아직도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단호하게 답을 내릴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하는일은 너무나 버거워서 도망가고 있는거 같습니다.

우리네들의 상처는 여전하며 시선은 극복되지 않았으며 그리고 과오는 계속되는거겠지요? 가끔은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반성하면서 또 반성하다보면 언젠가는 보일꺼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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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에 있는 여러가지들, 그리고 타자인 '그들'의 범주에 있는 여러가지들.  살아가면서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우리-우리와 타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와 우리집단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에 대한 이미지는 솔직히 매우 부정적입니다. 우리라는 범주에 속박하려고 함으로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절감하고 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가장 괴로울 때는 우리를 원하지 않는 저와 우리에 넣고자 하는 우리의 소속인과의 충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저로 매우 만족스러운데요. 그분들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 소속에 넣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고마워 해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할때는 여러가지 것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그사람이 우리집단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지 아닌지 여부부터 살펴보는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소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집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결코 우리에 소속되지 못하는 타자들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그리고 저의 가치관의 충돌, 우리로서 소속감 우리집단에서 우리가 해야할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라던가 우리가 아닌 타자를 배척해야하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라던가... 적다보면 정말 많아질거 같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의 저자 데이비드 베리비는 아버지는 유대인 어머니는 미국인이며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영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있는 또다른 디아스포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살아가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종교적인 편견 사회적인 편견들등등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접근한 책이었습니다. 총 15파트로 나누어서 연구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여러가지 실예-실험집단을 대상으로 지금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최대한 배제한 실험군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던가 이러한 부분이 여러가지들을 좀더 생각 할수 있도록, 지금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외 여러가지 에피소드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과거의 특수했던 상황-백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01_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차이로군요"
02_ 이보다 기이한 문제는 없다
03_ 계산과 측정
04_ 깃탈이 같은 새들
05_ 마음을 보는 눈, 부류를 보는 눈
06_ 코드를 찾아서
07_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가
08_ 오클라호마의 전통 창조, 혹은 여름방학에 있었던 일
09_ 그들을 화형시켜라
10_ 공통의 인간성이 우리를 울린다

11_ 거기에 인간은 없다

12_ 이방인이 되지 말라
13_ 신고식과 전환
14_ 효수된 머리
15_ 다윈주의라는 종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편견들은 당신의 머리속에 있으며 당신에 의하여 매일 새롭게 만들어 진다고 결론을 내리며 "특별한 기회와 약점들을 지닌 그러한 힘을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힘을 휘두르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인간 부류 코드는 당신이 행동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민족적 긴장, 종교적 분쟁, 정치적 갈등, 파벌 간의 경쟁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을 끼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라고 마지막 부 "결론"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답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부정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벽히 긍정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고 싶은것'과 '그런 인간인것'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입니다. '반성해도 나아감이 그다지 없다'라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노력해도 언제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편견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의 여러가지 분노들-좋지 못한 기억들과 우리집단과의 여러 의미의 충돌-이 그런쪽으로 종종 인도하고 말아버립니다. '그사람은 그 우리집단이었지. 역시 그럴줄 알았어.' 라는 식의 말도 않되는 결론으로 도출해 버리고 맙니다. 더 무서운건 그런방식이 분노의 해소-폭발을 잠재우는것이라고 해야할지, 사실 대응하지 않고 넘어간다가 답인거 같습니다-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우리집단-그혹은 그들이겠지요-에 대한 편견-사실이라고 해야할지 편견이라고 해야할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실이면서 편견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는건 무리입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싶지만, 그들은 항상 모든이들을 우리에 넣고 싶어하기때문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집단에 들어오기를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지 올바르다고 해야할까요? 
저의 변명이었습니다. 어디까지가 강압이고 어디까지가 공익이고 어디까지가 이기인지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저또한 누군가에게 저의 가치관을 강압적으로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걸까요? 그럴지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집단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저는 온몸으로 저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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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책중에 하나인 서경식의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여행코너의 맨 윗단에서 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전부 읽었습니다. 매우-뭐라고 단어를 골라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매우'는 아니지만 달리 생각하는 단어도 없습니다- 가슴에 오는 문체로 그자리에서 슬픈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 절망한 사람들,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인 저항의 수단을 택하고, 그에 대한 가차 없는 진압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다면, 아무리 곤란해 보여도 그 길의 앞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어떻게 자폭 같은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자폭 행위조차도 날로 일상화해 대단한 뉴스거리도 못 되고,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파괴와 살육이 식사와 배설처럼 일상화된 세계. 극한적으로 보이는 저항조차 금세 진부하게 만들어버리는 세계. 세계 그 차체가 자폭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1부 죽음을 생각하는 날중에서


