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모나리자 스마일

리뷰/텍스트 2007. 9. 9. 03:12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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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스마일(Mona Lisa Smile, 2003)   
감독: 마이크 뉴웰
출연: 줄리아 로버츠,키어스틴 던스트,줄리아 스타일스,매기 길렌할


정말 우연히 동생과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잠이 오질 않습니다. 오늘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말이지요. 영화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동시대 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느끼기에는 말이지요.

여전히 그것들에 의하여 지배받으며 그 가치관을 대를 물려서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그 포장은 '정녕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렇지만  의지가 약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저는 매우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일까요?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게 답입니다. 그 세계를 들여다보고 맙니다. 그리고 이미지화 해버립니다.
그편이 가끔 정말 사실은 매우 종종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건 저에게 있어서 매우 견디기 힘들며, 트러블을 유발하는 모든 것에 취약해서 생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피해서 걸어가다보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에 그곳을 걸어가고 있더군요. 하하하하


이타보다는 한없이 이기에 가까운 존재이며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 나가기에는 정말 괴롭습니다.

가끔은 믿고싶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그냥 인정하면 좋은데말이지요. 그런거라고…….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하다고…….

역시 모르겠습니다.

얼마전에 '이기를 억제(?)하려고 노력하여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저에게 인지시켜주셨습니다. 이 순간 그 영화를 이해해주는 동생님이 있어서 기쁘고 '이기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저'를 좋아해주는 그 분이 좋습니다. 감사하고 있어요.

그렇지만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좋은 걸까요?

이미지를 재생하며 그 이미지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저 또한 재생산에 참여, 강요하며 그 재생산을 위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안정된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미묘한 이중성인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근원적인 문제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 것은 이미지를 주입받으며 그리고 그 이미지가 안정이라는 것을 받아드릴 때까지 강요받아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어디 즈음 있는 걸까요?

지면에 서있고 싶어하는 저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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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상에서 카메라의 눈앞에 노출되지 않는 고통이란 없는 듯 하고, 다시 우리는 미디어가 펼쳐내는 이 고통의 이미지들의 과잉 앞에 노출된다.
정지영상이나 동영상에 덧씌워지곤 하는 모자이크는 오히려 이 고통의 스펙터클을 더 사실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그 이미지 속에 재현되고 있는 고통이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와 시공간을 같이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외설적인 고통의 스펙터클 속에서 정작 고통 자체는 증발되고 사라진다. 우선 고통의 이미지들이 던져주는 충격의 효과들은 그 자체로서도 단명할 뿐 아니라, 상업주의 매체들이 유발하는 끝없는 자극의 인플레로 인해, 하나의 고통이 이미지가 유발하는 충격과 자극은 곧이어 또 다른 고통의 이미지에 의해 쉽게 상쇄되기 때문이다. 체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미지로서의 고통, 그것도 타인의 고통은 쉽게 망각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고통의 스펙터클의 외설성 그 자체에 있다. 투명함, 황홀경, 외설 등의 모든 것이 지수계산의 대상이 되는 과포화 속에서 보드리야르는 역사, 정치, 성, 주관성, 육체 등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에 주목했다. 고통 역시 고통의 스펙터클 속에서 사라진다. 살을 에[는 체험으로서의 고통과 그것에 대한 동정과 공유는 이미지 속에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현되는 고통 역시 그 실체가 온전히 재현되지 않는다. (탈)현대사회의 대중매체에서 맥락에서 탈각된 이미지들은 몽타주 속에서 고통 역시 파편화되며, 그 고통을 유발한 사회적 관계망은 이미지들의 연쇄에서 미끄러져 나간다.
그 결과 고통의 거대한 스펙터클은 정치나 경제와 무관한 개인적 불행의 일회성 이미지들, 자신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상실한 고통의 이미지 덩어리로 간락한다. 나아가 고통의 이미지들뿐 아니라 고통 자체가 그렇게 된다. 사진의 발명 이래 시각 이미지는 최고의 존재증명으로 군림해왔고, 이제 21세기의 시각 이미지들은 인간의 눈에는 기술적으로 거이 완벽하다. "여기 있다. 무슨말이 더 필요하냐?"는 이 이미지들의 극사실주의는 고통과 관련된 반성적 사유를 봉쇄해버리가 십상이다. 이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스스로를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매혹은 더 이상 생산의 양식이 아니라 사라짐의 양식이다. 그 매혹이 고통에의 그 아슬아슬한 매혹이라 하더라도.

-고통의 스펙터클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주은우, 167p~168p, 당대비평 2005 신년특별호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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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만날만날 2007. 8. 15. 15:35 by dung

"아 저요?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텐션은 내려가서 좀처럼 올라가지를 않네요. OTL


5월 말경에 모기에 물려서인지 그 자리에 물집이 계란 노른자 크기로(진짜에요. 믿기 함들지만...) 생겨서 피부과에서 치료받으며 거이 1달... 그리고 딱지가 생기고나서 상처가 곪은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 알아서 외과에서 치료받은지가 1달을 넘겼습니다. 총 3달을 넘기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주 월요일에는요. 외과 선생님께 성형외과를 소개받았습니다.
피부가 자라지 않는다면... 피부이식을 이야기 하셨으나 다행히 그정도는 아니고... 여기서 성장을 멈춘다면 절개후 봉합하는게 좋다고...


지렁이 상처는 이제 사절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지금 아무는 모양세는 영... 다리에 똥꼬(!)모양의 흉터가 생기고 있습니다. 0<-<


아...놔...;;;



몸상태는 점점 내려가고...
(다행히 재검받았는데요. 간수치도 정상이고 적혈구수 이런것도 정상이래요.
근데 저 상처는 뭘까요? -_-;;; 참 신기합니다.)


