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도움이 되지 않소?"그는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좋은 지적이었다. 모임에서 자주 발견되는 증상이기도 했다. 분노는 원천을 파내기만 하면 생산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었다. 애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풍부하게 갖고 있는 감정이 분노였고, 세상이 그들에게 많이 갖도록 허용한 감정도 분노였다. 그러므로 '분노'라는 감정은 다른 모든 감정-슬픔, 고통, 욕구, 수치심-을 다 내포했다. 어떤 감정이든지 다 거기 포함됐다. 그들이 잘아는 감정이었고, 다른 감정들 모두를 그 뒤에 숨길 수 있었다. 분노를 말해도 여기 모인 누구도 심판하지 않을 터 였다.
사실 이것은 신선하고, 특히 남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내가 아는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분노를 순화시키며 살아왔다. 분노를 표출하지 말라고 배웠고, 스스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여자에게는 분노를 삼가는 것이 멋지고 매력적인 면모였다. 우리는 '독한 년'이라고 오해받기 싫어서 분노를 밑에 꼭꼬 눌러놓거나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p272, p273
처음 남자 모임에게 참석했을 때 토비라는 사람을 만났다. 영국 불독 같은 체격의 소유자였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리는 날씬했다. 해병대원처럼 머리를 깍은 그는 싸움하기 좋아하는 인상에 고집스럽고 아둔해 보였다.
나는 '남자'의 몸속에서 불안정했고, 강한 남자로 사는 데 나쁜 감정이 없을 거라는 페미니스적인 생각 때문에 토비에게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근육질 몸매를 질투하면서 "그 몸으로 사는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아픈 구석을 찔렀다. 토비는 처음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는 손깍지를 낀 팔을 무픞에 고이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토비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대상화된 기분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토비가 말을 이었다. "방이나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특히 다른 남자들과 들어가면 사람들은 내가 해를 끼칠 거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지요. 내 외모 때문에 내가 폭력적이고 마초적일 거라고 넘겨짚는 거지요."
그는 제대로 지적했다. 금발 여자는 모두 멍청이라고 짐작하는 것과 다를 바 있을까?
토비는 매일 거기 조심스레 앉아서 상처를 언어로 옮기며 싸웠다. 그 사이 사람들은 그가 저러다가는 멍청한 사고를 칠 거라고 예상했고.
토비는 멀리서 사람들이 내리는 심판에 발목 잡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권투 선수 같은 몸을 가진 부드럽고, 감성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저녁 식탁에 앉은 원숭이 보듯해도 된다고 생각할까? - p293
-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548일 남장체험>, 노라 빈센트,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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