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매우 좋아하는 오프닝 중에 하나. 주인공인 두사람 모두 좋아하지만, 저런 느낌을 좋아해서 캡쳐해봤습니다. 처음 캐릭터 나왔을 때 양쪽으로 반전한 느낌이 제일 좋아요. 그래서 공부란으로!!

그나저나 그는 정말 봇짱 역활이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유성의 인연에서도 그랬고... 너 범인 아니지에서도... 그리고 그 드라마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호텔을 물려받은 2세 역활에서도 좋았어요. 분기점의 그녀이던가? -ㅅ=;;; 좋아하게 된 건 분기점의 그녀 덕분인거 같아오. 프로포즈 할때 우어어어어!!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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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이트들은 병원이 아님. 그런 관계로 기록이 남지 않음. 보험 문제도 없음. -_=;;;
즉 돈만 든다고 생각하면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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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랜만에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관계로 처음에는 단어(텍스트)들의 생소함에 당황했으나, 그냥 읽으면서 진도를 나갔습니다. 몇차례 읽다보면 처음에 읽었을 때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니까 처음 읽은 지금 남아있는 건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처음 읽은 느낌에 대해서 포스팅 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읽고나서 든 생각과 비교해볼려구요.
책은 버틀러의 한나 아렌트와 아감벤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논으로 시작했는데요. 저는 사실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서경식의 저작에서의 인용에서 접한 것 이외에는 그녀에 대해서 만나본 기억이 없어서 그녀의 이론들과 그리고 버틀러의 반박들을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감벤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버틀러도 앨피에서 나온 버틀러에 대한 입문서를 본 것이 전부이고, 스피박의 경우에는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유일하게 한권. <대담>. 읽다가 나의 무지식 몰이해로 차후를 기악한 <포스트식민이성 비판>, <다른 세상에서>. 그리고 <포스트...>를 읽다가 어려움을 느껴서 앨피에서 나온 입문서인 <스피박 넘기>를 읽었습니다. 앨피에서 나온 입문서들은 많은데요. 저는 추천한다면, 스피박, 버틀러, 지젝의 입문서를 추천합니다. 비 추천은 데리다, 보부아르 입문서. 그 외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를 않아서요.  
머 그런고로 번역자인 주해연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그 때 당시의 미국의 상황을 알고 나니 좀더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9.11이 있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어떤식으로 행동했는지 인지하고 읽었으면 더 몰입이 잘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는 의미에서 '번역자의 말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가?' 하는 후회가 들었어요. 뭐 다시 읽을꺼니까 두번째의 감상은 좀더 넓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그녀들의 논의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은 '국가를 그 국가의 언어로만 불러야 하는건가?'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부시 아저씨가 미국의 국가는 영어로만 불러야 한다고 하셨다던데... 만약 그런 시위가 이 나라에서 재현된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오는 반응들은 눈에 보여서 안습.  OTL
책에서 주된 논의 였던 '국가 없음'에 대해서는 기존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족국가든 다민족국가든 그 국가에서 외부자(시민이 아닌 존재, 국민이 아닌 존재, 불법체류자, 망명자 등등)를 정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권력의 힘이라는 사실. 우리(민족국가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외부자를 받아드리는 것을 제한해야하며, 외부자의 요건에 대해서 정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의 핵심인가에 대한 부분. 그 국가의 국민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은 누가 정의하는 것인지도, 불법체류자는 국민이 아니니까 소비되어 사라지는(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본국으로 추방되는) 존재이어야 하는 부분, 그 부분에 대해서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는가?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질문이 마구 던져졌어요. 그야 말로 질문의 천국. O<-<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보려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랬습니다.
책을 보다가 가장 저의 가슴을 관통했던 부분은 번역자의 말에서 이 논의가 있었던 당시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명명에 저항하며, "어떻게 사람의 존재가 불법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또한 이들은 파업을 통해 이민자 없이 미국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평소에 이민국 단속의 표적이 될까 자신의 존재를 숨겨왔던 것과는 달리 공적 영역인 거리에서 자신의 목수리를 냈다. 시위 과정에서 라틴게 이민자들은 이국 미국 땅이 자신이 살아갈 곳이라는 의미로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불렀다." 


