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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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사생활>, 토니 험프리, 다산초당
이번 신간을 보면서 내내 강츄를 외쳤다.(이 포스팅을 시점에서 이미 신간이라고 말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결론은 험프리 선생의 저작은 역시 다 보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것. 본인이 읽은 책은 이번 신간까지 하면 총 3권. 다산초당에서 낸 시리즈들 모두 모실 예정이다. 
<비폭력 대화>에서 '자칼'이라고 말하며 매우 부정적인 느낌을 주었던 우리가 기존 사용하던 대화의 패턴에 대해서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하게 그리고 비난하지 않으며 말해주고 있었다. 뭐 <가족의 심리학>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하긴 했었다. 결론은 나는 '자칼의 언어'보다는 '방어행동(방어적 행동)'이라는 텍스트가 더 편하다는 것이다. 뭐랄까 '자칼나라의 자칼의 언어'는 그 언어의 시스템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느낌이 강한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토니 험프리는 과거에는 그 패턴이 매우 효과적이 었다는 부분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당신의 그 패턴(대화던 뭐던)은 과거에 당신을 살아남기 위해서 매우 효과적인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해야하는 것이고 결고 수정이라는 것이 과거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뉘양스의 태도나 입장이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또 다른 부분은 <당신이 나를 위한 바로~>나 <불행중독>에서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위해를 강하려는 속성에 대해서 크게 지적하거나 아니면 그 상대방을 선택하면 자신의 인생은 '졸망(졸라 망함)'이라는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부부의 사생활>에서는 당신이 그러한 배우자를 만났다면(친구도 포함 되시것다) 그건 당신이 그 시절을 다시 당신의 현재의 궤도에 올려서 다시 좋아지기 위해서 새로운 모색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들은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결코 같지 않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너의 악취미(주로 습관이나 불행중독으로 명명되어지는)로 최악의 배우자를 구하는 너의 잘못된 태도(불행중독) 때문 이다' 같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다니! 이 얼마나 희망적인 태도인가. 나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진짜임)
물론 그 두 저작에서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건 아니지만, 뭐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완고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었으니... 뭐 말 다했나? 그 저자들의 그 입장을 보면서 독자중에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절망을 느꼈을지. 재고하는 부분도 없었으니 말이다. ~_~ 그러는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책들과 반대의 위치의 정점에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격려를 받고 조언을 받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고 나는 이 책을 추천하겠다. 지금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당신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당신은 이 상황에서도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더하자면, <부부의 사생활>의 표지 디자인도 역시 소인이 매우 사랑하는 오필민님이 디자인 하셨다. 표지부터 압도되었는데 역시.. ㅠ_ㅠ 필민님 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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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아이들>, 장 폴 피카페르, 르트비히 노르츠, 중앙
제2차 세계대전 때 점령군인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서 1부에서는 프랑스내에서 '독일놈의 자식'이라고 불리어지며 각종 종류별(말그대로 그야말로) 학대를 받던 아이들(지금은 중년이 된)의 증언이었다. 그들은 지금 현재에도 그들의 뿌리에 대해서 말하는데 큰 어려움들이 있었고 여전히 크게 망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태어난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던가.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었으나 그들의 엄마와 함께 낙인을 부여 받고 살아왔다.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그것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다른 뿌리를 찾아서 떠난 여정에서도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2부와 3부에서는 제2차대전 시기의 프랑스인 여성과 독일인 군인간에 태어난 20만명의 혼혈아들이 태어난 그 이유에 대해서 추척하고 있었다. 점령기 시기의 독일군이 취했던 태도나, 프랑스 여인들과 독일군 사이에서 결혼을 금지한 이유 등등 여러가지들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네의 사정 두가지가 떠올랐다. 일본인 위안부와 전에 했던 모 다큐. 한국군인과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그들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을 찾아왔으나 대부분 부모에게 거부당하고 있다는 이야기.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그들의 다른 뿌리를 찾아 떠난 그들은 그들의 다른 부모의 재산의 상속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가 살아 계시다면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돌아가셨다면 부모의 사진을 그리고 이복 형제와 자신의 비슷한 부분이라던가 그런것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들이 '유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 할 줄 알고 거부하는 일도 많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사생아에 대해서는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 아버지들은 이 사실을 알았을까? 물론 그 법이 지금은 수정되었다고 하지만...
