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삼년 동안 이어진 가뭄 끝에 잘랄라바드 하늘 위에서 단비처럼 항공기 기내식 포대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문화적 무지와 몽매는 차라리 잊자. 수개월동안 끝도 없이 이어진 굶주림과 찢어지는 가난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몰이해에 기초한 미 정부의 식량 공수 여론 몰이는 아프간 민중의 극심한 고통과 비극을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잠시 시나리오를 뒤바꿔 보자. 탈레반 정부가 뉴욕에 공습을 감행한 뒤 "우리의 목표는 미국 정부와 정책일 뿐"이라고 항변한다고 상상해보라. 공습 중간에 잠깐씩 아프간 국기가 세겨진 아랍 음식 봉투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선량한 뉴욕 시민들이 이런 것들 때문에 아프간 정부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배고프다손 치더라도, 식량이 정말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공중 투화된 음식을 먹었더라도, 어떻게 뉴욕 시민들이 자신들이 꺽은 모욕과 탈레반의 생색 내기를 잊을 수 있겠는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최근 사우디 왕자가 미국의 중동 정채의 우호적인 조언과 함께 보낸 1천 달라짜리 선물을 정중히 거절했다. 자긍심은 부유한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촉발되는 분노는 테러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발시킨다. 중오와 복수심은 한번 열어버리면 다시 닫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지원자들이 죽을 때마다 수백 명의 죄없는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수백 명의 무고한 인명이 살상될 때마다 수많은 테러리스트들이 다시 생겨나고 만다.

이런 악순환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말장난을 잠시 졎혀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모두가 받아들일수 있는 '테러리즘'의 정의를 발견해 냈는가? 한 국가의 테러는 다른 국가의 자유를 위한 투쟁일 때가 많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뿌리 깊게 배여 있는 폭력이라는 모순에 놓여 있다. 일단 폭력이 정당한 정치적 도구로 용인되면 발란이건 자유를 위한 투쟁이건 간에 테러는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미 정부 스스로도 전세계적으로 반군에 대한 재정 및 무기 지원과 보호를 해왔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파키스탄 쳡보부(ISI)는 지난 1980년대 친소 아프간 정권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규정됐던 무자헤딘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들 무자헤딘과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미국 건국의 영웅들과 도덕적으로 동격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전쟁은 평화다, 아룬다티 로이,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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