사람의 존재가 불법일 수는 없는건데 말이죠.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가진 언어적 은유와 참담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타국의 시민은 우리의 번영을 위해서만 존재 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 국가 이전에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정의된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순간 사라지며, 그들의 존재는 그런 단어로 치환되어버립니다.
'우리'라는 말은 그래서 공포스럽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부분이지만, '우리'가 들어가면 모든 것들이 통용됩니다. '우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든 정당화가 되어버리죠. 그걸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라는 텍스트 기반으로 비난받습니다. 격렬하게. '우리'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 할 수도 없는거 같아요. 어떤것들이 '우리'를 '우리'로 있도록 정의하는 지에 대해서도요. '우리'에 대한 기준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사실도요. '우리'는 더이상 교과서에서 정의한다고 해도 '단일민족'이 아닌데 말이에요. '우리'에 대한 신화는 점점 우주로 가는거 같아요.
사실을 말하면, 기존의 '우리'가 유지되기 위해서 '우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인지시키는 교육이 '우리'를 뒷받침 해주는거 같습니다. '우리'에 들어온 '소수자'를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여전히 '우리'는 우리일뿐 '우리에 들어온 소수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안에 존재하는 '외부자'일 따름이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우리'를 향하는 그 고통의 외침은 '우리'에게 과연 도달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저는 매우 회의적이에요. 특히나 이 정권에서는 말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우리'였던 사람도 우리가 아닌 혹은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재현되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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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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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월덴님의 추천으로 북크로싱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
신청 할 때는 매우 용기를 내서 읽었는데요. 책이 비전문가가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었습니다. 설명하는 방법이나 단어의 선정 모두 일반인을 고려하고 책을 쓴거 같았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저의 상담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했고 거기에 저의 사례도 있더군요. -_=;;;;;;
그리고 상담심리를 전공한 선생님들도 개인 상담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럴수가아아아!!! OTL 나는 바보인가. 머엉~  저에게는 매우 쇼크. 병원에 가도 의사선생님이 상담을 해주는 병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병원도 있는데... 그러고보니 병원에서도 상담선생님이 상담해주셨;;;
공동 저자중 한분인 김환선생님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있어서 거기도 가보고 뭐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인상이 좋았어요. 생각했던 것 보다 좀더 젊은 분 이셨구요. 친구랑 아마도 함께 가 볼지도? 상담 받고 싶은데 병원은 그렇다는 분들에게 이야기 해드리면 좋아할거 같았어요.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데요. 다른 사람을 상담해주는 그 분들의 일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내력이 매우 필요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았어요. 선생님이 어떤식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말하고 받아드리는지 좀 알게되어서 기쁘다고 해야하나요? 전에 읽었던 <트라우마>에서는 내담자(환자)에게 전이되어서 고통받는 상담자의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졌었거든요. 그건 정말 공포였어요. 저렇게까지 영향을 주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감정적으로 학대당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여튼 이 책은 상담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랬습니다.

저는 상담 받았던 시절에 비슷한 상황의 친구에게 매주 상담 내용을 이야기 해주었거든요. 저 자신이 좋아진걸 가지고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반응은 보통(상대방을) 울린다, 부정받는다,  피한다, 인정하나 자기는 그런 단계가 아니다 등등 이었는데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게되었습니다. 여튼 뭐 그랬어요. 말하고 나니까 조금 많이 부끄럽네요.

상담자는 먼저 관계 원리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노력을 존중하며, 내담자의 어떤 견해도 비판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탐색한다. 상담자가 보이는 이런 반응은 평소 주변 사람이 보이는 반응과는 다르기 때문에 내담자는 자신을 더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고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부모나 친구처럼 조언이나 격려, 충고, 비판을 하지 않으며, 설사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내담자의 마음을 따라가며 반응한다. 이에 반해 일반인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며 반응한다.

- 7장 상담 중반부의 작업, 문제해결하기와 상담의 원리, p 231


뭐 그래도 크게 공감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어요.
'커밍아웃'한다고 해서 별로 손해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는 친구의 이야기도 좀 공감이 갔어요. 저는 그런것 보다 다른 것들이 더 크기 때문에 그런거는 무시하자는 입장이었거든요.
자신이 보는 것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돌아가면 다른면이 있다는걸 보게 해주는 거는 정말 많은 수련을 받아야지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끊임없이 기다려주고 받아주고 인정해주고 타이밍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고 자기 생각을 스스로 더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느 부분은 비폭력 대화 같다고 느낀 부분도 많았어요. 상처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대화법이요. 특히나 '왜'의 사용에 대해서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때 그랬습니다. ^^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분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아래는 매스터슨이 이야기한 '참자기' 입니다. 본인은 열가지 중에서 모두 해당 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참 자기

첫째, 여러가지 감정을 깊게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감정을 외면하거나 부인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슬플 때는 울고 기쁠 때는 웃고 행복할 때는 행복해하는 등의 감정을 깊게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 자신의 적당한 권리를 기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늘 책임감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정도는 받을 만하다는 권리를 기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넷째, 자존감을 인정할 수 있는 상태, 즉 자기를 존중하는 능력이다. '나는 이런 점은 못났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섯째, 고통스러운 감정을 달랠 수 있는 능력이다. 좌절을 하거나 이별을 했을 때 고통스러운 감정을 진정시키고 달랠 수 있는 능력이다.
여섯째, 삶에 목표를 정해서 매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곱째,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창조력이다.
여덟째, 친밀감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대인관계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감정을 보일 때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여기엔 성적인 친밀감도 포함된다.
아홉째,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인생은 왜로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외로울 때 누군가를 찾고 의지하려고만 한다면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는 다시 외로움이 찾아올 것이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거싱고,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찾이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열째, 자기의 연속성이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때로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다가 또 다른 곳에 가면 얌전하고 과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충동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모습을 모두 나의 모습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할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겐 이런 모습도 있을 수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을 수용 할 수 있어야 한다.