운동해야하는데... 말이지요. 참 어렵습니다.


야근 졸업하고 퇴근후에 자전거 타고싶습니다.
망할 8월.... 망할 야근.... 망할...*****



진짜 운동할껍니다. 자전거말고 헬스장도!!!(생겨라!!)

그리하여 광복절날 근무중..-_-!(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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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리뷰/텍스트 2007. 7. 23. 15:21 by dung

그때 분명히 저는 재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인 구조의 시선에 대해서 의구심 없이 그대로 재생산하여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정말 지질한 교만함까지. 아아 이 부분이 최고입니다.;;;   울고 싶습니다.;;;  미치겠네요.;;;;    
그 사람이 저에게 저는 그렇게 보아주지 말았으면 하는... 결코 섬세하지 않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였고 저는 그 재생산된 재배구조에서 한발자국도 걸어 나가지 못한 채로 그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의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런 시선으로 유린-유린이라고 말해야한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습니다―당했다고 생각하면요. 수많은 편견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래도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이라던가 "이사람만은"이라는 것을 저는 철저하게 배신하고 짓밟아 버렸습니다. 정말 미안해요.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뒤늦은 변명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저는 정말 한심한 인간이어서 그런 이중적인 잣대, 구조적인 시선, 차별적인 담론을 재생산하는 그런 군상이었습니다. 편견은 상대방을 가두는 것뿐만 아니라 저자신도 그 편견에 가두어 진다는 것.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부분을 언제나 간과해버리고 맙니다. 인간은 모순덩어리라지만, 언제나-거의 매번- 자신에 대한 적용은 본능적으로(?) 회피해 버리고 맙니다. 모순된 자신에게만 무의식적으로 제외했다는 것. 똑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 이 제와서(!)라도 깨달아서 다행일까요? 
그렇게 저의 무지는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속박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저와 함께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너무 늦은 거 같기 도하고. 오늘은 당신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타인의 부끄러운 점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저에게 당신들의 존재는 정말 축복입니다. 되돌린다는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타인의 이중성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정말 어린아이여서가 아닐까 이제 와서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자신이 그런 저 자신을 잘(?) 견디고 있었던 것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무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부끄러운 저와 마주서는 것. 그리고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노력하는 것. 숙제가 정말 많습니다.

저의 한심함을 인지하도록 도와주신 정희진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접했던 것은 지배적 담론이나 성차별적인 구조가아닌 인종적인 부분이 더 지배적이었으니까요. 저의 공부의 길을 인도해주신 세분께 감사드리며,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들어주신 그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격려해주며 부끄러운 저에게 바른 지적을 해준 그녀에게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릴때부터 함께한 소중한 당신에게 너무나 크나큰 상처를 준 점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이런 저를 인지시킬려고 노력했던 당신에게도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저와 관계가 없는 당신. 그런 편견으로 당신을 바라보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저를 그런 군상에서 해방시켜주었던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의 텍스트들의 일부를 적었습니다.




(중략)......내가 '편리'와 권력을 누리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문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것이다. 사회운동은 매순간 새롭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운동이란 정해진 어떤 입장을 현실에 적용, 실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우리/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계속 걷지 않고 멈춘다면, 즉, 삶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억압과 고통을 복잡하게 새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수구 세력'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과거의 한 순간에 자신이 선택한 정치적 입장을 변화와 성찰 없이 믿으면서, 혹은 자신이 하는 정치가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타인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기는-이것은 폭력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진보 없는 한국의 '진보' p130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매춘 여성?

이영훈 교수는 정신대 문제와 관련한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청산'을 요구했다.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라는 일본의 전쟁 범죄가, 일제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강제 동원 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관리자, 위안소를 찾은 한국인 병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일부 군대에서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자행된 여성의 성착취, 국가적.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 기지촌에서의 성매매 문제도 청산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 모순으로만 제한하는 시각을 비판하면서, 성폭력과 성매매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발생하는 '동일한' 여성 인권 침해 사안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일제가 물러간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 인권 침해인 성폭력과 성매매는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현실까지도 청산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남성 중심의 획일적인 언어와 인식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수용 이전에, 그의 급진적 인식은, 나와 내 주변의 여성주의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곧바로 송길원 의원에 의해, "정신대=공창제"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으로 매도당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공식영역(결혼 제도)과 비공식 영역(성매매, 성폭력......) 모두에서 성의 자유를 누리지만, 여성에게는 가족 안에서 출산을 위한 성만을 허용한다. 남성은 두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지만, 여성이 비공식 영억의 성적 제도와 연관되는 것은 낙인을 의미한다. 특히, 성판매에 종사하는 여성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극심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성활동(섹슈얼리티)이 성별에 따라 이토록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남성은 그렇지 않지만) 여성의 성은, 여성의 자아와 인격,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로 간주된다. 그래서 성폭력과 성매매 제도가 여성을 통제하는 권력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한 사실은, 이 교수의 발언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 그 감정의 정체가 성판매 여성에 대한 완벽한 타자화와 혐오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 위안부' 문제를 전시 성폭력으로 인식하는 근거가, '자발적인' 성판매 여성에 대한 혐오여서는 안 된다. 나는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성판매 여성이라는 구분보다, 성폭력과 성매매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질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은 일제에 의해 집단 성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성폭력은 만연해 있다. 일제 시대 정신대로 끌려간 여성들, 기지촌 성판매 여성들, 2004년 여성 노동 인구의 4분의 1에서 5분의 1에 이른다는 성산업 종사 여성들, 그리고 밤길 걷기를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는 모두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순결한'피해 여성과 '타락한'성판매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와 성폭력은, '자발'과 '강제'라는 '반대' 현상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는 구별될 수 없는 연속선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바로 성폭력과 성매매의 원인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여성을 남성의 성 권력의 희생자와 '자발적으로 남성의 욕구에 부응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 결국은, 남성을 위한 제도의 '희생자'들이다. 나는 일본 우익의 주장대로, 한국 여성들이 '성매매'로 전쟁에 '참가'헸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며, 당연히 사과,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 시대 '군 위안부'문제의 가시화와 역사화는 물론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는 여성의 성 피해가 민족주의의 이해와 일치할 때에만 문제화된 것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 남성들이 일제 시대 '군 위안부'경험을, "우리 여성들을 육체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여성은 물론 겨레 전체를 정신적으로 파괴한 민족의 수치"라고 본다. 즉, 전시 성폭력을 여성 인권 침해라기보다는, 여성의 생식기 능력 훼손이라 보고 이를 민족 말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 간 갈등을 위미하는 '정치'에서, 가장 확실한 동원의 토대로 가능하게 된다.
한국 남성들의 "우리도 일본 여자를 강간하자."라고 심심찮게 말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볼모로 한 남성 정치학의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대한 영토 림략과 정복, 곧 '자궁 점령'을 의미하게 되고, 일제의 경우처럼, 그리고 한국이 베트남에서 정책이 되는 것이다. '군 위안부'사건은 민족 모순이자, 여성 인권의 침해다. 이 사건을 민족 간 갈등으로만 환우너하려는, 한국 남성들의 그 집요한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게 행하는 성폭력과 성매매는 괜찮다는 것인가? 