많은 것들이 생각나게한 책이었습니다. 다른 저작 <소년의 눈물>에서는 어린시절 그의 상상중에 하나는 자신의 진짜 부모님은 '보통의 일본사람'이어서 언젠가 나를 이곳에서... 이곳에서... 이곳...  저도 그런 류의 상상을 했었지만, 저런 종류의 상상은 아니었습니다.
몇일전 늦은시간에 하는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우리나에서 엄연히 살아있는데 '호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룬 방송을 아버지와 함께 봤었습니다. 믿지 못할 그들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더군요. "왜?" 라고 아버지와 서로 물어봤지만 역시 납득 할 만한 답변을 서로에게 해주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아니던가. 본말이 전도된 저 모습을 보고 뭐라해야할지. 그저 개탄하며 방관자의 의무를 다하던 저와 아버지. 저역시 가장 중요한것보다 다른것을 강요하여왔기에... 결국 지키려고 하던것은 무었이었는지 망각하고 만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아니면 수많은 규율속에서 우리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인가. 목적은 같지만 걸어가는 길이 다르다는건 저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반성하는 걸까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갰습니다.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요? 그리했다고 믿고싶습니다. 비록 자기 위안일지라도.

그저 조금 울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어떤 책이라고 물어봐서 조금 울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의 대답은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구나." 있자나요. 그 사람은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에게 그런말을 듣는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역시나 저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거 같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불편합니다. 매우. 불편해하는 저 자신에게도 화가나지만요. 아아 화가납니다. 극복하는건 매우 어렵습니다. 평생 노력해도 가능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역시 우울한건 우울한겁니다.

힘을내세요. 힘을 내주세요. 저도 힘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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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리뷰/텍스트 2007. 3. 4. 22:13 by dung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이유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21세기의 첫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데리다는 세계가 이미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에서, 그는 '예루살렘 전용'에 초점을 맞춘 '메시아적 종말론의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전용"을 위한 전쟁이 현재 벌어지는 세계대전이다. 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가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모습이다.'
2001년 10월 2일 브라이튼에서 개최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력한 어조로 전망했다. 그는 '9.11'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따라서 '주변 세계 질서의 재편'을 다짐했다. 연설은 매우 천진난만한 진술로 마감된다. 블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과 이슬람인, 기독교인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지금 우리는 공동의 가치와 유산을, 통합의 원천이자 힘의 근원으로 이해하여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순간이다.'(Blair 2001, 4.5)
데리다가 보기에 이 모든 신념은 모종의 괴물을 근거로 성립되었다. <죽음의 선물The Gift of Death>(1992)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저서에서 데리다는 아브라함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스런 아들'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헸다'는 이야기는 어김없이 '괴물'같은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보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괴물이 되는 데에는 '여성의부재'가 한몫한다. 즉, '이렇게 헌신적인 책임의 체계'는 '여성의 배제 혹은 회생'을 전재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부자 간의 문제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이야기가 괴물 같은 까닭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 즉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상적인 책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된 아브라함은 책임을 경험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 이때 책임이란, '나를 타자, 즉 타자로서의 타자에게 결박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그 하나만으로도 '모든 타자는 절대 타자'라는 데리다의 논점에 부합한다.(모든 타자는 타자(타인)는 모두 (소)타자이다.) 데리다의 저작은 이런 맥락에서 '신'은 물론이고 기도 행위를 재고하라고 촉구한다. 만약 디페랑스가 '모든 신학과의 연계를 차단한다'면 7장에서 보앗듯이,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언제나 "예컨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신', 다리 말해서 '신, 예컨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예컨대,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도 행위에는 타자로서의 타자를 향한 호칭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충격을 받았을 때 나는 신을 찾는다.' <죽음의 선물>에서 그는 예루살렘을 가르켜 그 주변에서 '이삭의 희생이 매일 계속되는'장소, 즉 '무수한 전쟁 기계들이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전쟁을 벌이는'장소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의 생각을 잘 나타낸 관련 사례로, '흑인 차별정책'을 비롯한 인종주의라는 '정치적 관용어'와 그것에 의존하는 '신힉-정치적 담론'의 '괴물성'에 대한 설명을 언급할 수 있다.
이렇게 간략한 논의로써 분명해졌다. 데라다의 저작이 교전 중인 전쟁 문학, 혹은 전쟁 철학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곳에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해석'에는 '전쟁과 투쟁'의 흔적이 있다. 그는 새로운 상속 방식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유산은 결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의 과제'임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도덕'의 '핵심'에 있는, 즉 이 세 가지 일신교의 심장부에 있는 괴물 이야기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여 그것을 변형하는, 새로운 상속 방식에 관심이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는 이러한 관심사를 가리켜 '종교 없는 메시아주의', 또는 '정의 이념'에 대한 또 다른 사유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는 '더 이상 존재신학에서 말하는 신이나 인간과 혼동되지 않는 온전한 타자', 그 '타자의 도래'로서의 미래를 향해 개방된 사유를 포함한다. 이는 '해방하는 약속을 경험하는' 참여이다.
여기서 문제는 해체론이 '민주주의를 위한 또 다른 공간'과 즉 '도래할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우정의 정치학>등등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며, 언제나 도래하는 중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일관된 주장이다. <우정의 정치학>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민주주의에는 도래할 것이 남아 있다. 도래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본질이다. 그것은 무한히 완벽을 기할 수 있다는 것, 즉 언제나 불충분하므로 미래가 남아 있다는 뜻일 뿐 아니라, 약속의 시간에서 속한다는 것, 즉 미래의 매 순간 순간마다, 도래할 것이 언제나 남아 있게 될 것임을 말한다. 민주주의가 존재할 때조차도, 그것은 결코 실준하는 것도, 현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언제나 비현재적 개념을 화젯거리로 남긴다.