- 8장 상담의 종결, 내담자의 변화와 종결의 기준, 매스터슨, p291

메모_
* 기본적인 귀인 오류: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행동을 했을때,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 피치 못할 상황이나 환경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상황이나 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간적 됨됨이 자체에 원인을 돌리는 것
* 조건부 가치: 어떤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만 존중해 주는 것. 조건부 가치는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깊은 욕구를 억압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음. 상담자는 내담자를 존중할 때 어떤 조건을 달지 않음.
* 완전하게 체험하지 못한 것: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려가지 사건을 경험하며, 이때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떤 느낌에 대해서 "난 이런 느낌을 가져선 안 돼." 하는 식으로 감정을 억압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경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임. 체험되지 않은 감정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마음의 한구석에 쌓여 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간 감정의 역습이 오기 마련임. 쌓아 놓은 감정이 많은 내잠자는 감정의 역습을 막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감정을 억압해야만 함.
* 체계적 둔감화: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 공포증이 있을 경우 공포증을 유발하는 존재나 관련된 상황을 천천히 경험하게 함으로써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을 완화시키는 것
* 전이(투사적 동일시): 내담자가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현재의 사람, 특히 상담자에게 투사하는 것.

http://walden3.kr/1243
서울임상심리연구소(김환선생님) http://yesuc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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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비밀 일기장 같은 느낌을 주는 책 이었습니다. 표지에 사용된 일러스트가 본문에도 파트 마다 사용되어서 남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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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디자인_ 행복한 물고기
글자_ 강병인
그림_ 나오미 이토


간결하면서도 이쁜 책 이었습니다. 표지의 가로결과 띄지의 더 강조된 가로결 종이가 잘 어울렸습니다. 표지와 본문에 사용된 일러스트와 손글씨도 정말 잘 어울렸구요. 일러스트는 일본 분 인거 같습니다. 간결하면서도 분위기 있어서 도비라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죄다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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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쿠도칸 각본의 드라마 이지만, 원작이 있어서 보기를 망설였습니다. IWGP 같은 느낌일거 같아서요. 보고난 소감을 말하자면, 드라마는 흡입력이 매우 뛰어나서 정말 단번에 끝까지 달렸습니다. 그 나락의 끝을 모르는 설정으로 개그를 넣어서 스토리를 진행시킨다는 것이 대단했습니다. 아마 이런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거 같아요. 그치만 언제나 비탄에 빠져있는 존재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으로 심하게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면요. 맨하탄처럼 어떤 장소를 매게로 진행하는 것도 여전히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범인을 알고 나니 잠을 이룰 수 가 없었습니다.


아래에는 네타네타네타~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미없는 오덕스러운 짤빵;;;)

드라마를 다 보고나서 머리에 떠오르는 건 '양가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양쪽의 본능인지 뭔지... 양쪽을 통합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자식이 죽어가서 그래서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리고 그 현장을 은폐했고 그리고 그 자식이 죽고나서야 나타난 형사 아저씨.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신물이 올라와서 말이죠.
'우산'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힌트를 주었을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면 상상 할 수록 기분이 나빠져버렸습니다. 그는 그 우산이 본인의 우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습니다. 니노가 모든것들을 움직이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더 생각해보면 그 반대였습니다. 그 형사가 계속 지켜보면서 모든것들을 움직이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지켜보고 싶었다니...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겁니까? 그의 행동과 그의 말은 너무나도 모순되어서 드라마를 보면서 뭐라고 말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양가감정이 있어서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냥 넘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야하는건가요? 그런걸 넘어서 애시당초 양가감정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리고 접하는 모든 것에서도요. 근데 드라마는 원작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가령 폭력을 휘둘렀다고 치면, 폭력을 휘두른 당사자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욕구와 그 반대 욕구가 공존할지도 모른다는 거 이니까요. 폭력을 휘두른 사람에게 구타 당한 상대방은 폭력을 두려워 하는 마음과 폭력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게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런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보는 세상에서는 그러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아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일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들을 멈출 수 가 없었어요. 그만큼 저에게는 데미지가 있었나봐요.
그건 그냥 학습되어 온 거고, 그걸 역할 모델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드린 거에요. 폭력을 원하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걸 원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편이 편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거죠. 그정도까지 힘든거란 말이에요.
다르다고 하면 다른 거 이겠지요. 그치만 양가감정이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요.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그 균열을 보고 어떻게 사람이 멀쩡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기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예민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그래서 횡설수설. 저의 이야기는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글을 다시 읽어도 스스로도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OTL

그냥 자신의 죄를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없어서, 계속 도망쳐왔었고 그리고 아들의 사망으로 바라보려고 했었던건지 시효를 넘길려고 했었던 건지 알고 싶지 않지만, 그 두가지가 공존하고 있었겠죠. 그리고 계속 그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 지켜보고... 부축이고... 그리고 나갈 구멍을 마련하고 그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죠. 그는 계속 도망가려고 했던거 같았습니다. 지켜볼려고 그랬다는건 믿을 수 없어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단말이에요.
그래서 살인자가 내린 결론은 자기 애도. 그 답은 자살. 니노가 추궁했을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용서 할 수 없어요. 당신이 추궁해서 나는 드디어 죽음에 도달 아니 해방 되었다는 이미지. 그건 그에게 또다른 고통을 더해주겠다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행동. 그의 선택은 최악의 인간 쓰레기라고 망설임 없이 말해버릴 용기가 생기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코이치(니노)군은 자신들이 그 사건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평생 지켜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 날 밤 유성을 보러간 것을 자책하고 또 자책해서 자신을 멈출 수 없는 정신상태도 아니었어요. 그는 정지 신호에는 멈출 수 있는 통제력이 뛰어난 청년으로 자라나 있었습니다. 세남매 모두 잘 자라주어서 다행입니다. 정말.
그의 결정은 형사에게 얼마나 잔혹한 일이었을까요. 그와 태연한 얼굴을 하고 범인을 잡으면 형사가 아닌 그냥 보통의 자신이라면 죽였을 꺼라는 말.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건가요? 추궁 받았으니까요? 아 인간은 참으로 뻔뻔합니다. 그런 행동을 해 놓고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 몰려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죽을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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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리

