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누가 봐도 권위적인 부모라면, 자식은 부모의 뜻을 어길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무모의 말을 안 듣고 너무 늦게 집에 들어간다면, 혹은 거짓말을 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 하지만 권위가 은폐된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네 결정이 정말 널 위한 길인지 잘 모르겠구나."


내용만 보면 아주 부드럽고 온유한 말이지만 그 말을 내뱉는 어머니의 말투는 평소와 사뭇 다르다. 어머니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고 우울해하며 두통을 앓고 가슴을 움켜쥐며 말이 없어진다. 딸은 어머니의 진짜 심경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추측하고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그러니 이런 식의 말이 매질보다 오히려 더 자식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권위가 은폐된 채 행사되기에 게임의 규칙이 불분명하다. 딸(아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는 온화한 사람으로 남고, 어머니 자신도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한다. 하지만 딸(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못한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더더욱 어머니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딸의 감정은 억압된다. 감옥에 갇힌 건 아니라 해도 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끈에 몪여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보다 은폐된 권위는 저항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권위는 저항하기가 수월하다. 상대방이 대놓고 요구를 하니까 곧바로 그에 반박하거나 반항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은폐된 권위는 아량과 인내의 탈을 쓰고 있기에 헷갈리고, 마음 놓고 저항할 수가 없다.

인격은 저항을 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그런데 은폐된 권위는 명확한 관계 설정을 방해하고 두려움, 죄의식을 조장하며 바람직한 인격 성작을 막는다. 그런 식의 조종에 저항할 방도는 그리 많지 않다.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싸움을 걸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은 분노의 감정을 대놓고 표출하기 못하고 그저 혼자서 '삼키고'만다.

그 결과 우울증과 의존성 성격 장애의 기초가 형성된다. 자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빠져든다. 표적이 되어야 할 사람에게 가닿지 못하는 분노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 착해서 고달픈 딸들을 위한 위로의 심리학<착한 딸 콤플렉스>, 하인즈 피터 로어, 레드박스, 

1부 부모라는 이름의 악마 - 마마보이, 파파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온화한 지배,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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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원문에는 '성격 장애'가 아닌 '인격 장애'로 번역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진단명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인 '성격 장애'로 지칭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격'과 '성격'은 분명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에는 인격은 '사람으로써 됨됨이, 품격, 자격' 라고 하고 성격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나 품성'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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