- 진보 없는 한국의 '진보' p139,140,141



(중략)......이제까지 가정 내 폭력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주된 근거는 개인(구타 남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였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은 인간이 아니므로 여성의 프라이버시는 남편에게 속해 있으며, 폭력당하는 여성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공.사 영역의 분리, 대립은 허구이다. 

-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p163, 164




(중략)......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는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 전환자든, 성기 삽입이든, 이물질 삽입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인권 침해이고 성폭격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임신 가능한 부녀자'만을 '여성'으로 볼 때, 성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남성 각자가 소유한 '임신 가능한 부녀'에 대한 침해죄-'사유재산권' 침해-가 된다. 이러한 문화적 규범 때문에 성폭력 특별법이 있어도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처별하기 어렵다. 자기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가임이 가능한 부녀자'가 아니므로 남성 연대의 가부장제 질서를 위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p171


여전히 많은 의문들을 남아있지만, 적어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앞으로의 숙제. 그리고 "노력하는 저 자신을 만들면 어떻게든 해소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감정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시선과 그런 편건과 시선에 의해서 만들어진 고통에 대하여 타인을 하위 주체로 만들어서 고통을 해소했던 것이 아닌지. 고통의 타자화. 지배적 담론과 함께 저는 저의 욕구를 그런식으로 풀고있었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방되기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알면서도 가끔은-사실은 자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식으로 되어버립니다. 하아. 
저는 정말이지 "적어도..."의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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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몸이 많이 아프고 슬펐어. 아마 너는 이런 아픔 속에서 겪는 절망을 상상할 수 없을 거야.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무시무시한 불안과 때로는 그 무엇으로도 진정시킬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곤 하지. 그래, 고통도 절망도 나 혼자, 다른 누구도 없이 오직 나 혼자서 겪어야 해. 앞으로 몸을 구부릴 수 없기 때문에 오래 글을 쓸 수도 없고, 다리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오기 때문에 걸을 수도 없어. 책을 읽는 일도 나를 피곤하게 할 뿐이고. 하긴, 읽고 싶을 만큼 흥미 있는 것도 없지만 말이야. 이제는 우는 것 외에 달리 할일이 없는데, 어떨 땐 우는 것조차 힘에 겨워. 내 방을 둘러싼 벽이 나를 얼마나 절망에 빠트리는지 넌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이게 전부야! 이제 이런 절망에 대해 너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구나….
- 1927년 4월 25일 알레한드로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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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1940년

알겠니, 내가 널 사랑한 건 네 머리카락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 머리카락이 네게 없으니,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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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은 사슴 1946년

살아가는 동안 결코
당신의 존재를 잊지 않으리라
당신은 지친 나를 안아주었고
어루만져 주었지
너무도 작은 이 세상에서
시선을 어디로 향해야 하나?
너무 넓고, 너무 깊어라!
이제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아득함, 오직 현실만이 존재한다
그랬다, 항상 그랬다.



그녀의 그림은 감정을 전이시키는 힘이 있어서 그녀의 그림들에 나의 밤은 지배받고 있었다.
아침. 자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잠을 깨고. 결코 그런 그림들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행복했었다면 그런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을려나?  만약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저책도….

좀 더 평범하게 보통으로 그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는 그 사람만 있는 게 아닌데…….
그게 그녀의 불행의 근본의 원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견디기 힘들어요. 그건 말이지요. 승화 아니 고통을 응집시켜 표현한다고 해서 근원이 해소될리는 만무한데, 오히려 자신의 그림으로 인하여 더 한없이 내려갔던 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고민하며 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정말로는 그건 견딜 수 없는 것이었고 그저 그걸 표현함으로서 어떤 무언가가 해소되었던가 아니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살아 갈 수 있는 거였는지.
그로 인하여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을 까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멈출 수 없었던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건 그 어떤 것으로도 그건 채워질 수 없으니.