리뷰/이미지와 텍스트 2009. 3. 4. 15:52 by dung

내용은 견딜 수 없었어요. 함께 보던 A양과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아마도 긴머리 총각에 마지막으로 갈꺼 같다고;;; 원작안의 모든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심하게 결핍되어 있었고 스스로도 그걸 알지 못하고 그냥 삽질만 계속하고 있었어요. 작가의 연출인지 아니면 작가 조차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건지 저러다가 다들 막장이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치만, 연출이 너무 좋았었습니다. 컷 분할이라던가... 아름다웠어요. 작가 선생님이 원래 광고 콘티를 했던 분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적인 컷 분할을 보면서 알게되었어요.(글라스에 비친 상대방의 얼굴이라던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컷 분할이었거든요. 컷과 컷을 연결하는 구조도 특이했구요. 겹처서 사용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저사람한테는 저 광경이 저렇게 보여지는구나 하고 느낀 부분들이 많았어요. '정말 아릅답네'하구요. 원서를 사야겠어요. 이 비싼 환율의 시대에 원서를 사는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OTL 일단 서울역 북오프에 가 볼 예정. 있을까요? <모래의 방향>은 있었는데;;;


드라마쪽은 캐스팅도 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토양의 밍밍한 나레이션과 자니즈 그 분과의 듀엣 연기를 보고 접었었는데, 원작에서 자니즈 그 분이 등장하지 않는 설정인걸 알고 또 놀랐습니다.
원작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 작가들은 얼마나 상처 받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독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큰 데미지라고 생각해요. 오센 작가는 오센을 보고 작품 연재를 중단했는데요. 드라마로 갈때 그 설정이라던가 그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사전에 고치지 못하도록 계약 할 수는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노미야 선생님은 그런 것들에 분노를 느끼고 노다메의 경우에는 개입해서 정말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잡지에서 늘어지는 연재를 하는 부분은 열외로 하구요. -_=; 그냥 원작을 알고 드라마들을 보게 되면 그낭 설정만 제한적으로 가져왔지 거이 새로운 작품일 경우가 많았거든요. 원작팬으로서는 좌절이죠. 그런 것들은. 그린도 그랬었고... 후카콩은 좋아하지만 그건 정말 아니었어요. 보지 못한 천재패밀리의 경우에는 친구 말로 새로운 작품이었다고 한 줄 감상평을 전해주었습니다. OTL

전에는 저런 화풍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화풍을 좋아한다면 백천사쪽, 신쇼칸쪽. 스토리도... 근데 뭐 그게 좀 변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요. <너는 펫>의 경우에도 원작을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드라마도 뭐 1화를 소리를 줄이고 봐서 적응하고 다음에는 즐겁게 봤구요. 저의 경우에는 마츠준을 견딜 수 없었거든요. 이 분은 작품이 많지 않았어요. 그냥 추측하지만, 광고일을 하다가 만화쪽으로 정말 대뷔했다는 느낌이 강해서 우와 *_*;; 하고 있습니다. 멋져요.
다만, 캐릭터들의 정신적인 불완전함의 문제점을 알아주길 바랄 따름이에요. 작가에도 그런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은 그런것들이 눈에 보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성인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건가?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필사적 이었을텐데... 

+
인상적이었던 컷연출과 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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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본드라마 베스트에 들어갈 거 같은 예감이에요. 넘어가서, 드라마는 정말 개그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개그! 개그! 개그!! 말장난 개그! 가장 좋아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죠!'이에요. 으하하하! '판다!'도 좋아하지만요. 역시 '죠!'가 아이고... 각본이 노지마 신지라고 들었을때 눈이 똥그래졌어요. 그 사람만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개그가 쿠도칸 처럼 저한테 퍽퍽 먹혔거든요. 어려운 주제를 가볍기도 하면서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게 잘 풀어나가고 있구나 하고 보고 있습니다. 대단해요. 연출도 절묘해서 O<-< 특히나 누드크로키 장면은 몇번이고 돌려 봤습니다. 흑흑.
저는 노지마 신지의 작품은 립스틱을 마지막으로 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고통스러운 드라마는 그다지 보고싶지 않았던거 같기도하고 뭐 지금에 와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런 정극의 진지한 작가가 정극이지만, 개그가 전면인지 정극이 정면인지 알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어요. 게다가 계속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흥미진진함도요. 보는 내내 웃었어요. 뭐 드라마를 보면서 혼잣말을 하면서 본건 꽤 오랜만이라서요. 하하하!

 

여기서부터는 네타네타네타~ 입니다.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우사탕과 베스트 프렌이 된 다이고군 이었습니다. 다른 길을 모르는 그를 보고 있으니까 안타까우면서도 귀엽기도하고... 뭐 응원해주고 싶어졌어요. 우사탕에게는 좀 미안하지만요. 그게 그럴게 지금 7화까지 봤는데요. 메이를 스토킹하는건;;; 우사미군이 아니라 다이고군 이었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는 다이고군. 쌍안경을 끼고 보는 다이고군. OTL 다이고군 ㅠ_ㅠ 타라짱즈는 이대로 해체란 말인가!!!(두둥!)
그나저나 키쿠링은 의외로 그런 역활도 어울려서 깜짝 놀랐어요. 여전히 목소리는 좋아서 좋았습니다.  트라이엥글에서 별로 비중이 없다고 해서 1화보고 일단 스돕인 상태였거든요. 재미있는데 1화보고 멈춘건, 다른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저의 그녀가 너무 나이들어 보여서... 에구치 아저씨보다 연상으로 보여요. 저의 기억속에 그녀는 아직도 비치보이즈에서 세라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던... O<-<선생님이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을 때는 그러면 아니되는데 대폭소하고 말았어요. 처음에는 세라양? 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단발머리 때문에...-_=;;

