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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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퍼니 학원 앨리스>, 타치바나 히구치, 대원
원작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더 버닝했던 작품.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원작을 다시 볼 일이 생겨서 천천히 읽었다. 솔직한 평을 말하자면... 컷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보여서 잘 읽히지 않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뭔지는 계속 궁금해 했었는데 뒷 부분에 가면서 그걸 알게되어서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라기 보다는 죄책감이 줄었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심정이었다. 사실 이 만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백천사 라인의 유명한 12지를 소재로한 모 작품이랑도 비슷한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뭐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가 내린 결론. 
'앨리스 학원'라는 이질적인 공간은 학생들을 '선택받은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지만, 사실 그들의 입장이 아닌 선택받지 않은 존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 그 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을 사회에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있었다. 위험분자는 격리시켜야 하는 건가. 
부모를 만나기 힘든 환경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일텐데. 그렇다면 결론은 앨리스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가 있는 부모를 제외한 대다수가 이 어이없는 시스템에 동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때도 그건 분명히 눈앞에 펼쳐져있는 현실이었다.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격리되어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누가 결정했는가? 그들이 정말 소중한 존재라면 그들을 체제 유지를 위한 소모적인 존재로 취급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들을 체제내에서 함께 공조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국가로서 시민에게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국가(사회)는 소수자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앨리스 학원이라는 시스템(국가 혹은 사회)는 앨리스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위헙하는 요소들로 부터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그들의 말로서 이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최강(?)의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교장 개인을 위한... 초등부 교장이 뭔 권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보기에는 그냥 찌질한 어린이로 보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 유아적인 발상인 애정결핍 애쉑기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아이들에 대한 보상은 성인인 내가 봐도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고,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돌아가는 시스템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느낌인데, 뭐 이게 현실과는 크게 간극이 없게 느껴저서... 푸하하하. 그냥 웃어봤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지배입장인, 군림하는)이 아이라는 것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고 해야하나. 이건 풍자 코드인가 개그 코드인가? 그치만, 그네들의 만화에서 이런 설정은 매우 비일비재한 관계로 말이다. 별로 언급해야 할 가치도 못느끼겠다. 그들의 교육시스템은 사회시스템의 축소판이라서 사회에서 큰 일(?)을 하실 분들은 종종 교육시스템 안에서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요구받으니까 말이다. 선거에서 각종 비열한 수가 판치는 것은 매우 비일비재한 일이고, 선거를 통해서 군림하는 존재가 되면 어른들에게 그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는 공간. 학교라는 공간은 그런 공간으로 그려질 때가 참 많았다. 아 이런거 볼때마다 정말 짜증난다. 
나는 일본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어느정도의 과장이 있다고해도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이타자의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서 극대화하는 환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실과는 간극이 있다고해도... 대다수의 매체에서 그런것들을 그려진다면, 그게 과연 현실과 간극이 있다는 걸까? 그건 현실이 아니라도 그들의 환상이나 이상 아니면 노골적이지 않은 은유적인 방법으로 그려지는 분명한 현실일테니 말이다. 

반 앨리스 단체에서도 앨리스를 가진 그들을 시스템을 위해서 소비되는 말로 여겨지고 앨리스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감정이나 입장은 단 한번도 고려되지 않고 있었다. 뭘 위한 이상인가? 앨리스 학교에 반대하는 단체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앨리스 학원의 비인간적인 가혹한 처사에 분노해서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닌가. 
시스템은 결국 어디를 가던 똑같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고등부의 교장과 그의 생각을 지지하는 선생과 학생부 임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과연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이상을 내세울 것인가. 그들은 사회와 적당히 타협할 것인가. 그들은 좀더 덜 완고하게 그들을 말로 사용할 것인가. 뭐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불편한 점의 정점에 있는 것은 그들이 초등학생 이라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중학생만 되어도 이런 죄책감을 덜 들텐데 말이다. 얼마나 가혹한가. 아이들에게. 어짜피 시스템은 나이와 대상을 불문하고 침범하는이지만, 그래도 그 자신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싸우는(혹자는 투쟁하는) 그들이 어린 아이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불행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뭐 가급적 그런건 보고 싶지 않은 관계로... 괴롭다. 
작가는 그들이 어린이기 때문에 더 희망적이고 대안을 바라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저런 공간에서 살아남아서 멀쩡한(?) 성인이 되는 건 아마 정말 자존감이 정말 강한 존재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이가 스스로 스스로의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다. 천연으로 반짝이는 아이더라도 그 공간에서 어느정도 살아가다보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고 자신을 잃어버릴텐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답답해진다. 
나츠메와 루카삐약은 천연의 보석을 만나서 과연 다행일까? 현실이 아니니까 그들이 모두 함께 나락에서 사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저들의 세계관의 현실을 보면 별로 그럴거 같지도 않은거 같아서 짜증난다. 묘하게가 아니라 정말 현실감이 있으니까. 어떤 부분은 극대로 확장한 영역도 있지만... -_- 그래서 끝까지 지켜봐줄 예정이다. -_-++ 그전에 애니메이션 다음시즌좀;; 


+
표지는 그들 시스템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불행을 이어나가는 존재인 페르소나. 
그가 행복해지는 날이 과연 올 지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를 구원하는 사람은 과연 성인일까 아니면 동년배일까 아니면 어린이일까. 무엇보다 인간이 과연 타인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 결국 타인은 하나의 계기일뿐 스스로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텐데. 그의 어둠은 깊다. 누구보다 더.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존재가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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