부디 행복해주세요.
모든 고통을 여기에 담아내고 떠나갔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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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noodles

토동토동/메인 2007. 4. 28. 10:01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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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s
Asian Noodle Bar
서초구 서초동 1465-11
02-525-3885

예술의 전당 바로 앞에 있는 noodles는 원래 에전에 HOUSE가 있었던 자리이었다고 하더군요. 점심에 가면 점심할인도 된다고 하는데 그시간에는 못가봤습니다. 먹어본 메뉴는 센야이, 베지터블, 미고랭, 그리고 기본 쌀국수(안심,등심), 닭다리요리를 먹어봤습니다. 아 그외에 데리야끼 치킨밥도 먹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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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음식들은 사진은 폰카사진이라 화질이 영 아니라서 왼쪽 베지터블, 센야이만 올립니다. 베지터블쪽은 기대했던거랑 너무 달라서 많이 당황했던 음식. 맛은... 비빔면 맛이었습니다.-_-;; 그거 빼고는 다른것들은 만족선. 매우 좋았던건 센야이 인거 같아요. 센야이는 조금 단맛이 나며 숙주나물이 많아서 좋습니다. 미고랭쪽은 조금 매웠습니다. 매운 요리가 괴로운분들에게는 비추천. 닭다리 요리쪽도 조금 달면서 맛있는 요리로 기억합니다. 아마도..-_-;;

찾아가기가 지하철역에서 다소 먼감이 있는거 같은데 뭐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나 공연보고 가기에는 좋은거 같아요. 생각보다 그쪽에 밥집이 별로 없다는 자주 방문하시는 모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추천 1위라고... 베트남, 태국요리는 여자분들은 대부분들 좋아하시니 부담없이 가기에는 좋습니다. 쌀국수쪽도 담백하니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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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Le Petit PARIS

토동토동/메인 2007. 4. 28. 09:18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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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etit PARIS
02-3142-0282
신촌 창천교회 인근 위치


K양이 즐거워하며 이야기했던 프랑스 요리점이 아니지만 드디어 저도 프랑스 요리를 먹어보았습니다.^^;;; 신촌 창천교회 길건너편. 예전에 세피아 노래방인가요? 그 인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들어가본 가게는 아담하니 귀여웠습니다.
주문할때 여러가지 에러사항들이 있었는데요. 주문하시는 분이 한국말을 거이 못하시는 관계로... 스테이크의 고기상태를 '빠싹'이라고 웅이씨가 말했는데 못알아 들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저희가 '먼가 잘못이야기했는가?'라고 생각하다가 주문 받으시는 분이 한국말을 거이 못하는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계산해주시는 분도 매한가지였구요. 계산할때 '칠십육만원-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하신거 같습니다'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계산기를 보고 저희가 바로 정정해드리긴 했지만요. 하하핫; 그리고 계산하실때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좋은일이 있어요. ^^ 가보시면 아시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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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한 가게이었습니다. 스테이크 고기도 매우 좋은 고기를 사용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돼지호박크림스프-오늘의 스프이었습니다-, 베이컨 감자 어쩌고 샐러드, 디저트로 초코케이크-이것도 오늘의 디저트-, 그리고 저는 씨겨자소스 돼지고기 간심과, 함께 가신 다른 두분은 같은 스테이크를-아마도 안심?- 미듐과 레어로 주문했습니다.
처음 나온 스프가 양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사진참고). 세사람이서 먹고도 충분했습니다. ^^;; 베이컨 감자 샐러드쪽도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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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도 좋았구요. 오른쪽이 스테이크, 왼쪽이 제가 시킨 씨겨자 소스 돼지고기 안심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맛난거 먹으니 기분이 절로 업되는 즐거운 날 이었습니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구요. 프랑스 요리는 비싸다는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전체적으로 가정식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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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늘의 디저트인 초코 케이크가 나왔는데요. 처음 먹어보는 종류의 초코 케이크 이었습니다. 가운데는 살살 녹고 옆에는 빵-아닌가?-이었습니다. 옆에 장식된 초코소스와 같이 먹으면 더 좋더군요.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닝닝하지도(?) 않아서 좋았습니다.

양도 돼지인 저에게 만족스러웠습니다. 세사람이서 개인메뉴 한가지씩과 스프와 샐러드 디저트는 하나씩 시켜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먹다가 가게를 둘러보니 외국인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 다음에 오면 친구들이 시켜먹은 스테이크를 시켜먹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일전에 교대에서 먹어면서 좋아했던 스테이크집 J's Diner쪽보다는 이쪽이 더... 아닌가? 살짝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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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몸상태 O<-<

만날만날 2007. 4. 27. 23:02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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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응급실에 두번 다녀오고나서...
급기야 입원까지 하게되었습니다. 포스팅을 하는 지금은 퇴원해서 집입니다. ^^

오늘 퇴원한다고 아침부터 짐정리를 다하고 옷갈아입고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정말 시간이 천천히 가더군요. 병원에 있는 동안은 시간이 정말 멈추어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매일매일 검사가 이어졌는데도 무려 책을 4권이나(!) 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시몬느 보부아르의 노년에서 읽었던 문장들이 이것저것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금식을 오래한 여파인지 덕분에 식사량이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게다가 체력도 거이 0 ㄱ-;
잠시 걸어도 힘들어서 쉬여아하는 극악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하하하 아하하


여하튼 저는 금년 목표가 수정되었습니다.

