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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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노래>1, 후지모토 유우키, 대원 
이 양반은 도란도란한걸 참 좋아하나봐요. 이번에는 도란도란 하기도 하고 좀더 큰 목소리도 오가는 다섯 남매가 주인공 이었어요. 부모님의 상실로 인해서 이 가족은 더 형태가 구체화 되었다고 해야하나요. 정확히는 결집력이 높아졌다가 더 인접한 표현인것 같아요.
이 남매에게 가장 중요한건 함께 먹는 밥이에요. 그 구심점은 엄마의 맛을 재현하는 히마와리양이에요. 히마와리 양이 9살 때 그리고 위의 오빠들이 13, 14살 그리고 아래로 남동생이 6살과 그아래로 있는 막네동생이 4개이던 그 해 이 아이들은 즐거웠던 어느 날 부모 두사람을 모두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날은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 이었어요. 가족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히마와리양의 사소한 실수로 여행은 취소 되었고 두분은 잠시 외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정확히는 히마와리를 구심점으로 부모님과 함께 즐겁게 식사할 저녁상을 차리게 됩니다. 저녁상이 다 차려져서 모두 기뻐하고 있던 그때 전화가 걸려오고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후 히마와리는 3년동안 주방에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 삼년동안은 이모네 부부가 아이들을 돌보아 줬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식사 담당은 이모였어요. 그리고 3년이 좀 지난 시점에 히마와리는 이모가 만들어준 밥도 맛있었지만, 너무나도 엄마가 만들어준 그 국과 반찬들을 먹고 싶어서... 주방에 다시 서게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만든 저녁식사. 그리고 그 맛을 기억하는 오빠 둘과 동생은 눈물을 흘립니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식사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막네 우메타도 맛있게 먹다가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후 그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추억하며 함께 식사하는 시간입니다. 
히마와리도 그렇고 이집 남매들은 참 뭐랄까 설정상 정말로 부모에게 애정어린 지지와 사랑받고 자랐구나 하는 걸 확연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히마와리의 반응이 그러했어요. 부모님을 그리워 하지만 우연적인 상황에 대해서 자신을 탓하는 건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비용 지불받는 노동과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 양육과 보살핌의 노동에 대한 비교나 한쪽을 저어하는 태도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보면서 편하지는 못했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지금 시점은 히마와리가 그때로부터 6년이 흘러서 15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라는 걸 가족 구성원들이 종종 잊어버리는 부분이나 히마와리가 그 구성원에서 양육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불편했어요. 자신도 보호받고 싶어하는 면이 분명히 있었을텐데 그걸 굉장히 억제하기 보다는 다른 면이 더 그 아이에게 중요해서 그런 선택을 하고 즐거이 행동하는 건 알겠지만요.
엄마의 밥이 모두 그리웠을 터이고- 그렇다면 히마와리가 아니더라도 오빠들중 하나라도 주방에 서서 엄마의 맛을 재현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다른 가족들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역할의 주체는 여자이어야만 할까요?
이런 역할은 가족 구성원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그 역할이 좀더 나이가 많은 다른 성별의 사람이 존재해도 딸에게 당연하듯이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가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것에 대해서 정녕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걸까요?
 
사고로 부터 3년이 지나서 간신히 주방에 설 수 있었던 그녀에게 그 이전-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하기 전-에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이 엄마의 맛을 재현해줬다면, 지금같은 
역할을 당연하게 떠안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이에요. 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고 그런 배려들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가족 구성원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첫째 형이라면 자라면서 여성성이 상당히 스펙트럼의 어느 선까지 넘어간 둘째 오빠가 그런 
역할을 주체적으로 하고 그리고 둘째 오빠를 서포트 하는 역할이 히마와리와 그리고 그 아래의 남동생인 것이좀더 이상적이고 현실적이고 균형적인 가족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짜피 가족 만화는 이상적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는 좀더 많은 감정의 스펙트럼들과 마주하고 항상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 따위는 없으니까요. 만약 있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절제된 양육환경에서 자랐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반동형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좋기만 한것은 아니니까요.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것이고... 
그래도 이왕 판타지라면, 시스템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유지하면서 한쪽에 너무 기울어져서 독자로 하여금 걱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고 양육자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을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미화하고 찬양하고 권장하는 듯한 태도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어른이. 그냥 그걸 미화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필요하다면 그 아이에게 좀더 아이다워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 성인으로서 주변에서 지켜보는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만화는 면밀히 말해서 소녀 만화이고 이 만화를 보는 주 대상이 여성인데도 이런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고 민감하게 살펴보지 못하면 지나가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우리네 삶을 유지하고 꾸려나가는 대부분의 형태들이 이런 형태들이라서 익숙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이라면 아이들에게 좀더 대안을 모색하고 그리고 좀더 양성평등적인 세상을 그리는 모습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 익숙한 생활에 익숙하게 그것들이 매체화 되어서 소비되고... 그건 좀 많이 슬프자나요. 아닌가요. 뭐 전 그랬답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다면 보는 내내 불편하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입장에서는 제가 민감하고 피해의식이 팽배한 사람으로 비추어 지겠죠.