아이아이를 보면서도 매우 안타까웠어요. 여자라는 천성이라는게 설사 있다고 해도 모두가 그걸 타고난다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여자라는 천성도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이미지화 되어서 우리들에게 주입된 것이지, 그것이 여자라는 천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냥 여자라는 천성이라고 지금의 세계의 기준에 의해서 붙여진거죠. 그건 원래 다수 일지도 모르고 소수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사님의 태도는 저도 화가났었어요. 세상에는 여자라는 천성과 남자라는 천성(혹은 본능)만 존재하는 것 처럼 이야기하자나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말도 인정 할 수 없구요. 그건 개개인이 정하는 부분이죠. 어떤 가치관이라도 그런 가치관을 지지하면서 어딘가는 손실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런것들을 감안하고 사는거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선택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학습된 방법으로 역활모델을 그대로 따라하는 무의식적인 경우도 있지만요. 성인이라면 그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분노를 느낍니다.

드라마는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걸리는 부분이 없었어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저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으면서 봤습니다. 노지마 신지가 우사탕을 내세워서 뭐라고 하는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는데 그 장면을 참고 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야아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요. ㄱ-
그장면은 '테러리스트'라고 칭했던 부분이요.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정의를 내리는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힘들었던건 극중에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오는 타마키 히로시가 말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위화감도 없었거든요. 그냥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세계로의 확장으로 느껴졌습니다. 혹은 그냥 미국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우에노 치즈코의 논리 처럼 당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지 국가의 입장은 빠져있는데도, 그걸 일반화 해서 모두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그런 논리처럼요. 그 괴리가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논리는 자기네의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 하는 논리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저는 느껴지거든요.
문득 그들은 스스로가 국가테러리즘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걸 알고 있는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국가이던 개인이던 단체이던 테러리즘은 지향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거기서 국가가 개입해버리면, 대부분은... 저 자신 또한 방향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정의일지도 모르지만, 당신들 입장에서는 그건 정의가 아니라는 건 한번만이라도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그 나라의 어느 단체가 그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우리들이 이러한 피해가 극심하니 그 단체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전쟁을 선포했고, 그 나라에 처들와서 결국 희생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당신들이 부신 건물에서 정확히는 주택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당신들의 국가의 상징이 된 건물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애처러운 사람들 이었어요. 그것도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 이 현실은 왜 바라보지 않는 겁니까?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부분.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나요?
당신들의 정의를 위해서는 큰 희생은 어쩔수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 혹은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당신네들 나라의 일반 시민이 희생당하는 논리도 같은 논리인데. 어찌하여 당신네 나라만 그걸 정당화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네 나라는 돈이 있고 힘이있어서? 그래. 그렇겠죠. 그렇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그런것들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네들이 그들이 거주하는 생활 터전을 파괴하고 그 위로 식료품이라고 당신네 나라에서 보냈다고 찍혀있는 것들을 받으면서 그네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존심은 있는 자들만이 가지는 사치라는 겁니까. 단지 같은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면서 거기까지인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느낄때마다 뭔가가 무너집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보고 있는건 그런걸 견딜 수 없는 것 보다 눈앞의 즐거움이 더 좋은거 이겠지요. 스스로가 가장 비참하게 느껴지는 건데 그걸 간과하고 보는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런것 보다 그런 시선은 이 나라에서도 주류이고, 우리는 여전히 파병 연장을 위해서 힘쓰시는 분들이 참 많으시니까요. 저는 여기서 티비나보고... 부끄러운데도 생을 이어갑니다.


공식홈
http://www.tbs.co.jp/loveshuf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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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체계와 병든 가족 체계 사이에 유일하다고 할 만한 큰 차이점은 가족 구성원들이 개인으로서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얼마나 허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에게 개성과 개인적인 책임감, 독릭심을 북돋아주고, 아이들이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반면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개인의 표현을 묵살한다. 가족들 모두 독이 되는 부모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야 한다. 이들은 서로 뒤엉켜, 각 개인의 영역을 모호하게 만들고, 결국 가족 구성원을 하나로 뭉뚱그려버린다. 무의식 수준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어디가 자기 영역의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모른다. 서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할수록 다른 식구의 개성을 짓누르게 된다.
얽혀 있는 가족 안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안정감을 느끼려면 자아를 말살해야 한다. '너무 피곤한데 오늘 밤은 가족에게 안 가면 안 되나?'하는 생각은 결코 할 수도 없다. '내가 안 가면 아버지가 화가 나서 어머니를 때리겠지? 그리고 어머니는 술을 마시러 나가버리겠지? 다음달에 만나면 나하고는 말도 안하겠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죄책감을 느낄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얽혀 있는 가족 안에서 구성원은 구성원 자신이 아니라 가족 체계의 부속품일 뿐인 것이다.