1. 운동하기
2. 아침먹기
3. 식사시 최소 30번 절구질하기
4. 12시전에 취침
5. 금주
6. 적당히 식사하기


정말 어려운 목표입니다. 아침먹기는 지난주 금요일부터-금식기간을 열외로하면- 열심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오늘 저녁을 먹고나서 천천히 산보를 했구요. 절구질 식사도 병원에서 금식 끝나고 죽나왔을때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데 정말 어렵네요. 자꾸만 밥이 중간에 넘어가고 말아버립니다. OTL 제일 쉬운건 금주인거 같아요. 술이야 20대 초반에 거이 졸업했으니까요. 즐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주에 재검사 받을때 멀쩡하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간수치가 다시 올라가면 조직검사도 받아야한데요. 그때는 아마도 '자가발전성 간염'으로 의심하고 상세검사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이 이야기하는데 통 뭔소리인지 모르겠더군요. 어려워요. 원인을 알수 없는 바이러스에 간이 간염되어서 저는 응급실을 두번이나 가고 복통으로 콧물과 눈물이 범벅되어서 뒹굴었다고 하더군요. 간이 아프면... 현기증도 오고 구토도 오고... 배도 아프고... 그렇데요.

우려했던 장쪽은 내시경에서 멀쩡했습니다. 다행인가요? 장기능의 문제는 선천성이었나봐요. 위쪽에는 역류성 식도염 1기인걸 알게되었구요.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먹는약은...
간질환 치료 보조제, 담즙분비 촉진제, 소화기계와 담도계 비노기계의 경련 완화가 되는 진경제, 위염과 위궤양 치료제, 위산분비 억제제, 위장관 운동 조절제와 감기약을 더해서 먹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건강이 쵝오에요. 운동합시다.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나 머리를 감겨주신 박양님. 싸랑합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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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에 사진으로 출연하셨습니다.^^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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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 최선생님의 권유로 야간비행에서 발행한 <서준식의 생각>을 구입했습니다. 
원래는 <서준식의 옥중서한>쪽을 먼저 구매하려고 했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음 '조금 미루지뭐...'라고  생각하고 한 2주정도 후에 직장 동료분들과 책을 사려고하니 "품절" <- 모든 인터넷 쇼핑몰이 품절이더군요.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ㅠ_ㅠ; 아놔...
책은 역시 미리미리 사재기입니다(!)<- 물욕극복은 저로서는 매우 무리무리 -_-;;;

용기를 내어서 출판사에 전화했습니다. '저기요. 반품들어온거라도 팔아주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출판사에도 책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OTL 그래서 '회사에 굴러다니는 책이라도...'라고 말했습니다만. 역시 없었습니다. 중고서점을 돌아다녀야 하는것인가! O<-< 
그래도 다행인건 빌려달라고 부탁드릴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서준식의 생각>을 보고 있는데 부인과 줄치며 봤다고 이야기하시며 옥중수기 꼭 보아야 한다고 귀뜸해주셨거든요. 책을 읽고나니 그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거 같아요. 

이번주 평일에 서씨 형제분중 큰형님의 책도 구입했습니다. ^^;; 서경식씨의 책과 같이 이분책도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책이더군요. 아무래도 번역된 책들은 곡해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표현의 문제이거나 반대로 저의 바보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책들은 이게 도통 뭔소리인지 모를때가 가끔 있습니다. 우리네글로 우리네표현으로 적어주신 서준식씨의 아름다운 생각들은 어려운 주제를 뭐라고 해야할까요? 바보인 저를 쉽게 끄덕거리도록 설명해주셨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 그대로 전하는것은 매우 고난이도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에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그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곡해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매번 좌절하고 맙니다.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태도가 문제인가로 매번 번뇌하지만 이쪽이 큰거 같기도하고 어떨때는 반대쪽이 큰거 같기도 합니다. 
폭력앞에 좌절하지 않고 비폭력으로 당당하게 응시하는 그. 마지막 부록의 딸네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울고말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아부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를 보면서 울었을 때 이후 두번째 이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걸까? '그래도 조금 더 알고있어-우리 연배의 사람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과거형으로...;;-'라는 저의 매우 교만한 생각들이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바보는 스스로가 그래도 조금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었습니다. 얼마나 교만한지. 

상품의 '보편적'인 유동을, 따라서 가치의 '보편화'를 지향한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동시에 최대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임금의 중층적 차별구조를, 따라서 항상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소수그룹을 필요로 하는 전신분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밑바닥'을 겨우 면한 자들의 '맨 밑바닥'에 대한 추잡하게 비뚤어진 우월감은 언제나 이 구조의 '모세혈관 부위'에서 이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원양어선 사관들의 "거러지 같은"외국 놈에 대한 비뚤어진 우월감은 자본의 최대이윤 생산에 분명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방법원은 그 판결문에서 경쟁을 배제하는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에 익숙해진 피고인들이 조업을 독려하는 한국인 선원들의 폭력을 인간적 모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럼 인간적 모멸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생산을 올리기 위한 '독려'로써 쓰여질때 폭력은 인간 모멸이 아니게 된단 말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은 원래 지존파가 스스로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남을 향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헸다는 따위 저열한 표현으로 남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스카마호 선장과 사관들, 그리고 함부로 사형을 입에 올린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한 일은 있어도 조선족 산원들은 한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이 비뚤어진 무한경쟁의 체제에 길들어져 인간 모멸을 인간 모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는 누구인가 중에서 