전쟁에는 승자도 패배자도 없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침실 부역(그들의 주장에 의거하면)을 행사한 국가에 대한 대역죄인들 이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낙인을 받을 만큼 잘못했던가는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것 같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정의 내리고 처벌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국가적 테두리에서 생각한다면 그들(혼혈아의 어머니들 아버지들)은 국가의 존속(전쟁시기의)을 위험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테두리로 넘어와서 생각해본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애정을 가진다는 것이 그렇게 죄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전쟁 당시 그로 인하여 국가에 미친 위해는 거의 미미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여성의 몸을 통해서 전쟁을 상징화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전에는 전후 그들이 부역한 자들에 대해서 처벌하는 태도에 대해서 매우 모범사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수정을 해야할 것 같다. 생활형 부역은 분명 어느정도 선까지는 구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외적인 책임에 대해서 해방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식인이라고 칭해지는 자들의 부역과 그들의 부역에 대한 무게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는 것 같다는 것. '알아야 할 권리'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개개인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가. 누가 그들을 비난해야하 할까? 그 부분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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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피터 싱어, 산책자 
<죽음의 밥상>으로 유명한 피터 싱어의 2009년 신작에 대해서 어떤 기대가 있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그 기대가 모두 충족되었고 때로는 여러가지 고민들을 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었다. 이번 신작은(2009년 출간이니 신작이라고 하겠다) 전작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서 공격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결론을 향해서 한발 한발 크게 내딛으며 독자를 따라오게 하는 책 이었다. 기부에 대해서 사실 본인은 그렇게나 넓은 영역으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는 부분도 있었고 반성하는 부분들도 많았었다. 무엇보다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서 정면으로 돌파는 그 태도에 매우 감탄했다. 그 부분은 자신의 부에 대비해서 기부를 해야 하는 비율과 많은 기부를 해도 기아는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이타심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원봉사'나 '기부'에 대해서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내가 마주친 편견은, 그건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은 사람들이나 한다는 편견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여튼 그 지인에게 내가 한 항의 혹은 해명은 현실적으로 당신과 나의 경제적인 위치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논지의 해명이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많이 우수운 변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과 나의 차이는 주위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전해지지 못했다. 그것에 대한 나자신의 논리도 취약했기 때문에.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으로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 - 헨리 스피라, p 232

지금 본인이 타인에게 피드백 없이 하는 활동은 ㄱ에서 에디오피아에 있는 소년을 매달 후원, 모 단체를 매달 후원, 그리고 주 1회 3~4시간 정도 자원 봉사? 이걸 자원 봉사라고 해야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고 세간에서 이름을 붙였으니까. 개인적인 느낌으로 말하라면 다른 나라 말을 모어로 가지고 있는 분과 사귀기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가끔 책 기증도 하곤 함.
불합리함에 대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사소하지만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건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건 분명 타인을 위한 일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의 하나일 뿐이고 그것에 대해서 확대하여 해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냥 친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본인이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조금 멀어지기를 원했을 따름이다. 내가 부질없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낭비하는 사소한 돈이 타인의 삶을 그리고 그 가족의 여러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나의 낭비적인 소비를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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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속삭임>, 보리스 시륄닉, 새물결
내 마음속의 트라우마 치료하기. 세계 최고의 심리 치료사가 사례를 통해 들려주는 상처, 사랑 , 치유의 이야기 <- 라고 되어있었으나 정말 지루하고 또 지루한 책 이었다. 번역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간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책. 하나의 작은 파트마다 모두 사례도 소개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ㅠ_ㅠ 아놔. 덕분에 이 책은 한달을 넘게 잡고 읽었다. 내돈주고 사서 오기로 읽었다는....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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