'약속의 시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와 해체론은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 데리다는 '민주주의 없는 해체론은 없으며, 해체론 없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보면 세부적으로 섬뜩한 면이 있는 1989년 맨해튼 카도조로스쿨에서 한 강연[법의 힘: '권위의 신비한 토대']에서, 데리다는 마치 천리안이라도 있는 양 자신이 강연하는 장소인 5번 가를 힘주어 강조하며, 그곳이 '불의의 지옥에서 불과 수 블록 떨어져'있을뿐이라고 말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2001년 9.11테러 공격에 놀란 미국 정부가 괴물스럽게 환기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무한한 정의'감각을 요청한다('무한한 정의'라는 말은 본래 테러 공격에 대응하여 출범한 미군의 명칭으로 체택되었으나, 이슬람교도에게는 물론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에게도 심하게 불쾌감을 주는 이 명칭은 곧 사라졌다.) 데리다는 '역사와 문화가 자신의 부범학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모든 경계선상의 기구들에 대한 재해석'을 정의개념으로 주장한다. 해체론은 '언제나 이러한 무한한 정의를 요구하여 정의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해체론은 '한정 없는 책임감, 그러므로 반드시 기억을 초과하는 것, 계산불가능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세계대전은 계속된다. 해체론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함으로 오늘날 만연한 괴물, 즉 결과적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모든 것과의 전쟁을 감행한다. 데리다는 선언한다. 해체론은 '정의에 미쳐 있다'고. '한정 없는'책임과 정의를 해석하려는 그의 관심사는 "국제법을 ...... 크게 변형'하려는 의지와 보조를 맞춘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그는, '최소한 민주주의의 이념과 그에 부수하는 인권의 이념으로 일관하려 한다면, 국제법은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사회적 장을 포괄하고자 그 영역을 확장하고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체론이나 민주주의처럼, 정의는 '도래할 것'의 감각을 수반한다. '정의는 아직 오고 있는것, 도래함'이다. 결정불가능자, 아포그리아, 계산불가능자와 마주치며, 정의는 '불가능의 경험'과 그리고 '교환관계 없는 선물'에 대한 사유와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라는 것이 해체론이나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기다림의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데리다가가 <법의 힘>에서 주장했듯이, '정의는 비록 현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다릴 것이 아니다. 정의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9장 괴물들에서 "정의" 


원하는 것이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소득이 없었던 책은아니었습니다. 
그사람들의 생각을 조금 이해하는 범주에 다가가고 있는 기분입니다. 탈식민주의의 여러가지 난해함으로 고민하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만난 <스피박 넘기>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 에드워드 사이드의 LP시리즈와는 확연히 편집방향이 달랐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실망입니다.-ㅛ- 쳇. 읽어보고 싶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서글픕니다.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아~놔.... 무식이 괴로워요.!! 그러나 공부할 근성이 없다는게 더~괴롭다는 ㄱ- 현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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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를 보다가 삼천포로 빠지게한 인용이 있었는데요. 그 내용인즉...