저의 그곳에는 진실이 없었습니다. 그냥 보고싶었던 진실만 존재했었을 뿐이죠. 누구의 시선을 통해서 느끼게 된 진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뭐 다들 시작은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에서 시작하니까요. 전 아직 어리고(?) 시간은 많으니까요.;;; -무한긍정생각중-
적어도 원인제공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야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사랑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푸하하하 -_- 속들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한번쯤은 하셨을텐데. 행동으로가기까지는 수많은 작용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결국 공동의 책임. 그리고 방관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것들을 방관하며 즐거이 살고 있습니다. 뭘 해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그러니까요. 누군가 저에게 <옥중수고>를 선물해주세요. ㅠ_ㅠ;;; 으흑
그리고 금요일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있습니다. 얼마나 갈런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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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부터 머언 곳으로 이사간 덕분에 많은 책들을 보고있습니다. 감사해야할 부분인거 같습니다. 그다지 생각없이 잡은 사티쉬 쿠마르의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를 읽고 여러가지 생각들의 방향을 찾은거 같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라는 답변에 그는 근원의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티쉬 쿠마르씨의 생각을 느낄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티쉬와 그의 어머니의 대화에 놀라고 9살때 자이나교 승려의 길을 선택한 그의 결정이 놀라고... 놀라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이나교의 엄격한 규율도... 그리고 자이나교의 승려임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이 지구를 위해 무일푼에 맨발로 떠난 그의 여정들. 그가 만난 많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각들에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물욕은 여전하며 대안을 생각하지만, 대안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들. 그리고 비폭력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들을 느끼며 저도 그이 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하지만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좌절. 그리고 다시 걸어가기... 또 좌절이 이어짐의 계속입니다. 

.
..(중략)...
"소유권이 개념은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농업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소유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그리 해를 끼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도구를 가지고 일했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땅을 경작하고, 작은 배와 작은 그물로 고기를 낚았습니다. 그렇게 충격이 약했기 때문에 개인소유권이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훨씬 더 발전된 기술과 대량 생산, 국제적인 산업과 빠른 통신체계로 개인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지구 자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무역의 세계화는 공공의 것을 민영화시키고 있고, 지금은 소유에 대한 개념이 지적 재산권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미 소수의 개인과 회사가 땅과 동물, 숲과 광산, 물과 같은 세계자원의 많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유권은 세계화 속에서 훨씬 더 적은 숫자의 손에 들어가는 쪽으로 집중될 것이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합니까? 그들의 생계에 필요한 자원이 부자들에게 맞춰지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엘리트 계층은 교육을 받고 권력을 통한 통제수단을 쥐고 있으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소유권 자체의 개념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의 한 부분이며, 무너가를 소유한 지배자나 재산관리인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 자신이 지구의 수탁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탁자란 무슨 뜻입니까?"
"수탁자의 지위에 대한 개념은 마하트마 간디가 처음 만든 것 입니다. 그는 우리 인간들이 모든 생명체와 다음 세대의 이익에 대한 신성한 믿음을 가지고 지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본을 고갈시키지 말고 오로지 그 이익이 쓰여질 수 있도록 원래의 자본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보관하고 있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보관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돈을 쓰는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질 수 있는 지출만이 허용됩니다. 수탁자들은 신탁에서 오는 수입을 일반대중을 위해 사용해야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천연자원을 자본보다는 수입으로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우리가 자원을 소유하고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지구가 우리의 진정한 자본이기 대문에 고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인 우리는 지구를 감소시키기보다는 강화시키고 보충하는 방법과 수단을 찾아야합니다.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열매들만이 오로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간디의 발자취를 따라중에서 

언제나 생각하던 '그 근원'인가? 일지도? 그럴까? 정말?.... 아아.....뭐 대략 이런 느낌입니다.  '음 그건 그거야.'라고 명쾌하게 답변할수 있는 자신을 꿈꾸며 여러가지들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만 언제가 되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은 단언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것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거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 몇가지를 빼고는 이야기를 못하겠습니다. '이런 참담한 현실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것일까'에 대해서 한발자국 걸어간 느낌입니다. 말도안되는 이상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을 언제나 꿈꾸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매번 저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행동들 언어들에 둘러쌓인체 살고 있지만요. 네 알고있습니다. 모두가 조화로운건 불가능 하다는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의 충돌을 피한다던가 대안이 어딘가에는 있다던가 절충안은 정말 있었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어...라던가 그런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매우 가까운 대인관계는 아니지만, 견디기 힘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에게는 매우 스트레스 입니다. 마음은 무겁고, 그것을 받아드리자니 자신을 견딜 수 없고, 도망가는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것.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자신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일부는 그 상대방에게도 이유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전혀 사소하지 않지만 가끔 사소한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역시 그사람들은 저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에 '사소한'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맙니다. 견디지 못한다는 의미는 거리를 두고 싶은데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문제들과 마주쳤을때 역시 도망친다(?)가 저의 대부분의 응답이었던거 같습니다. 좀더 진지하게 응했다면 다른 결론이 서로에게 보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들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저의 한계는 한계입니다. 그런건 그런거거든요. 그러니까 선을 넘어와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가지는 과도한 관심도... 과도한 질문도... 이쪽에서는 매우 견디기 힘듭니다. <-역시 앞으로 나가가고 있다(?)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감사하고 아끼고 그리고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야 한다는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은 감사합니다만,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가 저의 답변인거 같습니다. 

저를 위해서 만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살아있으며, 살아있는것에 대해서 다시금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땀이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있지요. 오늘 먹은 죽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적은 시간을 산건 아니지만, 죽이 맛있는줄 알게된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죽은 저에게 있어서 '그런사람과 같은 존재'이었거든요. 저 자신이 달라지니 죽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마음의 문제인걸까요? ...라기보다는 그런면을 견디기 힘든게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감인겁니다. 매우 유감. 제발 신호를 알아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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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볼테다!!'라고 노래를 부르던 아민 말루프씨의 <사람잡는 정체성>을 받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표지가 정말 당황스럽더군요. -_-;; 이분 이런 느낌의 강렬한 존재감(!?)의 글을 쓰시는 분이 아닌데... 극단적인 느낌을 주는 표지는 먼가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을 받으면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의 전쟁>을 기억하면서 펼친 <사람 잡는 정체성>은 역시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분하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사람을 잡는(죽이는)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레바논 출생으로 초기기독교 종파...(-_-;; 기억이 잘.. 게다가 이런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중의 하나인 *** 부락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종교분쟁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 나를 떠나서 프랑스에 안착하여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기자이었습니다.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 그리고 같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강요받는 혹자는 강요하는 정체성의 문제점에 대해서 매우 차분한 어조로-아마 이 느낌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함께 보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은 경험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것을 본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인가라고 조금 생각해봤습니다. 제목처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는 책의 모든곳에서 비명과 절규가 들리고 있었습니다만, <사람잡는...>는 그 또한 많은 고통을 받았음에도-물론 고통의 경험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규의 차이인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두사람의 고통을 저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보기에는 눌러담고 또 눌러담아서 축약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자서문
1장_ 나의 정체성, 나의 소속들
2장_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3장_ 지구촌 부족들의 시대
4장_ 표범을 길들이다
맺는말
옮기고 나서