- <독이 되는 부모>, 도대체 부모들은 왜 그러는 걸까?,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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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모는 자녀가 자라는 것을 들뜬 마음으로 지켜보며 기뻐한다. 반면 경쟁적인 부모는 자녀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심지어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부모들은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는 채 자식이 자기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한다.
자녀의 청소년기는 특히 불안정한 부모들에게 위협이 되는 시기다. 옳지 못한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은 다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딸을 억누르고 왜소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특히 남편 앞에서 더 그렇다.
마찬가지로 옳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이 자라는 것을 자신의 젊음과 힘이 쇠퇴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놀리는 것으로 아들을 작아지게 만든다.
경쟁적인 부모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다.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했거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을 경우에 경쟁적인 부모가 된다. 현재 상황과는 관계없이 궁핍했던 지난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자신의 형제 혹은 부모와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경쟁을 이제는 자녀와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경쟁은 아이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며, 아이를 약하게 만든다.

- <독이 되는 부모>,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았어요, 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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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되는 부모>

리뷰/텍스트 2009. 3. 1. 00:59 by dung

 

푸른육아에서 나온 수잔 포워드 선생님의 <독이 되는 부모>는 월덴님의 댁에서 북크로싱 해서 빌려보기 전부터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살 수 밖에 없었거든요. 수잔 포워드의 유명한 다른 저작들은 어린시절에 관련한 제목보다는 연애에 관련한 책들 이었어요. 근데 아마도 그 책들도 어리시절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나오고, 강조하고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아마도 얼마전에 읽은 <당신이 나를 위한 바로 그 사람인가요?>의 영향이 좀 있기도 했고, <독이 되는 부모>를 읽어서 이기도 합니다. 심리치료에 관한 책중에서 저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좋은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발전적이었던 좋은 책들은(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전부 지금의 행동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고 있었어요. 과거를 보면 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참 그걸 인정하기도 힘들도 인정한다고 해도 그 과거를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든거 같아요. 저는 그랬거든요.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언행들에 대해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것들이 지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인정하는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앨리스 밀러 선생님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회에서 내려오는 그 변하지 않는 규칙을 건드린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러는 것이 부모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저 자신이 막장이라고 칭하는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형이지만, 저 자신도 아직도 그런 생각이 남아있고, 그것과 이것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수잔 포워드는 앨리스 밀러보다 더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의 힘인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이 책은 2002년에 쓰여진 책이었어요. 앨리스 밀러의 저작은 더 오래전이었습니다.
이 책은요. 자신의 부모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과거에 부모가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리고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지금의 자신이 위로해주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딱 한 번 부모님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었어요. 정확히는 아버지 였습니다. 그건 전하지 못했어요. 스스로도 마주 볼 용기가 없었어요. 다만 그걸 좀더 보완해서 더 많은 사실과 그때의 저의 비참했던 감정을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책에서 지적했던 것 처럼, '언제 행할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언젠가는...'이 아니라 구체적인 '언젠가'가 되도록요.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져 있고, 전반부에는 독이 되는 부모에 대한 자세한 분류와 상담자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후반부에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의(제가 읽었던) 책들보다는 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말 한 것이, 그 방향과 방법이 정말 구체적 이었습니다. 다른 책들과 관리 그 방향과 방법 제시에 대해서 책에서 절반 가깝게 할애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는 걸 완전하게 인정하는 걸 어렵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보통(일반적인, 혹은 정상이라고 분류되는 이라고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의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독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그랬었고(그것것들 통용되는 시대였고 다른것들이 더 우선시 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 가치관들을 가지고 자식들을 키워왔기 때문이고, 대안이라던가 그런 방향의 노력들은 거이 미미한 시대였으니까요. 그런 시대를 거처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의 성인이고, 자신이 느꼈던 부당함에 대해서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그리고 가족주의적 가치관(혹은 가족근본주의)에 의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서로간에 희생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나라의 '가족'에 대한 신화는 저 자신이 바라보기에는 정말 한계를 넘어서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가 사회가 해야할 부분까지도 가족에게 넘기고 그걸 가족이 감내하고 이겨내는 시스템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건 저의 가족에 대한 것들을 일반화해서 보편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의 주위에는 참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요. 포털 같은 장소에 올라오는 상담 글들을 봐도 그렇구요.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극히 일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머 여튼 책에서는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독이 되는 부모였다는 걸 판별하는 기준으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기준에서 1/3이상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면 아마도 당신의 부모는 당신에게는 독이 되는 부모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정도 해당되면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시작했습니다.(자상한 배려로 느껴졌어요. 당신의 부모가 독이 되는 부모였다고 단정하고 시작하지 않는 것이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_
 - 부모가 당심능 가치 없는 아이라고 무시했는가? 부모가 모욕적인 별명을 지어 부르거나 비난했는가?
 - 부모에게 맞은 적이 있는가? 부목 물건을 집어던졌거나 먼지떨이 등 다른 도구로 맞은 적이 있는가?
 - 부모가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남용했는가? 혼란스럽거나 불편하거나 가출하고 싶거나 괴롭히거나 부끄럽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 부모가 정서 장애 혹은 정신병이나 시체적 결함 때문에 우울해하거나 부모 역할으 ㄹ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는가?
 - 위 항목의 이유로 당신이 부모를 돌봐야 했는가?
 - 부모가 비밀로 해야 할 어떤 일을 당신에게 저지른 적이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든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가?
 - 부모 때문에 몹시 놀란 적이 있는가?
 -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게 두려운가?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인간 관계_
 -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학대하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가? 그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당신을 배신할 거라고 믿는가?
 - 인생은 그리 즐거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삶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가?
 - 당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는 게 괴로울 때가 있는가?
 - 사람들이 당신의 참모습을 알게 될까봐 걱정스럽거나. 사람들이 당신을 참모습을 알고 나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잘되어가고 있는데도 괜히 불안하거나,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운가?
 - 가끔 이유도 없이 화가 나거나 슬픈가?
 - 모든 일에 완벽주의자인가?
 - 긴장을 풀거나 즐겁게 보내기가 어려운가?
 - 아주 잘하고 있을 때조차 '마치 부모님처럼' 행동한다고 느낄 때가 있는가?