이 사람은 원숭이보다도 더 추한데도 자기 자신을 니레우스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저 사람은 선 3개를 정확하게 그렸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유클리드로 자처하며, 또 어떤 사람은 리라 앞의 당나귀이고 목소리가 암탉을 물어뜯는 수탉의 목소리만큼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헤르모게네스처럼 노래한다고 믿는다.
- Erasme, op. cit.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인용중에서


당시에 이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친우 ㅁ씨와 대폭소하고 말았습니다. 
이보다 더 당시의 우리가 처한 기분을 절실하게 묘사해준 글이 또 있으려나? 
글이란 정말 대단합니다. 완전 욱겨서 그만 완벽하게(?) 그 순간에는 위로받고 말았습니다. 이럴려고 광기의 역사를 열어본건 아니었는데... 타이밍이 참. 후후후.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니레우스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그사람을 보는 나는 정말 괴로웠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괴로움은 서로에게 가급적이 아니라 정말로 삼가해야하는 '추악'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그렇지만 그때의 저의 태도도 그다지 바람직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더 확실히 이야기 했어야 했었다."가 답인거 같습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더라도... 그편이 더 좋았던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선한 사람인척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던걸까요? 아니면 그냥 동물원에가서 구경하기를 했던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저는 저의 돈을 내고 그 동물원에서 사료까지 주면서, 거기다가 오물청소까지 했기 때문에 그 점이 지금에 와서 괴로운 과거사가 된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후회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면, '바보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덤을 만든다면, "그건 애정이었어." 라고 치졸하게 스스로에게 변명해봤습니다. 그런거죠.

요근래 그 때와는 또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과 조우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웃음만 나오더군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핳. 화도 안나는건 그만큼 '애정'이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인간은 항상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라고 최근 읽는 책에서 데리다가 지적했다는 문장을 보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지금의 현실을 피하고 있는걸까? 라고 생각했는데요. 대면하는것은 어려워서인가? 아니면 폭발한 상태의 저를 알기 때문일까? 등등 여러가지 면으로 생각해봤는데... 역시 답은 저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를 떠나서 그럴 가치를 못느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치 없다는 것 만큼 비참한 결론도 없는데 말이지요. 

지금 저는 그때와는 또 다른 상황을 만났지만요. 
그 가치가 없어서 다행인거 같습니다. 두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이지... 

하지만 만약 그때와 같은 상황을 또다시 조우하게 된다면 진심을 전해주겠습니다. 서로에게 넘지 못 할 선이 생기더라도요. 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은 존재하게 되었으니까요. 상대방이 그 '선'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최소한 그사람에 대한 저의 애정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성의'이니까요. 부디 행복하세요. 당신. 

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때의 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좋아했군요. 당신. 기운내요.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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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숙청을 언급하면서 정의를 외칠 때마다 모리악은 자비를 말한다. 내가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마치 증오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애기하면서, 모리악은 우리가 예수의 사랑과 인간의 중오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단지 치욕 없는 진실을 원할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자비가 차지할 자리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내가 단지 모리악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조국을 죽음으로 이끈 두 개의 길이 있는데, 중오와 용서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는 중오에 대해서는 일말의 애착도 없다. 인간으로서 나는 반역자를 사랑할 줄 아는 모리악을 존경하지만, 한 시민으로서 나는 모리악을 불쌍히 여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반역자와 졸개들의 국가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회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모리악은 내 얼굴에 예수그리스도를 던지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정의를 좌절시키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 1945년 1월 1일 <투쟁> "정의와 자비" 카뮈

온 국민에 관련된 진실이 문제가 될 때, 정의가 해야 할 일은 자비를 침묵시키는 것이다. 바로 모리악이 말하는 자비를 말이다" 
- 1944년 10월 25일 <투쟁> 카뮈

우리의 모든 과거의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오늘 또다시 처벌하지 않는다면, 주모자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곧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 1944년 9월 8일 <프랑스 문예>

 숙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낱말들을 정렬하여 문장을 만들기 전에 그 낱말들을 곰곰히 따져봤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에서 얻을 교훈이 있다면, 이념을 먹고 사는 인간, 즉 원칙적으로 지성계에서 일하는 자는 글을 쓰는 바로 그 순간에 자기 글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유행과 체제를 넘어서서 자기 글에 대해 치욕을 느낄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자신이 썼던 문장들 가운데 어떤 하나 때문에 비난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을 쓰는 순간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자기 글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만 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자기 글을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피에르 아술린

작가는 무엇을 하든 "현장"에 있다. 심지어 첩첩 산중에 들어가 있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작가는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장터"에 참여해 있다. 심지어 침묵조차도 하나의 입장이고 정치행위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참여의 표현이다.
- J. P. 샤르트르