사람의 정체성은 단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다는 그의 이야기에 부끄러워 하며 또 반성했습니다. 지당한 진실이지만, 언제나 가볍게 넘어서 그런 방향으로 가고 말아버립니다. 제한된 경험에 의한 편견은 무섭습니다. 저를 무서운 시선에 가두고 그리고 타인을 제한된 장소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지한(;;) 저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초기기독교 소수단체들이 많았었다는 이야기에 부끄럽게도 놀랐습니다. 물론 과거에 그들은 여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것에 대해서는 알고있었습니다. 최근 보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번역자주에서도 단호히 지적하는 각주에 다시 한번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교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가장 무서운건 무관심과 무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꽤 오래전에 적다가 다시 적으려고하니 흐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서 어렵네요.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까 다시 적어봅니다.)
많은 분들의 글들에서 종종 인용되었던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서문에서 부터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1961년판 서문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의 서문은 찌프려진 눈을 원래대로 돌릴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대상 독자가 다르다고해도... 더욱더 충격이었던건 그가 이 서문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런건가? <- 라고 생각하기에는 저에게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부끄러운 서문을 뒤로한채로 저자신이 그라면 그리고 만약 아직도 살아있다면 결단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책들을 회수해서 화형을 하고 싶은 기분일거 같습니다. 뭐 그때의 그런 생각이 그럴수도 있다...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과거는 무덤으로 가져가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제목이 그대로 표지에서도 다가오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시작부터 충격이었지만, 본문 역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느 페이지이었는지는 자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서구의 원조에 대한 언급부분은 어려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네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강탈해갔으며, 이제와서 원조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선행(?)에 대해서 감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더 많은것들을 받야아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이다. 라는 이야기었습니다. 번역자로부터 걸러지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받아드리는 저로부터 또 걸러져서 결국 저에게는 이렇게 도착했습니다.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괴성이 느껴저서 보면서 괴로웠던 본문들을 지나 파트 5의 식민지 전쟁과 정신질환 부분에서는 말을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언가 이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는데... 지나고나니 저편으로 지나가 버렸네요. 그렇지만, 파트 5에서 함께 놀던 프랑스 어린이를 죽인 알제리 어린이의 인터뷰 내용은 눈을감아도 생각나버립니다.

상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극복하는것은 어떤것인지 아직도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단호하게 답을 내릴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하는일은 너무나 버거워서 도망가고 있는거 같습니다.

우리네들의 상처는 여전하며 시선은 극복되지 않았으며 그리고 과오는 계속되는거겠지요? 가끔은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반성하면서 또 반성하다보면 언젠가는 보일꺼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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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에 있는 여러가지들, 그리고 타자인 '그들'의 범주에 있는 여러가지들.  살아가면서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우리-우리와 타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와 우리집단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에 대한 이미지는 솔직히 매우 부정적입니다. 우리라는 범주에 속박하려고 함으로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절감하고 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가장 괴로울 때는 우리를 원하지 않는 저와 우리에 넣고자 하는 우리의 소속인과의 충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저로 매우 만족스러운데요. 그분들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 소속에 넣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고마워 해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할때는 여러가지 것들을 살펴보기 이전에 그사람이 우리집단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지 아닌지 여부부터 살펴보는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소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면 필연적으로 우리집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결코 우리에 소속되지 못하는 타자들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그리고 저의 가치관의 충돌, 우리로서 소속감 우리집단에서 우리가 해야할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라던가 우리가 아닌 타자를 배척해야하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라던가... 적다보면 정말 많아질거 같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의 저자 데이비드 베리비는 아버지는 유대인 어머니는 미국인이며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영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있는 또다른 디아스포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살아가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종교적인 편견 사회적인 편견들등등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접근한 책이었습니다. 총 15파트로 나누어서 연구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여러가지 실예-실험집단을 대상으로 지금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최대한 배제한 실험군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던가 이러한 부분이 여러가지들을 좀더 생각 할수 있도록, 지금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외 여러가지 에피소드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과거의 특수했던 상황-백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01_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차이로군요"
02_ 이보다 기이한 문제는 없다
03_ 계산과 측정
04_ 깃탈이 같은 새들
05_ 마음을 보는 눈, 부류를 보는 눈
06_ 코드를 찾아서
07_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가
08_ 오클라호마의 전통 창조, 혹은 여름방학에 있었던 일
09_ 그들을 화형시켜라
10_ 공통의 인간성이 우리를 울린다

