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12월의 도서 구매

리뷰/책이야기 2013. 1. 12. 10:28 by dung



* * *


정말 오랜만에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했습니다. 사실 매달 1일은 알라딘에서 뭘 살지 고민하다가 5일 정에 지르는데 관례처럼 되어있었거든요. 한 11월인가 10월부터 그냥 책을 안 사봤어요. 굉장히 걱정했는데, 뭐 그래도 잘 살아지더군요. 당연한 거겠지만요. 매달 일정 금액을 알라딘에서 사용하던 습관은 아마도 7년인가 8년 정도 되었던 지라 그간 습관으로 자리 잡은 그 패턴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천해보니까 또 그렇지만은 않더라구요. 
패턴을 바꿔야 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산 책들이 계속 쌓여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에요. ... ㅠ_ㅠ  현재도 쌓여있지만, 12월의 구매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셀프 생일 선물의 일환으로 구매해봤습니다. 이매진에서 전 부터 읽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보스턴 결혼>.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 좀더 폭넓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이 책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저 자신이 주류이지만 동시에 주류내에서 비주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게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주변에서 삶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충고(?) 혹은 편견(?)을 하도 많이 들었던지라 지금 책의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씁니다. 
그 다음은 핀켈슈타인의 신작.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 핀켈슈타인 선생의 책은 처음 본 책이 돌베게에서 나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이었어요. 이 책을 보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래서 이어서 읽게된 책이브르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로 기억합니다. 핀켈슈타인의 국내 최초 번역판인 <홀로코스트 산업>도 읽어보고 싶은데 이 책은 절판이더군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도 현재는 절판. 
이 분의 신간은 서점의 인문 코너에서 우연히 보고 알게되었어요. 책의 서두인가 저자 소개에서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살해 위협도 받는 상황이라는 정보를 알려줘서 또 한번 충격 받았습니다. 그런건 이웃나라 일본에서나 자행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여러모로 그렇더군요. 책을 구매할 즈음 장 아메리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간 <죄와 속죄의 저편>이 나와서 같이 구매하게 되어서가 가장 큰 원인인것 같아요. 이스라엘의 현재와 과거가 저자의 책 제목에서 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니까요. 그나저나 <죄와 속죄의 저편>은 다른 책에서 자꾸 <죄와 벌의 피안>으로 읽어서 자꾸 제가 다른 책을 산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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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국에서 출소 정치범이나 고문 피해자에 대한 정신치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독재정권이 그런 치료를 할 리 없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그런 제안을 들는 적이 없다. 항일독립운동 이래 지배자에게 저항해 투옥된 자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옥중투사이자 영웅이지, 치료가 필요한 만신창이의 피폐한 환자일 리가 없다는 관념이 굳어진 듯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렸고 주변에서 송구스러워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도 올릴 수 없다는 식이다. 영웅사관에서 벗어나 트라우마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으며, 더구나 혹독한 경험을 한 정치범들은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만 우리는 앞서 많은 분들이 온몸을 바쳐 추구했던 평화와 평등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서승, 창비, 동아시아 평화를 찾는 여행, 인권과 트라우마, p 201



서승 선생님의 책을 읽는건 이번이 두번째 책. 


국내에 번역된 책이 단 한권[각주:1]이었는데... 이제 2권으로 늘어난걸 기뻐해야... 겠지? -_-;;

음. 단 이 양반 책 읽고 싶은 책이 많던데. 서경식 선생의 책도 2권을 합권으로 내는 이 마당에 그런걸 기대하면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 ㅠxㅠ 일어 배워야하나. 크흐.. OTL 내 일맹고수인생 3*년의 결심이 흔들리는 중. 근데 언제 배워서 ... 언제 읽어... 쉬운 말도 아닌데. OTL 

책 제목에서 주는 느낌도 그렇고 저자 서문에서도 이번에는 좀 가볍게 가자(?)는 뉘양스의 편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말을 듣고 동아시아의 탈식민의 현장에 대한 레포트 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좀 가벼운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 얼마전에 재일조선인 4세인 신순옥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재일조선인(주로 남자)이 힘든 삶을 보낸건 사실이지만, 재일조선인 여성의 삶은 더 비참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부분- 을 참 많이 느꼈는데 이번에도 참 많이 반성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용한 저 부분. 두고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냥 뭐랄까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타자화하여 그분들이 걸어간 궤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가치관의 필요에 따라서 재정의하고 소비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자신 조차 처음 이 형제들-서승, 서경식, 서준식 세분-에게 관심을 갖게된 이유도 그런 부분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서 참 죄송스럽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신화는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끊임없이 그 이미지가 재생산되고 다른 의미로 환원되어서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점점 멀어져서 이윽고 그 간극은 어떤 노력으로도 메우기 힘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전 그런것들이 어느정도 필요했었고, 견딜수 없는 그 고통속에서 걸어갔단 그분들은 반드시(?) 올곧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그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타자화를 통하여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리고 그런 시각으로만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하고 그런 시각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며 그런 태도는 서로에게 굉장히 유감스러우며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 자신이 타자화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해서 상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며 말을 한것이 아닌데도 알게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 괴로웠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근데 제가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  하아. 뭐라고 해야할지. 