어른인 당신과 부모의 관계_
 - 부모가 당신을 여전히 아이처럼 대하는가?
 - 중요한 무언가를 결정할 때 부모의 허락을 받는가?
 - 부모를 만나고 난 다음에는 어떤 감정이 강하게 들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게 되는가?
 -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운가?
 - 부모가 당신을 위협하거나 죄책감이 들게 만들어 당신을 조종하려드는가?
 - 부모가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드는가?
 - 부모가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이는가? 부모가 행복해하지 않으면 그게 다 당신 탓 같은가? 부모를 만족시키는 게 의무라고 생각하는가?
 - 무얼 해도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가?
 - 부모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독이 되는 부모의 유형

- 신처럼 군림하는 부모
신과 같이 자신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따르라고 강요함으로써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
- 의무를 다하지 않는 무능한 부모
끊임없이 자신들의 문제에만 얽매여 있고, 마치 아이를 축소판 어른으로 생각하여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학을 하지 않는 부모
- 아이를 조종하는 부모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아이를 과도하게 보호함으로써 아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끊임없이 조종하는 부모
ex) 과보호, 직접적인 간섭, 재정적인 문제로 속박, 자식을 모자라는 아이로 여기고 간섭함, 은근하고 미묘하게 간섭하는 것, 간접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여 다른 사람을 통하여 상대방을 조정하여 간섭함, 다른 자식과 비교하여 간섭하는 것, 무덤속에서도 자식을 조정하는 것 등등
-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부모 자신에게 깊이 내지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 잔인한 말로 상처를 주는 부모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거나 얕잡아보는 투의 비난으로 아이로 하여금 극도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주는 부모
- 알코올 중독자 부모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술을 마시느라 부모 노릇을 조금도 하지 않는 부모


책의 전반부에서는 독이 되는 부모에 대한 유형에 대해서 저런 분류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상황에 맞는 상담자의 이야기도 함께 있어서 더더욱 상황을 받아드리기가 쉬웠습니다. 그런 다음 왜 부모님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파트 2로 넘어갑니다.

파트 2에서 가장 먼저 중요하게 언급한 것은 '용서'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용서의 함정'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 해주어서 더 좋았습니다.

용서의 가장 위험한 면은 꽉 막혀 있던 감정을 발산할 기회를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용서한 부모에게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인정하겠는가? 책임은 두 갈래 길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가거나 자신에게 가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부모'를 용서한 대가로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많응 상담자들으 고통스런 치료 작업을 피하려고 용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용서하는 것이 편안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용서를 하고' 치료 받는 걸 그만두었다. 그런 다음 더 심한 우울과 불안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환상에 매달린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란 용서하는 것이고, 나는 치유딜 것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모두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곧 용서라는 공허한 약속이 씁쓸한 실망감만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된다. 한순간의 평혼함을 경험하겠지만 그 느낌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느낌이나 가족간의 상호 관계가 진정으로 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
만약 용서를 하더라도 정서적인 앙금이 완전히 가신 후에 해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화를 낼 필요가 있고, 그토록 갈망했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용서하고 잊어라"는 말은 "없었던 일로 하라."라는 말과 똑같은 셈이다.
또한 부모를 용서하더라도 부모가 용서 받기 위해 뭔가를 했을 때만 용서해야 한다. 독이 되는 부모는, 특히 자식을 심하게 학대한 부모는 잘못을 인정하고 기꺼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줄곧 몹쓸 짓을 하고, 자식의 실재와 감정을 부정하고, 자식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부모를 일방적으로 용서하는 것은 자식에게 필요한 정서적 치료 작업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다.
-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 용서에는 함정이 있다, p200~


그리고 아직도 어린아이 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어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에게 가지고 있는 신화. '이렇게 행동하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자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여러가지 대응 방법도 있었고요. 게다가 연습문제까지. OTL 전 아마 이걸 100번은 연습해야 할꺼 같아요. 어려웠어요. 반응하지 말고 대응하는 것이요. 그건 무리에요. 아아 어떻게;; 하고 읽었습니다.
방어적인 언어들은 '그래요?, 네 알겠어요, 그거 재미있군요, 물론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는 있어요, 인정하지 않으니 유감이군요, 생각해보죠, 마음이 편안할 때 얘기하는 게 어때요?, 상처를 받았다니(속이 상했다니, 실망했다니)죄송하군요'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책임의 소재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어렸을때 우리가 부모로 부터 비난받던 행동들은 우리들의 잘못에 의해서 비난 받은것이 아니라 부모가 독이 되는 부모였기 때문에(자신의 정서적 프로그램을 부모로서 적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에게 받았던 것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반복했기 때문에) 비난을 가해왔던 겁니다. 그래서 부모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분노를 터트려야하고 분노를 터트리지 못했던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분노를 터트리는 순서와 방법까지 안내해줬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애도의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가해자인 부모와 대면하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편지, 전화, 대면 3가지 방법이 있지만 전화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편지 또는 대면이 좋다고 알려주며, 편지를 쓰는 방법과 대면했을시에 독이 되는 부모의 유형의 반응과 우리가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주위사람들(배우자, 자식, 혹은 친구들)을 위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격려해주면서 이 책은 끝났습니다. 아아 정말 좋은 책 이었어요.

