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근대주의 성과주체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예속적 본성을 지닌 주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긍정화히고 해방시켜 프로젝트가 된다. 하지만 주체(예속)에서 프로젝트로의 전환으로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자에 의한 강제가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로 대체될 따름이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이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자긴에게 날리는 탄환임이 들어난다.
자아 이상에 비하면 현실의 자아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나타난다. 자아는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모든 외적 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괴적 자기 강제의 덪에 걸려든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 <피로사회>, 한병철, 우울사회, p103~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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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는 책...
좀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읽으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위기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바라보고 정의하고 나 자신도 그런 '자기 착취의 덫'에 빠져있나 돌아볼 수 있게 도움을 준 책이다.
어제랑 그제랑 스트로베리 나이트 (ストロベリーナイト)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보면서 내내 주인공 역활을 한 유코양을 보면서 이 책이 굉장히 많이 떠올랐다. 앞을 똑바로 보면서 가야 하는건 사실이긴 한데, 여전히 감정적으로 억제되어 있고 순직한 그녀를 담당한 경사가 그녀가 남긴 그 말에 너무 메달려서 자신을 소진하고 있다는 느낌. 11화인가에서 울면서 엄마에게 말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참 먹먹해졌다.
이전만큼 심각한건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PTSD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모습. 그건 그녀의 부서에 있는 노리쪽이 더 심각하다. 외상은 스스로 앞으로 바라보고 나아간다고 해서 해결 혹은 극복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애시당초 그런게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그래야 한다고 십대 청소년에게 말해준 그분도 그렇고... 그녀의 가족 구성원-엄마, 아빠-중에서 특히 엄마쪽이 그런 증세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꿈에서 딸이 누군가를 죽이는데 그게 자신이라니.
21세기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심리적인 문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은 낙오자라고 느끼고 그리고 너무 지치고 힘들고 소진되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윽박 지르는 그들의 모습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착취'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직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은 동시에 나는 그녀가 병원에 스스로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착취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녀는 현실에 있는 그녀가 아니라 현실에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가 있을 뿐. 그러기에 저자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스스로를 착취하여 소진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치료를 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저 어딘가에서 그 책을 읽는 사람은 그런 방법을 학습모델하여서 앞으로 나아가니까 말이다. 책이라는 건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통하여 뭔가 얻는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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