처음 서승 선생님을 알게된건 근무하던 출판사 책장에 있던 서경식 선생님의 <서준식 옥중서한> 때문이었어요. 그때 함께 사무실을 쓰시던 출판사 사장님께서 절판된 그 책을 자랑하시며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 하시는 걸 보고... 당시 품절이라서 그 책은 구하지 못했지만, 모 출판사에서 나온 <서준식의 생각>을 읽고 참 좋았었고... 자연스럽게 동생분인 서경식 선생님에게도 그리고 형인 서승 선생님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장 아메리와 프리모 레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울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그 기억.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자신의 생각을 그 오랜 기간동안 관철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부분-이유이었지만, 그래도 이 세분을 알고 이분들의 책을 읽게된 행운을 누리게 된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 




  1. <서승의 옥중 19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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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장 아메리, 산책자 
서경식 선생님의 책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장 아메리의 선생의 유명한 저작중 하나인 <자유죽음>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출판사는 산책자. 저는 장 아메리 선생의 책이 나온다면, 창비나 돌베개 출판사 일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니었습니다. 산책자는 웅진씽크북 단행본 계열사중의 하나로, 최근에 흥미로운 인문학 서적들을 많이 발행하고 있는 출판사입니다. 게다가 표지들도 좋아하는 디자이너분들이 디자인을 해서 어떤 디자인으로 책이 포장될지도 기다려지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자유죽음>또한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의 한분인 석운님의 디자인으로 표지나 본문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매우 잘 살려줬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에 대해서 작지만(작은 새) 강한 목소리를 내는 느낌을 살린 표지였습니다. 
이 책은 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시기에 월덴님댁에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북크로싱으로 올라왔기에 사기전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크로싱을 신청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보신 분은 혜란님과 월덴님. 두분의 평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습니다. 두분이 생각보다 아니었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도 뭔지 알것 같더군요. 

저 또한 책 자체가 생각했던 내용이나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장 아메리라는 사람을 알게된 경유는 서경식 선생의 책에서 이었습니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책은 <죄와 벌의 피안>쪽 이었습니다. 처음 장 아메리씨의 텍스트를 보게된 책은 서경식 선생이참여한 대담집이었던 <단절의 세기 종언의 시대>쪽으로,가장 기억에 남았던 구절은 서경식 선생이 인용했던 장 아메리의 문장. 그리고 다음에 만난 것이 또 서경식선생님의 다른 책에서 만난 장 아메리의 글의 인용 문구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만난 인용문이 서경식 선생님이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찾아서 떠난 책에서... 
그의 책에서 인용되었던, 그 문장의 장 아메리와 <자유죽음>에서 느껴지는 장 아메리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느낌의 문장도 만나긴 했지만,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 그건 정말 간간히 만나는 우연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방향은 같은 아우슈비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 선생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이었거나, 이 두사람과 달리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 선생처럼 개인적인 이야기와 본인의 주장을 담은 이야기가 적당히 섞여 있을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우울증에 반대한다>라는 책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울증에~> 저자 피터 D 크레이머는 책에서 시종일관 정말 힘들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힘을 빌어서요. <자유죽음>에서도 장 아메리는 유명한 사람의 말이나 있었던 일을 토대로 계속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 나갑니다. 사실 그 시대에는 그 사람들이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취약한 이쪽 세계의 사람인 저로서는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가 인용했던 그 많은 사람들의 태반은 모르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의 저작 또한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책들은 언제나 나에게 그 간극을 느끼게 해서 참 서글픕니다. 이론으로 무장했던 당시의 시대적 기반에 충실해서 여러사람이 나왔던 간에... 