역시 수잔 포워드 선생님은 앨리스 밀러 선생님보다 더 요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잔 포워드 선생님의 책은 2002년 판. 앨리스 밀러 선생님의 책의 초판은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말 오래전 인걸로 기억합니다. 이 분의 출생년도가 정말 오래전 이었거든요.
앨리스 밀러 선생님의 저작(국내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 양철북의 책 두권)들을 보다보면 이 분도 정말 힘들게 글을 쓰셨고, 많은 반대파들에게 비난받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정말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수잔 포워드 선생님의 책의 경우에는 앨리스 밀러 선생님이 고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의 그 이론이 더 정리되어서 분류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나봐요. 수잔 포워드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서 글을 쓰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이 책은 보기도 이해하기도 편하도록 분류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정리도 되고 대안도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
푸른 육아의 읽고 싶은 다른 책들
내적 불행 - 행복한 부모가 되기 위한 마음의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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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깊이 뿌리박힌 태도, 자각, 사람드렝게 대한 관념과 관계, 그리고 도덕성이다. 삶이 발전하고 변화하려면 반드시 그릇된 믿음과 부정적인 느낌, 스스로를 망치는 행동들의 상호 관련성을 알아야 한다. 아래에 제시한 첫 점검 항목은 당신의 느낌이나 행동 이면에 어떤 믿음이 깔려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것_
내가 할 일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희망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 없이는 못 산다.
나는 부모님 없이는 못 산다.
부모님에게 사실을(이혼하려는 사실, 유산, 동성연애자라는 것, 약혼자가 무신론자라는 것 등) 말하는 것은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반항하면 부모님을 영원히 못 보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심한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부모님의 감정을 상할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님의 감정이 나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므로 부모님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변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좋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못난 사람이 되게 한 부모님에게 복수해야 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부모님도 달라질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든지간에 여전히 나의 부모님이므로 존경해야 한다.
나는 늘 부모님이 내 삶을 조종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4개 이상 '그렇다'라고 답했다면 아직도 부모에게 크게 얽매여 있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이런 믿음들이 당신을 망친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하고, 더 의존하게 만들며, 성인으로서 힘을 갖추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부모가 어떻게 느낄까 하고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감정은 그 사람스스로가 '선택'해 느끼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느끼게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와 관련된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어떤 감정을 느끼기로 결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누가 당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할 책임이 있듯이, 당신의 부모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스스로 좋아지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머니에게 냉혹하거나 가학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슬프게 할 일을 한다면(어머니가 승낙하지 않은 결혼을 한다거나, 직장을 따라 다른 지방으로 가는 일 등)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인 것이다. 물론 "놀러게 해서 죄송해요."와 같은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감정 때문에 당신의 계획을 바꾸어야 할 책임은 없다.
어머니의 감정을 위해 욕구를 무시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해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분노를 느끼게 되어 어머니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지 못하면 죄책감과 함께 부당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의 감정이 늘 우선한다면 부모가 당신의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독이 되는 부모>, 왜 아직도 어른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걸까,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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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의존적인성격의 주된 특징이 나열된 리스트_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고통을 완화해주는 게 인생의 중요 과제이며, 그 대가로 치러야 하는 감정적인 어려움은 개의치 않는다.
나의 행복은 그나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그를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하고, 그의 잘못도 두둔하고, 사람들이 그를 나쁘게 평가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그와 결부지어 생각하고, 그와 결부지어 해결하려고 든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가 중요하다.
그에게 버림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가 나에게 분노하지 않도록 뭐든 다 할 작정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기구한 남여관계에 많은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
나는 완벽주의자이며, 뭔가 잘못되면 나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분노와 부당함을 자주 느낀다.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한 무조건 잘되어가고 있는 척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마드는 데 내 인생 전부를 걸고 있다.

'상호 의존적'이라는 말은_
주로 알코올 중독자나 약물 중독자의 배우자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약물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을 '구하겠다'는 책임감에 불타 정작 자기 인생은 엉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강박증적인 사람이나 중독자, 학대하는 사람 혹은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을 구하겠다고 애쓰느라 정작 자기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 <독이 되는 부모>, 어린 시절을 모두 빼앗겼어요,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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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거나, 성가시게 굴거나, 반항할 때 강하게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충동은 아이의 행동과는 상관없고, 부모가 느끼는 피곤과 스트레스 정도, 불안이나 불행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다. 반면 불행하게도 자제를 못하는 부모들도 많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신체를 학대하는 부모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심각할 정도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는 부모는 부정적 감정이 강하게 들 때마다 그런 감정을 방출할려고 자식을 공격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아이를 때리고 싶은 충독이 일면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도 그런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신체를 학대하는 부모를 보면 학대를 일삼은 집에서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릴 때 경험하고 학습한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 자식들에게 직접 되풀이 하는 것이다. 결국 학대하는 사람이 역할 모델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러 문제, 특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배워든 유일한 방법이 학대다.
신체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들은 무력감과 상당한 감정 결핍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기로 접어든다. 감정적인 면에서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대리 부모로 착각하고, 실제 부모가 결코 체워주지 못했던 감정적 욕구를 충족하려 든다. 그러다 자식이 자신들의 욕구에 미치지 못하면 욕을 퍼붓고, 화를 낸다. 그 순간, 어린 자식은 더 이상 자녀가 아니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진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은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 <독이 되는 부모>,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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