어릴적 엄마가 아파서 장기간 집에 부재했을때 제가 밥을 차려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보살핌에 관계된 노동을 저만 아버지와 나눠야 한다는 것은 저의 머리속에서는 이해 할 수 없었어요. 엄마의 부재일때도 그렇고 평소에도 그건 매한가지였어요.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요하는 그런 형국이었어요.
동생과 나이차가 있었지만 동생도 어렸고 저도 상대적이지만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는걸요. 보살핌을 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욕구가 아이라면 그 욕구를 존중해야 함이 마땅하죠. 왜 성차로 인해서 몇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 나이차로 인해서 이토록 극명하게 극단의 다른 처우를 받는 다는 펙트를 전 항상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항상 개김이 이어졌습니다. 결과야 늘상 뻔했지만 전 포기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저의 그런 항의는 '누나답지 못하다' '자기밖에 모른다' 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편히하게 환원되더군요. 부당해요. 정말로-. 정말로 공정하다면 나이 차를 감안하는걸 수용해서 동생에는 저보다 더 약한 강도의 노동에 대한 의무감을 심어줬어야죠.
다른 모든 조건들을 제치고 '성별'이 가장 초두에 스는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식에게도 강요하는 건 정말-. 흑백논리이고 아이와 성인의 관계니까 대화가 될리가 만무하죠. 그냥 그건 도전이었던것 같아요. 체제전복을 위한 도전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그래서 동생을 설득했어요. 정확히는 한탄했다는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요. 왜 저만 유난히 가사노동의 주체가 되는걸 강요받는 현실에 대해서요. 그래서 동생은 상대방에게 배려와 보살핌을 받는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의식없이 누리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어요.  끄읏. (-_-)


+
적고보니 저희집이 굉장히 성차에 대해서 굉장히 부당한 대우를 하는 집인것 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까지는 아니고  (여기서 기준은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아예 제외되는가에 대한 기준으로 내린거에요. 수행강도면으로 생각하면 저희집이 굉장히 심하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생각하는 가사노동의 수준의 퀄리티를 딸네미에게 요구했으니까요.) 아버지와 동생에게는 주방일로 치면 주방보조정도의 
역할을 요구한다면, 저에게는 주방장이 될걸 요구했거든요. 십대때도 더 어릴때도-. 이게 여자의 숙명이라는 걸까요? ㅋㅋㅋㅋㅋ 숙명이니까 지금부터 미리 체험하고 그것의 부당함에 대해서 익숙해지라는 엄마의 자상한 배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적으로 김장을 하면 속을 넣는건 아버지와 저, 야채를 다듬는건 온가족... 뒷정리는 아버지 이었던것 같아요. 속을 만들고 배추를 절이는 것은 엄마. 뒷청소는 동생과 나였던가? 티비를 보면서 아채를 다듬는건 온가족이었지만, 완벽하게 다듬는 방법을 머리에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건 저만 이었어요. 비슷하게 레시피도 그랬었구요. 설거지도 '설거지->가스랜지 청소->음식물쓰레기 처리->행주빨기'를 반드시 수행해야 했었죠.
적고보니 엄마는 끊임없이 엄마가 부재했을때 그 
역할을 제가 대신하기 위해서 정신교육과 학습을 병행해서 강조했던것 같네요. 본인이 아프기도 하셨지만, 그때는 저도 어렸다구요. 물론 더 어릴때는 전 순순히 엄마의 요구에 대해서 응했던것 같아요. 10살 미만이던 시절에는 저는 엄마의 요구에 리모컨처럼 움직이는 '사랑스러운' 아니었다고 엄마가 추억하셨죠. (아이가 사랑스러운건 말을 잘듣는 아이라는 공식이 여기서...)
그래도 다행인건 성인이 되어서 엄마의 우선 순위에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 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퇴직후 저희집 집안일의 떠오르는 별로...  전 회사를 다녔으니까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릴때는 반드시 엄마에게 일거리를 아버지와 사이좋게 분배받았어요. 엄마는 당연하게 외출을... OTL 
최근에는 명절이나 주말에 저의 본가에 놀러가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당연한듯 아버지가 하시는 걸 보고 저의 신랑이 참으로 당황하더군요. ㅋㅋㅋㅋㅋ  전 손님이니까 설거지는 아버지가 하시는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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