저는 당신이라면, 그런것들(비하하고자 함은 아닙니다)의 힘(텍스트의 힘이라고 해두죠)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개인적인 체험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었나봅니다. 정말 지겹고 또 지겹고 힘들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지루한 싸움이었나봅니다. 저는 종교가 없고 그쪽(유럽)의 종교적 기반에 의한 가치관의 프레스가 어느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은...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조금씩 좋아져 갑니다. 아주 천천히요. 여전히 편견의 벽은 높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소수지만 당신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대로 받아드리는 집단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 달리 우울증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이 정신분석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구요. 지금의 주류의 치료법은 인지 행동적 이론에 근거해 있고, 과거와 같이 전기치료나 정신분석이 대부분의 치료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치유(치료)의 목적은 당신이 생각하는 '기능성'에 대해서 개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삽화의 상태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고통의 경감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방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그 견디기 힘든 지루한 고통때문이고 그 고통의 경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택이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안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택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달라지는지 당신은 알고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책을 덮으면서,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얼마나 고통받았으며 이 책을 쓰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들과 싸워왔는지 알게되었습니다. 당신들의 노력이 있기에 지금 저는 조금더 안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살아남아 있는 것 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것을 더 볼 수 있다고 아쉬움이라던가 그런것들을 화두에 담지 않습니다. 그냥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 따름. 본인이 아니고서야 뭐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짜피 모든것들은 타인의 고통일 따름. 체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같은 압력으로 작용하는 체현일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그 무게는 다르니까요. 결코 같아질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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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제국은 당분간은 여전히 역사의 '업무상 과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역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세계사에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던 극적인 세월과 비교할 때 그다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별로 다를 바 없는 제국 시대였던 것이다. SS의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의 사진이 방 안에 걸려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유대인 선별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실업자 문제의 획기적 성공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히틀러, 히믈러, 하이드리히, 칼틴브루너 등 나치 거물들의 이름은 나폴레옹, 푸세,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와도 비슷해진다. 만일 같은 조건이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일어났을 것이라고들 할 것이며, 실제로 그것이 독일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독일 이외에서는 없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이다. ...... '만행의 세계'라는 정리로 결론을 맺는다. 그 가운데서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구제받을 길 없는 자식들, 완고한 무리,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역사에 덤벼드는 반동가들이라는 것인가."
- <죄와 벌의 피안> 장 아메리

윤리 인간은 시간을 붙박아 놓고 싶어한다. ...(중략)... 시간이 모럴을 배반하는 바로 그때 그는 인간으로서 희생자와 대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장 아메리

- 기억과 증언 p46, p55,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 <단절의 세계 증언의 시대>, 삼인,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사무실에 있던 서경식씨와 타카하시 테츠야씨의 대담집을 오늘에서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동생이 엠피스리를 선물해주어서 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페이지가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페이지 페이지마다  고통스러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그리고 경쾌한 음악의 비조화가 페이지를 넘어가게 해준다는게;;;; 하아.
 
조금 다른 이유지만 돌배개에 출간된  푸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아마도)>를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매우 망설였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이건 이런거니까요. 그리고 저는 서경식씨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습니다.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망각이라는건 정말 무섭웠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절이 오늘의 이모습을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자리에서 저의 생각도 이자리에서 저의 움직임도 이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으니.
아무리 이해하려고 혹자는 나누려 노력해도 노력은 닿지를 아니하고 결국 타인의 고통은 텍스트 그대로 그만의 고통이 되어버리는 참담함. 얼마나 이해하는것의 문제를 떠나서... 사실 지금 무얼 적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들이 구분지어진 그런 분류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되기가 참으로 여럽습니다. 그려. 인간답지못한 저는 오늘도 인간다워지기위해서 노력중이지만 앞으로 나아감은 그다지 없는거 같습니다.
정말 무서운건요. 저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공범자 혹은 방관자가 되어버릴 거 같다는 겁니다.
이미 공범자이자 방관자 이긴 하지만요. 저 고통의 함성은 저에게는 잘 들리지 않나봅니다. 사소한 노력인데 미동조차 없는걸 보면요. 언젠가는 함께 나아가는 날이 있겠지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마음의 결론은 비참. 참으로 비관스럽습니다. 달라질려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언제까지 계속 될련지. 설마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날이 오지는 않도록 노력하는것이 현재의 저의 최선(기만일지도 모르지만...)이라고 적어봅니다.

...라고 몇일전에 적었습니다. 어제 출근길에 다른사람에의하여 저의 신체가 고통이 가해져서 약간의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후에 바로 저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거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압력을 받으면 움직이는것이 저라는 인간이었습니다. 이런 반성 논조의 텍스트도 그들을 그것들을 기만하는것이 아닌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은 그들의 이야기이었지만, 결코 우리들-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으로 제한하는 범위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대분류이기도한-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친일'이라는 모호한 정의는 여전히 건재한것이 **-우리리라는 단어를 사용할때의 거부감을 설명한 능력이 되지는 않지만 역시 기묘하게 불쾌합니다-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련지. 국가의 이익을 위한 타국에의 파병. 그들만의 정의 의해서 정의로은 혹자는 의로운 인권을 위한...(끝이 없습니다. 하하하;) 평화 파병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지금의 저. 침묵하는 다수속의 저 자신이었습니다. 극복해야 할것들은 너무나 많고 그것들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마련해서 순차적으로 모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건 역시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바꾸거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모두가 중요한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작음 움직임에라도 동참해야겠다고 다시금 결심했습니다.
어제 회사의 지인 ㅅ씨와 이야기했지만 활동가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인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적극적 동참은 못하더라도 작은 동조 정도야 저의 범주에서 가능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일단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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