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아이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힐 때 부모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가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해로운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치심은 다른 무의식적인 감정과 더불어 아이에게 흡수된다. 피아 멜로디는 이렇게 전달되는 수치심의 상태를 가르켜 '전달된 수치심'과 '전달된 감정'이라고 불렀다. 이를 통해 상처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세대를 넘어 전달된다. 전달된 감정과 전달된 수치심이 우울증의 심리적 씨앗인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m)는 전달된 감정 현상을 뜻하는 현대 정신의학 용어이다. 심리분석이론은 자기 감정에 대한 평판의 투사를 강조한다. 투사적 동일시는 한 개인이 자기 성격에서 거부된 부분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과정이다. 내 아버지는 혁대로 나를 때릴 때 자신의 인정받지 못한 정신적 고통을 나에게 주입시켰다. 아버지는 내 안에 있는 아버지 자신의 허약하고 의존적인 아이를 중오해서 그 아이에게 처벌을 가했고, 나는 아버지의 중오를 내 정신 속으로 흡수했다. 아버지의 슬픔과 우울, 분노에 감염되었던 것이다.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아버지의 투사를 수용했던 것이다. 내가 치료했던 많은 환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런 흡수 경험을 희미하게 기억해냈다. 아버지가 분노하고 통제력을 잃었을 때 나는 빌리가 그랬듯 끔직하게 슬프고 거의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의 잔인한 행동이 한참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아버지의 연약함과 슬픔을 강하게 감지했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심리치료사 입장에서, 우울증을 앓는 남성들이 자신의 부모가 불쌍하다고 말할 때마다 전달된 감정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건강한 부모라면 자녀에게 연민을 구하지 않는다.
아이가 전달된 수치심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분노와 파렴치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정신적 외상을 가하는 모든 행동은 권한을 박탈하는 동시에 잘못된 권한을 부여한다. 학대자의 행동은 아이에게 "너도 어른이 되면 나처럼 행동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이런 비극적인 순간에 소년을 배신했던 힘, 소년이 혐오하는 힘이 소년 안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 <남자가 정말 하고 싶은 말>, 챕터 8 내면에 사는 두 아이, 전달된 감정 혹은 투사적 동일시, p 214 ~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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