11_ 거기에 인간은 없다

12_ 이방인이 되지 말라
13_ 신고식과 전환
14_ 효수된 머리
15_ 다윈주의라는 종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편견들은 당신의 머리속에 있으며 당신에 의하여 매일 새롭게 만들어 진다고 결론을 내리며 "특별한 기회와 약점들을 지닌 그러한 힘을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 힘을 휘두르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인간 부류 코드는 당신이 행동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민족적 긴장, 종교적 분쟁, 정치적 갈등, 파벌 간의 경쟁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을 끼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라고 마지막 부 "결론"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답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부정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벽히 긍정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고 싶은것'과 '그런 인간인것'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입니다. '반성해도 나아감이 그다지 없다'라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노력해도 언제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편견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의 여러가지 분노들-좋지 못한 기억들과 우리집단과의 여러 의미의 충돌-이 그런쪽으로 종종 인도하고 말아버립니다. '그사람은 그 우리집단이었지. 역시 그럴줄 알았어.' 라는 식의 말도 않되는 결론으로 도출해 버리고 맙니다. 더 무서운건 그런방식이 분노의 해소-폭발을 잠재우는것이라고 해야할지, 사실 대응하지 않고 넘어간다가 답인거 같습니다-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우리집단-그혹은 그들이겠지요-에 대한 편견-사실이라고 해야할지 편견이라고 해야할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실이면서 편견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는건 무리입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싶지만, 그들은 항상 모든이들을 우리에 넣고 싶어하기때문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집단에 들어오기를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지 올바르다고 해야할까요? 
저의 변명이었습니다. 어디까지가 강압이고 어디까지가 공익이고 어디까지가 이기인지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저또한 누군가에게 저의 가치관을 강압적으로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걸까요? 그럴지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집단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저는 온몸으로 저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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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만날만날 2007. 3. 15. 02:01 by dung

살다보면 아아 이건 정말 나의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할때가 가끔 있습니다.

저의 운명은_

1. 게리
2. 과민성장증후군
3. 특정음식 민감증후군(마음대로!! 지어본다!)
4. 가끔 찾아오는 장염

...인거 같습니다.


곤란한점은_

1. 중요한 회의할때 갑자기 박차고 달려나간다.
2. 극장에서 기어서 나간다. 혹은 영화를 볼때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기타 공연을 보는 곳도 이유는 동일하다.
3. 달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꽤나 난감하다. 비행기가 이륙할때도...
4. 옆칸의 모르는 분에게 혹은 앞에서 기다리는 분에게 무언가를 구걸한적이 있다!?
5. 운명 1의 증상으로 인하여 귀가시간이나 약속시간이나 출근시간 잠자리 시간이 매우 지체된적이 빈번하다.
6. 결코 운명 1이 달려오면 아니되는 상황에서 1을 마주하고 무려 기도를 하고 약을 털어 넣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관심있는 분과 극장에 갔는데... 운명 1이 저에게 싱긋 웃어주실때 라던가...  이경우 운명1에 대해 설명하기 곤란하여...후략......
7. 운명 1로 인하여 가끔 세상과 이별하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유서에 "게리"라고 적고 가면, 뉴스에 나온다는 동생님의 부탁으로 설사 그런마음이 들어 유서를 적더라도 그 단어는 빼기로 약속했습니다.
8. 관련 물품구매로 가끔 좌절합니다. 후시딘을 자주 산다던가. 물티슈는 항시 상비되어 있다던가...
9. 탈진되어서 쓰러지고 싶은데 집이 아닐 경우
10. 3번 운명 특정음식증후군으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것이 문득 생각날때.
11. 병원에 갔는데 저의 빈번함에 대한 고백을 듣고 의사선생님이 당황하실때.
12. 상담치료라도 받아보라고 권하는 지인분에게 할말이 없을때.
13. 단둘이 만났을때 운명 1이 찾아왔는데 단발성이 아닌경우. 기다려주는 상대편의 존재도 스트레스의 요인이라는 것.

...등등(지금 생각나는것은 이정도 입니다.)




ㄱ- 적고나니 정말 우울한데요.
새벽 2시에 이 포스트를 적는 이유는 3번 운명으로 인한 1번 운명과 사투중(?)이기 때문입니다. OTL 아아 3번 운명이 새로운 음식을 점지하여 주신거 같습니다. 긴가 민가 했는데요. 이제는 밀가루류와의 이별도 준비해야 하나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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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MARSIL(마실)

토동토동/메인 2007. 3. 13. 01:35 by 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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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IL
서초점_ 522-2229 서울고등학교 건너편
역삼점_ 522-3339 현대역삼벤처텔 지하


대략 1월경에 다녀왔습니다만;; 포스팅은 3월 -ㅂ-;;
매우 맛있다는 말에 와아아아 하고 따라갔는데요. 정말~ 맛있는 가게이었습니다. 히힛~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맛있는 동남아 요리를 다루는 가게에 살짝 추가했습니다. 저는 서초점을 가봤는데요. 전철역에서 버스타고 들어가야하는 조금 불편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역삼점도 역과는 좀 거리가 있는듯(약도를 보니)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먹어본 메뉴는 총 4가지던가? 아아 먹어본건 5개지만 종류는 4개 이었었습니다.-ㅍ-; 맛난거 두번 시켜먹기!<- 비기를 사용해봤습니다. 볶음 국수도(왼쪽하단. 추천메뉴1. 살짝 매웠습니다.) 좋았구요. 새우 샐러드(오른쪽 하단. 추천메뉴2)도 좋았었습니다. 게살 볶음밥(왼쪽상단. 아마도.. 게살로 추정. 조금 느끼한 맛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아니다 카레던가? --;;)도 맛있었습니다. 국수쪽은 조금 매운 메뉴를 시켜서 저한테는 별로였습니다. 참고로 함께 드셨던 두분은 맛있게 드셨습니다. 어라 결론은 다 맛있었다는것이 되는군요. 다만 양은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참고로 저는 먹성이 참 좋습니다.) 가격은 대략 5000w원대, 샐러드가 만원이 조금 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더하기_ 사진에서보니 국수 위의 음식들이..=ㅛ=;; 난감하네요. 맛은 난감한 맛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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