지식인의 죄와 벌 / 두레 / 피에르 아술린


그시절, 매우 좋아했던 지금도 매우 사랑하고 존경하는 카뮈님.
처음 이방인을 보고나서 그의 다른작품들을 찾아서 보았던 연유는..  부끄럽지만, 사실 매우 단순한 이유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건 마치 그건 솔제니친의 작품을 매번 볼때마다 대폭소하며 보았던..;;; 러시아의 현실을 알턱이 만무한 나에게는 그가 서술하는 이반씨의 하루는 그냥 지나가는 위트에 불가했던것 처럼, 민망하지만 그게 어린시절 그 두사람을 처음 접하고 받았던 느낌; "진짜 욱긴데~" 정말 멋진 감상인거 같습니다. -_-;; 지금 생각해보면 조낸 부끄러운 과거;; 세월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이 생의 비참이더라도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 아닐련지. 우리는 우리에게 당당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의 과거사도 청산하지 못한채 언제나 과거에 매여있습니다. 과거를 극복하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찌질한 저자신이 그 산 증거입니다. (웃음~)

친우님께서 해주신 충고.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라는 말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음먹은 만큼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번 좌절하지만, 조금이라도 단절(선택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달리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하는것이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용서", "인정" 아니면 "단절" 혹은 "근절"일까요?

텍스트와 담론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들 이었습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지요.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매우 힘들지만.. 적어도 노력만은 하자"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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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글에 대하여

리뷰/텍스트 2007. 1. 22. 00:49 by dung

요즘에도 사람들이 내게 "오. 스피박(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어!"라는 케케묵은 비난을 퍼부을 때면, 난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좋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을 위해서. 단음절로 된 문장으로 대답하겠다. 그러면 당신은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거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단음절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평이한 글에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Danius and Jonsson 1993:33)   

- 스피박 넘기 / 스티븐 모튼 / 앨피


그것에 관한 그 글들은 매우 어려워. 단어의 선택도... 이렇게 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니?
라고 누군가가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해본다. (나는 찌질하니까. -_- 후후)

그정도의 진지함을 그정도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쪽은 사전을 보고 심사숙고해서 고른 단어들이에요. 그런식으로 단정해서 말하면 저도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해석 유쾌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덕후(?) 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가치관이기 때문이에요.

저라고 그런 단어들을 좋아하는건 아니에요.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들로는 전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풀어서 잘 적을 능력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지금은 무리인거 같아요. 어려운 단어와 문장은 저를 공부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입문서까지 사서 보는 이 정성(?).. -_-;

그리하여 작년에 구매한 "포스트 식민이성비판"은 아직도 1/6도 진도가 못나갔습니다.(이실직고모드;;) 결론은 어려운건 어려운거라는 거 인거 같네요. "그 어려운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찾아본 것을 알아주세요." 입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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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의 입문서라고 하는 <스피박의 대담>이 갈무리에서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매했습니다. 아 어렵네요. 어려워요. 매우 집중해서 봐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좋아요.;;

좀더 열심히 살았으면, 좀더 쉽지 않았을까 하고 항상 아쉬워합니다. 
뭐 별수 없는거지요. 현재에서 분발해서 공부하는 것뿐... -_-;;


5장 다문화주의의 문제점 
(호주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다문화정책을 둘러싼 스네자 기뉴와 가이트리 스피박의 토론. <헤카데>지에 게재되었음.)

본문. 171~173페이지 부문

기뉴_  저는 선생님이 언급하신 내용 가운데 또 한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산이라는 개념, 이산 문화는 그것이 파생한 원래의 문화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런 차이란 기본적인 차이면서도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그대로 구별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피박_ 차이를 아시겠지요. 사실 그러한 차이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도란 그렇게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맹목적인 사람들이 자비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지요. 저는 3월에 런던 영영방 연구소에 있었습니다. 흑인 영화제 작가가 만든 몇 편의 영화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지요(훌륭한 집단이어서 그들이 제게 청탁했을 때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들에게 말한 내용 중의 하나는(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 기억이 좀 애매합니다만), "우리들은 영국에 있는 이산 흑인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영국의 토착 정항 전선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또 모종의 저항 언어를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3세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3세계에서는 흑인 대 백인의 문제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흑인 대 흑인이 있는 것과 같이 황인종 대 황인종의 문제 등이 있으니까요." 듣고 있던 젊은 남여들은 제가 그들을 어떤 종류의 신비적인 민족적 기원과 결부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거주지에 가보면, 그들의 조국에 대한 생각은 가족 내부에서 본 관습이나 요리나 그런 것에 대한 향수에서 나온 것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세대 문제에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세대 문제는 이들로 하여금 제3세계 전체에서 진행되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반면에 제도적으로 보면 저는 미국의 외국인 거주자입니다. 그 시기에 저는 캐나다의 앨버타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뉴욕주 북부로 해서 토론토로 아무 문제없이 들어갔습니다(저는 인도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도인 거주자가 캐나다의 불법 입국자는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요. 이틀 후에 저는 런던으로 가서 일정을 마치고 같은 여권으로 캐나다로 되돌아 가려 했습니다. 미국의 외국인 비자였지요. 다음에 저는 일요일 히스로우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캐나다 항공사는 제게 "우리는 당신을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왜요?"하고 물었지요. 그러자 항공사 여성은 "당신은 캐나다 입국 비자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지요. "보세요. 저는 같은 사람, 같은 여권입니다....." 인도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녔다는 거겠죠. 그렇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달라져 버리는 겁니다. 런던에서라면 인도인들은 캐나다로 가는 배에 올라타고 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같은 여권으로 런던에서 캐나다까지 여행을 하는 데는 비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면 다릅니다. 짧게 말해서, 비슷한 문제를 영화 제작자였던 흑인 남여들에게 말했던 저에게 바로 그 문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하루를 더 머룰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캐나다에 전화를 해서 담당자에게 세미나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떠나기에 앞서 그 항공사 여자 직원에게 좀 따끔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잠깐 말해두지만, '우리는 당신을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따위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일대일의 인간관계에서는 몹시 기분 나쁘게 들리니까요. 다음기회에는 '그건 규정에 어긋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양편이 다 같이 희생자입니다'라고 말을 해야합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아주 놀랐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히스로우에서는 사리를 입은 유식인 여성인 백인 여성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그 특이한 상황에서 정말 인도인으로 입을 놀려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일단 규정이 작용하는 방식을 보기 시작하면, 그들은 자비로운 태도가 아니라야만 제3세계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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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우리들의 대부분은 '9.11' 이후 이어진 테러와 전쟁의 난장판에 무감각한 시선을 보냈다. 각종 미디어가 전해준 참상의 이미지가 부족해서였던가? 아니다. 그 참성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카의 민간인들이 죽고 군인들이 다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그 미디어 이미지들을 오락영화나 다름없이 소비할 수 있었던것이다. 반명 무장테러집단의 비디오로 매개된 김선일 씨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즉각 우리의 문제로 인식했고, 사건의 전행과정에 공분했으며, 문제해결의 여론을 모았다. 그러한 일련의 반응 밑에는 동족이기에 가능했던 재빠른 감정이입,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국가를 향한 불신감, 그리고 우리가 입게 될지 모르는 구체적 피해에 대한 상상이 깔려 있었다.

유의할 점은 우리가 이라크전의 이미지들에 무심했던 것이나, 김선일 씨 비디오에 분노할 수 있었던 것 모두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민족주의적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아래서는 민족의 일만이 주된 관심사가 되고, 민족의 이해관계만이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여거진다. 물론 한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죽음이 더 경렬한 동일시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의미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서 그 현상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근대 국민구각 체제 안에서, 민족주의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제는 민족주의적 정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민족을 넘어서는 타자 일반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연대의식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지의 여부에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은 고통의 감수성이 국민국가의 테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행여 다른 민족의 차별이나 배제 위에서 작동하고 있지는 않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김선일 씨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우리 대다수의 민족주의적 시선은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성찰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배타적"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의 자율성과 평화를 위협하고 훼손할 수 있는 자민족의 이익추구 행위마저 이념적으로 합리화 한다. 그러한 시선은 우리 스스로 한 몫을 맡은 침략전쟁에 수치감이나 죄의식을 가지기 못하게 만들고, 이해타산의 논리만 좇는 정책결정을 당언시하도록 만들며, 심지어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인간적인 공감과 동정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태연할 수 있게끔 만든다. 하지만 이유 없는 고통과 죽음의 현실이 지니는 무게는 결코 국적에 따라 더해지거나 덜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략)

생각의 나무 당대비평 특별호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_ 이상길 [테러, 이미지, 비디오 테이프: 김선일 씨 사건을 되돌아본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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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에 지면으로 처음 뵌 박노자 선생님 강연에 두번째로 친우님과 함께 갔습니다.

저는 사회주의자도 아나키스트도 아닙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으며, 무관심에 가깝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저 가끔 분노를 하며 울분을 호소할뿐 그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경험한 것들 중에서 생활에 있어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만 하고 사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전히 많은것들을 알고 있지도 않으며, 움직이는 것들의 태반에 대해서 이해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들으며 그래서 책을 봅니다. 저의 바보를 극복하고,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요.

11월 21일
여전히 강연회 포스터의 사진은 초절정 청년(추측입니다.)시절의 사진이더군요.
노린건가? 라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주체측에 물어보기도 초난감한 질문이니까요.;;; 정말 물어보고 싶지만 저는 살아남고 싶기때문에 언제나 처럼 참았습니다. =_-;
언제나처럼 명쾌하며, 절묘한 타이밍에 슬프지만 웃고마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웃는 얼굴로 그런 현실과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모습도 여전히 가슴에 남았습니다.
강의메모는 하단(참고로 저는 정리 못합니다. ㄱ-)

저는 전쟁에 대해서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것은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친우가 권한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라는 책을 보고 울었습니다. 지하철에서요. 사실 전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고통의 기억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저의 경험을 대입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친우가 아끼던 개의 죽음은 사랑하는 남동생이 죽는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때 언제나 반공포스터 때문에 고민해왔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전쟁이나면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한강다리를 건너야하니 책가방에 일주일정도 튜브를 넣고 다닌적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대해서 통렬하게 반응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머리에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된것들을 단어로 정리한다면,
종교의 문제. 종교의 핑계. 국익의 문제. 개인의 문제. 살인의 문제. 퇴보의 문제. 희생의 문제. 잔혹함의 문제. 사상의 문제. 자주독립의 문제. 주권수호의 문제. 우리의, 혹은 국가의, 혹자는 민족의 문제. 평화의 문제. 해결의 문제. 비타협의 문제. 완고함의 문제. 이상의 문제.... 그리고 테러(?)의 문제.

타인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하고 얻는 그것은 정말 달콤할 것일까?
나 혹은 우리를 위해서 하는 살인이 스스로에게도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가까운 1차적 관계에만 해도 "어느 시점에서 돌이켰으면 좋겠어."라고 생각 하기도 또는 타인에게 이야기 하기도 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조금은 양보한다면 고통받으며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줄어든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피눈물이 아니게 된다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것이 우리가 아니라 인간에게 바람직한것인가. 나라는 인간. 우리라는 인간들.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들이라는 인간. 그라는 인간. 그들이라는 인간들... 살면서 작은 양보조차 아까워 하는 저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입니다. 이상은 이상인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요즈음은 다른 생각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에게 조금 아주 조금 관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이유가, 그분들에게도 이유가 있으니까요. 앞으로 나아가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근원주의자"라는 말은 저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전의 저의 생각이나 텍스트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박노자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 "가끔씩 극복되기도 합니다." 
가끔씩 극복되어서 다행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저도 사소한 것에서 양보를 시작하는 극복된 저를 만나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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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식탁에 고기가 오르기를 원하는 사회는 자신의 일을 증오하는 불행한 집단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도취한 위험한 집단을 만들어내게 된다. 둘 중 어느 경우 건, 사회와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소외된 개인들의 집단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 사회는 위험하다. - 조지 아이만

1995년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알 낳는 기간 내내 암탉을 신발상자 속에 두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발상자나 다름없는 배터리 닭장에서 나온 깨끗하게 포장된 신선 농장 계란을 먹고있다.

전형적인 미국 식단은 동물, 환경, 심지어 건강상의 문제를 일어킨다. 완전채식인이 되려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밑바닥에는 연민이 자리잡고 있고, 연민은 깊이 있는 변화의 동기가 될 수있다. 만약 자신이 무엇을 먹는냐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결정한다는 걸 의미한다면, 식단을 바꾸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극적으로 바꾼다. 완전채식인이 되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 좋아지는 체험을 한다. 이렇게 좋아진 건강은 종종 그에 수반되는 영적 각성을 일으킨다. 이 각성은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궁극적으로 식단을 바꾸기 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각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자연을 닮은 식사> 에릭 마르쿠스 지음, 박준식, 진상현 옮김, 달팽이 출판

이책에서 나오는 실화로 인하여 요 몇일 고기를 먹으면서 즐거워(?)했던, 저에게 구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몰랐던 일들도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저희 다소 희망적인 낙관(?)일지도 모르지만요)... 여러가지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잘 모르고 있었던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 동물성 사료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 현재의 식용 동물들(가축들)을 키우는(키우는이라고 말을 적기에 제가 부끄러울 정도 입니다. 그건 결단코 "키우는"이라고 말 할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대체할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방법, 그리고 별반 차이없는 도축 방법. 
그리고 우유에 관한 이야기. 저는 유제품을 못먹는 체질이라서 거이 유제품류를 먹지 않습니다. 복통뿐만아니라 결과도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오던 것들이 조금 해소되었고, 저의 무관심의 범주에 있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인들의 경험이야기가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얼마나 고기만(?) 먹었으면...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강조가 되어있더군요. 본문중에서(지금 어디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한사람이 평균적으로 먹는 동물의 양을 산출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학대받고, 방치되는지 알게되었습니다.


모르던 진실은 "적어도..."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더군요.

가축의 학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런 가축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학대까지...
(어딘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위해서 닭도축공장 노동자 지원을 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이야." 라고 단정하기에는 나의 이웃의 이웃이 고통받는 고통이라고 생각해보면 결코 "어떻게해..."라고 생각만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거 같습니다. 이런식으로라도 생각해야지 달라지지 않을까요?)
프랑스에서 시작된(?) 운동 '정체성 정치'에 대한 운동에 대한 소개글들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의 내가 하나의 더 이권을 누리기위해서 움직이면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사람을 포함한 여러가지)들이 희생해야하는지 아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부터 시작해서, 조금은 감수하면 다른사람들이 좀더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논점이었습니다. 전혀 다른것이 없습니다. 조금더 다른 사람들이, 조금더 지구가, 조금더 동물들이 좋아진다면... 그것만큼 좋은일이 없지 않을까요? <- 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고기를 먹는것에 대해서 유보적이 될거 같습니다. 적극적이 아닌 소극적 소비운동이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우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게다가 소화를 시키기 힘들다는 현실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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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의아하게 생각했던 여러가지가 해소되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매우 추천. 참고로 저는 비종교인입니다. 전 돌베게 출판사가 매우 좋습니다. 책들이 매우 취향입니다. 하하하... <전쟁의 위한 기도>전문을 돌베게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찾아서 봤을지;;; 게으른 사람은 넷서핑도 매우 힘에 부치거든요. 노먼 핀켈슈타인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을 볼때는 좀 모르던 구미지역의 특수한 사정(?)이야기도 많아서(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이해하는 다수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합니다;) 난해하기 보다는 "어라라?"한 부분이 있었지만, <거룩한 테러>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책의 전개방식인거 같습니다. 일목요연한 분류, 이어진 정리 간략화한 표로 더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후반부는 조금 지루한 면도 있었습니다. 전반부보다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라기보다는 무지한 부분이라서 그런거 같네요. 백미는 역시 부록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부록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분석비교가 백미. 
덕분에 이슬람 최대주의와 기독교 최대주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쿠트브와 그가 그릴리에서 본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종교적인 것의 두 가지 모델을 보여준다. 그 모델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다양한 역사적 시대와 지리적 영역 그리고 사회적 층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을 망라하는 종교들에서 특히 그렇다. 나는 그 한가지 유형을 최대주의적이라 특징짓고자 한다(쿠트브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나는 '근본주의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용어가 혐오감을 함의하고 있어서 정말로 핵심적인 것을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핵심이란 곧 종교가 사회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실상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한 가지 유형은 최소주의적이다. 이는 계몽주의의 정점에서 칸트가 취했던 입장으로, 종교를 일련의 중요한(주로 형이상항적인) 관심들에 국한하고, 국가의 개입에 맞서 그 특권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 활동과 영향을 특화된 영역에 한정한다. 종교에 대한 정의는 좀더 최근에 생겨난 최소주의적 유형의 종교에서시작할 수도 있지만, 최대주의적 유형은 물론 중간적인 
위치의 긴 스펙트럼까지의 망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포괄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 <거룩한 테러> 1부 현대 정치상황 속의 종교 이해. p28

부록이었던 부시와 빈라덴의 연설의 문체에 대한 비교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단어의 취사선택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외에 책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았는데 책을 읽은 시점으로부터 1달이 지나가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메모한 부분은 뭔소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봐야할거 같네요. 일단은 지금 기억나는 부분만 메모메모 모드입니다.
지금 기억나는것은 어라라... 표현이 매우 흡사한게 아니라 아에 동일하네.. 라고 느낀것 이었던거 같습니다. 9.11 직전의 오사마 빈 라덴의 비디오테이프 연설과 2001년 10월 7일의 조시 부시의 대국민 연설이 말이지요.
 
 
그때 했던 생각들은 그 이상은 어디에 있는지요? 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에휴. 그저 한숨뿐...
누구를 위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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